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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S 시대에도 변함 없는 '출루왕' 홍창기

LG 트윈스 홍창기(31)가 개인 세 번째 '출루왕'을 예약했다. 홍창기는 올 시즌 출루율 0.446(24일 기준)을 기록, 이 부문 2위 김도영(0.421·KIA 타이거즈)을 크게 앞서고 있다. 정규시즌 남은 경기가 많지 않은 상황이어서 이변이 없는 한 그의 타이틀 수성은 유력해 보인다.홍창기는 2021년(출루율 0.456)과 지난해(0.444)에도 출루율 1위를 기록했다. 그는 "시즌 개막 전에는 "내가 또 4할 출루율을 기록할 수 있을까' 하고 걱정했다. 자신감과 불안함이 공존했는데 다행이다"라며 웃었다. KBO리그는 2024시즌 전 세계 최초로 자동투구판정시스템(ABS)을 도입했다. 과거 심판이 판정을 내렸더라면 볼로 선언될 만한 공이 ABS에서는 스트라이크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타자들이 ABS 적응에 애를 먹었으나, 출루왕 타이틀은 변함없이 홍창기의 차지가 됐다. 그는 "ABS 존에 맞추려다 타격 밸런스도 틀어지는 것 같더라. 그래서 나만의 (원래) 스트라이크존을 유지하고 있다"라고 비결을 설명했다. 이어 "구장마다 ABS에 차이가 있다. 내년 시즌에도 다시 적응하고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홍창기의 개인 통산 출루율은 0.430이다. 3000타석 이상 소화 기준으로 통산 출루율 1위에 최근 등극했다. KBO 통산 6차례 출루율 타이틀을 차지한 장효조(0.427)는 물론 양준혁(0.4209)과 김태균(0.4208) 등 시대를 대표한 선배들을 앞질렀다.홍창기는 "영광스럽다. 자기 존이 확실하고 콘택트가 뛰어난 장효조 선배님보다 잠시나마 위에 올라와 있어 좋다"라면서도 "선배(양준혁-김태균)들은 8000타석 이상 소화했고, 저는 이제 3000타석을 넘겼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홍창기의 높은 출루율은 선구안과 콘택트 능력 덕분이다. 지난 24일 SSG 랜더스전에서도 1회 첫 타석부터 자신의 매력을 제대로 선보였다. 리드오프 홍창기는 1회 초 0볼-2스트라이크로 몰린 뒤 9구 승부 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다. 2스트라이크 이후 존에 들어오는 공은 세 차례 파울로 걷어낸 결과였다. LG는 1회 홍창기의 출루를 발판 삼아 2점을 먼저 뽑았다. 1회부터 고전한 SSG 에이스 드류 앤더슨은 2이닝 동안 6실점하며 조기 강판했다. 홍창기의 출루는 LG가 정규시즌 최종 3위(14-6 승)를 확정한 원동력이었다. 홍창기는 올 시즌 타율 0.334를 기록 중이다. 9월 타율은 0.433에 이른다. 그는 "시즌 종료 후에 바로 (준플레이오프) 준비가 필요한 상황이다. 자신감 있게 포스트시즌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반겼다.이형석 기자 2024.09.28 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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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산 타율 3위 박건우의 손사래, 김태균-손아섭에는 엄지척 보낸 이유

KBO리그 개인 통산 타율 3위 박건우(34·NC 다이노스)는 타격왕 도전에 대해 손사래를 쳤다. 그는 몇몇 선배들의 이름을 꺼내며 자신과 비교할 수 없다고 했다. 박건우는 24일 기준으로 시즌 타율 0.353을 기록, 타격 부문 4위에 올라 있다. 타율 1~3위 SSG 랜더스 기예르모 에레디아(0.363)-두산 베어스 허경민(0.357)-키움 히어로즈 로니 도슨(0.355)과 격차가 크진 않다. 박건우는 통산 타율 2위-3위-5위를 한 차례씩 경험하는 등 총 6시즌이나 타격 10걸에 포함된 바 있지만, 타이틀은 차지한 바는 없다. 박건우는 "올 시즌도 3할 타율만 기록했으면 좋겠다. 타율 3할 달성도 정말 쉽지 않다"라고 엄살을 피웠다. 그는 주전으로 뛴 2016년부터 지난해까지 8시즌 연속 3할 타율 행진 중이다. 지난해까지 통산 타율 0.326을 기록한 박건우는 이정후(0.340)-장효조(0.330)에 이어 KBO리그 통산 타율 3위(3000타석 이상 기준)에 올랐다. 올 시즌에는 이보다 높은 0.335의 고타율을 기록 중이다. 순위는 변함 없지만, 통산 타율을 0.328까지 끌어올렸다. 향후 활약에 따라 통산 타율 2위 장효조를 넘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박건우의 통산 타율은 '오른손 타자' 중에선 1위다. 개인 통산 타율 10걸 중 우타자는 박건우와 김태균(0.320) 등 두 선수뿐이다. 나머지 8명은 왼손 타자다. 오른손 타자는 왼손 타자보다 타율을 올리기에 유리하다는 게 야구계의 정설이다. 리그에 오른손 투수가 더 많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왼손 타자가 타율을 올리기에 수월하다는 이유다. 게다가 좌타석에서 1루까지 거리가 우타석에 비해 가까워 내야안타를 칠 확률도 높다. 박건우는 "같은 오른손 타자인 김태균 선배나 이대호(통산 타율 0.309 전체 15위, 오른손 타자 3위) 선배는 다리가 빠른 편도 아닌데 3할 타율을 많이 쳤다. 진짜 대단하다"며 "저도 우타자로 3할대 타율을 기록한다는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김태균 선배님은 통산 8000타석 이상 소화했다. (통산 4795타석을 소화한) 제가 8000타석을 채우려면 나이가 얼마나 많겠나. 그때는 타율이 떨어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NC에는 '안타 머신' 손아섭(36)이 있다. 그의 통산 타율은 0.321로, 박건우의 바로 뒤인 4위. 손아섭은 지난 20일 두산 베어스전에서 KBO리그 개인 최다안타(2505개) 신기록을 작성했다. 손아섭은 통산 2000안타 고지를 역대 최연소, 최소 경기 기록으로 정복했다. 박건우는 "정말 대단한 선수다. (손아섭 선배는) 항상 겸손하다. 개인 통산 안타 수도 저와 1000개(박건우 1390개) 이상 차이가 난다"라며 "후배들도 그런 선수를 보며 성장했으면 한다. 한국의 레전드로 남아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박건우는 "타격왕 달성을 떠나 큰 부상 없이 야구를 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그저 감사하다"라며 웃었다. 이형석 기자 2024.06.24 1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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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MVP] 이정후 "강속구 대처 충분해...추신수 선배 조언에 감사"

