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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경륜] 2024 상반기 경륜 주요 뉴스...'광명스피돔에서 생긴 일'

2024 상반기 경륜은 예측할 수 없는 경쟁 구도로 흥미를 선사했다. 최강자 임채빈이 100연승을 향한 여정에서 멈췄고, 29기 신인 선수들이 연일 돌풍을 일으켰다. 광명스피돔은 항상 뜨거웠다. 상반기 주요 뉴스를 정리한다. 대진 방식·득점 체계 변경지난해까지는 금요일 경주에서 각개 대전을 벌였고, 토요일 경주에서 일요일에 열리는 결승 경주 진출자를 뽑는 방식으로 경주 대진을 운영했다. 올해부터는 금요일에 예선 경주를 통해 결승 진출자를 결정하고, 토요일은 독립 각개 대전, 일요일은 결승전이 펼쳐지는 방식으로 변경됐다. 이로 인해 금요일부터 치열한 경쟁이 펼쳐치고 있다. 득점 체계도 순위 간 점수 차가 ±1점이었던 이전과 달리 올해부터는 그 차이를 ±2점으로 확대했다. 착순점을 올리기 위한 경쟁도 치열해졌다. 전원규, 임채빈 75연승 저지지난 3월 31일, 특선급 결승 경주에서 전원규가 임채빈을 제압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임채빈은 지난해 1월부터 74연승을 거두며, 100연승을 향해 나아고 있었다. 임채빈이 무난히 연승을 이어갈 것으로 보였지만, 전원규가 시작부터 치고 나서는 선행 전법으로 임채빈을 따돌리고 우승했다. 전원규는 이 경주를 발판으로 임채빈·정종진과 함께 경륜 '빅3'로 올라섰다. ‘최강 기수’ 예고한 28기상반기는 28기 신인 선수들이 연일 화제를 몰고 왔다. 수석 졸업생 손제용은 일찌감치 특선급으로 특별 승급을 하며 같은 수성팀 선배인 임채빈의 뒤를 이을 기대주로 올라섰다. 석혜윤·김준철·민선기·박건이·원준오·임재연도 특선급으로 진출했고, 강민성·김로운·김태율 등 나머지 선수들도 모두 우수급으로 올라섰다. 김태율은 우수급으로 승급되기 직전 나선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배 경륜 왕중왕전’ 선발급 결승 경주에서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경륜 황제’ 귀환 알린 정종진4월 올해 두 번째 대상 경륜(스포츠조선배)에서는 경륜 최강자들이 총출동했다. 가장 큰 관심은 정종진과 임채빈의 대결이었다. 막판 접전 끝에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하는 선수는 정종진이었다. 그는 2016년부터 2019년까지 그랑프리 4연패를 해낸 선수다. 2021년 대회에서도 우승, 경륜 최초 그랑프리 5회 우승을 해냈다. 그동안 전성기를 연 임채빈에게 조금 밀린 게 사실이었지만, 스포츠조선배 우승으로 '경륜 황제' 탈환 의지를 보여줬다. 하반기 등급 심사 발표, 151명 대거 변동 지난해 12월 22일부터 올해 6월 16일까지 성적을 토대로 실시한 등급 심사 결과 무려 151명의 등급이 바뀌었다. 승급 91명, 강급은 60명이었다. 임채빈·정종진·전원규·양승원이 전체 경륜 선수 중 단 5명뿐인 슈퍼특선 자리를 수성했다. 신은섭이 슈퍼특선급으로 승급했고, 인치환이 자리를 내줬다. 예상지 박정우 경륜위너스 부장은 "대진 방식 변경으로 인해 금요일 첫날부터 마지막 일요일까지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경기들이 펼쳐졌다. 하반기에는 대거 발생한 등급 대이동으로 매 경주 선발, 우수급 입상 후보들의 접전이 펼쳐질 전망”이라고 했다. 이어 박 부장은 "특선급은 기존 강자들의 활약이 지속될 것으로 보이고, 때에 따라 28기 신인 선수들이 복병 역할을 할 수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관전 요소"라고 전했다.안희수 기자 2024.07.10 11:00
프로야구

[주간 MVP] 등 돌렸지만 이 악물었다, 원태인은 그만큼 간절했다

