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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리뷰] 웬만해선 고3을 막을 수 없지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

입시가 생긴 이래 고통 안받고 두려워하지 않은 한국 청소년이 있을까. 귀신보다 무서운 입시를 귀엽고 사랑스럽게 풀어낸 호러 코미디가 탄생했다. 개성 뚜렷한 ‘아메바 소녀들과 학교괴담: 개교기념일’이다.어디에나 있는 그럴싸한 학교 괴담으로 이야기는 출발한다. 1998년 세강여고의 세 학생은 개교기념일 밤, 귀신과 숨바꼭질에서 살아남으면 수능 만점을 받을 수 있다는 괴담을 실행에 옮긴다. 귀가 찢어질 듯한 비명 소리와 정체불명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지는 공포의 하룻밤이 생생히 담긴 비디오테이프는 시간이 흐른 2024년, 우연히 방송부장 지연(김도연)의 손에 들어간다. 수능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는데 모의고사 성적표에 찍힌 야속한 7, 8등급에 한숨짓는 고3 학생 지연은 영화감독이 꿈인 시네필이다. 호기심을 참지 못해 영상을 본 지연은 이것이 영화가 아닌 실화임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그의 친구들, 촬영감독이 꿈인 현주(강신희)와 배우지망생 은별(손주연)은 귀신보다 성적표의 숫자 8이 더 무섭다. 이러다 꿈을 이루긴커녕 대학은 갈 수 있을까. 공부 대신 눈 딱 감고 귀신 숨바꼭질을 택한 방송반 친구들은 교내 유일한 종교부 후배 민주(정하담)를 용병으로 영입하며 계획에 돌입한다. 단세포 ‘아메바’ 소녀들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분명 정석 공포영화처럼 시작했는데 어딘가 묘하게 웃기다. 오싹함과 코믹함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영화는 중반부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엉뚱한 소녀들의 엉성한 계획이 B급 코미디로 액셀을 밟기 시작한다. 과감하게 날것을 지향하는 것 같지만 정교한 계산 위에 쌓였다는 인상이 동시에 찾아오는 대사나 연출은 예기치 못한 웃음 버튼을 ‘피식’ 누른다.어릴 적 공포영화 ‘주온’을 본 후 한의원을 다니고 목사님 기도를 받았다는 김민하 감독은 연출 데뷔작을 찍기 위해 그토록 싫어하는 호러를 섭렵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 출발점이 장르 마니아와는 다른 매력으로 이 영화에 반영됐다. 호러 클리셰를 세련되게 회피하기보단 제4의 벽을 뛰어넘어 관객에게 ‘이건 클리셰고, 오마주’라고 직접 짚어주며 웃음으로 돌파하는 식이다. 여기에 캐릭터들의 사랑스러움에 흐뭇한 미소도 번진다. 위키미키 출신 김도연과 ‘우주소녀 은서’ 손주연은 물론, 독립영화계 스타 정하담과 신예 강신희까지, 겹치지 않는 개성 강한 4인 4색을 연기했다. 귀신에게 쫓기는 건지 쫓아내는 건지 책임감 있는 걸크러시 리더부터 해맑은 푼수 공주님, 취향 별난 오타쿠와 성실한 4차원이 한바탕 교내를 쏘다니는 풍경은 추억을 자극한다.서로 조금 못나도 다독여 주고 이끌어 주는 우정 서사도 작품의 별미다. “신파는 안 되지”라고 선언하며 웃음 노선을 고수하긴 해도 김 감독이 대사와 내레이션으로 심어둔 메시지는 이 땅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모두에게 은근한 감동을 건넨다. 경쟁사회를 향한 위로 메시지가 제법 진심인지라 코미디 또는 호러 영화의 정석을 기대한 관객은 취향이 갈릴 수는 있다. 그러나 이것이 곧 김민하 감독 스타일로 엿보이는 지점이기도 하다.작품의 진가는 올해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2관왕으로 증명됐으니 시리즈 화도 기대해 볼 만하다. 한국 입시에 어느 공포영화 클리셰보다도, 괴담 전설보다도 무서운 실화가 얼마나 많던가. 그래도 지나고 보면 친구들과 웃고 떠들고 함께했던 그 소중한 한 시절을 나눈 공간이 학교이기도 하다. 달고 짠 새로운 ‘여고 괴담’을 김 감독이 재밌게 버무려 줄 훗날에 기대가 모인다. 90분. 15세 관람가. 오는 6일 CGV 단독 개봉.이주인 기자 juin27@edaily.co.kr 2024.11.04 0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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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만사] 아우슈비츠의 사과 소녀, 관객의 심금을 울리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의 인기가 심상치 않다. 관객들이 몰리고 연일 SNS에 이 영화에 대한 감상 후기가 오르면서 지적 호기심, 역사의식, 정치적 올바름을 다룬 영화가 돈이 될 수 있음을 입증하고 있다. 지난 6월5일 개봉한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9일까지 약 12만명의 관객을 모았으며 매출액으로는 11억8000만 원 가량을 벌어 들였다. 이런 류의 영화로는 소위 대박이다. 현재 추세대로라면 지난 2020년에 개봉됐던 프랑스 예술영화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의 흥행기록 15만 명을 넘어서거나 근접할 것으로 보인다. 예술영화가 15만명을 모은다는 것은 ‘파묘’가 500만을 모으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다.‘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1940~1945년 사이에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벌어진 유대인 학살을 다룬다. 이때 유대인 400만명이 죽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경악시킨 것은 수용소 내부가 아니라 수용소 담장 밖,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의 관사 풍경을 그리고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이 영화에서 유대인 학살의 장면은 하나도 나오지 않는다. 수용소장의 조용한 가정은 어떻게 유지됐으며, 정원은 어떻게 관리됐고, 아이들은 어떻게 풀장에서 수영을 하며 놀았는가, 회스 중령의 가족은 얼마나 평화로운 삶을 즐겼느냐에 초점이 모아져 있다. 독일의 한나 아렌트는 악의 평범성을 얘기했지만 이 영화를 보면 그건 철학자의 반어법일 뿐이라는 것이 명징하게 드러난다. 악은 결코 평범하지 않으며 매우 비범하고 정교하고 그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가스실에서 한번에 400명씩 죽어 나가더라도) 무표정한 얼굴을 유지할 수 있을 만큼 철면피 여야 하는 가를 보여준다. 이런 얘기들이 지금 SNS에 넘쳐나고 있고 영화를 본 반응들, 정당한 역사적 울분들이 이 영화의 흥행에 가솔린을 붓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열화상 카메라로 찍은 한 소녀의 모습이다. 이 소녀는 어두운 밤에 수용소 철조망이나 담벼락 어딘가에 먹을 것을 숨겨 놓고 다니는데, 마음을 울리는 느낌이 너무 리얼해서 숨이 막힐 정도다. 실제로 이 ‘사과 소녀’는 아우슈비츠 유대인들을 위해 한밤중에 먹을거리를 몰래 숨겨뒀던 실존 여성을 소재로 한 캐릭터라고 한다. 이 소녀는 그 위대한 영웅적 행동의 답례로 한 유대인이 직접 작곡한 노래 악보를 선물로 받기도 했다. 이 폴란드 사과 소녀의 실명은 알렉산드라 비스트콘-코워지이칙으로 당시 18살이었다. 이 소녀는 2016년 8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영화 속 ‘사과 소녀’가 사는 집과 타고 다니는 자전거는 모두 실제 고인의 집과 자전거다. 아이가 몰래 전달받은 악보는 요제프 뵐프가 작곡한 것으로 제목은 ‘햇살’이다. 사과 소녀와 햇살, 희망을 등치시킨 곡이다. 요제프 뵐프와 ‘햇살’ 모두 아우슈비츠에서 끝까지 살아남았다.이 ‘사과 소녀’ 캐릭터는 수용소장 루돌프 회스가 자신의 아이들에게 ‘헨델과 그레텔’를 읽어 주는 장면과 대구(對句)를 이루며 선악의 극명한 실체를 드러낸다. 그레텔도 한 밤중에 길을 잃지 않으려고 빵 조각으로 표시했는데 사과 소녀가 먹을 것을 감추면서도 유대인들이 그걸 잘 찾아내게끔 하는 모습은 실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이런 대목은 감독 조나단 글래이저의 연출이 얼마나 섬세하면서도 면도날처럼 모든 것에 정확한 역사적, 심리적 근거를 만들어 내려 했는 지를 보여 준다. 그런 점에서 글래이저가 칸영화제에서 심사위원대상을, 아카데미에서 국제장편영화상을 탄 것은 오히려 모자란 감이 있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아카데미 최우수작품상, 칸 황금종려상에 절대로 모자란 작품이 아니다.특이한 것, 그래서 더욱 더 전율스러운 것은 조나단 글래이저가 영화 속 모든 것을 아우슈비츠 수용소 공간과 똑같이, 기계적이라고 할 만큼 당시 모습 그대로 재현해 냈다는 것이다. 