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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참시' KCM, 영화 주인공 캐스팅..배우 데뷔

가수 KCM이 영화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됐다. 8일 방송되는 MBC '전지적 참견 시점' 152회에서는 연기 도전에 나선 KCM의 특별한 하루가 공개된다. 매니저는 "KCM 선배님이 영화 주인공으로 캐스팅됐다"라고 제보해 모두를 놀라게 한다. KCM은 배우 데뷔에 긴장하기는커녕 "연기는 느끼는 거야"라며 자신만만한 모습을 드러낸다. KCM은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대망의 첫 대본 리딩에 나선다. 하지만 당당함도 잠시, KCM은 시작부터 진땀을 흘렸다고 하는데. 급기야 감독은 KCM에게 "이거 노래가 아니고 대사입니다"라는 빵 터지는 디렉팅을 해 현장에 있던 매니저까지 당황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KCM의 상대 배우로 데뷔 34년 차 연기 고수가 캐스팅돼 놀라움을 안긴다. 그런 가운데 KCM은 선배 배우에게 "죄송합니다"라고 폭풍 사과한 것으로 알려져 과연 그의 첫 대본 리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상대 배우는 누구일지 궁금증을 더한다. 그런가 하면 KCM은 영화계 대스타에게 직접 연기 조언을 받는다. "연기도 방법이 있나요"라는 KCM의 물음에 이 스타는 특급 명언을 전했다고 한다. 매니저도 놀란 KCM의 황금인맥은 누구일지. 그가 KCM에게 전한 조언은 무엇일지 본방송이 더욱 기다려진다. 8일 오후 11시 10분 방송.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 2021.05.08 18:13
연예

[인터뷰] 왕년의 멜로킹 차인표 "코미디 특화 배우 되고파"

차인표가 '차인표'로 차인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캐릭터와 실제 싱크로율은 50%를 웃돌지만 그렇기에 배우로서 부담감을 뚫은 도전에 응원의 목소리가 더욱 높다. 스크린용으로 제작됐지만 최종 넷플릭스로 안착하게 된 것도 '차인표'와 차인표에게는 신의 한 수. 차인표는 "영화의 호불호를 떠나 이 작품을 택하고 선보일 수 있게 된 것 만으로도 흡족하다"는 진심을 표했다. '차인표'는 대스타였던 배우 차인표가 전성기의 영예를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코믹하게 그린 영화. 원조 신드롬형 배우로 자고 일어났더니 벼락스타가 된 대표격에 해당하는 차인표는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데뷔 초부터 전성기 인기를 누리며 승승장구했다. 차인표의 시그니처 두번째 손가락은 수 많은 여심을 앓게 만들었고, 꽃미남 몸짱으로 스스로 스타성을 증명했다. 젠틀하고 성실한 이미지는 현재까지 차인표를 설명하는데 빠지지 않는 설명. 대중이 원한다면 어느 정도의 손해는 감수하더라도 그만큼의 보답을 해야 한다는 '대중 연예인'으로서의 마음가짐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될 정도로 똑부러진다. 하지만 차인표는 스스로 '이미지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았고, 또 벗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솔직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이미지는 지켰지만 배우로서 성장과 발전에는 꽤 오랜시간 정체기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고. 때문에 '차인표'는 차인표를 세상 밖으로 한걸음 더 나오게 만드는 비상구가 됐다. 코미디 대표 배우라는 새로운 수식어를 향해 다시 달리기 시작한 차인표다. -5년 전 거절했다 다시 선택한 작품이다. ""5년 전, 그러니까 2015년에 제의를 받았을 땐 거절했다. 그땐 간간히 영화 제의가 있었고 외국 영화 제의도 있었다. 이것저것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차인표' 시나리오가 신박하게 다가왔고, 제목도 내 이름으로 돼 있어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지만, 저예산에 '영화를 만든다고 해도 제대로 배급이라도 될까' 싶어 거절했던 것이 사실이다." -굉장히 현실적인 선택이다. "다시 출연을 결정한 이유도 현실적이다. 촬영을 진행한건 2019년이었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4년이 지난 것인데, 4년이라는 시간을 보내면서 정체기를 느꼈다. 영화가 됐든 뭐가 됐든 좀 더 새로운 것을 해보고 싶었고, 팬들에게 내가 아직도 활동하고 있고 열심히 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었다. 