“기회가 온다면 잡겠습니다.”긴 슬럼프를 이겨낸 KBO리그 아이콘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가 ‘수위 타자(타율 1위)’ 3연패를 향해 시동을 걸었다. 이정후는 6월 한 달 동안 10개 구단 타자 중 가장 뜨거운 타격감을 보여줬다. 출전한 24경기에서 타율 0.374(91타수 34안타) 14타점·19득점, 출루율 0.464·장타율 0.582를 기록했다. 타율·안타 부문 3위, 출루율과 장타율 합계인 OPS(1.046)는 2위였다. 팀 기여도를 나타내는 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WAR)는 1.95를 마크하며 KBO리그 타자 중 1위에 올랐다. 5월까지 승률 0.420(21승 29패)을 기록하며 리그 8위에 머물렀던 키움은 이정후가 맹활약한 6월, 14승(2무 9패)을 추가하며 5위까지 올라섰다. 조아제약과 본지는 이정후를 6월 최우수선수(MVP)로 선정했다. 이정후는 “팀이 상승세를 타며 치고 올라간 시기에 내가 조금은 기여한 것 같아서 기쁘다. 상을 주셔서 감사하다”라는 소감을 전했다. 이정후는 지난 시즌까지 통산 타율 0.342를 기록하며 ‘타격 달인’ 고(故) 장효조를 제치고 이 부문 1위에 올라선 타자다. 2022시즌엔 타격 5관왕에 오르기도 했다. 올 시즌이 끝난 뒤 미국 메이저리그(MLB) 진출이 유력하다. 그런 이정후가 지난 4월 한 달 동안 타율 0.218에 그치며 극심한 타격 난조에 시달렸다. 지난겨울, 더 간결하고 빠른 스윙을 위해 톱 위치(배트를 잡은 손)를 낮추고, 테이크백(스윙하기 전 배트를 뒤쪽으로 빼는 동작)을 줄이는 변화를 줬다. MLB 투수들의 빠른 공에 대비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개막 뒤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고, 데뷔 뒤 가장 긴 슬럼프를 겪었다. 결국 이정후는 2022시즌 타격 자세로 돌아갔다. 5월 중순부터 콘택트 정확도, 타구 속도가 크게 나아졌다. 6월 첫째 주엔 타율 0.478를 기록하며 완전히 제 모습을 되찾았다. 지난달 11일 KT 위즈전에서는 4안타를 치며 개막 뒤 처음으로 3할 타율을 넘어섰다. 고비를 이겨낸 이정후는 응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은 지도자·동료, 그리고 가족에 감사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는 "사실 부진할 때는 어떤 말을 들어도 소용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홍원기 (키움) 감독님과 코치님들 전력분석원 선배들이 좋은 말씀을 많이 해주셨다. 그 덕분에 반등할 수 있었던 것 같다"라고 전했다. 아버지 이종범 LG 트윈스 코치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선수의 마음을 잘 알고 계시기 때문에 애써 야구 얘기를 안 하시더라. 그러면서도 ‘순리대로 하면 네 실력을 되찾을 것’이라는 조언을 주셨다"라고 전했다. 타격 자세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만나 얘기를 나눈 추신수(SSG 랜더스)에 대해서도 고마움도 전했다. 이정후는 “선배님은 MLB 투수들이 아무리 빠른 공을 던져도 내가 (원래 자세로) 충분히 대처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감을 주셨다"라며 "뛰는 리그가 달라지면서 투수들의 구속 차이를 경험했던 선배님이 직접 해준 말이라 더 와닿았다"라고 전했다. 이정후는 6일 기준으로 타율 0.313를 기록, 이 부문 11위를 지켰다. 7월 출전한 5경기에서도 안타 10개를 몰아쳤다. 본격적으로 타격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이정후는 “항상 타격왕을 '해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을 뿐, 딱 목표로 삼고 욕심을 내진 않았다. 아직 레이스가 많이 남았다. 지금은 팀 순위가 더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라고 하지 않나. 기회가 된다면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후반기도 한 경기, 한 타석에 집중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후가 올 시즌에도 타격 1위에 오르면 2021·2022시즌에 이어 3연패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07.07 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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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 부자 MVP, 이정후 시대 열렸다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가 데뷔 6년 만에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로 우뚝 섰다. '이정후 시대'가 활짝 열렸다. 이정후는 17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서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2 KBO 시상식에서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됐다. 기존 점수제에서 다득표제로 바뀐 투표 방식에서 총 유효 투표수 107표 중 104표를 얻어 데뷔 첫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정후는 정규시즌 출전한 142경기에서 타율 0.349(553타수 193안타) 23홈런 113타점 출루율 0.421 장타율 0.575를 기록했다. 타율·안타·타점·출루율·장타율 5개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2010년 7관왕에 오른 이대호(은퇴) 이후 12년 만에 타격 5관왕에 오른 타자가 됐다. 독보적인 성적을 앞세워 만장일치에 가까운 득표율(97.2%)을 기록했다. 지난 3년(2019~2021) 내내 외국인 선수(조쉬 린드블럼·멜 로하스 주니어·아리엘 미란다)가 리그 MVP를 차지했다. 이정후는 국내 선수 자존심도 지켰다. 신인 1차 지명을 받고 넥센(현 키움)에 입단한 이정후는 데뷔 첫해(2017)부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신인 선수 최다 안타(179개)와 최다 득점(111점)을 기록하며 신인왕에 올랐다. 이후 무서운 성장세를 보여줬다. 특히 콘택트 능력은 역대급이었다. 데뷔 3년 차였던 2019년, '국민 타자' 이승엽(현 두산 베어스 감독)을 넘어 최연소 통산 500안타를 기록했다. 그해 193안타를 치며 이 부분 2위에 오르기도 했다. 2021년 이정후는 타율 0.360을 기록하며 타격왕을 차지했다. 지난 7월 28일 KT 위즈전에선 747경기 만에 통산 1000번째 안타를 쌓아 아버지 이종범(현 LG 트윈스 코치)이 갖고 있던 최소 경기(779경기) 1000안타 기록을 경신했다. 올해도 타격 1위에 오른 그는 고(故) 장효조, 이정훈(현 두산 2군 감독) 이대호에 이어 역대 4번째로 타격왕 2연패를 해낸 선수로도 이름을 올렸다. 개막 전 중·하위권으로 평가받던 키움은 무결점 타자로 성장한 이정후의 활약 덕분에 정규시즌 3위에 올랐다. KBO리그를 넘어 세계 야구 최초로 '부자(父子) MVP'가 탄생했다. 이종범은 1994년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고 타율(0.393) 안타(196개) 도루(84개) 출루율(0.452) 1위에 오르며 정규시즌 MVP를 차지했다. 당시 공식 시상 기록이 아니었던 득점(113개)을 포함하면 이종범도 이정후처럼 5관왕을 해냈다. 부자 모두 만 스물네 살에 리그를 평정한 점도 같다. 주로 1번 타자로 나선 이종범은 득점, 3번 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타점을 많이 생산했다. 