수용소 관사 촬영이 허가를 못 받아 근처에 똑 같이 만들기도 했는데 그 미장센, 소도구나 미술, 색감 등등은 기록 영상과 사진을 토대로 회스 사령관 가족이 살던 집과 정원의 풍경 그대로를 완벽하게 재현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존 오브 인터레스트’는 그 주제의식도 주제의식이지만 미술 프로덕션, 음향 등 연출 외적 요소의 탁월함으로도 극찬을 받고 있다. 루돌프 회스는 종전 후 숨어 지내다 발각돼 체포된 후 교수형으로 처형됐다. 루돌프의 아내 헤트비히(산드라 휠러)는 끝까지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 했지만 남편이 헝가리로 전출을 가 거기서도 유대인 학살 작전을 기획한 후 헤트비히에게 전화로 “이번 일은 회스 작전이야 당신도 회스야”라고 말하는 장면은 아내도 모든 일을 모를 리 없었다는 것을 보여 준다. 헤트비히 회스는 80 대에 자연사했다.지식과 역사, 정치와 경제, 사회적 이슈를 다룬 영화가 돈이 되는 시대다. 큰 돈을 들여 큰 돈을 벌려는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방식을 고집할 것인가. 올바르지만 적게, 차곡차곡 버는 길을 택할 것인가. 작금의 한국 영화계가 놓인 고민의 갈림길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2024.06.20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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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전주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미야케 쇼 “다양성 말하고파” [종합]

일본 영화계에 새로운 물결을 일으키고 있는 미야케 쇼 감독이 신작 ‘새벽의 모든’을 들고 전주를 찾았다. 1일 오후 전주시 완산구 전주디지털독립영화관에서는 제25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작 ‘새벽의 모든’ 시사 및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미야케 쇼 감독을 비롯해 민성욱·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 문석 프로그래머 등이 자리했다. 한국말로 인사를 건넨 미야케 쇼 감독은 “‘너의 새는 노래할 수 있어’에 이어 다시 전주국제영화제에 오게 돼서 너무 기쁘다. 신작을 만들 때마다 여기서 선보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다시 돌아올 수 있어서, 또 개막작으로 초대해 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새벽의 모든’은 PMS(월경 전 증후군)를 겪고 있는 여자 후지사와와 공황장애를 가지고 있는 남자 야마조에가 직장 동료로 만나 연인도, 친구도 아닌 동지와 같은 특별한 감정이 싹트게 되는 이야기를 담은 작품.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미야케 쇼 감독은 작품 연출 계기를 묻는 말에 “원작 속 주인공들에게 끌렸다. 그들은 자신들이 놓인 상황에 자문자답한다. 그 과정에서 선입견을 가지지 않고 다양한 방법으로 생각하며 소극적이지 않고 액션을 한다. 그게 너무 귀엽고 끌려서 캐릭터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어 영화의 제목이자 배경인 새벽에 대해 “밤에 누군가를 만나고 새벽에 귀가하면서 보는 풍경 중 하나가 출근하는 사람들이다. 그럴 때마다 새벽의 다양한 모습을 생각했다. 누군가는 하루를 끝내고 누군가는 또 시작하는 새벽의 이런 다양한 이미지를 많이 넣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미야케 쇼 감독은 “영화 속 PMS나 공황장애 말고도 다양한 이유로 힘들어하는 사람이, 자기 마음과 생각처럼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일본 사회에 굉장히 많다. 육체적 어려움보다 사회에서 활동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영화를 통해서 이런 문제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으면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 일반 사람, 보통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세상에는 다양한 특징을 가진 사람이 많다. 영화 속 주인공 역시 마찬가지”라며 “영화를 만들 때도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르며 이렇게 다양한 사람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큰 테마로 다뤘다”고 짚었다.연출 주안점을 놓고는 “우리 영화에서 표현되는 증상들이 공황 장애로 보이지 않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노력을 했다”며 “배우가 그걸 연기하면서 공황 증상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도 많이 했다. 그래서 현장에 의사가 계속 대기했고 집에서도 연기 연습을 하지 말라고 했다”고 회상했다.미야케 쇼 감독이 꼽은 ‘새벽의 모든’의 관전포인트는 배우들의 열연이다. 그는 “주연 두 분도 너무 훌륭했지만, 다른 분들도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셨다. 예를 들면 회사 직원으로 나오는 연세가 드신 베테랑 선배 배우나 어린 친구들이다. 이 많은 출연자를 주목해 줬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이에 정준호 공동집행위원장이 한국 배우 중에서는 누구와 함께하고 싶으냐고 묻자 미야케 쇼 감독은 “이런 자리에서 누군가의 이름을 말하는 게 부끄럽다”면서도 “일본에서도 활동하고 있는 심은경 배우와 하고 싶다. 같은 시대를 사는 훌륭하고 존경하는 배우라 기회가 된다면 같이 작품을 하고 싶다”며 웃었다. 끝으로 미야케 쇼 감독은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전주국제영화제는 굉장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라고 생각했다. 영화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느꼈다. 여러 영화제에 많이 다녀봤는데 이런 공기를 못느끼는 영화제도 있다. 이번에도 그런 걸 느꼈으면 좋겠다”며 “많은 관객과 함께 저희 영화를 같이 즐기고 영화제를 즐기고 싶다”고 덧붙였다.전주(전북)=장주연 기자 jang3@edaily.co.kr 2024.05.01 1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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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떻게 할리우드를 삼켰나

인연(因緣)은 관계와 다르다. 관계란 맺으면 생기고 끊기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만 인연은 그렇지 않다. 관계가 생기기 전과 후를 포괄한다. 만날 사람은 언젠간 만나게 돼 있다는 표현을 생각하면 맞을 것이다.영화 ‘패스트 라이브즈’는 바로 이런 ‘인연’에 대한 영화다. 한국에서 태어나 12살까지 이곳에서 자란 셀린 송 감독은 캐나다에 가서도 여전히 이어진 한국과 인연의 끈을 ‘패스트 라이브즈’로 풀어냈다. 한국과 캐나다, 그리고 미국에서 부유하는 셀린 송 감독, 혹은 어떤 누군가의 인연의 파편들을 모은 이 영화는 그래서 상당히 철학적이다.◇자전적 이야기를 보편성 있게 확장‘패스트 라이브즈’가 세상에 공개된 건 지난해 1월 39회 선댄스영화제에서다. 한국의 풍경은 물론 철학과 정서까지 담아낸 이 작품은 곧바로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68관왕 197개 노미네이트. 이후 약 1년간 ‘패스트 라이브즈’가 써온 기록이다.‘패스트 라이브즈’가 갖는 가장 큰 장점은 보편성에 있다. 한국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한국에서 자랐지만 이후 상당 시간을 캐나다에서 보낸 송 감독. 국적은 캐나다지만 그곳에서도 어딘가 이방인일 수밖에 없었던 감독의 정서가 ‘패스트 라이브즈’에 담겨 있다. 빼어난 건 이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보편성으로 확장하는 힘이다. 셀린 송 감독은 과거와 현재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를 토대로 시공간에 따라 미묘하게 변화하는 관계의 의미를 포착, 어느 순간 관객들을 저마다의 인연으로 빠트린다. 세계적인 영화 비평 사이트 인디와이어에선 ‘패스트 라이브즈’를 ‘섬세하고 압도적으로 아름답다’고 평했고, 영국 영화 매체 엠파이어에선 ‘천천히 폭발하는 걸작’이라고 했다. 인연이란 어딘가에서 하나둘씩 쌓은 주춧돌들이 하나의 형태로 갖춰지는 것이다. 서둘지 않고 천천히 이야기를 그려나가는 ‘패스트 라이브즈’가 이런 인연의 속성과 닮았다.◇“지난 20년간 본 최고의 데뷔작”셀린 송 감독은 ‘패스트 라이브즈’로 그야말로 역사를 쓰고 있다. 