그렇다면 강력한 한방이 있어야 했는데 그 작품이 '차인표'가 됐다." -배우 차인표가 소재이고, 이름 차인표가 제목이다. 당연한 부담감을 느꼈을 것 같다. "너무. 광고를 할 때도 내 이름을 갖고 할텐데 '너무 희화화 되지 않을까' 걱정도 많았다. 무엇보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관객들에게 외면당하고, 한 줄도 모른채 끝나면 진짜 큰 상처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럼에도 갈증이 컸기 때문에 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실제와 허구를 넘나든다. "어떻게 보면 '차인표'는 김동규 감독이라는 제3자가 바라본 나를 그린 영화다. 나라는 실체는 여기 있는데, 나라는 인물을 감독의 눈으로 해석했다. 그리고 그건 일반적인 대중이 나를 바라보는 주된 시선일 것이다. 나는 직업이 대중 연예인이니까. 대중이 만약 나에게 그런 이미지를 심어줬고, 기대를 한다면 부응해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곧 나의 책임이다." -대본 수정에도 관여하지 않았나. "첫 결심이 그것이었다. '대본에 있는 그대로, 토 달지 말고 연기하자' 단단하게 마음먹고 촬영에 임했다. 김동규 감독이 '차인표'라는 세계관을 만들어 놨는데, 거기에 내가 주된 소재로 사용된다고 해서 '이건 이렇고 저건 저렇고 그건 사실이 아니에요'라고 잔소리를 한다면 영화가 안 만들어질 것 같더라. '이렇다 저렇다 참견하지 말자'는 마음이 컸다." -그럼에도 '이건 정말 아니다' 싶은 부분은 없었나. "딱 하나 요청해 반영한 것이 있다. 정치다. 원래는 극중 차인표가 정치를 하고 싶어 계속 기웃거리는 장면이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나랑 너무 다르더라. 영화가 공개됐을 때 스토리는 생각이 안 나고 혹시 그 부분만 실제처럼 유념해서 봐 주실까봐 그 지점만 특별히 수정했다." -연예인으로서 공감되는 지점이 있었다면. "대중 연예인을 직업으로 가진 사람들의 보스는 대중이다. 여러분들이다. 그분들을 즐겁게 해드리는 것이 곧 우리의 일이다. 때문에 많은 사랑도 받고 분에 넘치는 관심을 받고 살지만, 반면 일상에서는 일정부분 손해를 감수하고 양보해야 할 부분도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건 당연하다." -마음가짐이 확고하다. "영화에도 산책하는데 등짝을 얻어 맞는다던가, 사진이 찍히는 에피소드가 나온다. 어떻게 보면 불편할 수 있지만 직업적으로 감수해야 마땅하다. 반대로 생각했을 때, 그런 관심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 비해서는 감사한 처지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연예인으로 꼭 지켜야 할 신념이 있다면 나는 진정성이다. 내가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될 때 작은 파동과 울림이 있다" -극중 차인표와 크게 다르다 느끼는 부분도 있나. "음…. 나 같으면 무너진 건물에 갇혔을 때, 내 상황이 어떻든, 이미지고 뭐고 일단 빨리 나갔을 것 같다. 나가서 해결을 해도 하지 않았을까. 성질이 좀 급한 편이다.(웃음)"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라 생각하나. "한 50%? 내려갔다 올라갔다 한다. 완벽하게 다른 점 하나는 내가 폐쇄공포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MRI도 잘 못 찍는다. 촬영은 미술팀이 세트를 워낙 잘 만들어 주셔서 갇힌 것 처럼 보이지만 옆은 뚤려 있었다. 그래도 들어가서 꽤 오래 있으면 답답하긴 했는데, 때마다 스태프들이 와서 물도 주고 신경을 많이 써줬다. 연기인데, 힘들어봤자 얼마나 힘들었겠나." -떼려야 뗄 수 없는 매니저와의 케미도 눈길을 끌었다. "'너 밥벌어 먹고 사는거 다 내 이미지 때문이야'라는 대사가 있다. 나는 그 대사가 웃프면서도 어쩔 수 없이 공감이 되더라.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연예인들, 혹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여러 의미에서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아내 신애라는 목소리로 깜짝 출연했다. 영화에 대한 반응은 어땠나. "공개된 첫 날 아내, 아들, 두 딸과 같이 봤다. 아내는 코미디를 조금 더 기대했던 것 같다. 코믹한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아무래도 불쌍한 남편이 더 먼저 보였는지 '측은한 느낌이 든다'고 하더라.(웃음) 대학생 아들은 재미있어했고, 사춘기인 고1, 중2 딸들은 함께 봐 준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하하. 