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gma2024 ×
검색결과1건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

저는 고양이 집사입니다. 주인님 이름은 심바입니다. ‘라이온 킹’의 어린 왕자처럼 용맹하라고 붙인 이름인데, 집사인 저한테만 용맹하지 세상에 이런 겁보가 또 없습니다. 거실에 밀림의 왕자처럼 거만하게 퍼질러져 있다가 초인종 소리가 나면 우다다닥 쏜살같이 안방으로 뛰어들어가 침대 밑으로 꼭꼭 숨습니다. 집안에 새 물건이 들어오면 혹시 자신을 위협하는 것은 아닌지 샅샅이 살핍니다.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라서 자신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라고 들었습니다.인간도 고양이처럼 영역 동물의 습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양아치만 나와바리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조건을 확보하고 유지하기 위한 영역 다툼으로 인생의 거의 전부를 보냅니다. 한번 차지한 영역은 죽을 때까지 자기 영역이기를 바라고, 그래서 자기 영역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싫어합니다.변하지 않는 것에 특별한 가치를 두려는 인간의 마음은 영역 동물의 생존 본능이 만들어낸 감정일 수도 있습니다. 별이 아름다운 것은 땅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변함없이 밤하늘에서 반짝이기 때문입니다.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것은 늘 그 자리에 산과 바다가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별과 산과 바다처럼 자기 주변의 사람들이 한결같기를 바랍니다. 손가락에 끼워진 금반지와 거기에 박혀 있는 다이아몬드가 아름다워 보이는 것은 그 반지를 끼워준 사람이 금이나 다이아몬드처럼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에서 오는 것일 수 있습니다.변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우리의 희망 사항이지, 별도 산도 바다도 변하고, 다이몬드와 금도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변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이 자연법칙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니까 변하지 않는 무엇이 있을 것이라고 상상을 하고 거기에 의미를 붙일 뿐입니다.변화에 대한 적응은 대체로 ‘나이순’입니다. 나이가 많을수록 변화에 대한 적응이 쉽습니다. 어릴 때에는 조금의 변화에도, 심바처럼, 기겁을 합니다. 엄마 얼굴이 잠시 안 보일 뿐인데도 엄마가 영원히 사라진 줄 알고 자지러집니다. 유년기의 이사는 다른 행성으로 이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익숙해진 것과 이별하는 것은 어린 나이에는 참 어렵습니다.나이가 들면서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됩니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아는 것과 받아들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나이 육십을 넘기면 세상의 변화 따위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만도 한데, 아직까지 작은 일에도 심바처럼 놀라고 겁을 먹고 또 숨습니다. 지킬만한 것도 별로 없는 작은 직업적 영역에 변화가 생기는 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우주적 고민을 합니다.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것은, 영역 동물 인간의 본능입니다.‘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제가 진정한 글쟁이이면 이런 문장을 툭툭 적어내어야 합니다. 그게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잘 살아지지가 않으니 그런 문장을 짓지 못합니다. 저는, 세상에 또 없는 겁보 심바처럼, 영역 동물 인간의 본능에 어쩌지를 못합니다. 혁명은 안 되고 방만 바꾸어버렸다고 투덜거리는 소시민의 위대한 전통 안에서 저는 그렇게 살아갑니다.‘그렇게 살아간다’는 말이 ‘반드시 그렇게 산다’는 뜻은 아닙니다. 익숙한 것들과 작별하지 못하겠다고 고집을 하여도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수시로 작별을 하며 살아갑니다. 예전에 익숙했던 것들을 하나씩 나열을 하면 우리가 얼마나 변화무쌍한 작별의 삶을 살았는지 놀라게 될 것입니다. 평생을 함께할 것 같았던 사람이 이름조차 생각나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럴 것입니다.익숙한 것들은 현재적 가치를 기준으로 분류됩니다. 우리는 익숙한 것들과 수시로 작별을 하였고 그때의 익숙한 것들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안 할 뿐입니다. 혁명이 안 되었는지는 기억을 못 하지만 심바는 귀엽습니다. 2024.08.22 06:55
브랜드미디어
모아보기
이코노미스트
이데일리
마켓in
팜이데일리
행사&비즈니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