8이닝 2실점, 6이닝 1실점.삼성 라이온즈 투수 원태인(23)은 에이스다웠다. 원태인이 지난주(6월 27일~7월 2일) 2경기에서 거둔 성적은 14이닝 3실점(2자책) 평균자책점 1.93. 가장 최근 경기였던 2일 대구 한화 이글스전에선 팀의 연패를 끊어내며 시즌 4승(4패)째를 올렸다.조아제약과 본지는 6월 마지막 주 주간 최우수선수(MVP)로 원태인을 선정했다. 그는 “좋은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 두 경기 모두 팀이 이겼으면 좋겠지만, 일요일(2일) 경기에서 팀 연패를 끊어내는 데 일조해 기분이 좋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원태인은 지난달 27일 부산 롯데 자이언츠전에서 8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다. 하지만 9회 불펜의 방화로 승리가 사라졌다. 동점이 되는 순간 더그아웃에서 등을 돌리며 아쉬워하는 원태인의 모습이 화제가 됐다. 그는 “동점이 됐다는 아쉬움에 나도 모르게 그런 표현이 나왔다. 그런 모습을 보여주면 안 됐지만, 그만큼 승리 의지가 정말 강했다”라고 회상했다. 이후 팀은 내리 4연패를 당했다. 2일 한화전에서 원태인이 다시 마운드에 올랐다. 일주일 두 번 선발 등판은 체력적으로 상당히 힘든 일. 하지만 원태인은 더 공격적인 투구로 타자들을 상대해 6이닝 1실점 했다. 앞서 그의 승리를 날렸던 불펜도 이날 힘을 내면서 2-1 승리를 지켰다. 원태인은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어떻게든 이기고 싶었다. 어떻게든 내 손으로 연패를 끊어내고 싶었다”라며 돌아봤다. 원태인은 6월 이후 5경기에서 평균자책점 1.69(32이닝 6자책)로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퀄리티스타트(6이닝 이상 3자책 이하)가 네 번이 있었고, 이 중 QS+(7이닝 이상 3자책 이하)도 두 차례나 기록했다. 5월까지 9경기 동안 평균자책점 4.30으로 고전했던 모습과 전혀 달랐다. 5월 28일 KT 위즈전에서 6이닝 무실점을 한 것을 기점으로 호투를 이어갔다. 원태인은 “5월 잠실(23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난타(13피안타)를 당했다. 전력분석팀에서 나를 부르더라. 좋았을 때와 안 좋았을 때의 자세를 영상으로 비교해 줬다”라면서 “정현욱 투수코치님과 나흘 동안 피칭 밸런스를 180도 바꿨다. 좋은 공을 던지는 게 우선이라 생각하고 과감하게 밸런스를 바꿨는데 효과가 있더라. 이 감각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6월 초순 원태인은 체력 안배 차원에서 열흘간 휴식도 취하고 왔다. 그는 “솔직히 체력적으로 많이 힘든 시점에서 휴식이 보약이었다. 골반이 좋지 않았는데, 치료를 받고 체력도 보충하고 오니까 후련해졌다. 구위, 밸런스 모든 면에서 휴식이 큰 도움이 됐다”라고 이야기했다. 휴식 후 돌아온 원태인은 3경기 연속 퀄리티스타트 행진 중이다. 하지만 그는 만족하지 않는다. 아직 시즌이 절반밖에 지나지 않았고, 팀은 아직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후반기 반등이 필요하다. 그는 “전반기 남은 한 경기를 잘 마치고 올스타 휴식기 동안 준비를 잘해서 후반기에는 팀이 반등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라고 강조했다. 그는 9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출전도 앞두고 있다. 원태인은 “(도쿄) 올림픽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등 국제대회에 나갔지만, 성적이 너무 좋지 않아 아쉬웠다. 이번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을 꼭 따고 싶다. 개인적으로도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윤승재 기자 2023.07.06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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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승 1무 10패' 유니폼을 바꿔야 하나…삼성, 왕조 상징 줄무늬 입으면 ‘펄펄’