이 기록도 나란히 113개였다. 이종범이 아직도 깨지지 않은 단일시즌 최다 도루 기록을 세웠다면, 이정후는 아버지보다 많은 장타를 때려냈다. 부자 동반 MVP 수상은 대를 이어 야구를 하는 이들이 수두룩한 메이저리그(MLB)에서도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지난해 블라디미르 게레로 주니어(토론토 블루제이스)가 LA 에인절스 소속으로 2004년 아메리칸리그(AL) MVP를 차지한 게레로 시니어에 이어 부자 MVP에 도전했지만, 투·타 겸업으로 신드롬을 일으킨 오타니 쇼헤이(에인절스)에 밀리고 말았다. 이종범·정후 부자는 지난해 부자 타격왕에 이어 MVP까지 등극하며 세계 야구사에 큰 획을 그었다. 이정후는 아버지의 그늘에서 완전히 벗어났다. 이종범도 아들 덕분에 선수 시절 화려한 이력이 재조명받았다. 이날 시상식에선 최근 이종범의 딸과 결혼 소식을 전한 고우석(LG)이 세이브 부문 타이틀(42개)을 수상했다. '이씨 가문'의 날이었다. 이정후는 "5년 전 신인상을 받았을 때 MVP를 수상한 선배님(양현종)을 보면서 '나도 저 상을 받아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이를 이뤄서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5관왕에 오른 쾌거에 대해서는 "2년 연속 타격왕은 욕심이 났다. 다른 4개 부문은 뛰어난 팀원들 덕분에 딸 수 있었다"고 공을 돌렸다. 데뷔 6년 만에 이종범처럼 MVP를 받은 이정후는 "지금껏 아버지(이종범)의 아들로 살아온 게 사실이다. 아버지를 뛰어넘기 위해 야구를 하는 건 아니지만, 빨리 아버지 이름을 지우고 싶었다. 지난해 타격왕에 오른 뒤 'MVP를 타거나 해외에 진출하면 (아버지 그림자에서 벗어나는 걸)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앞으로 야구 인생은 내 이름으로 걸어갈 수 있을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도 "내 야구에 대해 간섭하지 않으시고 친구처럼 좋은 말씀을 해주신 아버지 덕분에 좋은 시즌을 보낼 수 있었던 것 같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이정후는 이날 트로피 5개를 수집하며 받은 상금 총 2500만원(MVP 1000만원·타자 타이틀 각 300만원)을 전액 기부 예정이다. 그는 "부모님이 먼저 권해주셨다. 기부금은 청소년 자립을 위해 쓰인다고 알고 있다. 나도 프로야구 선수가 되기 전까지 도와주신 분들이 많았다. 다 돌려드려야 한다"고 의젓하게 말했다. 이정후의 어머니 정연희 씨는 "이제는 내가 정후에게 많이 기댄다. 정후가 (고우석과 딸의) 결혼을 빨리 시키라고 재촉했다. (사위 고우석과) 형제 같은 관계가 아닐까 싶다. 세 사람(이종범·이정후·고우석)이 야구 얘기를 정말 많이 한다"며 뿌듯해했다. 이어 "사위는 의젓하고 생각도 깊은데, 아들은 좀 이따 (결혼을) 보내도 될 것 같다"고 웃었다. 안희수 기자 2022.11.1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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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는 오늘도 '리셋'

이정후(24·키움 히어로즈)는 3000타석 이상 소화한 타자만 이름을 올릴 수 있는 '통산 타율' 순위에서 1위(0.339·24일 기준)에 올라 있다. 지난 30년 동안 이 부문 1위를 지켰던 고(故) 장효조(타율 0.331)를 2위로 밀어냈다. 한국야구의 미래로 기대받던 그는 이제 시대를 대표하는 '타격 기계'로 인정받고 있다. 그만큼 이정후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선수도 많아졌다. 최근에는 KT 위즈 2년 차 내야수 유준규가 이정후와 판박이 같은 타격 자세를 보여주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유준규는 "매년 조금씩 변하는 이정후 선배님의 타격 자세를 따라 하기 위해 노력했다"고 했다. 기사를 통해 유준규의 타격 모습을 본 이정후는 "준비 자세에서 리듬을 타고, 타이밍을 잡는 모습이 나와 정말 비슷한 것 같다. 신기하다"며 웃었다. 그는 "타격은 정말 많은 요인이 작용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모든 선수가 다르다. 유준규 선수도 딱 맞는 메커니즘을 찾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른 선수의 것을 배우고 참고하되, 자신이 가진 조건에 맞춰서 발전시켜야 한다는 얘기다. 이정후는 타격 자세와 스윙 메커니즘에 변화를 주는 이유에 대해 "몸 상태, 근육량, 타격 기술 등 매년 달라지는 요인이 많다. 강한 타구를 만들기 위해서는 이에 맞춰 변화를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과거의 타격 영상을 잘 보지 않는다. 이정후는 "타격감이 떨어졌다고 애써 작년·재작년 타격 영상을 찾아보는 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는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선수들은 대개 성적이 좋았던 시점의 자세와 메커니즘으로 되돌아가기 위해 노력하지만, 이정후는 현재 상태를 기준으로 더 나은 방식을 찾기 위해 궁리한다. 이정후는 지난 24일 서울 잠실에서 열린 LG 트윈스전 6회 초 타석에서 왼손 셋업맨 김대유로부터 우중간을 가르는 2타점 역전 3루타를 쳤다. 키움의 승리(스코어 6-4)를 이끄는 결승타였다. 2021시즌 상대 성적 5타수 1안타에 그쳤던 김대유를 상대로 때려낸 장타였다. 이정후는 "최근 타격감이 안 좋아서 마음을 비우고 승부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다. 페이스가 좋았다면 오히려 못 쳤을 수도 있다. 다음에 (김)대유 형을 만나면 경기 상황과 컨디션이 또 다를 것이다. 이에 맞춰서 대처해야 할 것"이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데뷔 여섯 번째 시즌을 보내는 이정후의 화두는 리셋(reset)이다. 일희일비하지 않고, 매 경기·매 타석 새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으로 임한다. 좋든 안 좋든 지난 일은 잊는다. 이정후는 "잘 맞은 타구가 잡히거나, 수비 시프트에 계속 걸리면 짜증 날 수도 있다. 그러나 타석에서 생긴 아쉬움은 글러브를 끼고 수비를 하러 나가면서 다 잊으려고 한다. 야수는 수비에서 팀에 기여할 기회도 있다"고 했다. 이어 "공이 배트에 맞는 순간부터는 내가 제어할 수 있는 게 없다. 착한 일을 많이 하면서 그저 좋은 결과(안타나 홈런)가 나오길 바랄 뿐이다. 올 시즌 성적은 144경기를 다 치른 뒤 나온다. 매 순간, 매 경기에 집중하고 또 리셋하며 시즌에 임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안희수 기자 2022.05.26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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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③]호타준족의 대명사 박재홍