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날 줄 알았다. '아빠, 수고했어' 한마디 해주더라." -영화를 본 개인적 소감은 어떤가. "이 영화는 총 한 달만에 찍었다. 저예산인데다가 촬영 당시 장마에 태풍까지 왔다. 그래서 한 달 안에 세 번 정도 촬영이 중단될 정도로 고생을 했다. 신인 감독이 매일 매일 스케줄을 소화하기도 벅찰텐데, 배우로서 이런 저런 이야기까지 할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물론 개인적인 아쉬움은 있지만 안전하게 무사히 촬영을 마친 것에 더 큰 기쁨을 느끼고 있다." -최민식·송강호·설경구와는 실제 친분이 있나. "없다. 하하하. 경구 씨는 친구다. 다만 매일 연락하는 관계는 아니다. 강호 씨도 억지로 다른 선배님 때문에 말은 놨는데 어느 자리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정도다. 개인적으로 송강호 씨 팬이다.(웃음) 그리고 최민식 선배님은 너무 큰 선배님 아닌가. 예전에 스크린 쿼터 시위할 때 함께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정도다." -스크린 복귀는 굉장히 오랜만이다. "2008년 '크로싱'이 주연작으로는 마지막이었다. 조연, 특별출연으로는 이곳 저곳에 참여하긴 했지만 본격 상업영화 주연은 약 12년만이다. 떨릴 수 밖에 없다.(웃음) 그래도 팬분들이 '저 팬이에요. 찐팬이에요. 기다렸어요' 같은 응원을 정말 많이 해주시더라. 솔직히 그런 반응 하나하나가 너무 행복하다. '내 진정성을 알아 주시는구나' 싶다." 사진=넷플릭스 -새로운 변신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도 될까. "'차인표' 자체가 나에겐 도전이었고, 어쩌면 보여드릴 수 없는 부분까지 다 보여드렸다고 생각한다. '진작 보여드릴걸' 생각은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하면 되지 않을까. 기존 이미지에서 탈피해 조금 더 신선한 모습으로 인사드리고 싶다. 진심으로.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 또 정체기를 겪으면서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 -이미지 탈피, 정체기에 대한 아쉬움을 여러번 강조했다. "여태 혼자 착각하고 있었던 것이, 대중과 내 팬들이 나에게 어떤 이미지를 부여해주지 않았나. 바른생활사나이, 젠틀맨 같은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그 이미지를 바탕으로 그 위로만 계속 같은 이미지를 덮어 씌웠던 것 같다. '나를 바라보는 분들이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TV에 나오고 영화를 찍는 동안에는 그렇게 살아야만 한다, 최대한 그 이미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컸다. 그런 다짐이 계속 형성됐다. 결과적으로는 그것이 굴레가 돼 나를 갇혀 살게 만들었다." -작품 선택에도 영향을 끼쳤을까. "당연히 그랬다. 그러다보니 몇 십년이 지난 지금 나는 전혀 변화하지 못했고, 또 변화되지 않는 나를 기다리다 팬들은 떠나가고, 그럼에도 나는 계속 그 굴레에 갇혀 있고가 반복됐다. 꼭 영화에서 무너져 내린 건물에 갇혀 스스로는 나올 수 없는 상황과 현실이 비슷하게 전개됐다." -배우 차인표에게는 그 탈출구 중 하나가 '차인표'가 됐나. "맞다. 그 상황에 갇혀 내내 '니체같은 철학자가 내 틀을 깨부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니체는 나타나지 않는다. '스스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싶던 찰나 내가 선택할 수 있게 떨어진 대본이 '차인표'였다. 이미지 변신이 안되니까, 굴레를 제발 깨부수고 싶어 선택했기 때문에 영화의 호불호, 성적과 관계없이 나는 내가 이 영화를 찍고 공개됐다는 점에서 만족한다." -코미디에 대한 욕심이 있나. "좋아하는 배우도 주성치, 성룡이다. 앞으로 남은 인생동안 연기를 얼마나 더 하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코미디에 특화된 배우가 됐으면 싶다. 남을 웃길 수 있고 나도 웃을 수 있는. 인생은 짧으니까. 하고 싶을 것을 하는 것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 -과거에 대한 회한도 있을까. "'사랑을 그대 품안에'가 94년도 여름에 방영됐다. 갑작스럽게 벼락 인기를 얻었고, 러시아로 넘어가 한 달 반동안 드라마를 찍고 돌아와 두 달 있다 입대했다. 그리고 몇 달 지나 휴가 때 결혼을 했다. 눈 앞에 닥친 일을 해결하느라 생각이라는 것을 할 수 없는 시기였다. 돌이켜보면 그때 좋았던건 젊음이다. 근데 젊었을 땐 젊은 것에 대한 감사를 못했다. 