그는 그레타 거윅 감독의 ‘바비’,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와 함께 아카데미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여성 감독 파워를 보여줬다. 아카데미 96년 역사상 가장 많은 여성 감독 연출작이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역사적인 기록이다. 또 각본상 후보로도 올라 있는 상황이다. 현지 매체 버라이어티는 ‘여성 감독들 영화 세 편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며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고 대서특필했고 시카고 트리뷴, 데일리헤럴드 등 해외 유력 매체들도 ‘패스트 라이브즈’가 이룬 성과를 앞다퉈 보도했다.특히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명감독들의 반응이 뜨겁다.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 사랑의 모양’으로 제90회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4관왕을 차지하고 ‘기예르모 델 토로의 피노키오’로 제95회 아카데미에서 장편 애니메이션상을 받은 거장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은 자신의 SNS에 직접 ‘패스트 라이브즈’를 소개하며 “정교하고 섬세하며 강렬한 영화”, “지난 20년간 본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라는 호평을 남겼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로 제95회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등 주요부문 7개를 휩쓴 대니얼 셰이너트 감독 또한 ‘패스트 라이브즈’에 대해 “짧게 요약하면 우리가 수없이 봐왔던 로맨틱 코미디처럼 들리겠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이 영화의 수많은 독특한 이미지와 아이디어가 생생하게 맴돌고 있다. 셀린 송 감독 본인처럼 영리하고 자신감 넘치며 독창적인 시”라는 평가를 남겼다. 동료 배우들의 칭찬도 이어지고 있다. 제74회 칸영화제 명예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배우 조디 포스터는 여자 주인공 그레타 리의 연기에 대해 “놀라운 업적을 만들어냈다”며 칭찬했고, 배우 폴 메스칼은 “이 영화를 꼭 보길 바란다. 나를 작은 조각들로 부서지게 한 영화. 셀린 송은 천재”라고 밝혔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경우 회원들의 투표로 수상자가 결정되므로 계속해서 영화가 언급되고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중요하다.이 같은 호평에 힘입어 ‘패스트 라이브즈’는 제33회 고담 어워즈 최우수 작품상, 제89회 뉴욕비평가 협회상 신인작품상, 제16회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즈 감독상, 2023 미국영화연구소 올해의 10대 영화, 2023 전미 비평가 위원회 올해의 영화, 신인감독상, 2023 보스턴 온라인 비평가 협회상 톱10 영화 등 눈부신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K콘텐츠 인기, 오스카 수상까지?가장 관심을 모으는 건 ‘패스트 라이브즈’의 아카데미 수상 가능성이다. 당초 기대와 달리 여우주연상과 감독상 후보에선 제외된 상황. 게다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와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 최근 미국 현지에서 반응이 좋은 ‘바튼 아카데미’ 등이 강력한 경쟁 후보로 떠오른 상황이라 성급히 장밋빛 전망을 내놓긴 어렵다.다만 ‘기생충’과 ‘미나리’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수상에 성공하며 한국영화에 대한 현지의 이해가 높아진 데다 최근 ‘성난 사람들’이 골든글로브와 에미상에서 다관왕에 오르며 미국계 한국인의 이야기에 대한 관심도 올라간 상태라 그 점은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셀린 송 감독은 “‘성난 사람들’이나 ‘패스트 라이브즈’나 이민자의 정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이민자의 정서라는 것은 꼭 이민을 가지 않아도 가질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사를 하고 새로운 곳에 가서 삶을 시작하는 경험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한 번쯤은 겪는 일일 것”이라며 “인생을 살며 시간과 공간을 지나는 경험은 국경을 넘어 이해받을 수 있을 것이라 본다”고 밝혔다.또 “‘기생충’과 ‘패스트 라이브즈’는 다른 영화고 그 영화와 비교되는 게 부담이 되기도 하지만, ‘기생충’ 덕분에 ‘패스트 라이브즈’도 주목을 많이 받을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본다. ‘패스트 라이브즈’에 한국어가 많이 들어 있는데 ‘기생충’ 같은 영화 덕에 저항 없이 북미 관객들에게도 가닿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데뷔작임에도 ‘플라워 킬링 문’ 마틴 스코세이지 감독, ‘오펜하이머’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등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들과 함께 오스카 최고상인 작품상 후보에 오른 셀린 송 감독. ‘인연’이라는 한국적 개념을 서정적 로맨스에 담아 보편성을 획득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오스카 수상 여부를 떠나 확실히 평단을 매료시켰다. 이 작품은 다음 달 6일 국내에서 개봉한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4.02.13 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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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 ENM X 할리우드 ‘패스트 라이브즈’ 골든글로브 5개 후보… ‘기생충’보다 많다

CJ ENM과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 A24가 공동으로 투자배급하는 글로벌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PAST LIVES)가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주요 5개 부문 후보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11일(한국 시간)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 후보가 공개됐다. ‘패스트 라이브즈’는 작품상(드라마), 감독상, 각본상, 여우주연상(드라마), 비영어권 작품상 등 5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 작품상뿐 아니라 비영어권 작품상에도 오르는 등 주요 부문에 노미네이트돼 더욱 주목할만 하다.이는 ‘기생충’이 기록한 세 부문 노미네이트보다 많은 숫자로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기생충’은 2020년 한국 영화 최초로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해 큰 화제를 모았다. 이듬해인 2021년에는 한국계 미국인 정이삭(리 아이작 정) 감독이 연출하고 스티븐 연, 한예리, 윤여정 등이 주연한 ‘미나리’가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바 있다. 제81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은 내년 1월 7일 개최된다.‘패스트 라이브즈’는 다수의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연이은 낭보를 전하며 2024년 오스카 유력 후보로 예측되고 있다. 지난 5일에는 미국 독립영화계의 아카데미상으로 불리는 인디펜던트 스피릿 어워즈(Independent Spirit Awards)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최우수주연상 그레타 리, 최우수주연상 유태오 등 5개 후보에 올라 ‘메이 디셈버’, ‘아메리칸 픽션’과 함께 최다 노미네이트 되는 쾌거를 이뤘다. 바로 다음날인 6일에는 112년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전미 비평가 위원회(National Board of Review)가 선정한 ‘올해의 영화’에 이름을 올림과 함께 셀린 송 감독이 신인감독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7일에는 미국영화연구소(American Film Institute, AFI)의 ‘올해의 10대 영화’에 선정됐다. 미국영화연구소의 10대 영화는 ‘미리 보는 아카데미’로 불릴 정도로 매우 높은 오스카 적중률을 자랑하는 만큼 더욱 의미가 크다. 