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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②] 최수임 "뒷심 터지는 스타일, 시간·내공의 힘 믿어요"
좋은 작품은 좋은 배우들까지 발굴, 발견해내기 마련이다. 많은 이들에게 이야기되고, 회자되면 회자될 수록 눈에 띄는 구석도 많아진다. 코로나19 시국 150만 명의 선택을 받은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이종필 감독)' 역시 주연 못지 않은 조연 배우들의 활약상이 호평받은 작품. 그중 얄미운 감초 역할로 관객들의 뇌리에 콕 각인된 조대리 최수임의 존재감도 남다르게 빛났다. 상고 출신 말단 직원으로 분류되지만 비상한 아이디어를 번뜩이는 정유나(이솜) 옆에서 갖출 것 다 갖춘 정규직 스펙으로도 열등감을 느끼는 조민정 대리. 정유나의 아이디어를 제 것처럼 스리슬쩍 활용하는가 하면, 무너지는 자존심에 아닌 척 있는 독설 없는 독설을 날려 보기도 하지만 그래서 더 조악한 측은함을 느끼게 만드는 캐릭터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누구나 한번쯤은 조대리의 입장이 되어 봤을 관객들에게도 설득력과 공감대가 뒤따르는 이유다.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인물"이라고 조대리에 대해 설명한 최수임은 "주변에서 꼭 한번씩은 마주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조대리가 될 때도 있고, 조대리와 같은 시선을 받을 때도 있고. 살다보면 내가 가진 아홉가지보다 갖지 못한 한가지에 집착할 때가 있는데, 조대리를 연기하면서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새삼 되돌아보게 됐다"며 "영화적으로는 지금 보면 대단히 강렬한 90년대 스타일을 원 없이 경험할 수 있어 즐거웠다"고 전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과 출신으로 16년간 무용수로 살다 돌연 연기에 눈을 돌렸다. '기적의 오디션' 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 깜짝 눈도장을 찍기도 했던 최수임은 2011년 영화 '써니'를 통해 본격적인 배우 행보를 시작, 10여 년간 공백과 활동을 반복하며 '최수임만의 내공'을 쌓는데 꾸준한 노력을 기울였다. 여유가 없었던 시절도, 미숙함에 몸부림 친 시절도 있었지만 최수임은 "시간과 내공의 힘을 믿는다"며 성장의 좋은 예를 스스로 증명해냈다. ※인터뷰①에서 이어집니다. -영화에서처럼 실제로도 누군가를 질투하거나, 혹은 반대로 질투의 대상이 되어 본 적이 있나. "내가 무용을 정말 오래 했다. 어느 분야든 경쟁은 있기 마련이겠지만, 늘 평가 받아야 하고, 대회에 나가 성과를 내야 하는 예술 쪽은 매일이 경쟁이다. 특히 예고는 30여 명의 친구들을 3년 내내 봐야 한다. 동기 뿐만 아니라 선배도 있고 후배도 있다. 심지어 다 여자다.(웃음) 어쩔 수 없이 선의의 경쟁이 펼쳐질 수 밖에 없다. 질투까지는 아니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신경쓰기 마련이고, 대부분 의연하게 넘어가지만 반응이 터질 때도 있다. 그래서 조대리를 대하는 유나에 관객들이 더 큰 대리만족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하다." -한예종 무용과 출신이다. 이후 연기까지 이 악물고 노력하는데는 일가견이 있을 것 같다. "사이클이라는 것이 분명 있더라. 나는 내 사이클을 잘 알고 있다. 한 두번 해서는 안 되고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뭐든 빨리 배우는 사람이 있고 느리지만 계단식 임계점에서 포텐이 터지는 사람이 있지 않나. 나는 후자다. 차곡차곡 쌓였을 때 탁 터지는 무언가가 있다. 연기도, 무용도 뒷심이 단련돼야 하는 스타일이다. 다행인건 포기는 잘 안 한다.(웃음) -연기를 시작한 후에는 무용을 아예 그만뒀던 것인가. "좀 단호한 구석이 있다.(웃음) 내가 가진 것을 부정하고 남이 가진 것들에 포커스가 맞춰진 시기도 있었다. 