삼성 라이온즈에 줄무늬는 왕조의 상징이다. 1995년부터 2015년까지 20년간 삼성의 유니폼엔 핀스트라이프 무늬가 항상 들어갔다. 그리고 삼성은 줄무늬 유니폼과 함께 총 7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2002년 첫 한국시리즈부터 2005~2006년 1기 왕조, 2011~2014년 4연패로 두 번째 왕조를 구축하며 KBO리그 최강팀으로 군림했다.이후 잠시 자취를 감췄던 사자군단의 줄무늬는 2022년 7년 만에 부활했다. 일요일 경기 한정으로 입는 ‘선데이 유니폼’에 핀스트라이프가 들어가면서 줄무늬의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올드 유니폼도 바뀌었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입으며 세 번의 우승을 차지한 1기 왕조의 상징인 ‘왕조 유니폼’을 2022년 올드 유니폼으로 채택하면서 반가운 줄무늬가 돌아왔다. 강렬한 기억 덕분일까. 삼성은 이 줄무늬 유니폼을 입고 꽤 높은 승률을 자랑했다. 선데이 유니폼을 입고 나선 8경기에서 5승 3패를 기록했다. 왕조 유니폼은 더 강했다. 15경기에서 무려 11승1무3패 승률 0.786의 압도적인 성적을 거뒀다. 원래 롯데 자이언츠와의 ‘클래식 시리즈’ 한정으로 마련된 유니폼이었지만, 9월 홈 9경기에 더 입고 나와 7승을 거뒀다. 9월 삼성이 왕조 유니폼을 다시 꺼내든 배경에는 선수들의 강력한 요청이 있었다. “강해 보인다”는 게 이유였다. 고딕체의 ‘LIONS'에서 뿜어 나오는 강한 기운과 1기 왕조 당시의 압도적이었던 기억이 어우러져 있는 유니폼이기에 선수들에게 왕조의 자산이자 자신감의 상징이 됐다. 실제로 클래식 시리즈 성적도 좋았기에(4승1무1패) 선수들의 선호도가 높았다. 당시 올드 유니폼을 다시 입은 1기 왕조 멤버 박진만 감독과 박한이 코치도 왕조 유니폼의 기운이 남다르다고 이야기했다. 특히 박한이 코치는 “이 줄무늬 유니폼으로 7번이나 우승했다. 이게 진짜 삼성의 모습인데…”라며 울컥하기도 했다. 두 전설이 기억한 이미지대로 선수단은 왕조 유니폼을 입고 마지막 4연전에서 전승을 거두며 왕조의 향수를 다시 불러일으켰다. 삼성은 2023년에도 줄무늬 스페셜 유니폼을 다시 꺼내 들었다. 선데이 유니폼과 왕조 유니폼 모두 지난해와 같은 디자인을 적용했다. 성적은 지난해만큼 압도적이진 않아도 나쁘지 않다. 올 시즌 삼성은 선데이 유니폼을 입고 3승 1패, 왕조 유니폼을 입고 2승 3패를 거뒀다. 5승 4패, 지난해까지 합하면 21승 1무 10패로 승률(0.656)은 좋다. 다만 올 시즌의 내용은 다소 아쉽다. 삼성은 왕조 유니폼을 입고 연패를 당하고 최하위 굴욕까지 겪었다. 6월 초 롯데와의 첫 번째 클래식 시리즈에서 2승 1패 우세 시리즈(3연전 중 2승 이상)를 거둔 삼성은 지난 27, 28일 두 번째 시리즈에선 2연패로 고개를 숙였다. 27일 경기에선 9회 뼈아픈 역전패를, 28일 경기에선 실책 3개로 무너졌다. 왕조의 위용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모습이었다. 반면, 선데이 유니폼은 연패를 끊어주는 ’반등‘의 상징이 됐다. 올 시즌 삼성은 선데이 유니폼을 입은 네 경기 모두 전날 패했다. 이 중 3연패와 4연패가 한 번씩 있었다. 하지만 선데이 유니폼을 입고 모두 연패를 끊어냈다. 지난 2일 경기도 마찬가지였다. 선데이 유니폼을 입고 2-1 승리를 거두면서 7월 반등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렇듯 핀스트라이프 유니폼을 다시 입어야 되나 싶을 정도로 삼성은 줄무늬에 좋은 기억과 기운이 있다. 이제는 이 기운을 기존 유니폼에서도 이어가야 할 때다. 현재 삼성은 왕조의 위용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무기력한 경기력과 함께 최하위까지 추락해 있다. 41년 만에 최초로 최하위로 시즌을 마감할 위기까지 놓였다. 6월의 마지막 주를 줄무늬 유니폼과 함께 승리로 마무리 한 만큼, 이제는 이 기운을 이어가 최하위의 굴욕에서 벗어나야 한다. 기존의 유니폼에서도 왕조의 위용을 되찾길 기대해 본다. 윤승재 기자 2023.07.03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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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사자가 더 강했다…삼성, 한화 ‘9연승’ 저지