또 10일에는 4대 비평가 협회 가운데 하나인 LA 비평가 협회(Los Angeles Film Critics Association)가 셀린 송 감독을 뉴 제너레이션상 수상자로 발표해 큰 화제를 모았다.지난 1월 제39회 선댄스국제영화제에서 월드 프리미어로 처음 공개된 후 단숨에 화제작으로 급부상한 ‘패스트 라이브즈’는 곧이어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제73회 베를린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며 “의심할 여지없이 올해 최고의 영화이자 오스카 시상식 유력한 경쟁작”(더 타임즈)이라는 호평 속에 일찌감치 오스카 유력 후보로 자리매김했다.본격적인 시상식 시즌이 시작된 지난달 아카데미 주요 지표로 여겨지는 고담 어워즈(Gotham Awards)와 뉴욕 비평가 협회상(New York Film Critics Circle Awards)에서 각각 최우수 작품상, 신인작품상을 연달아 수상하며 본격적인 오스카 레이스에 돌입했다. 인디와이어, 롤링스톤, 엠파이어 등 해외 유력 매체들이 발표한 ‘2023년 최고의 영화’ 1위에 오른 것은 물론, 각종 ‘올해의 영화’ 리스트에 빠짐없이 이름을 올리며 뜨거운 화제를 모으고 있다.‘패스트 라이브즈’는 어린 시절 헤어진 뒤 20여 년 만에 뉴욕에서 재회한 두 남녀의 운명적인 이틀을 그린 작품이다. 애플TV+ 시리즈 ‘더 모닝 쇼’의 그레타 리와 배우 유태오의 섬세한 열연에 대한 호평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이 연출을 맡아 한국적인 세계관과 풍경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내 전 세계 평단과 관객들의 압도적인 호평을 받고 있다. 국내에서는 내년 상반기에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12.12 08: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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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영화만사] 충무로 ‘가위손’의 죽음..고 윤명오를 기리며

생각해 보면 지난 몇 년 사이에 많은 영화인들이 세상을 떴다. 영원히 살아서 항상 영화계 현안과 갈등을 중재하고 조정해 줄 것 같았던 영화사 시네2000의 이춘연 대표(‘여고괴담’ 시리즈 등 제작)가 갑자기 타계했고 배우 강수연이 뒤를 이었다. 영화평론가 강한섭은 돌연 세상을 등져 충격을 줬으며 영화계 인사가 아닌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 임권택 영화학교를 만들었던 프로듀서 박건섭 씨(동서대 영화학과)도 지병으로 타계했다. 모두 지난 3년간에 벌어진 일이다. 그리고 지난 28일 또 한명이 저 세상으로 떠났다. 아무도 모르는 영화인의 죽음이다. 윤명오 씨이다. 향년 74세. 영화계에선 그를 가위손이라 부른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가위손의 죽음이다. 그를 가위손이라 부르는 것은 팀 버튼의 ‘가위손’을 국내에 수입한 주인공이었기 때문이다. ‘가위손’ 뿐이었겠는가. ‘바베트의 만찬’ ‘엑조티카’ 등 1990년대 단관 시절(서울극장 국도극장 대한극장 피카디리 단성사 등등) 영화 매니아들의 관람 붐을 일으킨 사람이다. 그를 직접 만나 본 사람들은 많지 않지만 영화계에서는 그를 히든 카드이자 숨은 실력자라고 생각했다. 이러저러한 영화에 대해서 알고 싶으면 윤명오를 찾으라고 했을 정도다. 세계적인 감독이 된 박찬욱도 30대 초반 그에게서 영화적 자양분을 많이 얻었다. 데뷔작 ‘달은….해가 꾸는 꿈’이 실패한 후 박찬욱은 윤명오와 함께 ‘야간비행’이라는 영화를 찍으려고 했다. 록밴드 영화였다. 만들어졌으면 이런 류 영화의 효시 격이라 불렸던 김홍준 감독(현 영상자료원장)의 ‘정글 스토리’(1998)와 한국영화사에 기록될 작품이 됐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윤명오 첫 기획작이 될 뻔한 ‘야간비행’은 제작이 무산됐다. 윤명오는 입시가 엄혹(?)했던 시절에 경기고와 서울대를 나왔고 40 초반까지 진도모피 대표를 지냈다. 천부적인 ‘딴따라’ 끼를 누르지 못하고 영화계에 들어 와 숱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영화인들을 챙겼다. 8,90년대만 해도 한국 영화계는 그다지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없었을 때였다. 그는 충무로의 지적 수준을 몇 단계 높인 사숙과 사형의 역할을 했다. 외화 번역도 도맡아 했다. 어찌 보면 구(舊)충무로에서 박찬욱 봉준호 김지운 류승완으로 이어지는 뉴 코리안 시네마의 가교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대중은 기억 할 수 없는 인적 자산이지만 충무로 영화인들이라면 마음 속에 기억해야 할 역사적 인물이다. 새삼 그를 기리는 이유다. 천성이 부드러워 영화계 젠틀맨으로 불렸고 많은 사람들이 그가 내 주는 술값으로 영화적 한과 울분, 기쁨을 풀어 냈지만 아뿔사 그의 장례식장은 외롭고 쓸쓸하기가 그지 없었다. 아마 모두들 마음만은 영안실에 있었을 것이다. 미처 오지 못한 사람들이 많아 보인다. 때 아닌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 이어졌고, 무엇보다 최근 영화계가 각박해지기가 이를 데 없어진 탓이다. 지금은 다들 각자도생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회가 그렇게 요구하고 있고 사람들은, 영화인들조차, 마음의 여유를 찾기 힘든 나날이다. ‘가위손’이란 영화 한편, ‘바베트의 만찬’이란 영화 한편이 자신의 청춘을 어떻게 자극하고, 또 그럼으로써 지금의 자신들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회고할 시간도 여유도 없어졌다. 그의 외로운 영안실 풍경이 계속 마음에 걸리는 이유다. 영화는 단 두 시간 여 만에 사람 한 명의 인생을 바꾼다. 사람들은 극장 문을 들어 설 때와 나갈 때 다른 사람이 돼 있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그렇게 바뀌어진 사람이 모여 사회를 변화시킨다. 영화가 의미가 깊고 무서운 기제(機制)라 부르는 이유, 그래서 권력자들이 영화를 통제하려는 사회정치학적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윤명오는 우리 사회의 개혁자이자 변혁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늘 조용하고 차분한 말투, 다정한 표정의 소유자였지만 또 다른 면에서 한국 영화계의 혁명아이자 한국 사회를 진화 시킨 인물이다. 화천공사에서 일을 시작해 하명중 영화사에 몸을 담았다가 나중에는 올리브 커뮤니케이션이란 영화사에서 이사 직을 수행했다. 그 영화사들을 인지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이 현재 얼마나 될까. 그가 수입해 소개했던 캐서린 키너, 앤 헤이시 리브 슈라이버 주연의 ‘워킹 앤 토킹’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음악감독 조영욱과 1998년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희대의 영화상영회인 ‘난장 영화제’를 열었고, 그의 ‘워킹 앤 토킹’을 강탈하다시피 가져 와 틀었다. 그때 필름을 배달했던 친구가 약관의 류승완이었다. 그때 우리는 모두 젊고 순수했었다. 가위손이 죽었다. 1990년대의 영화계와 그때의 열정도 사그라져 간다. 이건 분명히 슬픈 일이다. 그것도 매우.오동진 영화평론가 2023.08.31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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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훈 감독이 전하는 ‘비공식작전’ 비공식 뒷이야기 [IS인터뷰]

