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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두기 해제 후 첫 영화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화려한 개막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가 스물세번째 여정의 포문을 열었다. 지난 28일, 축제와 방역의 공존을 목표로 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3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한 전주돔에서 개막식을 올렸다. 이날 행사는 150여 명의 게스트와 2300여 명의 관객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그 가운데 개막작 '애프터 양 After Yang'의 저스틴 H. 민, ‘이창동: 보이지 않는 것의 진실’의 이창동 감독 등 국내외 영화인들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사회를 맡은 장현성은 “영화제의 시작을 알리게 되어 영광이다. 수많은 영화인을 한자리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고 전했고, 사회를 맡은 유인나는 “​상상만 해도 반가운 도시 전주에서 인사드린다. 전주국제영화제를 오래 기다렸을 관객분들께서 즐겁게 즐기셨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개막선언을 하기 위해 등단한 김승수 조직위원장은 관객들과 함께 “전주는 영화다”를 힘차게 외치며, “3년 만에 전주돔에서 개막식을 열게 됐다. 영화제, 영화인, 관객, 시민, 자원활동가는 영화로 연결되어 있다. 모두 존중하고 사랑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준비한 열흘간의 영화 축제로 빠져들겠다”라며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포문을 열었다. 행사를 진행한 전주돔은 팬데믹의 장기화로 2년 동안 설치되지 못했으나 올해 화려하게 부활해 영화제 관객과 전주 시민의 반가움을 샀다. 김승수 조직위원장은 “​전주돔은 마지막이지만, 내년부터는 독립영화의 성지가 될 전주독립영화의집이 건립될 예정이니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음으로, 무대에 오른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전 세계 영화제 중 제일 먼저 팬데믹을 맞은데 이어 엔데믹의 시작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맞이하게 됐다. 아직 조심스럽지만 축제성의 완전한 회복을 위해 노력했다. 관객분들께서는 마음껏 즐겨달라”고 전했다. 그리고 전주국제영화제는 1980년대부터 한국 영화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고 세계 진출에 이바지한 故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전 대표에게 공로상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고, 故 이태원 전 대표의 아들 이지승 감독이 대리 수상했다. 이어 국제경쟁, 한국경쟁, 한국단편경쟁, 넷팩(NETPAC)상 심사위원 14인을 소개했다. 축하 무대에는 ‘형돈이와 대준이’가 등장했다. 이어 오대환, 김준배, 이중옥, 현봉식, 이호철, 최영우, 던밀스 등 연예인 아카펠라 그룹 ‘도레미파’의 유쾌한 공연도 이어졌다. 다음으로, ‘J스페셜: 올해의 프로그래’로 선정된 연상호 감독과 개막작 '애프터 양 After Yang' 코고나다(Kogonada) 감독의 인사 영상이 이어졌고, 마지막으로 개막작 관람을 하며 화려했던 개막식을 마무리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해제되었지만,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방역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을 예정이다. 28일 진행한 개막식 역시 큰 규모로 진행되는 만큼 방역도 철저히 진행했다. 올해 신설된 방역 자문단의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손 소독은 물론 유증상자 출현을 대비해 의료진도 대기하는 등 안전한 영화제 만들기에 더욱 힘썼다. 한편, 개막식에 앞서 개막작 '애프터 양 After Yang'의 기자회견도 진행했다.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개막막작 선정 당시 만장일치로 뽑은 작품이다”라며, 개막작 선정 이유를 밝혔다. 특별히 안드로이드 ‘양’을 연기했던 저스틴 H. 민(Justin H. Min)이 기자회견에 참석해 “‘다름’을 주제로 한 영화”라고 소개하며, “아시아계 미국인으로서 나의 정체성과 존재를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기에 많이 공감이 갔다”며 작품에 참여한 소감을 전했다. 지난 28일 개막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오는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개최되며, 국내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을 통해 온라인 상영을 진행한다. 개막식 영상은 전주국제영화제 공식 유튜브 채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김선우 기자 kim.sunwoo1@joongang.co.kr 2022.04.29 17:18