일요일 사자는 역시 강했다. 삼성 라이온즈가 한화 이글스의 9연승을 저지했다. 삼성은 2일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2023 신한은행 SOL KBO리그 한화와의 홈 경기에서 2-1로 승리했다. 이날 승리로 삼성은 4연패에서 탈출하며 한 주의 마지막을 기분 좋게 끝냈다. 반면 이날 18년 만의 9연승을 노렸던 한화는 이날 패배로 연승 행진이 ‘8’에서 끊겼다. 삼성은 이날 승리로 기분 좋은 일요일 징크스도 함께 이어갔다. 연패가 길어져도 일요일에는 항상 승리하는 삼성이다. 이날 경기 전까지 삼성의 일요일 승률은 8승 4패(승률 0.667)로, LG 트윈스(9승 4패 승률 0.692) 다음으로 가장 높았다. 삼성이 유일하게 전적이 우위에 있는 요일이기도 하다. 삼성은 이날 승리로 일요일 4연승과 함께 승률을 0.692(9승 4패)로 높였다. 모처럼 삼성 마운드가 각성했다. 선발 원태인이 6이닝 동안 109개의 공을 던져 4피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 짠물 투구를 한 가운데, 양창섭과 좌완 이승현, 오승환이 1이닝씩 무실점을 책임지면서 1점 차 아슬아슬한 리드를 잘 지켜냈다. 오승환은 지난달 10일 롯데 자이언츠전 이후 약 20일 만에 세이브를 올리면서 7시즌 연속 두 자릿수 세이브를 기록했다. 타선에선 강민호의 한 방과 이재현의 전력질주가 빛을 발했다. 강민호는 0-1로 끌려가던 2회 말, 상대 선발 펠릭스 페냐의 148km/h짜리 포심을 퍼올려 동점포로 연결했다. 이날 홈런으로 시즌 10호포 고지를 밟은 강민호는 14시즌 연속 두 자릿수 홈런에 성공했다. 3회 말엔 이재현이 안타에 이어 피렐라의 2루타 때 홈을 밟으며 역전했다. 한화의 중계 플레이가 완벽했지만, 이재현의 손이 더 빨랐다. 삼성은 이 2점을 끝까지 잘 지켜내며 승리했다. 한화는 선발 페냐가 6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지만 타선의 득점 지원이 부족해 패전의 멍에를 안았다. 타선은 2회 초 채은성의 안타와 문현빈의 2루타, 정은원의 희생 플라이로 선취점을 올렸으나 더 이상의 득점은 없었다. 채은성의 2안타를 앞세워 4안타를 때려내는 데 그쳤다. 전날 8연승에 이어 18년 만의 9연승까지 노렸지만 삼성의 짠물 마운드에 막혔다. 윤승재 기자 2023.07.02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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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 냉탕]믿었던 셋업맨·클로저가...결승타가 되지 못한 나성범 홈런

KIA 타이거즈가 4연패를 당했다. KIA는 지난달 30일 서울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2022 KBO리그 키움 히어로즈와의 주중 3연전 3차전에서 4-5로 패했다. 경기 중반까지는 상대 선발 에릭 요키시를 공략하지 못해 끌려갔지만, 친정팀에 유독 강했던 박동원이 '한 방'을 쏘아 올렸고, 간판타자 나성범이 동점에서 아치를 그렸다. 선발 투수 한승혁은 초반 제구 난조를 이겨내고, 5이닝을 막아냈다. 그러나 8회 고비를 넘지 못했다. 주자 2명을 두고 조기 투입된 마무리 투수 정해영이 전병우에게 좌중간 역전 적시타를 허용했다. 9회 초 주자 2명을 내보내며 동점 기회를 열었지만, 결국 점수를 내지 못했다. KIA는 2회 말 수비에서 먼저 점수를 내줬다. 한승혁은 선두 타자 이용규와 후속 이병규에게 연속 안타를 내준 뒤 이지영에게는 볼넷을 허용했다. 무사 만루 위기에서 김웅빈에게 사구, 전병우에게 볼넷을 허용하며 밀어내기로만 점수를 줬다. 한승혁은 무너지지 않았다. 이어진 키움 상위 타선(1~3번) 김준완-김휘집-이정후 세 타자를 모두 삼진 처리했다. 특히 최근 주자가 있을 때 극강을 보여주고 있는 이정후와의 승부에서 포크볼로 헛스윙 2개를 끌어내며 삼진을 솎아냈다. 한승혁은 4회 선두 타자 이지영에게 좌월 솔로 홈런을 맞았다. 3번째 실점. 그러나 이후 5타자 연속 범타 처리하며 5이닝을 채웠다. 요키시를 상대로 5연속(공격 기준) 무득점에 그친 KIA 타선은 6회 공격에서 반격을 시작했다. 최근 타격감이 부진했던 황대인이 좌전 안타를 치며 선두 타자 출루를 해냈고, 후속 소크라테스 브리토는 내야 땅볼을 치며 주자를 진루 시지키 못했지만, 이 상황에서 타석에 나선 박동원이 한 팀에서 배터리 호흡을 맞추던 요키시를 상대로 투런 홈런을 때려냈다. 박동원은 지난 4월 키움에서 KIA로 트레이드됐다. 5월 초 친정팀과의 첫 만남에서 홈런 3개를 치며 무력시위했다. 그중 1개가 요키시였다. 이날 홈런은 박동원이 키움을 상대로 기록한 4번째 홈런이자, 요키시 상대 2호포였다. 순식간에 전세가 KIA로 넘어갔다. 키움 벤치는 바로 요키시 대신 양현을 투입했지만, KIA는 결국 동점을 만들었다. 