피, 땀, 눈물이 안 들어간 영화는 없다. 그럼에도 ‘비공식작전’에 들어간 여러 노력들을 생각하면, 이 영화는 남겨져야 할 이야기들이 더 많아야 한다고 믿는다. 알려진 이야기보다 안 알려진 이야기가 더 많은 터. ‘비공식작전’ 100만 돌파라는 의미를 담아 이 영화의 비공식 뒷이야기들을 김성훈 감독과 같이 나눴다. 이 인터뷰는 스포일러를 약간 포함합니다. -‘비공식작전’은 ‘킹덤’ 막바지 작업을 했을 때 결정했는데.넷플릭스 ‘킹덤’을 한다고 했을 때 다들 말렸다.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OTT시리즈에 대한 관심이 높을 때가 아니었으니깐. 재밌을 것 같았다. OTT란 게 어떤 건 지도 궁금했고. 내 성향상 좀비 이야기는 죽을 때까지 안 쓸 것 같기도 했고. 김은희 작가와 술을 먹다가 즉흥적으로 같이 하기로 했었다. 무엇보다 내가 안 쓰니 너무 좋았다. 막상 들어갔더니 세상에 거져 먹는 건 하나도 없더라. 그때 음악 후반작업을 하려 체코에 갔다. ‘터널’도 음악 작업을 체코에서 했다. ‘비공식작전도’ 마찬가지고. 비행기를 탈 때 쇼박스에서 ‘비공식작전’ 시나리오를 읽어보라고 줬다. 원래는 다음 작품으로 내가 쓴 재난물을 영화로 할 계획이었는데, 시나리오를 보고 마음을 바꾸었다. 엄혹했던 시절에 외교관이 납치가 됐는데, 누군가는 그 사람을 데리고 오려고 얼마나 노력했을까란 생각이 들더라. 세상이 전혀 관심이 없어도. 아무도 몰라줘도. 시스템이 못 한 걸 개인이 한다는 이야기에 이번에도 매료가 됐다. -당시 ‘모가디슈’ ‘교섭’ 등 비슷한 소재 작품들이 동시에 기획이 됐었는데.그 때는 전혀 몰랐다. 뒤에 들었다. ‘교섭’ 콘티 작가가 나와 ‘터널’부터 같이 일을 한 분이다. 이번에도 같이 일을 했다. 그래서 사전에 알려주면 절대 안되고, 혹여라도 찍다가 비슷한 게 있으면 말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전혀 다른 이야기라고 하더라.-영화계에 김성훈 감독이 이 영화를 ‘본’시리즈 같은 분위기를 고려한다는 이야기가 제작 돌았는데. 막상 영화를 보면 성룡 전성기 영화 ‘쾌찬차’나 ‘폴리스 스토리’ 같은 액션 같은 느낌이 들던데.기획 초반에 중동의 도시들을 배경으로 하는 첩보물 느낌이란 점에서 ‘본’ 시리즈 같은 느낌이란 말들이 있긴 했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본’ 같은 프로패셔널은 없다. 평범한 사람이 벌이는 어쩔 수 없는 생활액션일 수 밖에 없다. 찍으면서 ‘폴리스 스토리’ 같은 성룡 영화 액션이나 ‘인디아나 존스’ 같은 액션 시퀀스 같다는 말들은 나왔다. 찍기 전에 그런 레퍼런스를 유도하지는 않았다.-‘비공식작전’의 톤앤매너는 무거운 소재에 비해 가벼운데. 이 이야기를 버디물로 구성한 것도 그렇게 톤앤매너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나.무거운 소재를 갖고 왔지만 ‘비공식작전’은 납치된 인질의 이야기가 아니라 구하려는 사람들에 집중하는 영화다. 그것도 어설픈 사람들의 이야기. 전작인 ‘터널’을 준비할 때 깜깜한 곳에서 한 명이 있는 영화를 관객이 어디 답답해서 보겠냐는 지적들이 있었다. 난 인물의 낙천성이 그걸 해소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렇게 절망에서 버티는 사람을 통해서 관객이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라고도 생각했고.‘비공식작전’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구하는 영화는 많이 나왔다. 그렇다면 차별점을 두려면 무겁고 진중한 이야기에서 구하려는 사람들의 티키타카를 보여주면 그속에서 드러나는 아이러니가 좋지 않을까 싶었다. -촬영에 돌입할 때까지 우여곡절이 정말 많았다. 원래 2020년 3월 모로코에서 크랭크인 예정이었지만 코로나19가 터지면서 1년 반이 미뤄졌다. 당시 미리 보냈던 식자재는 모두 폐기됐고. 상황이 좀 좋아져서 2021년 겨울에 들어가려 했는데 다시 오미크론이 터지면서 모로코가 셧 다운이 됐다. 다행히 모로코에서 '비공식작전' 촬영팀은 전세기를 타고 들어오면 괜찮다고 해서 들어가긴 했는데. 알려지진 않았지만 그 직전에 하정우가 코로나19에 걸렸고 회복되서 들어가려 했더니 이번에는 주지훈이 걸렸다. 그래서 못들어가나 싶었더니 모로코가 셧다운을 풀어줘서 일반기로 들어갈 수 있었는데. 그야말로 코로나19와 전쟁을 치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는데. 그쯤대면 포기하고 다른 작품을 고민할 수도 있었을텐데. 촬영팀을 모아놨는데 그대로 해산했다가는 다시 모으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마침 김은희 작가가 ‘아신전’ 제안을 해서 그 스태프들을 해산하지 않고 같이 찍으면서 버틸 수 있었다. 모로코가 다시 셧 다운을 한다고 했을 때는 찍지 말라는 뜻인가 싶기도 했다. 허탈한 마음에 시나리오와 콘티북을 다시 보고 있는데 너무 재밌더라. 그리고 너무 억울하더라. 지금까지 이 작품만큼 많은 시간을 들인 작품이 없었다. 이 만큼 열심히 준비한 작품이 없었다. 아내가 그렇게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고 하더라. 그 노력이 실현되는 걸 보고 싶었다. -현장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정말 많이 찍었다는 것이었다. 테이크를 정말 많이 갔다고 하던데.모로코에서 70회차를 찍었는데, 이렇게 노력을 하고 준비를 해서 천신만고 끝에 찍기 시작했는데 요 정도 찍고 퇴근하면 안 될 것 같았다. ‘비공식작전’이 나를 좀 더 잘 만들어달라고 하는 것만 같았다. 스태프들의 근무 시간을 지키는 상황에서 ‘비공식작전’이 원하는 걸 좀 더 완벽하게 하고 싶었다. 더군다나 당시 모로코가 우기였다. 중동의 쨍한 햇빛을 찍으러 갔는데 구름이 끼면 원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날씨가 좋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찍고. 그런 일들이 많았다.-하정우가 광야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터덜터덜 걸어오는 장면은 뒷쪽 산맥 배경이 더해져 마치 그림 같던데. 감독으로서 무척 즐거웠을 것 같고.정말 그랬다. 아틀라스 산맥을 헌팅하다가 그 풍경을 보고 무조건 홀로 남은 하정우를 찍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찍기 전날까지 하늘이 흐려서 걱정이 많았는데 다행히 전날 폭우가 와서 하늘이 맑아져서 찍을 수 있었다. 하정우에게 딱히 디렉션을 주진 않았는데, 나중에 들으니 하정우가 그 장면에서 찰리 채플린을 생각하면서 걸어왔다고 하더라. 그 풍광과 그 모습이 정말 영화적이었다.당시 마침 당나귀가 하나 지나가더라. 옆 동네 어르신이 몰고 가셨는데, 빨리 섭외를 했다. 그 분이 계속 그 장면 뒤에 서 있다. 갑자기 섭외해서 하루 종일 찍었는데, 평생 처음 영화 찍는다며 정말 잘 해주셨다.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매직아워는 14회차를 찍었다던데. 꼭 그렇게 했어야 했나.그걸 꼭 모로코에서 찍어야 하냐, 한국에서 세트로 찍어도 된다는 말도 나왔다. 그런데 모로코에서 찍으면 훨씬 디테일한 장면이 나올 것 같았다. 표준계약서를 지키면서 매직아워에 맞춰 14회를 나가면서 25분 정도씩 찍었다. 그걸 찍으려 거기까지 갔냐고 물으면, 찍어야 할 게 거기 있으니 가야죠라고 답하고 싶다. 현장에서도 왜 그렇게 작은 것에 집착하냐는 말이 나올 때 이렇게 설득했다. 줄기와 뿌리가 근간인데, 사람들은 그 나무가 벛나무인지 근간을 보지 않고 열흘 정도 피었다 사라지는 벚꽃을 보고 안다. 그 작은 게 전체를 규정하는 법이라고. 그런 디테일한 대한 노력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고, 그래서 다른 누군가도 그런 시도를 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민준(하정우)과 판수(주지훈)의 첫날 밤부터 이어지는 밤 추격신 등은 한 호흡으로 이어지는데.영화의 허리 정도 되는 지점이다. 판수가 내부의 적인 게 드러나는 부분이고. 민준을 끊임없이 고난에 처하게 하고 싶었다. 영화적 재미를 주고 싶어서 코믹 시퀀스에 기반을 두도록 액션을 설계했다. -본격 탈출 장면인 빌라 탈출신은 옆 건물로 사다리를 통해서 이동하고 다시 하강할 때까지 10분 가량에 달하는데. 곳곳에 서스펜스와 코믹을 엮었고.건물에서 탈출할 때까지 8분 30초 정도 된다. 사다리와 닭, 와이어 등등을 통해 단계별로 장애물을 극복하며 아기자기한 재미를 주고 싶었다. 더 이상 전진하지 못하는 것에서 오는 서스펜스를 살리고 싶었고. 평범한 사람이 그런 위기를 시원하게 극복할 수는 없을테니, 그런 아이디어를 넣자고 생각했다. -카체이스는 할리우드와 달리 아기자기한 아이디어들이 쌓이고 쌓여 완성됐는데. 대략 6분 정도 분량을 18회차 정도 찍었는데.모로코에서 18회차, 한국에서 3회차 총 21회차를 찍었다. 5분 40초 가량 영화에 들어갔다. 우리가 할리우드처럼 물량 공세를 할 수는 없고, 또 그런 건 많이 봤으니 ‘비공식작전’만이 특화시킬 수 있을 게 뭔지 고민했다. 속도가 아니라 지형지물을 아이디어로 해결하는 액션을 해보자고 생각했다. 무조건 아이디어를 넣자고 했고 그림 콘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걸 CG로 프리 비주얼 콘티를 다시 만들었다. 그걸 또 다시 무술팀이 실제로 구현할 수 있을지 동영상 테스트 콘티를 찍었다. 이렇게 세 가지 콘티를 갖고 찍었다. 액션도 감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이 카체이스는 어떤 감정이 담겨 있어야 관객에게 재미를 줄지 고민이 많았다.-원래 시나리오에선 납치됐던 외교관 오재석이 풀려난 뒤 판수를 보고 한 첫 대사가 “건실한 청년”이 아니었는데. 왜 바꾸었나.임형국이 오재석을 연기했는데, 원래 판수 역의 주지훈이 “저 아시죠”라고 할 때 대사는 “음, 사기꾼”이었다. 유머 코드로 준비한 대사였다. 그런데 첫 리딩 때 임형국 배우가 그 대사를 하는 걸 머뭇거리면서 이 사람은 무슨 감정으로 사기꾼이라고 할까요,라고 조심스레 묻더라. 정말 반성했다. 이 캐릭터는 납치됐다가 1년 반만에 한 첫 한국어일텐데, 자신을 구해준 사람에게 과연 사기꾼이라고 했을까. 관객을 웃기려고 그 캐릭터가 못할 대사를 줬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함께 고민을 했는데, 하정우가 “건실한 청년”이라고 이야기하면서 그 대사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 대사를 영화 속에서 계속 써먹었다. -카체이싱이 끝나고 엔딩이 더 이어지는데. 그 장면도 그렇고, 외교부 직원들이 3개월치 월급을 모으는 것도 그렇고. 