한 번도 어려운 '30홈런-30도루' 클럽에 세 번이나 가입한 선수. '리틀 쿠바' 박재홍(49)이 일간스포츠가 선정한 40주년 올스타 외야수 부문 한 자리에 이름을 올렸다.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장효조(26표), 양준혁(22표)에서 이어 외야수 중 세 번째로 많은 20표를 얻었다. 박재홍은 역대 외야수 중 세 손가락 안에 포함될 만큼 남다른 경쟁력을 보여줬다. 그는 잘 넘기고, 잘 훔쳤다. 개인 통산 300홈런을 때려낸 거포이면서, 도루를 267번이나 성공한 대도였다. 프로야구 무대에서 통산 300홈런 이상 때려낸 14명 중 200도루 이상 기록한 선수는 박재홍뿐이다. 호타준족(장타력과 빠른 발을 모두 갖춘 선수)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광주일고 시절 동기였던 김종국 KIA 타이거즈 감독은 "공·수·주에서 가장 완벽한 선수였다. 장타력까지 좋았다. 그야말로 야구 천재"라고 박재홍의 선수 시절을 돌아봤다. 광주제일고 재학 시절 4번 타자·에이스로 활약하며 특급 유망주로 평가받은 박재홍은 1992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태 타이거즈(현재 KIA)의 1차 지명을 받았다. 하지만 당시 프로 무대에 바로 뛰어드는 고졸 선수는 드물었다. 박재홍도 연세대 진학을 결정했다. 대학 시절도 꽃길을 걸었다. 한국야구의 황금세대로 여겨지는 '전설의 92학번' 일원이었다. 국제대회에서 맹활약하며 1993년 국제야구연맹 올스타에 뽑혔고, 1995년 대학야구 춘계리그에서는 연세대의 우승을 이끌며 최우수선수상(MVP)·타점왕·도루왕을 거머쥐었다. 박재홍은 야구 선수로는 크지 않은 키(1m76㎝)에도 괴력을 뿜어냈다. 당시 아마야구 최강으로 평가받던 쿠바 선수들에게도 지지 않는다며 '리틀 쿠바'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박재홍은 1996년 현대 유니콘스 유니폼을 입고 프로 무대에 뛰어들었다. 신인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활약을 보여줬다. 5월 5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더블헤더에서 3홈런 8타점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알렸고, 이후에도 홈런과 도루를 차곡차곡 쌓았다. '왼발이 배터박스를 벗어난다'라며 부정타격 시비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흔들리지 않았다. 7월 16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75경기 만에 20홈런-20도루, 9월 3일 LG 트윈스전에서 프로야구 역대 최초로 30홈런-30도루까지 달성했다. 박재홍은 1996시즌 타율 0.295 30홈런 108타점 36도루를 기록했다. 신인 선수가 홈런왕과 타점왕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그해 남긴 신인 선수 데뷔 시즌 최다 홈런(30개)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박재홍은 만장일치로 신인왕을 차지했고, 외야수 골든글러브도 수상자로도 선정됐다. 투수 4관왕에 오른 한화 구대성과의 MVP 경쟁에서는 한 발 밀렸지만, 타자 중에서는 독보적인 퍼포먼스를 남겼다. 박재홍은 누구보다 강렬한 데뷔 시즌을 보냈다. 현재 20대 젊은 후배들이 그를 역대 최고의 외야수로 꼽은 이유다. 2021년 도루왕 김혜성은 "신인 선수가 해낸 30홈런-30도루 기록이기에 임팩트가 컸다"라고 했다. 2021년 신인왕 이의리는 "'호타준족'이라는 단어를 내가 인식할 수 있게 해주신 선배님"이라고 말했다. 박재홍은 1997시즌 허리 부상 탓에 96경기밖에 뛰지 못하고도 27홈런을 때려냈다. 이 부문 리그 4위에 올랐다. 1998시즌은 30홈런 43도루 기록하며 커리어 두 번째 30홈런-30도루를 해냈다. 그해 소속팀 현대의 창단 첫 통합 우승까지 이끌었다. 이후에도 승승장구했다. 데뷔 4년 차(199시즌)에 억대 연봉(1억원)을 받은 선수로 이름을 올리며 가치를 인정받았다. 2000시즌은 개인 3번째 30-30클럽 가입뿐 115타점 101홈런까지 기록하며 커리어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현대의 창단 두 번째 한국시리즈(KS) 우승도 견인했다. 거칠 것 없던 박재홍의 야구 인생에도 시련은 있었다. 2001시즌부터 잔 부상에 시달리며 앞선 5시즌(1996~2000)보다 장타력이 떨어졌다. 2003시즌을 앞두고는 KIA로 트레이드됐다. 팀 쇄신을 노린 현대는 현금 10억원과 유망주 정성훈을 받고 간판선수를 넘겼다. 현대팬은 구단의 결정에 비난을 쏟아냈다. 박재홍은 KIA에서 자존심을 구겼다. 2003시즌은 타율 0.301 19홈런을 기록하며 나쁘지 않은 성적을 남겼지만, 2004시즌은 타율 0.253 7홈런에 그쳤다. 1군 등록일수를 채우지 못해 자유계약선수(FA) 자격 취득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섰다. 2004년 12월, 투수 김희걸과 1대1 트레이드로 SK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은 그는 2005시즌 타율 0.304 18홈런을 기록하며 재기했다. 이후 4시즌(2006~2009) 연속 두 자릿수 홈런을 쳐내며 SK가 강팀으로 자리 잡는 데 기여했다. FA 계약도 두 차례 따냈다. 박재홍은 2009년 4월 23일 롯데전에서 도루를 추가하며 프로야구 최초로 250홈런-250도루에 가입했다. 하지만 300홈런-300도루는 해내지 못했다. 2012년 10월 3일 LG전에서 통산 300번째 홈런을 때려냈지만, 도루는 267개에서 멈췄다. 박재홍은 은퇴를 결정하고 해설위원으로 새 출발 하며 "남은 33개의 도루는 해설가로서 시청자 마음을 훔치겠다"라고 했다. 2013년부터 지금까지 방송사 해설위원으로 현장을 누비고 있다. 선수 시절 박재홍과 한솥밥을 먹은 정경배 SSG 랜더스 코치는 "30-30클럽에 3번씩 가입할 선수가 앞으로 몇 명이나 나올 수 있을까. 그가 남긴 기록의 가치는 정말 크다"라고 했다. 실제로 2000년 박재홍 이후 이 기록을 해낸 국내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안희수 기자 an.heesoo@joongang.co.kr 2022.01.10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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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①] '타격의 교과서' 장효조