이우성이 사구로 출루하며 만든 기회에서 대타 고종욱이 나섰고, 이 상황에서 키움 내야진이 실책과 실책성 플레이를 연발하며 이우성이 홈을 밟았다. 3-3 동점. KIA는 지난 주말 일요일 경기(두산 베어스전)부터 이번 주중 3연전 1·2차전을 모두 패했다. 그사이 에이스 양현종까지 등판(29일)했지만, 0-1로 패했다. 타선의 득점력도 떨어졌다. 이 상황에서 간판타자가 나섰다. 6회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선 나성범이 양현으로부터 좌중간 역전 솔로 홈런을 쳤다. 지난 16일 이후 처음으로 나온 나성범의 홈런. 꼭 필요할 순간 해결사가 나타났다. 그러나 그동안 잘 해주던 필승조가 흔들렸다. 셋업맨 전상현이 8회 말 선두 타자 신준우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았고, 1사 뒤 김웅빈에겐 볼넷을 허용했다. 김종국 감독은 이 상황에서 정해영을 투입했지만, 전병우에게 역전 2타점 적시타를 허용하고 말았다. 다시 전세를 넘겨줬다. KIA는 9회 초 공격에서 선두 타자로 나선 나성범이 키움 마무리 투수 이승호로부터 좌전 안타, 2사 뒤 박동원과 이창진이 연속 볼넷을 얻어내며 만루 기회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우성이 삼진으로 물러나며 경기를 되돌리지 못했다. 고척=안희수 기자 2022.07.01 00:05
스포츠일반

임채빈·정종진, '적과의 동침'으로 재격결 준비

맞수 임채빈(25기)과 정종진(20기)의 대결이 기대되는 흥미진진한 ‘경륜 가을 축제’가 열린다. 오는 15~17일 광명 스피돔에서 열리는 '경륜 개장 27주년 기념 대상경륜'은 특선급 6개 경주로 확대돼 금요일 예선, 토요일 준결승, 일요일 결승으로 진행된다. 지난 8월 특선급 3개 경주로 펼쳐졌던 '온라인 발매(스피드온) 론칭 기념 특별대상경륜'과 다르다. 이번 대회는 김포·동서울·세종·수성팀의 특선급 선수들이 총출동한다. 최근 특선급은 2진급 도전 선수들인 김관희·김희준·류재열·정정교·전원규가 차례로 황인혁·정하늘·임채빈·신은섭·정종진을 꺾는 등 어느 때보다도 이변이 자주 속출하고 있다. 특선급의 전반적인 시속 향상과 기량 평준화는 매 경주 치열한 우승 경쟁을 예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이번 대상경륜만큼은 '투톱' 임채빈과 정종진이 이변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무난히 결승에 진출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미 많은 경륜 팬들과 전문가들은 이번에도 임채빈일지, 정종진일지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임채빈이 등장하기 전까지 특선급 판도는 정종진을 필두로 두텁게 형성된 수도권-충청권 연합에 경상권 선수들이 속수무책 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정종진은 그랑프리 4연패라는 전인미답의 대기록을 작성하기도 했다. 하지만 임채빈이 슈퍼특선급 황인혁·성낙송·정하늘·신은섭을 차례로 꺾고 돌풍을 일으키자 특선급 분위기도 급변했다. 수도권-충청권 강자들은 임채빈을 인정하면서 마크에 주력했고, 임채빈도 이들과 자주 타협하며 유대관계를 빠르게 넓혀가고 있는 중이다. 실제 지난 8월 대상경륜에서도 수도권-충청권 선수들이 5명이나 포진해 있었으나 누구도 정종진 마크를 노리는 선수는 없었다. 정종진 마크로 2차례 그랑프리 준우승을 경험했던 서울체고 선배 신은섭은 오히려 타종시점에서 정종진이 방심하는 사이 임채빈 뒤를 꿰차면서 정종진을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임채빈과 정종진은 적과의 동침을 하면서 2차 맞대결을 고대하고 있다. 임채빈은 "시합을 계속하면서 수도권·충청권 형들과 많이 친해졌다"고 인정했다. 이어 그는 “특히 (정)종진이 형하고는 오는 19일, 20일에 열리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현재 양양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다”며 “잠만 따로 잘 뿐 둘이 온종일 붙어서 훈련을 하고 있다. 안 친해질 수 없는 상황이다. 여기서 계속 훈련을 하다가 시합에 맞춰 입소도 같이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친분을 떠나 명승부를 다짐하기도 했다. 