좀 더 감정을 끌어올릴 수도 있었을텐데.내가 할 수 있는 게 거기까지였던 것 같다. 난 시나리오를 쓸 때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고려한다. 사지에 있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나라면 월급을 얼마나 내줄 수 있을까, 3개월 정도였을 것 같다. 민준은 직업으로서 실종된 외교관을 구하려 왔지만, 사람으로선 판수를 구하는 선택을 한다. 왜? 다음 비행기를 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니깐. 난 그게 평범한 사람이 할 수 있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영화 배경이 5공 막바지였던 때라 마지막 민준이 귀국할 때 시기를 6월 항쟁으로 잡을 줄 알았는데.개인의 고통과 시대 상황이 교차되는 걸 반복적으로 보여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원래 시대 상황을 담은 장면들이 몇 있었는데 편집했다. 어찌 귀국시킬까만 고민했다. 내 길은 아니지만 박수를 받는 축하파티 느낌이 있었으면 했다. -이 영화의 소리설계도 남다르던데.헌팅을 다녀오기 전에는 중동에 대한 막연한 이미지가 있었다. 소리도 별로 없을 것 같고, 가끔 기도 소리만 있을 것 같고. 하지만 현장에 갔더니 다양하고 정말 많은 소리들이 마치 음악처럼 들리더라. 그래서 인물을 가운데 놓고 소리로 둘러싸고 싶었다. 광활한 데 가면 소리가 사라지고. 특히 하루 5번 울리는 기도 소리는 스피커가 위에 있다보니 마치 하늘에서 소리가 내려오는 듯 했다. 영화에 그걸 담기 위해 7.1로 준비를 했고, 그게 잘 담겼다. 그런데 대부분의 극장이 5.1로 돼 있으니 아예 그 기도 소리가 잘 안들리더라. 그래서 언론 시사회 이후 급하게 믹싱실에 부탁을 해서 7.1에서 5.1로 바꾸었다. 세 군데만 고친다고 하고 12군데를 고쳤는데 감사하게도 다 들어주셨다. -원래 IMAX 버전도 고민했는데.민준이 한국에 있다가 모로코에 갈 때 그 비행기가 도착하면서 IMAX로 바뀌는 것을 고려했는데, 현지 사정 상 그 비싼 카메라를 갖고 가서 운영하기가 조심스러워서 포기했다. -영화 흥행이 아쉬운데. 이유를 고민했을텐데.여러 생각이 있지만 지금 그걸 입에 담아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를 위해 애썼고, 지금도 애쓰고 있는 분들이 있는데 내가 어떤 이유든 입에 담으면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만 내가 데뷔작을 할 때 관객은 몰라, 그러다가 철저히 망했다. 내가 알면 관객도 당연히 안다. 만드는 사람이 아무리 노력했다고 해도 관객은 그 노력을 보려고 극장에 오진 않는다. 재미를 보러 오지. 극장 상영이 다 마무리되면 하나씩 깊이 고민해 볼 생각이다.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2023.08.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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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승연예] ‘인디아나 존스5’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의 창대한 마지막

영화의 매력은 작품 안에서 이야기가 끝나지 않고 확장된다는 점 아닐까요. 좋은 영화 한 편이 촉발한 감상과 의미를 다른 분야의 예술과 접목해 풀어보고자 합니다. ‘환승연예’는 영화, 음악, 도서, 미술 등 대중예술의 여러 분야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이야기하는 코너입니다. ‘빰빠라밤 빰빰빰 빰빠라밤.’ 21세기 폭스(구 20세기 폭스)의 영화가 시작될 때면 깔리는 음악. 왠지 이 음악이 들려야만 비로소 영화가 시작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 뿐인가. ‘딴따라 라라 라라’라며 잔잔히 음악을 깔리면 그곳이 어디든 호그와트가 된다. 멈춰 있는 포스터 속 불빛이 일렁이는 것만 같은 느낌. 바로 이 같은 영화 음악이 존 윌리엄스의 손에서 탄생했다.“내 영화는 사람들의 눈에 눈물이 고이게 하지만, 그것을 흘러내리게 하는 것은 윌리엄스의 음악이다.” 영화감독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같이 말했다. 두 사람이 대체 어떤 영화에서 손발을 맞췄는가 궁금하다면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을 떠올려 보면 된다. ‘이티’, ‘죠스’, ‘미지와의 조우’, ‘쉰들러 리스트’, ‘라이언 일병 구하기’, ‘쥬라기 공원’ 등 스티븐 스필버그의 대표작이라 할 만한 대부분의 영화에 존 윌리엄스가 참여했다. 이런 인연으로 존 윌리엄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영화 ‘파벨만스’의 음악 작업에도 참여했다. 존 윌리엄스가 스티븐 스필버그와 만난 건 약 50년 전이다. 윌리엄스는 자신의 피아노 앞에 앉아 단 두 음계로 된 음악을 연주했다. ‘뚜둔 뚜둔 뚜둔뚜둔뚜둔…’ 바로 ‘죠스’의 메인 테마곡이다. 상어가 눈앞에 보이지 않는데도 관객들의 긴장감을 자아냈던 바로 그 소리. 그게 두 사람의 인연의 시작이었다.스티븐 스필버그와 인연으로 존 윌리엄스는 더 많은 영화 음악 작업에 참여했다. 신비로운 마법 세계로 관객들을 안내하는 ‘해리 포터’ 시리즈의 메인 테마와 ‘슈퍼맨’이 하늘을 날 때 들리는 음악, 그 유명한 ‘스타워즈’의 메인 테마곡 모두 존 윌리엄스의 작품이다. 스필버그는 윌리엄스의 음악에 대해 “훌륭한 영화는 음악이 영화보다 앞서지 않고 영화가 음악을 억누르지도 않는다. 윌리엄스의 음악은 영화 속 이미지와 완벽한 조화를 이룬다”고 했고,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은 윌리엄스를 일컬어 “감독의 마음속에 있는 바로 그 음악을 들려 주는 사람”이라고 평했다.최근 개봉해 절찬리에 상영되고 있는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다섯 번째 이야기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음악은 존 윌리엄스의 마지막 작품이다. 그는 이를 끝으로 영화 음악을 더 이상 만들지 않을 생각임을 시사했다. 시리즈의 주인공인 해리슨 포드와 함께 ‘인디아나 존스’의 막을 함께 내리게 된 것이다.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 러닝타임 이후에도 삶 속에서 이따금씩 생각나 마음을 흔드는 여운을 남기는 작품 아닐까. 그렇다면 좋은 영화 음악이란 아마 멜로디만 들어도 영화 속으로 다시 빨려 들어간 듯한 느낌을 주는, 주변의 풍경과 공기를 바꾸는 그런 것일지 모른다.“내가 쓴 각본 초안이 여섯 개라면 존은 일곱 번째이자 마지막 각본을 쓴다. 나는 그 버전으로 영화를 만든다.”(스티븐 스필버그) 사람들은 ‘쥬라기 공원’을 보지 않더라도 유니버설 스튜디오의 쥬라기 공원 테마 기구에서 흘러나오는 존 윌리엄스의 음악을 듣고 웅장함과 긴장감을 경험한다. 대체할 수 없는 분위기와 스크린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지닌 존 윌리엄스의 음악. 스티븐 스필버그와 존 윌리엄스가 영화계에서 50여 년간 이어온 동행은 이제 막을 내리지만, 두 명장이 남긴 수많은 명작들은 앞으로도 계속 사람들의 기억 속에 숨 쉴 것이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7.10 0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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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호 JIFF 집행위원장 “세계가 열광하는 ‘K’ 백년대계 준비할 때” [IS인터뷰] ①