만약 그때로 돌아가게 된다면 모든 것에 감사하면서 살 것 같다. 매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더 충실하고 감사함을 많이 표현하고 그럴 것 같다." -차기작 준비는 어디까지 진행됐다. "송일곤 감독과 7~8개월 정도 작품 창작 개발을 이어오고 있다. 작가를 섭외해 공동집필을 하는 작품도 있다. TV시리즈, 영화 등 채널은 다방면으로 열어놓고 있다. 출연작도 있겠지만, 본격적으로 제작을 시작해 보려고 한다. 아주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 같다." -'차인표'를 스크린인 아닌 넷플릭스로 선보이게 됐다. "정상적인 상황이었다면 오히려 지금처럼 주목받을 수 있는 사이즈의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운이 좋게 넷플릭스의 선택을 받아 이러한 시기에도 영화를 선보일 수 있게 됐다. 기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영화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 개봉을 못하고 있는 수 많은 영화를 떠올리면 미안한 마음도 공존한다. 하루 빨리 북적거리는 영화관을 다시 만나고 싶다."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사진=넷플릭스 2021.01.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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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FF 중간결산④] "박찬욱 전환점, 티모시샬라메 출격" 미리보는 후반부

한국영화 100주년 해, 세계가 주목하는 한국영화 황금기에 부산국제영화제 역시 비상의 날개짓을 퍼덕였다.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이하 부국제·BIFF)가 지난 3일 개막, 어느 덧 반환점을 돌았다. 관심이 집중되는 영화제 초반 수 많은 국내외 영화인들이 부산으로 발걸음했고,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한 의미있는 시간을 가졌다. 부국제의 시그니처 무대였던 해운대 비프빌리지를 과감하게 버린 부산국제영화제는 본격적인 '영화의 전당' 시대를 열며 분위기 전환을 꾀했다. 도전적 결과는 꽤나 성공적이다. 부국제의 명성을 완벽하게 되찾을 날이 머지 않았음을 증명했다.초반 예민한 시선을 모았던 태풍도 영화제가 시작되자마자 말끔하게 부산을 지나쳤다. 맑다 못해 한여름처럼 더운 날씨 속 논란과 사고도 없었다. '무결점 클린 부국제'가 현실화 될 전망. 대부분의 영화들이 기분좋은 매진 사태를 맞으면서 영화인들과 관객들은 오로지 '영화'로 소통했다. 흥행작부터 부국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영화들까지 국적 불문, 장르 불문 모든 영화들이 사랑 받았다.개막식부터 총출동한 스타들은 오픈토크, 무대인사, 관객과의 대화(GV) 등을 통해 영화제 곳곳을 누비며 관객들과 만났다. 또한 해외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와 콘텐츠에 단순한 관심이 아닌 직접적인 참여 방식으로 변화되고 발전된 세계적 분위기를 확인케 했다. 완벽한 전성기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제2의 전성기를 향해 달려가는 부국제의 노력은 박수받아 마땅하다.후반부에는 주말 영화제를 들썩인 박찬욱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오다기리 죠를 전환점으로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대형 게스트로 부국제와 함께 한다. 넷플릭스 '더킹:헨리 5세'로 부산을 방문하는 티모시 샬라메에 영화 팬들의 마음은 벌써 뜨겁다.24회 부국제는 6개 극장 37개 스크린을 통해 아시아는 물론 전 세계 초청작 299편(85개국), 월드·인터내셔널 프리미어 145편(장·단편 합산 월드프리미어 118편, 인터내셔널 프리미어 27편)이 상영된다. 개막작은 카자흐스탄 영화 '말도둑들. 시간의 길'(예를란 누르무캄베토프·리사 타케바 감독)이, 폐막작은 한국 영화 '윤희에게'(임대형 감독)가 선정됐다.박찬욱·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전환점거장들의 부국제 방문은 그 자체만으로 영화제의 가치와 입지를 증명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한일 양국을 대표하는 박찬욱 감독과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올해 부국제 전반부 마지막과 후반부의 시작을 알리며 전환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첫 데뷔작을 선보인 오다기리 죠 역시 눈에 띈 게스트. 