임채빈은 “친분은 친분이고, 승부는 승부다. 시합에서는 절대 지고 싶은 마음이 없다. 결승전 대진표가 어떻게 짜여질지는 모르겠으나 종진이 형 앞이든 뒤든 상관없이 최대한 힘을 쓰면서 후회 없는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출사표를 던졌다. 박진수 경륜박사 팀장은 “정종진이 속한 김포팀에서 정재원·황승호·정정교·공태민·인치환 등이 무더기로 결승에 올라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하지만 동서울팀, 세종팀에서 고루 결승 진출자가 배출되면 임채빈과 정종진은 8월 대상경륜 때처럼 서로를 우군이자 경쟁자로 생각하면서 우승을 다툴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김두용 기자 kim.duyong@joongang.co.kr 2021.10.13 0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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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IS] 42일 전 '글러브 패대기' 분노… 김원중 최다 2이닝 32구로 탈출

롯데 마무리 투수 김원중(28)은 "다시 마운드에 오르겠다"라고 자청했다. 6주 전, 같은 장소에서 KT에 당한 아픔을 만회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령탑은 마무리 투수의 그런 승부욕과 책임감을 높이 샀다. 롯데는 6일 수원KT위즈파크에서 열린 KT와 원정경기에서 연장 10회 접전 끝에 8-7로 역전승을 거뒀다. 이 경기의 승리 투수는 2이닝 무피안타 무실점을 한 김원중이었다. 하지만 6주 전으로 거슬로 올라가면 김원중은 같은 장소, 같은 팀을 상대로 뼈아픈 기억을 안았다. 롯데는 4월 25일 수원 KT전에서 9회 말 5-6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때 패전 투수가 바로 김원중으로 기록됐다. 개막 후 7경기 만에 처음 실점했고, 더군다나 끝내기 안타여서 고개를 떨궈야만 했다. 실점까지의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김원중은 4월 25일 KT전 5-5로 맞선 2사 2루에서 등판해 KT 조일로 알몬테를 처리하고 급한 불을 껐다. 9회에도 마운드에 오른 그는 야수진의 아쉬운 수비 탓에 위기를 맞았다. 그리고 당시 지휘봉을 잡고 있던 허문회 롯데 감독은 9회 말 2사 2루 KT 이홍구 타석 1B-1S에서 자동고의4구를 지시했다. 김원중은 이후 송민섭마저 볼넷으로 출루시켜 만루에 몰린 뒤 김병희에게 통한의 끝내기 안타를 허용했다. 김원중은 마운드에 글러브를 패대기치며 분노를 표출했다. 팀 패배의 책임감과 승부욕, 또 구겨진 자존심 등의 영향으로 보였다. 상대 타자, 볼카운트를 고려하면 다소 고개를 갸웃거리게 하는 벤치의 작전이었다. 당시 허문회 감독은 "확률적으로 9번에서 1번으로 이어지는 뒷타자(송민섭, 김병희)보다 앞타자(이홍구)가 더 잘 친다고 생각했다. 처음부터 고의4구를 고려했는데 데이터 등 확인이 늦어져 1B-1S에서 지시했다"라고 했다. 이어 "(2사 2루에서) 한 점을 주면 끝이니까 걸렀다. 김원중이 좀 더 편안한 상황에서 승부하도록 해주려고 했다"라고 덧붙였다. 이튿날 김원중은 허문회 감독에게 "(이홍구와) 승부에 자신이 있었다"고 아쉬움을 밝혔다. 롯데는 이 경기 패배로 일요일 4연패에 빠졌다. '일요일 악몽'은 사령탑이 래리 서튼 감독으로 바뀐 후에도 계속 이어졌다. 6월 6일, 김원중에게 명예 회복의 기회가 극적으로 다가왔다. 롯데가 2-7로 뒤진 9회 초 공격에서 7연속 안타로 5점을 뽑는 집중력을 발휘하자, 김원중도 불펜에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9회 말 세 타자를 공 13개로 삼자범퇴 처리했다. KT 마무리 김재윤이 9회 4안타 2실점으로 동점을 허용한 반면, 롯데는 클로저의 깔끔한 투구를 등에 업어 분위기를 탈 수 있었다. 연장 10회 초 선두타자 추재현의 2루타에 이은 후속 전준우의 안타가 나왔고 4번타자 정훈이 1타점 적시타를 쳤다. 김원중은 8-7로 리드를 잡은 연장 10회 말에도 등판을 자처했다. 그리고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한 차례 아픔을 안겼던 김병희에게 볼넷을 내줘 동점 주자를 출루시켰다. 