정준호 전주국제영화제(JIFF)공동 집행위원장에겐 남다른 사명이 있다. 바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세계 게스트들도 앞다퉈 참가하는 유명한 영화제로 만드는 것. 공동 집행위원장으로 임명된 이후 영화계 안팎에서 우려의 시선을 받았던 만큼 자신에게 기대되는 것, 자신이 해야할 몫은 다 해내고야 말겠다는 게 정 집행위원장의 각오다.‘제24회 전주국제영화제’ 개막 이틀째인 지난달 28일 전주시 완산구의 한 호텔 카페에서 정준호 집행위원장을 인터뷰했다. 정 집행위원장은 조덕현 작가가 마련한 안성기 전시회를 방문하고 익산에서 막 오는 길이었다. “오는 길에 차가 좀 막혀서 늦었다”는 그에게 “괜찮다”며 자리를 안내한 뒤 숨을 고르고 인사를 나눴다. 전날 늦게까지 개막식 행사를 치른 뒤라 밝은 얼굴에도 피곤한 기색이 엿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제가 집행위원장이 됐을 때 여러 의견이 있었던 걸 알고 있고 그게 어떤 뜻인지 충분히 이해해요. ‘전주국제영화제’는 실험적이고 도전적인 시도를 하는 독립영화의 산실인데 저는 그동안 주로 상업영화를 해왔으니까요. 그런데 우리 영화제의 슬로건이 이번에 ‘우린 늘 선을 넘지’잖아요. 저도 나름대로 선을 넘어보려는 거죠. 제가 가진 장점을 활용해서요.” 실제 정준호는 집행위원장이 되며 기업인 40여 명이 중심이 된 전주영화제 후원회를 발족했고, 대한항공 스폰서를 연결해 미주와 유럽 쪽 게스트들이 전주를 찾을 수 있도록 했다. 대한항공에는 대신 ‘전주영화제’가 가진 작품의 저작권을 풀어 기내에서 상영할 수 있도록 했다. 영화제와 항공사의 윈윈 전략인 셈이다. 정준호는 “‘전주국제영화제’는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영화제다. 영화제가 자금난으로 위축되면 세금을 낸 시민들에게 제대로 보답할 수 없다. 영화제의 외연을 확장하고 시민들과 연결하는 일을 내 사명으로 생각한다”고 힘줘 말했다.“4~5개월 영화제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이 ‘전주국제영화제’는 정말 마니아층이 탄탄하다는 것, 대신 조금 비마니아층에게는 덜 알려져 있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대안영화, 독립영화를 주목한다는 영화제의 정통성은 유지를 하면서 거기에 대중성을 접목하면 어떨까 한 거죠. 실제로 전주에 와서 식당을 돌아다녀 보면 ‘전주국제영화제’에 대해 잘 모르거나 그 효과를 체감하지 못 하고 있는 상인 분들이 많았어요. 저는 시민들에게 더 다가가는 영화제를 만들고 싶어요.”국내·외 정상급 스타들이 다수 참석하는 ‘부산국제영화제’와 달리 ‘전주국제영화제’는 보다 예술로서의 영화에 집중해왔다. 그 덕에 영화를 사랑하는 팬들과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명망이 높지만 일반 대중에게까지는 널리 알려지지 못한 게 사실. ‘두사부일체’(2001) ‘가문의 영광’(2002), ‘공공의 적’(2002) 등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작품에 출연한 정준호가 공동집행위원장이 된 뒤 그 무엇보다 영화제 홍보에 열을 올리는 건 이 때문이리라.물론 그 선에 대해선 정준호 집행위원장도 여전히 고민이다. 영화제를 널리 알리는 것 자체가 영화제의 정통성을 훼손하지는 않지만, 너무 대중을 향한 홍보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자칫 영화제가 중구난방으로 가는 것처럼 보이진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정준호 집행위원장은 “최우선 과제는 전주시의 지역 경제를 살리는 것, 그리고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에게도 ‘전주국제영화제’의 위상을 알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전주국제영화제’는 그동안 정말 많은 작품과 영화인들을 발굴해왔어요. 제 의견은 이제 발굴에만 그치지 말자는 겁니다. 그렇게 발굴한 작품들을 배급하고, 마케팅에도 힘을 쏟아서 대중 앞에 끄집어내주는 거예요. 농사를 지었으면 그걸 다른 사람들도 맛볼 수 있게 해야죠.” 정준호 집행위원장은 이를 전주의 대표 먹거리인 비빔밥에 빗대었다. 비빔밥은 여러 채소가 모이는 일종의 플랫폼이라 할 수 있는데 정준호 집행위원장이 바라보는 영화제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세계 곳곳의 좋은 영화와 영화인들이 모여 자신의 작품을 서로 소개하고 나누는 것. 마치 장터 같은 풍경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펼쳐지길 바란다고 했다.물론 근간은 콘텐츠에 있다. ‘기생충’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을 휩쓸고, 전 세계가 K팝에 맞춰 몸을 흔드는 지금이 바로 기회다. 모두가 한국에 집중할 때, 전통적인 한국의 문화를 갖춘 전주가 치고 나가야 한다. 백년대계, 나아가 천년대계를 보고 독립영화에 투자해 한국 영화계를 빛낼 새로운 얼굴을 발굴해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전주국제영화제’에 훌륭한 작품들이 정말 많아요. 꼭 보러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진짜 여기 아니면 못 볼 파격적인 작품들이 영화인 여러분들을 기다리고 있거든요. 와서 티케팅도 해보시고, 맛있는 것도 즐기시고, 그러시다 보면 ‘전주국제영화제’와 사랑에 빠지게 될 거예요.”전주(전북)=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5.0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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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인] 극장요금 안 내리면 다 망한다..OTT홀드백 규제도 필요

‘스즈메의 문단속’의 흥행에 가려졌지만, 3월 극장가는 혹독한 보릿고개를 겪고 있다. 2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에 따르면 22일 극장을 찾은 총관객수는 14만5424명으로 전날 10만2635명보다 늘었다. 전날까지 10만명대를 유지하던 관객수가 늘어난 건 ‘웅남이’ 등 신작 유입효과로 보인다. ‘웅남이’는 개봉 첫날인 22일 2만7698명이 찾아 박스오피스 2위를 기록했다. 그간 박스오피스 2위를 지켰던 ‘더 퍼스트 슬램덩크’는 이날 8267명을 동원해 3위로 한 계단 하락했다. 다만 ‘웅남이’는 실관람평인 CGV 에그지수가 75%까지 떨어진 터라 주말 동안 얼마나 많은 관객을 동원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1위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즈메의 문단속’이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스즈메의 문단속’은 이날 6만 9375명이 찾아 지난 8일 개봉한 이래 줄곧 1위를 지키며 누적 214만 1388명을 기록했다. ‘스즈메의 문단속’이 13일만에 200만명을 동원할 만큼 박스오피스를 견인하고 있지만, 반대로 ‘스즈메의 문단속’ 외에는 사실상 극장이 텅 비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작 ‘웅남이’는 오프닝이 3만명도 채 안되고 3위 이하는 1만명도 관람하지 않고 있다. 1월4일 개봉한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일일 관객수가 1만명도 되지 않지만 여전히 박스오피스 3위라는 건, 그만큼 관객이 극장에서 볼 영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일본 애니메이션 붐이란 현상에는, 한국영화를 비롯해 아카데미 수상작 등 극장에서 상영 중인 여러 영화들이 관객의 흥미를 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반영됐다.문제는 극장요금이다. 팬데믹 이후 3년 연속 극장요금이 인상되면서 관객들이 영화 선택에 한층 신중 해졌다. 혹자는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을 놓고 ‘역시 좋은 작품은 관객이 찾는다’는 둥, ‘굿즈 특전 등 일본 애니메이션의 다양한 마케팅이 관객을 끌어모은다’는 둥 본질을 외면한 진단을 한다. 한 멀티플렉스 관계자는 “극장요금도 요금이지만 MZ세대를 비롯한 극장을 찾는 고객들이 차별화된 경험을 할 수 있는 게 무엇일지 고민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며 “‘더 퍼스트 슬램덩크’ 사례를 참조해 캐릭터 굿즈 출시나 영화 속 주인공을 위한 이벤트 등 다양한 마케팅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이 극장업계에 착각을 주고 있다. 원래 ‘덕후’(일본어 오타쿠의 한국식 표현 오덕후의 준말)는 돈을 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임영웅 콘서트 실황이든, 덕후들은 덕질에 돈을 아끼지 않는 법이다. 덕후가 아닌 일반 관객들이 기꺼이 인상된 극장요금을 감수하고 극장을 찾으려면, 탁월한 볼거리로 재미가 보장되거나, 가격이 적정해야 한다. 비록 현재 한국 극장요금이 다른 나라에 비해 비싼 건 아니지만 3년 연속 인상됐기에 관객 입장에선 체감이 다르다. 3년 사이 짜장면 가격에서 갑자기 파스타 가격이 된 셈이다. 대체제가 없는 것도 아니다. OTT 등 볼거리가 많아졌다. 가격에 소비자를 맞추는 게 아니라, 소비를 하게끔 가격을 맞춰야 하는데, 한 번 인상된 극장요금은 요지부동이다.◇문제는 극장요금..일본 애니 흥행으로 착각현재 영화계에선 극장요금에 대해 다양한 말들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크게 인상됐기에, 극장요금 인상은 어쩌면 당연한 수순이었다. 극장요금이 인상된 덕에 손익분기점도 낮아졌다. 극장요금도 인상되고, 관객도 많이 찾게 되면, 극장과 투자배급사, 제작사, 스태프 등 한국영화산업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했을 터다. 애초 극장요금 3년 연속 인상의 명분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어려워진 극장 운영과 한국영화산업에 윈윈 효과였다. 하지만 결과는 관객의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다. 