일간스포츠 선정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 외야수 한 자리는 '타격의 교과서' 장효조의 몫이었다. 장효조는 20대부터 50대까지 세대별 야구인 10명씩 총 40명이 참여한 투표에서 26표를 받아 외야수 최다 득표자로 선정됐다. 외야수는 후보(15명)가 많아 표가 분산됐지만, 장효조는 선·후배들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그 결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양준혁(22표) 박재홍(20표)과 함께 '외야수 베스트 3'에 이름을 올렸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공격력 면에서 최고의 외야수였다. 장효조 선배님을 보면서 타격을 연구한 선수들이 많았다"며 "어떤 상황에서든 배트 중심에 맞힐 수 있는 선수"라고 떠올렸다. 정경배 SSG 랜더스 코치는 "장효조 선배의 통산 타율은 현역 선수들의 기록보다 그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장효조 선배가 같은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엄지를 치켜세웠다. 김경기 스포티비 해설위원과 윤동균 일구회 회장을 비롯한 그와 함께 그라운드를 누볐던 선수 대부분이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로 장효조를 빼먹지 않았다. 이유는 하나같이 비슷했다. "앞으로 나오기 힘든 타자"라는 평가가 대부분이었다. 장효조는 프로야구 역사에 이름을 새긴 전설이다. 1975년 한양대에 진학해 1학년 때 태극마크를 달았다. 2학년 때는 실업팀도 출전한 백호기 대회에서 타율 0.714(14타수 10안타)로 타격왕에 오른 될성부른 떡잎이었다. 대학 졸업 뒤 포항제철과 경리단에서 활약한 그는 1983년 1차 3순위 지명으로 삼성 라이온즈 유니폼을 입었다.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에 나가는 바람에 프로 입단이 1년 늦어졌다. "프로 적응은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 전망을 비웃기라도 하듯 타석에서 날아다녔다. 첫 시즌 타율이 0.369(317타수 117안타)로 김종모(0.350)와 김성한(0.327·이상 당시 해태 타이거즈)에 앞선 리그 전체 1위였다. 그해 5월에는 8연타석 안타를 때려내며 잠시 4할 타율을 유지하기도 했다. 아쉽게 신인왕과는 인연이 없었다. 실업야구 최고의 타자였던 만큼 '중고 신인'이라는 이유로 박종훈(당시 OB 베어스)과의 경쟁에서 밀렸다. 하지만 1년 먼저 프로 데뷔한 선배들과의 경쟁에서 밀리지 않으며 "역시 장효조"라는 소릴 들었다. 장효조의 타격에는 기복이 없었다. 데뷔 후 7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1985년부터 3년 연속 타격왕을 놓치지 않았다. 3년 연속 타격왕은 KBO리그 역사상 그가 유일하다. 1987년 기록한 타율 0.387은 1982년 백인천(0.412) 1994년 이종범(0.393)에 이은 역대 3위 기록. 타격만 잘하는 건 아니었다. 1983년과 1986년에는 볼넷 전체 1위이기도 했다. "장효조가 치지 않은 공을 볼이다", "장효조는 배트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을 친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탁월한 선구안과 정교한 타격이 트레이드마크였다. 공을 몸에 붙여 그라운드 구석구석 타구를 날리는 '부챗살 타법'은 그를 대표하는 무기였다. 키가 174㎝로 크지 않았지만 지독한 훈련으로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했다. 동료들이 인정한 연습벌레였다. 장효조는 1988년까지 삼성에서 활약하다가 1989년 트레이드로 롯데 자이언츠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프로 데뷔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1992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1991년 개인 통산 6번째 출루율 1위에 오를 만큼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하지만 이듬해 뜻밖에 부진(82경기 타율 0.265)에 빠졌고 팀 내 입지마저 좁아지자 미련 없이 그라운드를 떠났다. 장효조가 남긴 발자취는 뚜렷하다. 그의 통산 타율은 0.331로 최소 3000타석 이상 소화한 KBO리그 타자 중 역대 1위다. 손아섭(롯데 자이언츠·통산 타율 0.324) 김현수(LG 트윈스·통산 타율 0.319) 박민우(NC 다이노스·통산 타율 0.326)를 비롯해 쟁쟁한 후배들이 그의 아성에 도전했지만, 아직 역부족이다. 그뿐만 아니라 장효조는 삼성 타자로는 역대 두 번째로 1987년 최우수선수(MVP)에 뽑혔고 1983년부터 무려 5년 연속 외야수 부분 골든글러브를 받기도 했다. 말 그대로 1980년대를 풍미한 프로야구 간판이었다. 은퇴 후에는 삼성 2군 감독과 타격 코치 등을 역임하며 유망주 양성에 힘썼다. 하지만 2011년 9월 병환으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해 신인왕에 오른 배영섭(당시 삼성)은 수상 후 "장효조 감독님 덕분에 이런 성적을 낼 수 있었다. 타격폼을 많이 잡아주셨다. 지금 계시지 않아 속상할 따름"이라고 말해 강한 울림을 주기도 했다. 장효조는 2011년 한국야구위원회(KBO)가 프로야구 30주년을 기념해 진행한 레전드 올스타 투표에도 당당하게 외야 한 자리를 꿰찼다. 시간이 흘렀어도 아직 많은 선수가 그를 기억한다. 박경수(KT 위즈)는 "학생 때 나를 지도해주신 많은 분이 늘 장효조 선배님을 언급하며 '너무 잘 치는 타자'라고 하셨다. 발도 빠르셨다고 들었다"고 떠올렸다. 김혜성(키움 히어로즈)도 "'타격 기계'라는 별명처럼 뛰어난 타자다. 선구안도 좋다고 들었다"며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로 그에게 표를 던졌다. 배중현 기자 bae.junghyune@joongang.co.kr 2022.01.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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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는? 선동열·최동원 '원투펀치'

임인년 새해가 밝았다. 한국 프로야구도 새로운 출발선에 설 시간이다. 1982년 3월 27일 닻을 올린 KBO리그는 지난해까지 40년간 숱한 스타플레이어들과 함께 환희와 감격의 역사를 쌓아왔다. 일간스포츠는 41번째 프로야구 시즌을 맞이하기에 앞서 야구인 투표를 통해 지난 40년간 그라운드를 빛낸 포지션별 최고 스타를 선정하기로 했다. 그 결과 선동열(59) 전 국가대표 감독이 투표인단 전원의 지지를 받아 '별 중의 별'로 뽑혔다. 일간스포츠 선정 프로야구 40주년 올스타는 선발투수 5명, 불펜투수 2명, 포수·1루수·2루수·유격수·3루수 각 1명, 외야수 3명으로 구성됐다. 해외 리그 성적이 아닌 KBO리그 성적만을 기준으로 삼아 각 포지션별 후보를 추렸다. 투표에 참여한 야구인은 총 40명. 20대, 30대, 40대, 50대 이상으로 그룹을 나눠 각 세대별 10명이 표를 던졌다. 포지션별 올스타 후보에 오른 야구인과 현역 선수는 투표인단에서 제외했고, 20~30대는 10개 구단 선수 중 연령대별 대표 1명씩을 포함했다. 이렇게 선정한 40주년 올스타 중 선발 투수 5명에는 선동열(40표) 최동원(37표) 류현진(36표) 송진우(22표) 박철순(17표), 불펜 투수 2명에는 오승환(32표) 구대성(19표)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이어 포수 양의지(24표), 1루수 이승엽(37표), 2루수 정근우(22표), 유격수 이종범(28표), 3루수 최정(23표)이 각 포지션 최고 선수로 뽑혔다. 3명을 선발한 외야수 부문에선 장효조(26표) 양준혁(22표) 박재홍(20표)이 치열한 경쟁을 뚫고 '베스트 3' 안에 포함됐다. 선동열은 유일하게 투표인단 40명으로부터 모두 표를 받아 만장일치로 최다 득표자가 됐다. '불세출의 투수' 고(故) 최동원과 이승엽이 나란히 37표를 얻어 공동 2위에 올랐고, 메이저리그(MLB) 토론토에서 활약하고 있는 류현진이 36표로 그 뒤를 이었다. 현역 선수 중엔 류현진 외에 오승환(삼성), 양의지(NC), 최정(SSG) 등 3명이 40주년 올스타에 포함되는 영광을 안았다. 선동열은 명실상부한 KBO리그 역대 최고 투수로 꼽힌다. 1985년 해태(현 KIA)에 입단한 뒤 1995년까지 통산 367경기에서 146승 40패 132세이브, 평균자책점 1.20, 탈삼진 1698개를 기록했다. 