지금은 돌아왔다. 그땐 생각하지 못했는데, 나만 할 수 있는 것이 결국 무용이더라. 동 시대 배우들 중에 16년 동안 무용을 한 사람은 없다. 그건 내 유일함이다. 어느 순간 인정을 하게 됐고, 받아들이니 편하더라. 한예리 선배님은 꾸준히 공연도 하시지 않나. 예전에는 무용과 연관된건 절대 안 한다는 주의였는데, 지금은 공연할 수 있는 기회, 무용을 선보일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나만의 강점을 살려보고 싶다." -스스로 생각하는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 것 같나. "개성있는 외모라서 그런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이미지가 달라진다. 어떻게 보면 한 가지 이미지로 각인되는게 더 좋을 수 있지만, 다양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는 가능성은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연기를 함에 있어 이미지적으로 맞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점점 더 깨달아가고 있다. 그런 부분에서는 확실히 잘 변할 수 있으니까. 그런 피드백을 받을 때 좋다." -헤어스타일이 숏커트로 바뀌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그런건 아니다. 원래는 더 짧았는데 영화 전 드라마 '해치'를 찍으면서 좀 길렀고 영화까지 찍고 잘랐다. 다시 짧게 활동을 해보고 싶어서 잘랐다. 스타일링에 변화를 준 부분도 있다." -연기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 "전공은 무용으로 진학했지만 아무래도 학교가 예술학교다보니 코 닿으면 연기를 배울 수 있는 곳이 있었다. 돈 많이 내고 배워야하는 선생님들이 포진돼 있었고, 내가 부지런하면, 마음만 열려 있으면 강의를 들을 수 있었다. 대부분 본인 전공에만 주력하기 마련인데 나는 연기를 해보고 싶은 마음이 있어 수업을 들었고 큰 재미를 느꼈다. '몸으로 표현해 보세요' '눈 감고 느낀걸 해 보세요'라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연극원만 가면 좋았다." -학교를 제대로 활용했다. "정말 큰 도움을 받았다. 이후에 독백 같은 것도 연습하게 됐고, 오디션도 보기 시작했다. 다수를 구하는 단역 오디션에 합격했는데 그 작품이 '써니'였다. 강형철 감독임은 2차 오디션 때 뵐 수 있었다. '여기서 제일 나이 많은 친구가 누구예요?'라고 물었는데 나였다.(웃음) 21살에, 일진 친구들 중 한명으로 영화계에 발을 들였다.(웃음)" -데뷔 후 벌써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솔직히 연기를 한 기간 자체가 길었다고는 할 수 없을 것 같다. 시간은 흘렀지만 필모그래피는 많지 않다.(웃음) 다만 지금까지 해 온 결과 시간이 쌓이면 그것에서 오는 힘은 분명 있는 것 같다. 무용도 사람들이 '한예종 갈 정도면 정말 잘한거 아니에요?'라고 묻는데 스스로는 '시간이 쌓여 그렇게 됐다'고 생각한다.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연기도 내 욕심, 기대치까지 올라가려면 쌓여야 하는 것 같다." -지금은 그 과정에 있는 것인가. "어쨌든 포기하지 않고 계속 할테니까. 무용처럼 어느 순간 '안 할거야!' 하지는 않을 것 같다.(웃음) 초반에는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도전의 성격이 강했기 때문에 오디션도 많이 떨어졌고 그만큼 지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경험이 나에게는 자양분이 되지 않을까. 자연스럽게 알아지는 것들이 연기에 녹아날 것 같다. 내 자신에게 기대되는 부분은 확실히 있다. 여배우는 나이도 평가 받는다고 하는데, 그래서 불안한 것도 있지만 진짜 길~게 가고 싶은 마음이다. 자연스럽게, 삶을 살아가면서 연기하고 싶다." -중간 중간 공백기는 일부러 가졌던 휴식기인가. "그건 아니다. 