극장요금 인상으로 극장의 매출은 팬데믹 이전과 비슷하게 회복됐지만, 정작 극장에서 개봉한 한국영화들은 관객이 줄어 손익분기점을 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11월 개봉한 ‘올빼미’ 이후 올해 극장 개봉한 한국 상업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은 영화는 아직 한 편도 없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영화계에선 극장요금이 인하돼야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이란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산업 분석 자료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인 2019년 한국은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횟수가 4.37회에 달해 세계 1위였다. 이는 한국관객이 유달리 영화를 사랑해서라기 보다는 극장요금이 상대적으로 저렴했기 때문이었다. 반면 극장요금이 3년 연속 인상되자 2022년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횟수는 절반 이하인 2.19회로 크게 줄었다. 2022년 미국과 영국 등 해외 극장산업 강국들은 관객수가 70~80% 가량 회복됐다. 한국은 2019년 2억2667만8777명이던 연간 총관객수가 2022년 1억1280만5094명으로 50%도 회복되지 않았다. 한국이 이들 나라와 차이가 있는 건, 팬데믹 영향에 더해 급격한 극장요금 인상 영향이 상당했다는 걸 알 수 있다. 쇠뿔을 고치려다 소를 죽이는 꼴이 되다 보니, 영화산업 각 이해 당사자들의 목소리가 다르게 쏟아지고 있다. 한국영화감독조합 공동대표인 윤제균 감독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국영화가)흥행이 안되고, 흥행이 안되니 투자가 안된다. 현재 새로 투자가 들어가는 영화 이야기를 못 들어봤다”고 위기를 호소했다. 흥행이 안되는 이유가 단순히 ‘한국영화가 재미가 없다’, ‘그 나물에 그 밥이다’라면 감내하고 반성해야 할 문제지만, 거기에 더해 ‘극장요금 인상’으로 전체 관객이 줄어든 게 큰 원인인 만큼 근본적인 변화가 있어야 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투자배급사 고위 인사는 “극장에 연중 비수기라고 할 정도로 관객이 줄었다”면서 “내부적으로 극장요금이 인하돼야 관객이 다시 극장을 찾을 것이란 분위기가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사실 극장업계도 위기 의식은 상당하다. 극장을 찾는 데 대한 관객의 인식이 전환되지 않고 이대로 굳혀질 경우, 극장산업이 유지가 안될 것이란 의식을 갖고 있다. CGV,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등 극장사들이 4월 한국영화 개봉 지원작을 선정해 투자사에 혜택을 주는 것도 위기감의 발로다. 다만 극장업체간 입장 차이로 극장요금 인하에 대한 생각은 엇갈린다. 극장요금은 그대로 두고 특별관을 활용해 다양한 체험형 관람과 굿즈 혜택 등으로 관객을 유도해야 한다는 극장사와 한국 극장산업의 본질은 좋은 영화와 저렴한 가격이었던 만큼 지금은 관객이 극장을 외면하지 않도록 극장요금을 시간대별로 차등화하는 등 여러 방식으로 인하해야 한다는 극장사들로 나뉘고 있다.이는 극장산업에 대한 전망이 다른 까닭이기도 하다. 현 극장요금 고수를 바라는 극장사는 관객들이 좋은 작품들이 계속 나오면 결국 극장을 다시 찾게 될 것이라는 낙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지금 관객이 극장을 안 찾는 이유도 좋은 작품이 상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으로 여긴다. 극장요금을 인하해야 한다는 극장사는 극장을 점차 찾지 않는 관객 인식이 빨리 전환되지 않으면 당장은 매출이 회복될 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산업이 붕괴될 수 있다는 비관적인 전망을 갖고 있다. 특별관에 쏟을 여력도 없을 뿐더러 특별관이 결코 일반관을 대체하진 못한다는 인식도 있다. 의견이 갈리는 극장사 모두 물가인상, 인건비 인상 등의 압박을 받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 섣불리 결정을 하지는 못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먼저 내린다 해도, 극장은 지역 거점인 터라 그 극장사에 관객이 극적으로 몰리는 게 아니기에 실무진의 고민도 크다.사실상 극장요금을 가장 먼저 올리고 가장 많은 극장을 갖고 있는 CGV가 어떤 움직임을 보여야 다른 극장사들도 보조를 맞출 수밖에 없다. ◇OTT 홀드백 규제 필요 극장 한 목소리극장요금 인하와 별개로 영화 극장 상영 종료 후 OTT 공개까지 홀드백 기간을 몇개월 이상 차이를 둬야 한다는 공감대는 극장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다. 관객들이 극장을 점차 찾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OTT 홀드백이 짧을수록 더 극장을 찾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지난해 극장 상영 종료 이후 4주 뒤에 OTT업체 쿠팡플레이에서 ‘비상선언’과 ‘한산:용의 출현’이 공개됐지만, 너무 빠르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그나마 흥행이 안된 영화들은 VOD 이후 OTT까지 홀드백 기간이 더욱 짧다. 영화계에선 개별 과금을 하는 VOD는 2차 판권 시장으로 성장했지만, OTT는 그렇지 않은 만큼 홀드백 기간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점차 커지고 있다. 프랑스는 지난해 1월 OTT사들과 협정을 통해 극장 상영 후 SVOD(구독형 VOD) 홀드백 기간을 15개월로 단축했다. 그나만 36개월이었던 걸, OTT가 약 4000만 유로를 투자해 연간 최소 10편의 현지 영화 제작에 참여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다. 넷플릭스는 이에 응했고, 디즈니+는 응하지 않았다. 극장업계에선 프랑스처럼 강력한 규제는 아니더라도 한국도 OTT 홀드백 기간을 법적으로 강제해야 극장산업 뿐 아니라 영화산업이 고른 혜택을 볼 수 있다는 여론을 조성하려 하고 있다. 즉 현재 극장들은 극장요금 인하 압박과 OTT 홀드백 기간 규제 등 두 가지 당면과제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전자는 피하고 싶고, 후자는 바라마지 않는 일이다. 극장들은 현재 4월 개봉하는 ‘리바운드’ ‘킬링 로맨스’ ‘드림’ 흥행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극장들이 출혈을 감수하면서 개봉 지원을 한 영화들인 데도,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을 경우에는 투자사와 제작사 등의 극장요금 인하 압력이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5월 초중순에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3’ ‘인어공주’와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등 할리우드 영화들이 개봉한다. 한국영화는 이들과 경쟁을 피해 ‘범죄도시3’가 마지막 주 개봉을 검토하고 있다. 극장들로선 5월과 여름 시장에 대한 기대가 있는 만큼, 4월 한국영화 개봉 지원작들과 5월 영화들의 흥행성적에 따라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마블영화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3’와 팬층이 있는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뿐 아니라 ‘범죄도시3’까지 예상 흥행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상황은 한층 심각해질 전망이다. 흥행에 성공하면 성공한대로 극장요금 인하 이야기는 쏙 들어갈 것 같다. 극장들이 대승적 차원에서 극장요금 인하를 결정하게 될지, 극장요금 인하는 안 하면서 OTT홀드백 규제를 요구할지, 분명한 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관객의 인식 전환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1인당 연평균 영화관람횟수는 극장요금이 비슷한 다른 나라들처럼 연 2회 가량으로 비슷해질 전망이다. 이럴 경우 미국을 제외한 자국 영화산업이 붕괴하고 할리우드 영화를 공급받는 여느 나라들처럼 한국영화산업이 크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관객이 극장에 안가고, 한국영화를 외면하고, 투자가 안되고, 투자가 돼도 찍어낸 듯한 영화들만 만들어져 다시 관객이 외면하는 악순환은 현재 진행형이다. 이 단계가 지나면 한국영화산업은 일본이나 대만처럼 극장만 살아남고 소소하게 명맥을 이어가게 될 것으로 보인다.다시 문제는 극장요금이다. 전형화 기자 brofire@edaily.co.kr 2023.03.24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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