의미있는 주말을 지나 후반부에는 사실상 메인 게스트라 할 수 있는 할리우드 배우 티모시 샬라메가 관객들을 만날 준비 중이다. 좋은 작품, 굵직한 게스트로 '선택과 집중'에 충실한 24회 부국제가 목표 달성을 이룬 순간이다."유럽엔 없는" 박찬욱 감독 한국을 대표하는 거장 박찬욱 감독은 5일과 6일 다양한 행사를 통해 '박찬욱의 영화 세계'를 되짚었다. '필름메이커 토크: 박찬욱과 대화'에서는 명작 '친절한 금자씨'와 '박쥐'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고, '코스타 가브라스&박찬욱 감독' 오픈토크는 박찬욱 감독에 대한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애정공세 시간이었다. 특별한 수식어도 필요없이, 이들의 이야기가 모든 것을 설명한다."'친절한 금자씨'에서 금자씨는 후반부 조연으로 스스로를 퇴각시킨다. 방관자는 아니지만 일종의 구경꾼 위치다. 복수극의 주인공이 주체가 아닌 유가족들이 주체가 되는 것이다. 내가 만든 영화 중 구성이 잘 된 작품인 것 같다. '세상에 완벽한 사람은 없어요, 사모님'은 회심의 대사였다. 개봉하고 보니 '뜨거운 것이 좋아'(61, 빌리 와일더 감독) 대사더라. 무의식에서 온 오마주였다. 금자씨의 눈만 보이는 옷을 원해 트렌치코트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 유머는 과제다. 관객이 웃고 난 뒤 밀려오는 죄의식을 느끼는 반응을 보고 싶다" "'박쥐'는 구상하고 촬영하기까지 10년이 걸렸다. 10년 전 '뱀파이어 이야기를 하겠다'고 마음 먹은 첫 장면은 뱀파이어가 된 신부(송강호)가 태주(김옥빈)에게 자신의 피를 먹이고 그녀 역시 뱀파이어로 만들게 되는 것이었다. 미친 광기의 사랑이 하나의 피로 합쳐진다는 궁극적인 단계를 보여주고 싶었다. 이것이야 말로 키스 중 키스가 아닐까. '박쥐'는 내가 느낄 수 있는 가장 럭셔리한 촬영이었다. 사치를 부리며 촬영했고, 스스로 자부심을 느꼈다. 송강"호는 천재적인 표현력을 가진 배우다.""전작 흥행 성적에 따라 다음 영화의 파워가 달라진다. 어차피 겪어야할 일이라면 현명하게 대처하는 게 중요하다. 감독은 늘 함께하는 사람들을 친구라고 생각해야 한다. 아무리 힘있고 고집이 센 감독이라도 어려움을 맞는다. 스스로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항상 귀 기울여 들어야 한다. 터무니없는 일일지라도 언젠가는 정답을 찾게 된다." 사진= 연합뉴스"한국 영화는 특별하다.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고 저마다 특색이 있어 각광받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박찬욱 감독은 놀라운 인물이다. 전 세계 600여 편에 달하는 흡혈귀 영화가 있는데 그 중 박찬욱 감독의 '박쥐'를 가장 좋아한다, '올드보이', '스토커', '아가씨'는 각각 다른 세계를 가진 영화인 것 같다. 어떻게 네 개의 다른 감수성과 세계관, 독창성을 표현할 수 있는지 신기하다. 유럽에는 박찬욱 같은 감독이 없다. 나에게는 박찬욱 감독과 같은 젊은 감독들의 작품이 원동력이 된다."(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차기작은 평생의 프로젝트 '엑스'다. 코스타 가브리스 감독님이 프랑스어로 이 작품을 만들었고, 코스타 가브리스 감독과 그의 아내이자 프로듀서인 미셸 가브라스 프로듀서가 판권을 갖고 있다. 내 인생 대표작으로 삼고 싶은 작품이다.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신작을 얼마 전 봤다. 날카로운 비판 정신과 화산처럼 터질 듯한 에너지가 부글부글 끓고 있었다. 다시 한 번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포기할뻔 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 한일 양국의 악화된 분위기 속에서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부국제를 방문한 일본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다. 갈라 프레젠테이션 초청작 '파비안느에 관한 진실'은 프랑스 영화계 대스타 파비안느(카트린 드뇌브)와 딸 뤼미에르(줄리엣 비노쉬)의 재회를 그린 작품. 앞서 베니스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공개됐다. 가족 영화는 맞지만 일본은 벗어났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시야가 조금 더 넓어졌다."'아무도 모른다' 시나리오는 제작까지 15년이 걸렸다. 여러 상황이 안 좋았고, 나 역시 중간에 포기할 뻔 했다. 버티고 기다리는 사이 타이밍이 찾아왔다. 작품은 태어나기 위한 시점에 태어나는 것 같다. 지금은 내 스스로의 능력도 안다. 뭘 못하고, 무엇이 성장했는지. 