통산 이닝당 출루허용(WHIP)은 0.80. 11시즌 중 5차례(1986·1987·1992·1993·1995)나 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2.00을 넘긴 시즌은 1994년(2.73)밖에 없다. 7년 연속(1985~1991)을 포함해 8번이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가져갔다. 특히 1986년에는 한 시즌 262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4승 6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0.99, 탈삼진 214개, 완봉승 8회라는 무시무시한 성적을 올렸다. 선동열은 1995년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면서 33세이브(평균자책점 0.49)를 올린 뒤 임대 선수로 일본 프로야구(주니치)에 진출했다. 이후 리그 정상의 마무리 투수로 이름을 날리다 한국에 복귀하지 않고 1999년 은퇴했다. KIA는 그 후 선동열의 등번호 18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40주년 올스타 선정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띈 건, 표를 많이 얻은 선수일수록 투표자들이 굳이 선정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동열에게 한 표를 던진 이유를 물으면 "이유가 필요하느냐"는 반문이 되돌아왔다. 선동열 다음으로 많은 표를 얻은 최동원도 마찬가지다. 40명 중 단 2명을 빼고 모두 최동원을 올스타로 꼽았지만, "설명이 필요없다"는 답변이 대부분이었다. 1번으로 선동열, 2번으로 최동원을 뽑은 NC 이용찬은 "투수 대선배이신 이분들을 왜 뽑았는지 설명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했다. 실제로 최동원은 1984년 51경기에서 284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면서 27승 13패 6세이브, 평균자책점 2.40을 기록한 '무쇠팔'이었다. 그해 최동원이 잡은 삼진 223개는 지난해 두산 외국인 투수 아리엘 미란다가 경신하기 전까지 36년간 역대 한 시즌 최다 기록 자리를 지켰다. 최동원은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홀로 4승을 따내면서 롯데에 창단 첫 우승을 안기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그는 1985년에도 20승 8세이브를 따내면서 평균자책점 1.92를 기록했고, 1986년엔 267이닝을 소화하면서 19승(평균자책점 1.55)을 올렸다. 그러나 프로에서의 첫 5년간 1209와 3분의 1이닝(평균 241.6이닝)을 책임진 여파로 이후 팔 상태가 급격히 악화됐고, 결국 1990년 삼성에서 은퇴했다. 전성기가 길지 않았는데도 그 누구보다 강했던 KBO리그 최고 투수 중 한 명으로 기억된다. 2011년 대장암으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등번호 11번이 뒤늦게 롯데 영구 결번으로 지정됐다. 특히 많은 투표인단이 KBO리그 역사를 대표하는 선동열과 최동원의 라이벌 관계에 주목했다. 나이로는 5년 터울이고 프로 경력으로는 4년 선후배 사이였던 이들은 영남(최동원)과 호남(선동열), 연세대(최동원)와 고려대(선동열)의 대리전까지 펼친 필생의 맞수였다. 선수 시절 세 차례 맞대결 성적은 1승 1무 1패. 1986년 4월 첫 대결에서는 선동열이 완봉승을 따냈고, 최동원은 솔로홈런 하나를 맞아 1실점 완투패했다. 그해 8월에는 최동원이 선동열을 상대로 완봉승했고, 선동열은 자책점 없이 2실점(수비 실책으로 인한 비자책점) 완투패했다. 1987년 5월 16일 세 번째 대결은 '퍼펙트게임'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제작됐을 만큼 극적이었다. 두 투수가 연장 15회까지 완투하면서 4시간 56분 혈전을 벌인 끝에 2-2 무승부로 끝났다. 이날 선동열은 공 232개, 최동원은 209개를 각각 던졌다. SSG 박종훈과 키움 김혜성이 "당대 최고 라이벌이자 설명이 필요 없는 역대 가장 뛰어난 투수들"이라고 입을 모은 이유다. 류현진은 KBO리그에서 단 7년을 뛰고도 37명의 몰표를 받아 선동열과 최동원 다음으로 나설 '3선발'이 됐다. 그는 한화에서 데뷔한 2006년 다승(18승) 평균자책점(2.23) 탈삼진(204개) 타이틀을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하면서 역대 최초로 정규시즌 최우수선수(MVP)와 최우수신인선수(신인왕)를 함께 수상했다. 이후 국가대표 에이스로 활약하면서 7시즌 통산 98승 52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2.80을 남기고 2013년 MLB로 진출했다. 빅리그에서도 2020년 MLB 평균자책점 1위에 오르는 등 KBO리그 출신 선수 중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현역 시절 류현진과 상대했던 이호준 LG 코치는 "난 오른손 타자였지만 왼손 류현진의 공을 정말 치기 어려웠다. 무릎과 옆구리 깊숙한 쪽으로 공이 파고 들어와서 몸에 맞는 공이 될 것 같은데 스트라이크가 선언되곤 했다"며 "공의 각도가 굉장히 좋았고, 체인지업을 포함해 여러 구종을 던지면서 모두 컨트롤이 좋았다. 다시 나오기 쉽지 않은 투수"라고 했다. 최태원 삼성 코치도 "왼손으로 시속 150㎞ 이상을 던지면서 경기 운영과 컨트롤은 역대 최고였다"고 했다. 류현진이 미국으로 떠난 뒤 한화로 온 포수 최재훈은 "설명이 필요없는 에이스"라며 "나중에 한화에서 배터리로 호흡을 맞춰보고 싶다"고 기대했다. 2명을 선정한 불펜 투수로는 오승환(삼성)과 구대성(전 한화)이 뽑혔다. 둘 다 강력한 구위 외에도 위기 상황에서 흔들리지 않는 강심장과 포커페이스로 이름을 날린 투수들이다. 이동욱 NC 감독은 "오승환과 구대성은 감독 입장에서 언제든 믿고 투입할 수 있는 투수"라고 했다. 오승환은 KBO리그 역대 한 시즌 최다(47) 세이브, 최다 연속경기(28) 세이브, 통산 최다 세이브(339) 기록을 모두 보유하고 있는 최고 마무리 투수다. 성적뿐 아니라 마운드에서의 위압감도 역대 최강이었다. 5년간 일본과 미국에서 뛰다 지난해 복귀했지만, 40세 나이에도 여전히 국내 최강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해 44세이브를 올려 구원왕 타이틀을 가져갔다. 최태원 삼성 코치는 "오승환이 마운드에 오르면 경기에 졌다고 여겼을 정도"라고 했다. 구대성은 1996년 다승 1위(18승)와 세이브 2위(24세이브)에 모두 이름을 올릴 만큼 전방위로 활약했다. 그러나 1996년부터 7시즌 연속(해외 진출한 2001~2005년 제외) 20세이브를 올렸고, 1999년 한화의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직접 마무리하면서 더 강한 인상을 남겼다. 국제대회에서 '일본 킬러'로 명성을 날리기도 했다. 통산 성적은 67승 71패 214세이브, 평균자책점 2.85. 김종국 KIA 감독은 "구대성 선배처럼 배짱 있는 투구를 하는 투수를 본 적 없다"고 했고, KT 박경수는 "릴리스포인트가 보이지 않는 투수였다. 오른손 타자 몸쪽과 바깥쪽 제구가 자유자재였다. 너무 까다로웠다"고 기억했다. 포수 부문에선 역대 최고 공수겸장 포수로 꼽히는 양의지가 24표를 얻어 박경완(12표)을 두 배 차로 제쳤다. 