영화

책으로 즐기는 전주국제영화제… 출판물 6종 발간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의 영화제를 집약적으로 소개하는 6종(국문 4종·영문 2종)의 특별한 출판물을 발간한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발간하는 ‘J 매거진’과 전주국제영화제 특별전 및 회고전의 일환으로 발간되는 ‘영화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 국문판/영문판,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 국문판/영문판, ‘영화보다 낯선+’ 섹션의 연계 프로젝트 ‘보더리스 스토리텔러 - 무빙 이미지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8인의 예술가들’까지 6종의 책이다. ‘J매거진’은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 종합 가이드를 잡지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전주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하는 57개국 217편의 영화에 대한 상세 가이드를 포함 감독 인터뷰, 영화 리뷰, 특별전 해설 등 영화제의 주요 프로그램에 대한 정보를 수록했다. 개막작 ‘애프터 양’의 코고나다 감독, 폐막작 ‘풀타임’의 에리크 그라벨 감독, ‘오마주’의 신수원 감독, ‘여섯 개의 밤’ 강길우 배우 등 다양한 영화인의 인터뷰가 담겼다. 이 책은 전주 서점, 산책로, 카페, 상점 등 유용한 지역 정보도 다뤘다. 영화제 기간(4월 28일~5월 7일) 동안 전주 시내 서점과 카페에서 직접 구입 가능하다. ‘영화는 질문을 멈추지 않는다’는 지난 25년간 이창동 감독이 추구해온 작품 세계를 한눈에 조망하고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책이다. 국내외 영화평론가 9명의 개성 있는 작품론과 작가론, 이창동 감독의 최신 인터뷰가 담겨 있다. 이창동과 영화를 주제로 한 책 중 감독 자신이 직접 참여한 첫 번째 책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가치가 있다. 해외 팬들을 위한 영문판도 나왔다. ‘위대한 유산, 태흥영화 1984-2004’는 전주국제영화제와 한국영상자료원(원장 김홍준)이 공동기획한 태흥영화사 자료집이자 고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의 추모집이다. 국문판과 영문판(Great Expectations: Taehung Pictures 1984-2004)이 각각 발간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이끈 태흥영화사의 빛나는 성취를 생생한 인터뷰와 기고문 및 올컬러 시각자료와 통계 등 다각도로 조명한다. ‘보더리스 스토리텔러 - 무빙 이미지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8인의 예술가들’은 무빙 이미지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는 8인의 예술가를 인터뷰한 책이다. 영화감독들의 작업만을 소개하던 틀을 깨고 타 분야의 작가들 중에서 영상을 매개로 작업하는 이들을 통해 미디어 컨버전스 시기 영화의 위치와 동시대 예술의 시대정신을 들여다본다. 각 출판물은 전국의 각 온라인 서점에서 판매 중이며, 전주국제영화제의 온라인 굿즈샵(https://smartstore.naver.com/jeonjuiffgoods)에서도 구매할 수 있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전주 영화의거리 일대에서 개최된다. 국내 영화제 전용 온라인 플랫폼 온피프엔(ONFIFN)을 통해 온라인 상영을 진행한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2.04.27 1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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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4월 28일부터 열흘간 개최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가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열흘 동안 열린다. 16일 전주국제영화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이사회 의결을 통해 올해 영화제 일정을 이같이 확정했다. 