어느 쪽이 자신에게 맞는지 간파해 나가는 것이 좋다. 5년간 일상없이 영화를 찍어 1년은 휴식을 취할 예정이다.""이창동 감독은 엄청난 사람이다. 그의 작품은 잔인하고 잔혹한데도 아름다운 것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인생의 잔혹함, 잔인함에 대해 눈을 피하지 않는다. 묘사된 인간들은 위악적이지 않고 아름답다. 그것이 무척 현대적이다. 대만 허우 샤오시엔 감독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의 영화는 좋은 빛을 내고, 좋은 바람이 분다. 방송으로 시작한 나에게는 스승이라 모실만한 영화감독이 없었다. 허우 샤오시엔 감독이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됐다. 특별하다.""몇 년전 부국제가 압력을 받고 개최조차 어려웠던 상황에 직면한 시기가 있었다. 영화인들은 지지 성명을 냈고, 나 또한 연대 의지를 표명했다. 그러한 상황을 잘 버텨냈기에 나도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문제를 비롯해 다양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서로를 더욱 깊이 내보임으로써 연대가 가능하다. 이 자리에는 영화의 힘을 믿는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인들 뿐만 아니라 언론인도 마찬가지다.""첫 장편영화 연출" 오다기리 죠 오다기리 죠는 메가폰을 잡은 첫 장편영화 '도이치 이야기'고 관객들과 만났다. '아시아 영화인의 창' 부문에 초청된 '도이치 이야기'는 40년간 마을 사람들을 강 건너편으로 실어 나르는 일을 한 뱃사공 도이치(에모토 아키라)의 가족이 모두 살해되고, 가족을 잃은 도이치가 혼자 살아남은 소녀를 만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오다기리 죠는 감독의 역할만 수행했을 뿐, 직접 출연하지는 않았다."첫 장편 영화다. 부담스러운 마음에 입 안에 상처가 나 밥도 제대로 못 먹고 살도 많이 빠졌다. 감독 일을 하는 것이 처음이라 연기까지 할 여유는 없었다. 일본과 한국의 자본주의 사회는 돈, 시간 등 숫자에 예민하다. 어렸을 때부터 그런 물질적인 것들이 행복인지에 대한 생각을 해 왔고, 벗어나보고 싶었다. 세상이 편리해져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영화 속 사공처럼 쓸모 없으면 사라지게 된다. '정말 사라져도 되는가' 한번쯤 생각해봐주길 바란다."'김해공항 팬미팅·통닭 먹방' 대망의 티모시 샬라메 출격 일찍 도착했다. 티모시 샬라메는 신났다. 김해공항은 인산인해를 이뤘고, 부산에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통닭을 뜯었다. 벌써부터 즐기고 있는 부국제다. 티모시 샬라메는 '더 킹: 헨리 5세'로 부국제 무대를 통해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지난해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으로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최연소(만 23세)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올라 화제를 모은 티모시 샬라메는 국내에서도 높은 인기를 구가 중인 스타다.탁월한 영상미와 탄탄한 스토리로 전 세계 주목을 받고 있는 '더 킹: 헨리 5세'는 자유롭게 살아가던 왕자 할이 왕좌에 올라 전쟁으로 혼란에 빠진 영국의 운명을 짊어지며 위대한 왕으로 변모해가는 과정을 그린 '넷플릭스' 영화다. 부국제는 시대에 흐름에 발맞춰 넷플릭스 작품을 품기로 결정했고, 티모시 샬라메는 조엘 에저턴, 데이비드 미쇼 감독, 프로듀서 디디 가드너와 제레미 클레이너 등과 함께 부국제 일정을 소화한다.부국제 공식 발표에 앞서 SNS로 방한 소식을 먼저 알렸던 티모시 샬라메는 6일 밤 인천국제공항을 경유해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팬들의 모습에 광대 미소를 숨기지 못한 티모시 샬라메는 경호원들을 직접 뚫고 팬들과 인사하고 선물을 받는 등 남다른 팬서비스를 뽐냈다. 그리고 포착된 모습은 치킨 먹방. 자신의 행보를 SNS에 꼼꼼히 남기고 있는 티모시 샬라메인 만큼 부국제 기간동안 얼마나 많은 알람이 울릴지 주목된다.다시보는 정해인, '미성년' 김윤석·염정아…김희애 닫는다 개막식 참석 후 부산을 잠시 떠났던 정해인은 후반부 다시 부산을 방문, 부국제 관객들과 본격적으로 소통한다. 정해인은 정지우 감독과 함께 9일 진행되는 '유열의 음악앨범' 야외 무대인사와 관객과의 대화(GV)에 참여할 예정. 개막식 때부터 팬들의 돌고래 함성을 쏟아낸 정해인이 부산에서 어떤 추억을 선물할지 관심이 쏠린다.10일에는 '미성년' 오픈토크가 계획 돼 있다. 배우 김윤석의 첫 연출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성년' 팀도 다시 한번 관객들과 만나 이야기의 장을 꽃피울 전망이다. 