하지만 조용호를 내야 땅볼 처리하고, 황재균을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팀 승리를 확정지었다. 롯데는 드디어 일요일 9연패에서 탈출했다. 서튼 감독은 "2이닝 등판을 자청해 완벽하게 막아준 김원중을 칭찬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김원중은 이날 시즌 개인 최다 타이인 2이닝을 책임졌고, 가장 많은 32개의 공을 던졌다. 5월 평균자책점 9.64로 흔들린 김원중은 이달 4경기에서 1승 2세이브로 분위기 반전에 성공했다. 총 4이닝을 던지는 동안 안타 없이, 볼넷 1개만 내줬다. 6주 전 아픔을 되돌려주는 동시에, 자신의 투구로 팀의 일요일 9연패 탈출을 확정짓는 의미 있는 '마무리'였다. 수원=이형석 기자 2021.06.07 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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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시즌 최다 4연패…나흘 만에 1위에서 6위로 추락

LG가 시즌 최다인 4연패에 빠졌다. 단독 1위에서 6위까지 순위가 떨어졌다. LG는 23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SSG와의 원정경기에서 0-8로 졌다. 지난 19일 NC에 연장 10회 끝내기 승리를 거둬 단독 1위에 오른 LG는 다음날(20일)부터 23일까지 4경기를 모두 졌다. 올 시즌 4연패는 처음이다. 종전 최다는 3연패로, 총 세 차례 있었다. 불과 나흘 만에 순위는 6위까지 곤두박질쳤다. 이날 LG 선발로 평균자책점 1위 앤드류 수아레즈가 출격했다. 당연히 기대가 컸다. SSG전에서 개인 최다 8이닝 투구에 무실점 호투를 한 좋은 기억도 있었다. 하지만 야수진이 돕지 못했다. 수아레즈는 1회 말 선두타자 최지훈을 내야 땅볼로 유도했다. 이때 자신의 베이스 커버와 1루수 로베르토 라모스의 송구 실수로 내야 안타를 허용했다. 이후 수아레즈는 무사 1루에서 견제구를 던졌는데, 라모스가 이걸 뒤로 빠트리는 실책을 범했다. 이어진 1사 3루에서 추신수의 내야 땅볼 때 3루까지 진루한 최지훈이 홈을 밟았다. 수아레즈는 2사 후 최정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2루 도루를 허용했다. 2사 2루에서 정의윤을 평범한 뜬공으로 유도했는데, LG 2루수 정주현이 어처구니없는 포구 실책을 범했다. 그 사이 최정을 홈을 밟았다. 야수진의 실책에 고개를 숙인 수아레즈는 김강민과 오태곤에게 연속 안타를 맞고 1회에만 3점을 내줬다. 모두 비자책이었다. 수아레즈는 3회 1사 1루에서 김강민에게 던진 시속 143㎞ 직구를 통타당해 2점 홈런을 뺏겼다. KBO리그 데뷔 후 개인 한 경기 최다 실점. LG는 투구 수 60개를 기록한 수아레즈를 일찌감치 교체했다. 이후 LG는 24일 이동일을 고려해 4회부터 송은범과 김대유 등 필승조를 투입했다. 그러나 SSG로 넘어간 분위기를 되찾기엔 역부족이었다. LG에 이번 SSG와 주말 3연전은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21일 2-4로 뒤져 패색이 짙던 9회 3점을 뽑아 5-4 역전에 성공했다. 하지만 9회 말 마무리 고우석이 동점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흔들렸다. 이어진 1사 만루에서 이재원이 친 타구는 3루수 문보경이 잡아 베이스를 밟으면서 2루 주자 한유섬을 포스아웃 처리했다. 문보경은 곧바로 홈으로 송구했다. 이 공을 받은 포수 유강남이 런다운에 걸린 추신수를 3루 쪽으로 몰고 갔다. 그 와중에 이미 아웃된 한유섬이 2루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 추신수가 아닌 한유섬을 뒤쫓았다. 그 사이 3루를 밟고 서 있던 추신수는 천천히 홈으로 걸음을 옮겼다. 유강남이 뒤늦게 이를 파악해 홈이 아닌 3루 근처에 있던 유격수 손호영에게 공을 던졌는데, 손호영은 홈을 지키던 고우석에게 송구하지 않고 가만히 공을 들고 지켜봤다. 추신수는 홈을 밟아 결승점을 올리고 기뻐했다. 결승점이었다. LG로선 황당한 끝내기 패배를 당했다. 