조직위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상영 계획을 잡았다. 올해 총 18개 섹션, 230편 규모로 500회차 상영을 목표로 한다. 코로나19 확산세 완화를 염두에 둔 중장기적 계획에 따라 영화제를 정상화하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고 조직위 측은 설명했다. 또 대면 행사를 정상적으로 치르는 동시에 한국 영화사 면면을 돌아보는 기획전도 준비한다. ‘태흥영화사 회고전’은 한국 영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데 공헌한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를 돌아본다는 취지다. 1980∼1990년대 한국 영화의 완성도를 끌어올린 태흥영화사의 공로와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를 기리는 의미도 담았다. 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oongang.co.kr 2022.01.16 1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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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국제영화제, 오프라인 대면 개최 확정 "4월28일 시작"

전주국제영화제가 올해는 오프라인 정상 개최된다.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집행위원장 이준동)는 14일 "지난해 말 이사회 의결을 통해 개최 일정을 확정하여, 오는 4월 28일부터 5월 7일까지 열흘간 영화제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영화제는 철저한 방역지침 준수와 함께 오프라인 행사로 진행된다. 코로나19의 유행 가운데 얻어낸 성과는 계승하되 영화제의 본래 목적과 역할을 잊지 않겠다는 취지다. 백신 접종률 상승으로 코로나19 확산세가 완화될 것이라는 중장기적 기대 아래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총 18개 섹션, 230여 편 규모로 500회차 상영을 계획하고 있다. 이는 최다 관객 기록을 연거푸 경신했던 제19회(241편, 536회차)나 제20회(265편, 559회차 *VR 상영 제외)와 비교해도 적지 않은 숫자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치러진 제21회(194편, 장기상영)나 제22회(186편, 356회차)와 비교하면 정상 규모를 되찾겠다는 의지가 뚜렷이 확인된다. 올해 전주국제영화제는 다채로운 프로그래밍과 연계 행사를 선보일 예정이며, '태흥영화사 회고전' 기획을 그 준비의 시작으로 삼았다. '태흥영화사 회고전'은 한국영화를 세계에 소개하는 데 공헌한 태흥영화사의 발자취를 돌아보기 위한 행사다. 1980-90년대 한국영화의 완성도를 획기적으로 끌어올린 태흥영화사의 공로와 지난해 10월 별세한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前) 대표를 기리는 의미 또한 담았다. 이번 '태흥영화사 회고전'을 통해 '취화선'(2002), '세기말'(1999), '금홍아 금홍아'(1995), '장미빛 인생'(1994), '경마장 가는 길'(1991), '개그맨'(1989), '기쁜 우리 젊은 날'(1987), '장남'(1985) 등 한국영화사의 뿌리와 맞닿은 8편의 작품이 제23회 전주국제영화제의 관객과 만난다. 한편 영화제 카탈로그를 대체하는 방식으로 발행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J 매거진'을 올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으며, 전주 영화의거리에서 전주국제영화제 상영작을 관람하는 '골목상영' 프로그램, 어린이날 100주년 기념 프로그램 기획 등 전주 시민과 가족 단위 관객의 발길을 붙들 부대행사 소식도 눈길을 끈다. 그간 전주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조건 아래 다양한 형태의 영화제를 실험하며 국내 영화제 개최의 지표를 마련하는 일에 힘썼다. 제21회 전주국제영화제는 국내 국제영화제 가운데 최초로 온라인 상영을 도입하고 장기 상영회를 마련하여 114일간의 최장기 영화제로 치렀으며, 이듬해 제22회는 온·오프라인 행사를 결합한 하이브리드 영화제를 열었다. 독립·대안·예술영화의 발굴과 소개를 본령으로 삼고 있는 만큼 영화제의 형식 면에서도 끊임없는 도전을 지속해온 셈이다. 전주국제영화제 이준동 집행위원장은 사회적 거리 두기 등 코로나19 방역지침 준수의 엄중함에 관해 "완전히 안심하기에 이른 시기임은 주지의 사실이다. 단계별 방역 조치 기준에 따라 진행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 설명하는 한편, "그러나 기회는 준비된 자에게 오는 것이라 믿는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우리 전주국제영화제에는 국내 영화제 개최의 척도와 기준을 제시해야 하는 일종의 책무가 생겼다. 