전반부 '엑시트'와 '극한직업' 팀이 받은 사랑 만큼, '미성년' 팀 역시 부국제 특유의 분위기와 관객들이 보내는 뜨거운 에너지를 만끽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폐막작은 한국영화 '윤희에게'다. '윤희에게'는 우연히 한 통의 편지를 받은 윤희(김희애)가 잊고 지냈던 첫사랑의 비밀스러운 기억을 찾아 설원이 펼쳐진 여행지로 떠나는 감성 멜로다. 영화의 주인공 김희애와 김소혜는 일찍부터 부국제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11일 오전 공식 시사회와 기자회견을 갖고, 오후 폐막작 상영으로 부국제 문을 닫는다.부산= 조연경 기자 cho.yeongyeong@jtbc.co.kr [BIFF 중간결산①] "韓영화 황금기" 되살아난 부국제, 제2의 전성기 담금질[BIFF 중간결산②] 정우성 열고 영광의 얼굴들 활개…女배우 활약 또 빛났다[BIFF 중간결산③] "멜로가 체질이 아닌가봐요" 부산 들썩인 ★ 말말말 [BIFF 중간결산④] "박찬욱 전환점, 티모시샬라메 출격" 미리보는 후반부 2019.10.0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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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역사 속 영면한 故신성일[종합]

배우 고(故) 신성일이 한국영화사의 영원한 별이 됐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신성일의 영결식과 발인식이 엄수됐다. 부인 엄앵란을 비롯한 가족들과 70여명의 영화계 인사들, 소식을 듣고 먼길까지 찾아온 팬들까지 많은 이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조사에 나선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바꾸고자 한다.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고인은 한국영화계의 역사이자 전설로 남았다. 지 회장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선배님의 이름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다. 선배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다. 같은 시대에 살아 행운이었다. 한국영화 역사의 전설이었고 신화였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선생님은 한국 사회상의 표상이었다. '맨발의 청춘'의 댄디한 모습은 새로운 남성상이었다"라면서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힘이 돼주신 선생님. 영화만을 위해 살아가셨던 열정을 잊지 않겠다. 선생님께서 살아가신 영화를 치열하게 기억하겠다"며 고인을 추모했다. 영화인들을 대표한 두 사람의 말처럼 고인은 세상을 떠났지만 영원히 한국영화사에 남았다. 신성일이라는 배우를 빼놓고서는 한국영화사를 논할 수 없기에 그는 500편이 넘는 영화 속에서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됐다. 신성일은 지난 4일 새벽 전남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1937년 출생한 신성일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원조 미남 배우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고,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지금의 예명을 받아 본명 강신영이 아닌 신성일로 활동을 시작했다.이후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배우들이 중후한 매력을 가졌던 것과는 다르게 신성일은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후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불타는 청춘'(1966), '별들의 고향'(1974)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부산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이 지난해 펴낸 책 '배우의 신화, 영원한 스타'에서 박찬욱 감독은 그에 대해 "이토록 한 사람에게 영화산업과 예술이 전적으로 의존한 나라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없었다"며 "신성일을 이해하지 않고는 한국영화사는 물론 한국 현대문화사 자체를 파악할 수 없다"고 평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사진=박세완 기자 2018.11.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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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IS] 엄앵란 "울면서 보내지 않겠다"..故신성일 영결식 엄수