그땐 뭔가 다음으로 연결이 잘 되지 않았다. 열심히는 했지만 여유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연구도 하고 배우기도 하면서 발전해 나가야 했는데 그런 것에 미숙했다. '실수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은 컸지만 연기 자체에 대한 고민은 많이 없었다. 그런 것들이 다음 작품으로 이어지지 않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그런 경험을 통해 고민을 많이 하게 됐고 '왜 나를 찾지 않을까' 문제의 실마리를 찾으려고도 했다. 지금도 알아가고 있다." -'기적의 오디션' 출연도 지금까지 언급되고 있다. 곽경택 감독은 한번도 만난 적 없나. "신기하게도 없다. 내가 감독님 영화에 오디션을 보게 된 적도 없었고, 곽경택 감독님 외에도 김갑수 선배님 등 다른 심사위원 분들 역시 뵐 법도 한데 만나지지 않았다. 언젠가 재회의 순간이 오면 '그때 그게 저였어요'라고 꼭 말씀 드리고 싶다.(웃음)" -블로그는 새로 시작한 것인가. 글도 쓰던데. "취미로 책을 많이 읽는다. '글을 써보고 싶다' 생각한건 꽤 오래 됐는데, 용기가 안 나는 부분이라 간직만 하고 있었다. 나는 뭔가를 글로 표현해 본 적이 없다. 무용도 연기도 몸으로 표현해야 했고, 직감적으로 보이는 것을 더 중요시 해야 했다. 그래서 '글을 쓰면 또 다른 방향이 보이지 않을까' 싶어 거창하게 말고 소소하게 내 이야기를 적기 시작했다. 의무적으로 쓰면 지속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남의 일기를 몰래 보는 듯한 재미가 있더라. "하하. 다들 그렇게 봐 주셨으면 좋겠다. 허세같은 분위기는 또 싫어서 최대한 간결하고 쉽게, '삶에서 직접 느낀 것들을 정리해보자'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생각으로만 떠 다닐 땐 괜시리 다운되는 경우도 있는데 글로 표현하니 한번은 훅 털어놓는 기분이다. 실제로 친한 지인이 '잘 보고 있다 . 나도 너 같은 마음이 든 적 있다'는 피드백을 주기도 했다. 이것 또한 쌓이고 쌓이면 재미있는 것들을 새롭게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두려움은 없나. "내 강점이면서 단점일 수도 있는데, 뭐든 '일단 해보자!'는 주의다. 그런 마음이 들면 실행을 빨리 한다. 그래서 실수도 많지만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발전하는 편이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고, 실패한다고 해서 그게 꼭 흠이 되지는 않는다. 그리고 다들 자기 살기 바빠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웃음) '내가 이걸 하면 사람들이 비웃을거야. 실패자로 낙인 찍힐거야'는 정말 나만의 걱정이다. 무엇보다 시작 자체만으로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이자 희망이 될 수 있다 생각하기 때문에 뭐가 됐든 해보려고 한다." -2021년 목표가 있다면. "아직 결정된 작품이 있는건 아니지만 '삼진그룹 영어토익반'의 조민정 대리를 기점으로 새로운 시작을 하겠다는 마음이 크다. 영화 관계자 분들께 '나라는 사람이 있어요!'라고 약간 보여준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커뮤니티나 SNS를 통해 전달받는 반응도 이전과 확실히 달라졌다. 신기하고 좋은만큼 다음이 중요할 것 같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사이클의 흐름대로 가고 싶다. 옛날엔 아주 일희일비하고 살았다. 하하. 올해 '멈춤'의 상태에서 어려운 시기를 보냈는데 그 이상의 좋은 일들이 생기지 않을까 희망하고 있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매니지먼트 낭만
2020.11.22 1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