최선을 다해 준비하여 올해 영화제 현장에서는 예년보다 많은 관객과 만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라고 밝혔다. 박상우 기자 park.sangwoo1@joongang.co.kr park.sangwoo1@joongang.co.kr 2022.01.14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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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편제' 故이태원 대표, 오늘 발인..영면에 드는 한국영화계 거장

한국 영화계의 거장, 고(故) 이태원 대표가 오늘(26일) 영면에 든다.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후 치료에 힘써오던 이태원 대표는 지난 24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 26일 오전 발인식이 엄수될 예정이다. 장지는 분당 메모리얼파크다. 서대문구 세브란스병원에 마련됐던 빈소에 임권택 감독, 임상수 감독, 정일성 촬영감독, 배우 최민식, 안성기, 문성근, 박상민, 신현준, 배성우 등이 찾아와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1938년 평양에서 태어난 이태원 대표는 1959년 '유정천리'를 제작하며 처음 영화계에 발을 디뎠다. 1984년 태흥영화사를 설립해 총 36편의 영화를 만들었다. '기쁜 우리 젊은 날', '장군의 아들', '서편제', '태백산맥', '춘향뎐', '취화선' 등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한국영화의 부흥기를 이끌었다. 마지막 영화는 임상수 감독의 '하류인생'(2004)이다. 이같은 공을 인정받아 옥관문화훈장(1993), 대종상 영화발전공로상(1994), 춘사나운규영화예술제 공로상(2002), 은관문화훈장(2003), 백상예술대상 특별상(2003), 영화제작가협회 공로상(2014) 등을 수상했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ongang.co.kr 2021.10.26 0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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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계 거목’ 이태원 전 태흥영화사 대표 별세

‘서편제’, ‘장군의 아들’, ‘아제아제 바라아제’ 등을 제작한 한국 영화계의 거목 이태원 태흥영화사 전 대표가 24일 별세했다. 향년 83세. 이 대표는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세브란스 병원에서 영면했다. 이대표는 지난해 5월 낙상사고를 당해 약 1년 7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아왔다. 빈소는 같은 병원에 차려질 예정이다. 고인은 1938년 평양의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전쟁 때 가족과 떨어지게 되면서 숱한 어려움 속에 성장했다. 1959년 우연히 만난 무역업자가 영화제작을 권유하면서 첫 영화 ‘유정천리’가 탄생했으나 흥행에는 실패했다. 1973년 인수한 의정부 소재 빌딩에 있던 극장을 운영하게 되면서 다시 영화계와 인연을 맺었고 경기, 강원 지역의 영화 배급을 시작했다. 1984년 부도 직전의 태창영화사를 인수해 ‘태흥영화사’를 설립하면서 20년 만에 다시 영화제작의 길로 나섰다. 이때 임권택 감독과 ‘비구니’로 만났지만 불교계 반발로 영화 개봉이 무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무릎과 무릎 사이’, ‘뽕’, ‘기쁜 우리 젊은 날’ 등으로 이름을 알렸고 1989년부터 ‘아제아제 바라아제’, ‘장군의 아들’, ‘서편제’ 등이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거물 제작자로 위상을 굳혔다. 2000년대에 들어서도 ‘취화선’, ‘하류인생’, ‘춘향뎐’ 등 임권택 감독의 작품을 꾸준히 제작했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1.10.2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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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권택 감독 “‘서편제’ 사실 버린 카드였다”