이는 메이저리그 공식홈페이지(MLB.com)에 '당신이 반드시 봐야 할 기괴한 끝내기 경기(It's a walk-off so weird you have to watch)'라면서 소개됐다. LG는 22~23일 원투 펀치가 나온 경기까지 모두 졌다. 22일 케이시 켈리(5이닝)과 23일 수아레즈 모두 5실점 하며 부진했다. 일요일 경기에선 수비 실책뿐 아니라 시즌 세 번째 영봉패를 당한 타선까지 무기력했다. 결과(4연패) 못지않게 그 과정이 좋지 않았다. LG로서는 뼈아픈 주말이었다. 이형석 기자 2021.05.2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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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표, KT 에이스 찍고 도쿄행 겨냥

KT 우완 사이드암 투수 고영표(30)가 야구 국가대표팀 승선을 노린다. 고영표는 현재 KT 선발진에서 컨디션이 가장 좋은 투수다. 올 시즌 등판한 세 경기(18이닝)에서 2승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다. 지난주에만 2승을 챙겼다. 화요일(13일) 두산전에서 6이닝 3실점으로 호투한 그는 KT의 4연패 탈출의 일등공신이었다. 나흘 휴식 뒤 나선 일요일(18일) 키움전에서 6이닝 2실점으로 팀의 4연승을 이끌었다. 피안타율(0.200)과 이닝당 출루허용률(0.94)도 준수했다. 주무기 체인지업이 위력을 발휘했다. 고영표는 18일 키움전에서 탈삼진 5개를 잡아냈는데, 모두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구사했다. 13일 두산전에서 기록한 탈삼진 7개 중 5개도 체인지업으로 솎아냈다.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타자의 스윙 타이밍을 빼앗을 뿐 아니라 히팅 포인트까지 흔든다. 오른손 사이드암 투수의 체인지업은 보통 우타자 몸쪽으로 휘어지기 때문에, 우타자의 잡아당기는 스윙에 장타를 허용할 위험성이 있다. 그래서 주로 좌타자 상대로 구사한다. 그러나 고영표의 체인지업은 홈플레이트 앞에서 아래로 떨어진다. 마치 포크볼 같은 궤적이어서 우타자도 공략하기 어렵다. 겨우내 가다듬은 커브도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커브를 초구에 구사하거나 결정구로 활용하는 승부가 늘어나고 있다. KT 주전 포수 장성우도 상대 타자와의 두 번째 승부부터는 커브 사인을 자주 냈다. 특히 커브와 체인지업을 연달아 구사하는 공 배합이 잘 통하고 있다. 두 구종 모두 시속 114~117㎞에 형성되지만, 궤적이 다르다. 18일 키움전 6회 초 1사 3루 위기에서도 박병호와 데이비드 프레이타스에게 커브 2개를 구사해 눈을 현혹한 뒤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각각 삼진과 땅볼을 유도했다. 고영표는 병역을 마치고 올해 1군 무대에 복귀했다. 2018시즌까지 KT '국내 에이스'로 불린 선수다. 개막 전까지는 팀 후배이자 다른 선발 투수인 배제성, 소형준보다 저평가됐다. 그러나 현재 에이스는 고영표다. 이강철 KT 감독도 "이제 그를 5선발로 보면 안 된다"라며 고영표를 치켜세웠다. 올해 고영표에게는 큰 목표가 있다. 도쿄 올림픽 야구 국가대표팀 승선하는 것이다. 고영표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대표팀 승선이 기대됐지만, 최종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한 바 있다. 고영표는 "도쿄 대회에 나가지 못하면 올림픽 출전은 기약하지 못할 것이다. 프로 선수라면 당연히 대표팀에 선발되길 바랄 것이다. 나도 꼭 (도쿄에) 가고 싶다. 내 역할을 잘해내면 불러주시지 않을까"라며 국가대표팀 승선을 기대했다. '잠수함 투수'는 국제대회에서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 같은 유형 투수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박종훈(SSG)이 그런 경우다. 고영표도 최근 페이스를 대표팀 선발 시점까지 이어간다면 가능성이 있다. KT 에이스를 넘어 태극마크를 노리는 고영표의 레이스가 주목된다. 안희수 기자 2021.04.20 06:00
스포츠일반

[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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