양의지는 2020년 만장일치에 가까운 역대 최고 득표율(99.4%)로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을 만큼 현역 중엔 적수가 없는 독보적 1인자로 꼽힌다. 2015년부터 '두산 왕조'의 전성기를 앞장서 이끌었고, 2019년 NC 이적 2년 만에 창단 첫 우승의 디딤돌을 놓았다. 2019년 35년 만에 포수 타격왕에 오르고 지난해 포수 첫 사이클링 히트 기록을 작성하는 등 공수 양면에서 맹활약하고 있다. 장정석 KIA 단장은 "양의지는 결국 가장 좋은 기록을 남기고 역대 최고 포수로 남을 것 같다"고 내다봤고, 이호준 코치는 "야구 센스와 수비, 타격 모두 (NC 시절) 옆에서 지켜 보니 깜짝 놀랄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포지션 구분 없이 역대 최고 선수라고 본다"고 치켜세웠다. 최태원 코치도 "공 배합이나 경기 운영, 리더십을 보면 박경완일 수 있겠지만, 공격력으로 보면 양의지가 압도적"이라고 선택의 이유를 밝혔다. 이뿐만 아니다. 박경수는 "양의지가 안방에 있으면, 투수가 아닌 포수와 싸운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고, KT 소형준도 "내가 만약 감독이라면, 양의지 선배를 기용할 것 같다"고 했다. 김인식 전 국가대표 감독은 "양의지가 선수 생활을 가장 오래 할 것 같다. 앞으로 다치지 않으면 5년은 더 뛸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1루수 부문은 KBO리그 역대 최고 타자로 꼽히는 이승엽이 압도적으로 표를 얻었다. 이승엽은 1997년 삼성에서 데뷔한 이후 KBO리그 홈런의 역사를 다시 써왔다. 2003년 역대 한 시즌 최다 홈런(56개) 기록을 세웠고, 통산 최다 홈런(464개) 기록을 남기고 2017년 은퇴했다. 한국 프로야구에 처음으로 '400홈런'이라는 기록을 새긴 주인공이다. 일본에서 뛴 8년(2004~2011년) 성적을 포함하지 않았는데도 이승엽을 따라잡을 홈런 타자는 나오지 않았다. 일본전에서 결정적인 홈런이나 적시타를 때려내던 '국가대표 4번타자' 이승엽의 존재감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대체자가 없다. 실제로 수많은 투표인단이 "독보적", "압도적"이라는 감탄사를 쏟아냈다. 양상문 위원은 "이대호(롯데) 같은 선수도 뛰어났지만, 역대 최고 1루수는 단연 이승엽이다"라고 했고, 정경배 SSG 코치는 "그렇게 홈런을 많이 친 선수를 능가하는 타자가 있을까"라고 되물었다. SSG 최지훈은 "초등학교에서 야구하던 시절, 베이징올림픽(2008년) 야구 금메달의 영웅으로 기억하고 있다"며 "누구나 알고 있는 '레전드'라서 고민 없이 뽑았다"고 했다. 2루수 부문에선 정근우(22표)가 박정태(14표)를 넘어 가장 많은 표를 받았다. 2020년 은퇴할 때까지 16년간 프로에서 뛴 정근우는 통산 1747경기에 출장해 타율 0.302, 1877안타, 722타점, 1072득점, 도루 371개를 기록했다. 안타·타점·득점 모두 역대 2루수 중 최다 기록이다. 또 세 차례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숱한 국제대회에서 국가대표 주전 2루수로 활약했다. 정근우 스스로 은퇴 기자회견에서 "역대 최고 2루수는 내가 맞는 것 같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을 했다. 소형준은 "2루 수비도 좋았지만, 타석에서 상대 배터리와 수비를 흔들 수 있는 타자였던 것 같다. 투수 입장에서도 상대하기 힘들 것 같았다"고 했고, KIA 이의리는 "악바리 같은, 근성 있는 모습이 같은 운동 선수로서 인상적이었다"고 떠올렸다. 김경기 위원은 "2루수는 꾸준히 레전드급으로 활약하기 힘든 포지션인데, 정근우는 그중 팀에 가장 큰 도움이 됐다. 2루를 대표하는 선수"라고 했다. 김종국 감독은 "함께 뛰어 본 선수 중 가장 좋은 2루수다. 공·수·주 모두 독보적이었고, 근성도 뛰어났다. 신체 조건이 좋은 편은 아닌데 그런 단점도 이겨냈다"고 높이 평가했다. 박경수는 "국가대표팀에서 보여준 좋은 플레이와 임팩트가 2루수 중 단연 최고"라고 했다. 쟁쟁한 후보가 많았던 유격수 자리는 이종범(28표)이 차지했다. 1993년 해태에서 데뷔한 이종범은 천재적인 야구 센스를 뽐내면서 공·수·주를 가리지 않고 펄펄 날았다. 1990년대 '해태 왕조'의 집권기를 연장한 주역이다. 특히 1994년에는 타율 0.393, 196안타, 113득점, 도루 84개라는 경이적인 성적을 남겨 단숨에 프로야구 최고 스타로 등극했다. 타율 0.393은 프로야구 원년의 백인천(0.412) 이후 여전히 가장 높은 기록으로 남아 있고, 한 시즌 도루 84개는 앞으로도 깨지기 어려울 기록 중 하나로 회자된다. 양상문 위원은 "이종범은 팀을 우승시킨 선수다. 개인 기록도 좋지만, 팀 기여도가 높았다"며 "김재박, 류중일, 류지현 등 뛰어난 선수가 많았지만, 이종범은 타격과 도루도 잘하면서 '유격수'라는 포지션이 공격까지 잘해낼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고 했다. 장정석 단장은 "그야말로 '야신'이다. 정말 야구를 위해 태어난 선수 같았다. 플레이가 리그 최정상급을 넘어 독보적이었다"고 평가했고, NC 송명기는 "수비, 타격, 주루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그냥 레전드"라고 했다. 조웅천 SSG 코치는 "박진만이라는 훌륭한 유격수조차 이종범이라는 큰 산을 넘기는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3루수 부문에선 현역 선수인 최정이 투표인단 중 23명의 선택을 받아 올스타로 뽑혔다. 김동주(11표), 한대화(5표) 등 한 시대를 풍미한 전직 국가대표 3루수들을 제치고 57.5%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2005년 SK(현 SSG)에서 데뷔한 그는 지난 시즌 이승엽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400홈런 고지를 밟았다. 세 차례 홈런왕을 수상했고, 최근 6시즌 동안 2019년(홈런 29개)을 제외하고 매년 30홈런을 넘겼다. 현재 통산 홈런 수는 403개. 이승엽의 통산 최다 홈런 기록에 도전할 유일한 후보로 꼽힌다. 롯데 감독 출신인 조원우 SSG 코치는 "현재 기록도 뛰어난데 앞으로 더 많은 기록을 깰 것"이라고 했고, 김종국 감독은 "3루수가 가장 큰 고민이었지만, '리빙 레전드'로 향하고 있는 최정을 뽑았다. 아직 현역이지만, 아마 은퇴 후 그가 남긴 기록이 더 각광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의리는 "꾸준하게 좋은 기량을 유지하시면서 롱런하시는 부분이 부럽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SSG에서 한솥밥을 먹는 후배들은 공격력에 가려진 최정의 수비에 높은 점수를 줬다. 투수 박종훈은 "홈런 능력뿐 아니라 수비에서도 뛰어나 멋있는 선수인 것 같다. 같은 팀이 아니었어도 뽑았을 것 같다"고 했다. 외야수 최지훈은 "많은 분이 장타력을 강점으로 보시겠지만, 실은 어깨도 강하고 수비력도 뛰어난 선배님이다. 가까이서 지켜보니 더 대단해 보인다"고 감탄했다. 외야 세 자리를 지킬 선수로는 고(故) 장효조와 양준혁, 박재홍이 차례로 선정됐다. 장효조는 26표로 외야수 후보 중 가장 많은 표를 얻었고, 양준혁은 22표를 받았다. 투표인단 절반(20명)의 지지를 얻은 박재홍은 LG 출신 이병규(9번·18표)를 2표 차로 제치고 마지막 한 자리를 꿰찼다. '타격 기계'라는 별명의 원조인 장효조는 프로야구 초창기 최고의 왼손 콘택트 히터였고, 강팀 삼성의 간판타자였다. 