한국영화계 거장 임권택 감독이 대표작 '서편제'에 얽힌 비화를 밝혔다. 임권택 감독은 MBC LIFE '히스토리 후'에 출연해 "1993년 '서편제'가 개봉할 당시 영화계에서는 누구도 이 작품에 주목하지 않았다. 스타도 없었을 뿐더러 판소리라는 소재가 흥행과는 무관해보였기 때문"이라면서 "개봉 자체가 성사되지 못할 뻔 했다. 사실상 당시 '서편제'는 영화계에서 버린 카드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편제'는 개봉 전까지 충무로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부정적인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언론에서도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 제작사 태흥영화사 이태원 대표가 임권택 감독과 합심해 '제작비를 날려도 좋다'는 각오로 만들었던 영화다. 하지만, 막상 개봉후 상황이 달라졌다. 최초로 판소리를 전면에 내세운 작품으로 '민족의 정서를 잘 살려냈다'는 호평이 이어졌다. 정일성 촬영감독이 전국각지를 돌며 담아낸 풍경과 극중 캐릭터의 감정을 잘 살려낸 김수철의 OST까지 화제가 됐다. 결국 100만 관객을 모으며 각종 영화제의 상을 휩쓸기까지 했다. 90년대 한국영화계에서는 드물었던 '대박'이다. '서편제'와 관련된 임권택 감독의 이야기는 31일 오후 11시 '히스토리 후'에서 방송된다.정지원 기자 cinezzang@joongang.co.kr 2012.07.31 0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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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맨발이다-124] 사생결단(하)

1979년 3월 영화배우협회장 선거는 내게 불리하게 전개됐다. 현 배우협회장 장동휘의 자금줄을 차단해야 했다. 이른 아침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의 사무실로 쳐들어간 나는 그 자리에서 곽정환 합동영화사 사장과 통화했다. 곽 사장이 여배우 고은아와 결혼하게 된 과정과 집안 내력까지 소상히 알고 있는 나였다. "승남이 아버지(곽정환 사장), 나 신성일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곽 사장 목소리에는 당혹스러움이 섞여 있었다. "웬일이야?" "오늘 장동휘씨에게 200만원 보내기로 했죠? 돈 보내면 인연 끊습니다." 나는 그 말과 동시에 전화를 끊어버렸다. 장동휘 캠프에 선거자금 500만원을 보내려던 이 사장과 곽 사장은 그 직후 행적을 감추었다고 한다. 자금줄이 끊긴 장동휘가 큰 타격을 받았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장동휘는 79년 1월 15일 긴급이사회를 열어 협회비(월 2000원)을 내지 않은 배우 수십 명을 징계하고 선거권을 박탈했다. 김지미·김희라·남궁원·고은아·이영옥 등은 투표권이 없는 준회원으로 강등됐다. 일간스포츠 79년 1월 19일자는 이 사태에 대해 이렇게 보도했다. '이같은 조치는 지금 한창 열기를 뿜고 있는 장동휘·신성일의 선거 대결에서 현집행부를 지지하지 않는 대다수 회원을 정리, 신성일 측에 타격을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장동휘는 배우들이 미납 회비를 내려고 해도 '지난해 12월 20일로 회계년도 마감을 넘겼다'는 이유로 받아주지 않았다. 그는 선거를 앞두고 회원들을 개별적으로 자기 방으로 불러 '위원장에 추대한다'는 내용의 추대장에 날인을 받았다. 79년 3월 7일로 예정된 배우협회장 선거가 임박했다. 절친한 선배이자 배우협회의 상위 기구인 영화인협회 이사장 신영균이 장동휘를 밀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이성을 잃은 나는 우리 캠프에서 "신영균 배를 칼로 찔러버리겠다"고 울분을 토했다. 즉시 신영균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뭐, 선배를 찔러 죽여?"라고 호통을 쳤다. 정신이 아득하고, 오금이 저렸다. 이 때까지 내가 백 번 잘했어도, '선배를 죽인다'고 말한 것은 내 잘못이다. 영화인협회 이사장 신영균이 이 문제를 확대시키면 수 개월 간의 내 선거운동은 물거품이 될 판이었다. 당장 명보극장 뒤편에 자리한 신영균의 사무실로 달려들어간 나는 신영균 앞에 무릎 꿇고 외쳤다. "형님, 분이 풀릴 때까지 저를 때리십시오. 친형 같은 형님이 저를 도와주시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이성을 잃었습니다." 신영균은 "나가"라고 고함쳤다. 그에게 용서받기 전까진 한 발 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결국 신영균의 분이 풀릴 때까지 울면서 사죄했다. 나는 평소 생활이 어려운 동료 배우들을 도왔다. 도봉동의 백송과 미아리의 임해림이 자녀 학비로 어렵다고 하길래 5만원씩 주었다. 두 사람은 내가 금품을 살포했다고 장동휘에게 신고했다. 그 건을 받아들인 신영균은 3월 6일 영협 긴급이사회를 열고 7일 열리는 총회를 무기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내게 결정타를 주려는 조치였다. 난 녹슬어 울룩불룩한 철제 비상문을 때리면서 외쳤다. "선배들, 커가는 후배를 이렇게 짓밟아도 되는 겁니까?" 