배우 고(故) 신성일의 영결식이 영화계 인사들의 눈물 속에 엄수됐다. 6일 오전 10시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진행된 고 신성일의 영결식이 치러졌다. 독고영재가 영결식의 사회를 맡았다. 개식사, 영정입장 및 운구, 묵념, 김두호 홍보위원장의 약력 보고, 추모영상 상영, 지상학 장례위원장의 조사,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의 추도사, 유가족과 영결식에 참석한 전원의 분향 및 헌화, 엄앵란의 유가족 대표인사, 독고영재의 폐식 선언으로 진행됐다. 장례위원장 지상학 한국영화인총연합회 회장은 "대통령 이름은 몰라도 선배님의 이름을 모르는 대한민국 국민이 없다. 선배님처럼 시대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대스타는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라며 "선배님은 왕도 돼 보고 영웅도 돼보고 만인의 연인으로 살아보셨으니 이 세상 미련은 버리셔도 될 것 같다. 시련도 아픔도 있었지만, 선배님 같이 은총을 누린 인생이 어디 있겠나. 당신이 있었기에 우리는 행복했다. 같은 시대에 살아 행운이었다. 한국영화 역사의 전설이었고 신화였다"고 말했다. 또 그는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를 다음과 같은 말로 바꾸고자 한다. 큰 별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육신의 죽음만이 있을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추도사에 나선 오석근 영화진흥위원장은 "불과 한달전 부산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위를 당당한 모습으로 걸어오시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내가 여기 왔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듯 모두를 챙겨 바라보던 눈빛은 영화인들의 무한한 든든함이었다"라며 고인을 추억했다. 이어 "선생님께서는 너무나 많은 추억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났다. 500편이 넘는 수많은 영화들 속에 가장 아름다운 별이 됐다"며 "영화인으로서 후배들에게 힘이 돼주신 선생님. 영화만을 위해 살아가셨던 열정을 잊지 않겠다. 선생님께서 살아가신 영화를 치열하게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아내 엄앵란은 유가족을 대표해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와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엄앵란은 "가만히 앉아서 사진을 보니까 '당신도 늙고 나도 늙었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떠나면서 울면서 보내고 싶지는 않다. 누가 보면 날더러 '왜 안 우냐'고 한다. 그런데 울면 망자가 걸음을 못 걷는다더라"며 "신성일이 다시 태어나서 산다면 이젠 선녀같이 동경하며 그러고 살고 싶다 부인들에게 잘 하라. 잘하면 기쁨이 온다"고 이야기했다. 신성일은 지난 4일 새벽 전남의 한 병원에서 타계했다. 향년 81세. 지난해 6월 폐암 판정을 받은 후 항암 치료를 받아왔고, 결국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1937년 출생한 신성일은 한국영화계를 대표하는 스타이자 원조 미남 배우다. 1960년 신상옥 감독의 작품 '로맨스 빠빠'로 데뷔했고, 신상옥 감독으로부터 지금의 예명을 받아 본명 강신영이 아닌 신성일로 활동을 시작했다.이후 1964년 김기덕 감독의 '맨발의 청춘'으로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당시 활동하던 배우들이 중후한 매력을 가졌던 것과는 다르게 신성일은 카리스마 있는 반항아 이미지로 사랑받았다. 청춘 스타로 자리매김한 후 '떠날 때는 말 없이'(1964), '불타는 청춘'(1966), '별들의 고향'(1974) 등 무수히 많은 히트작을 남겼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tbc.co.kr사진=박세완 기자 2018.11.06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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