프로에서 뛴 10시즌(1983~1992년) 중 4차례(1983년, 1985~1987년) 타격왕에 올랐고, 선구안이 좋아 "장효조가 치지 않은 공은 볼이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왔다. 프로 통산 타율 0.331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역대 최고 기록으로 남아있다. 고향팀 삼성에서 2군 감독을 맡고 있던 2011년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 야구계를 안타깝게 했다. 이종열 SBS 해설위원은 "공격력 면에서 최고의 외야수였다. 장효조 선배님을 보면서 타격을 연구한 선수들이 많았다"며 "어떤 상황에서든 배트 중심에 맞힐 수 있는 선수"라고 했다. 박경수는 "학생 때 나를 지도해주신 많은 분이 늘 장효조 선배님을 언급하며 '너무 잘 치는 타자'라고 하셨다. 발도 빠르셨다고 들었다"고 떠올렸고, 삼성 백정현은 "팀 기여도가 눈에 보이는 기록 그 이상이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정경배 코치는 "장효조 선배의 통산 타율은 현역 선수들의 기록보다 그 가치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장효조 선배가 같은 선수가 또 나올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양준혁은 KBO리그를 대표하는 타자 중 한 명이자 이승엽과 함께 삼성을 상징하는 레전드 스타다. 1993년부터 2010년까지 18년간 프로에서 뛰었는데, 3할을 넘기지 못한 시즌은 단 4번뿐이다. 통산 2135경기에서 타율 0316, 안타 2318개, 홈런 351개, 1389타점, 볼넷 1278개, 사구 102개를 기록하면서 은퇴 당시 기준으로 역대 최다 안타, 타점, 득점, 4사구 기록을 남겼다. 서용빈 감독은 "양준혁 선배는 장타, 콘택트, 기록 등 모든 면에서 뛰어나다. 역대 최고 외야수로 빼놓을 수 없다"고 했고, 박경수는 "프로야구에 한 획을 그은 레전드 타자"라고 인정했다. 김혜성은 "항상 1루로 전력질주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고 했다. 박재홍은 '현대 왕조'의 주역으로 꼽힌 천재형 외야수다. 신인이던 1996년 홈런 30개를 치고 도루 36개를 해내 '30홈런-30도루 클럽'에 가입했다. 동시에 리그 역사상 유일한 '만장일치 신인왕'에 올랐다. 타격의 정교함, 파워, 견고한 수비, 강한 어깨, 빠른 발을 모두 갖춘 '5툴 플레이어'의 대표 격이다. 2000년대 후반 SK의 전성기에도 힘을 보탠 뒤 2012년 은퇴했다. 이의리는 "박재홍 선배님은 '호타준족'이 무슨 뜻인지 내가 인지할 수 있게 해준 선배님"이라고 했고, 김종국 감독은 "공·수·주에서 완벽한 천재형 선수다. 야구 하는 능력이 정말 좋았다"고 감탄했다. 조웅천 코치는 "최초의 30홈런-30도루를 해냈고, 그 후 두 번 더 같은 기록을 달성한 게 대단하다"고 했고, 김혜성은 "신인 선수의 30홈런-30도루가 쉽지 않은 만큼 더 인상적"이라고 기억했다. 배영은·배중현·이형석·안희수·차승윤 기자 2022.01.03 06:00
야구

첫 수상, 10표 차 박빙, 최다 배출…숫자로 보는 감동의 골든글러브

KBO리그 한 해를 마무리하는 2021 골든글러브는 감동의 이야기가 넘쳐났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황금 장갑을 안겼고, 감격스러운 수상 소감도 있었다. 1 구자욱(삼성 라이온즈)과 홍창기(LG 트윈스·이상 외야수), 김혜성(키움 히어로즈·유격수), 정은원(한화 이글스·2루수), 아리엘 미란다(두산 베어스·투수)가 데뷔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입단 10년 만에 황금 장갑을 품에 안은 구자욱은 "20년 전 야구를 시작했던 어린 소년에게 오늘에서야 이 상을 안겨주게 됐다. 오늘은 내게 가장 행복한 밤이다”라고 기뻐했다. 팀 선배 강민호는 “내가 울 뻔했다. (구)자욱이 이름이 불리자마자 손을 꼭 잡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구자욱은 등번호 변경이 뒷이야기도 공개했다. 그는 2020시즌을 앞두고 등번호를 65번에서 5번으로 교체했는데 "(2017~19년) 김한수 전 감독님이 계실 때 너무 안 좋은 모습을 보여 죄송한 마음이 컸다. 감독님이 자리에서 물러나신 후 식사했는데, 그때 눈물을 쏟으며 감독님 선수 시절 번호(5번)를 달고 뛰어도 되냐고 여쭤봤다"라고 전했다. 4 이정후(키움 히어로즈)가 4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7년 신인상을 받은 이정후는 입단 2년차부터 황금 장갑을 수집하고 있다. 현역 최다 연속 수상자가 됐고, 역대로는 공동 6위에 해당한다. 다음 시즌 5년 연속 수상하게 되면 이만수와 장효조, 김성한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다. 특히 이번 시상식에서 외야수 부문 시상자로 나선 이종범 코치(LG)로부터 상을 직접 받아 의미가 더욱 컸다. 이정후는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야구에 관한 개입을 하지 않으셨다. 내 야구를 존중해주신 것"이라며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내 골든글러브를 더 좋아하시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7 최정(SSG 랜더스·3루수)과 양의지(NC 다이노스·지명타자)가 개인 통산 7번째 골든글러브를 품에 안았다. 이로써 역대 최다 수상 공동 4위로 이름을 올려놓았다. 이승엽이 10회로 가장 많고 그다음 한대화와 양준혁이 각각 8회 수상했다. 먼저 포수 부문에서 수상한 강민호가 "양의지라는 최고의 포수가 있었기에 지금의 자리에서 안주하지 않고 노력했다"라고 하자, 강민호는 "내년엔 포수로 다시 돌아가 형과 멋지게 경쟁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10 외야수 부문 수상자 구자욱(143표)과 4위 전준우(133표·롯데 자이언츠)의 득표 격차는 불과 10표에 불과했다. 올해 최소 득교 차로 가장 치열한 경합이었다. 역대 수상자와 차점자의 최소 득표차는 2표로, 역대 4차례나 있었다. 그다음 4표(1회)·6표(1회)·7표(3회)·8표(2회)가 있었고, 10표 차는 세 차례 있었다. 69 프로야구 원년 구단인 삼성이 역대 골든글러브 수상자 최다 배출 구단으로 올라섰다. 올해 골든글러브 후보에 가장 많은 12명의 후보가 이름을 올린 삼성은 구자욱과 강민호가 황금 장갑을 품에 안아 총 69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지난해까지 68명이었던 KIA 타이거즈(전신 해태 포함)는 올해 롯데와 함께 빈손에 그쳤다. 278 강백호(KT 위즈)는 1루수 부문 유효표 304표 중 278표를 얻어 2021년 골든글로브 최다 득표율(91.4%)을 기록했다. 2위는 이정후(86.5%)였다. 강백호는 타율 3위(0.347) 최다안타 2위(179개) 타점 공동 2위(102개)로 KT의 창단 첫 통합 우승을 이끌었다. 강백호는 "최다 득표를 해 정말 영광이다. 골든글러브에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며 "어릴 때부터 이승엽 선배를 존경했다. 선배님처럼 열 번 골든글러브를 받고 싶다"고 각오를 다졌다. 이형석 기자 2021.12.1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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