주먹의 살점이 뭉게지고,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나는 그 곳에서 오른 주먹에 붕대를 감고, 내 캠프로 갔다. 그 소식이 전해들은 내 캠프 사람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배우협회 재적 111명 중 68명이 7일 총회를 강행해 나를 배우협회장으로 선출했다.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10.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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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은 맨발이다-123] 사생결단(상)

1979년 3월 영화배우협회장 선거에서 신성일(왼쪽)이 당시 협회장 장동휘(오른쪽)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신성일과 장동휘는 개인적인 감정 문제까지 얽혀 선거에서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 됐다. 난 세상에 두려운 게 없는 사람이다. 단 한 번, 1979년 3월 영화배우협회장 선거 때는 오금이 저렸다. 78년 12월 내가 지원한 공화당의 박경원 전 내무부 장관이 용산·마포 중선구에서 3선의 신민당 김원만 의원을 물리쳤다. 박 장관을 도운 배경이 하나 있었다. 나는 78년 초부터 영화인협회 산하 연기분과위원회 위원장(이하 배우협회장·2001년 사단법인 영화배우협회가 됨) 선거에 도전하고 있었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이 되면 내가 배우협회장이 되도록 돕겠다고 약속했다. 배우협회장 선거에서 나와 현 협회장인 선배 장동휘가 맞대결을 펼쳐야 했다. 3년 임기의 배우협회장 자리는 60년대 초부터 김승호·신영균(연임)·박암(연임)·장동휘 등의 순으로 넘어갔다. 나는 60년대 중후반 신영균 재임 시절 부위원장을 맡았다. 선배들은 "신성일은 독한 놈"이라면서 내가 협회장이 되는 걸 막았다. 젊은 피가 끓는 나는 영화계의 개혁을 부르짖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배우협회장을 맡아 영화계를 대변해보겠다는 야심이 내게 있었다. 특히 나와 장동휘는 공존할 수 없는 사이였다. 주먹 출신의 장동휘는 64년 여름 내가 충무로 주먹들에게 억울하게 쫓길 때 도리어 그들에게 사과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15년 가까이 서로에 대한 악감정이 쌓여있었다. 나로선 악극단 출신의 장동휘가 배우협회장을 맡고 있는 것도 마땅치 않았다. 최무룡·박암·신영균과 같은 신극단과 신협극단 출신까지는 영화계의 선배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악극계 출신은 정통성을 가진 영화배우가 아니다. 70년대 중반부터 이소룡 영화를 계기로 국내에 무술영화 바람이 불었다. 장동휘는 1인당 30만원씩 받고 무술영화에 출연하려는 태권도 선수들을 대거 배우협회 회원으로 받아들였다. 그 돈은 나와의 선거 대결에 사용됐다. 78년 초에 실시되어야 하는 배우협회장 선거는 장동휘에 의해 계속 연기됐다. 충무로의 대원호텔과 명보극장 맞은편에 사비로 선거 캠프를 차린 내게 타격을 주려는 의도였다. 장동휘는 충무로 주먹들의 비호를 받으며 판세를 자신이 원하는 대로 끌고 갔다.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다. 내 진영에 오창구라는 주먹 출신의 쇼단장이 있었다. 선거가 임박한 어느날 나는 우리 캠프에서 형이라고 부르는 오창구와 욕설을 퍼부으며 싸웠다. 그는 장동휘 캠프로 가서 내게 복수하겠다고 다짐했고, 곧바로 장동휘의 신임을 얻었다. 밤 마다 공중전화로 장동휘 캠프의 정보를 속속들이 내게 보고하는 '첩자'가 있었다. 그가 바로 오창구였다. '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기지 백전불태)'라는 '손자병법' 구절을 떠올린 나의 계획에 따라 거짓 투항한 것이다. 상대방의 자금줄을 차단해야만 승산이 있을 것 같았다. 오창구가 다음날 아침 장동휘에게 선거자금이 들어간다는 첩보를 전해왔다. 이태원 태흥영화사 사장이 300만원, 곽정환 합동영화사 사장 200만원을 내놓는다는 것이다. 나는 다음날 아침 태흥영화사 건물로 이 사장이 출근하는 것을 확인하고 뒤따라 들어갔다. 아침부터 웬일이냐는 듯 보는 이 사장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형, 장동휘씨에게 돈 주기로 했죠?" 그는 아무 말도 안했다. "돈 300만원 주기로 했죠? 나와 오래 보려면 알아서 하세요. 곽정환 사장에게도 전화해줘요." 정곡을 찔린 이 사장은 곽 사장에게 순순히 전화를 걸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nisei@joongang.co.kr] 2011.10.14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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