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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중토크①] ‘데뷔 50주년’ 하춘화 “과거 이상형은 신성일, 지금은 조인성”
1961년 6세의 어린 하춘화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온 건 운명이었다. 큰 뜻을 품고 상경한 아버지를 따라나선 이 꼬마 숙녀는 단번에 당대 최고였던 형석기 작곡가의 눈에 띄어 그 해 12월 3일 음반을 취입했다. 꼬마 하춘화는 음악 신동이었다. 정작 그는 "운명은 믿지 않는다"고 하지만 최연소로 음반을 내고 16세에 이미 '물새 한 마리'(70)로 최고 가수의 자리에 올랐다. 신동이고 운명이 아니라면 설명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잘했군 잘했어'(71) '영암 아리랑'(72) '날 버린 남자'(90) '무죄'(93) '하여간'(07)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내며 한국 가요계를 관통했던 산 증인 하춘화(56)를 2011년 신묘년의 첫번째 취중토크 손님으로 초대했다. 올해가 마침 데뷔 50주년. 그는 14, 15일에 다문화가정 나눔을 주제로 50주년 기념 콘서트를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연다.▶난 일간스포츠 가수, 그리고 TBC 가요대상 4연속 수상 인연-데뷔 50주년이 믿기지 않을 만큼 젊어보입니다."너무 어려서부터 가수를 해서 같이 활동했던 분들이 이미 돌아가신 김정구·현인·황금심 선생님 같은 분이었어요. 때문에 제 나이보다 많이 보는 분들이 있는 것 같아요. 굉장한 원로로 아는 분들도 있고… 하지만 저 생각보다 어려요."(웃음)-술자리 토크가 불편하진 않은지…"제 주량이 예나 지금이나 소주 2잔이에요. 2잔 마시면 자야 해요. 그렇지만 많이 안 마시고도 오히려 더 솔직히 말하는 스타일이니 걱정 말아요. 취중토크면 뭔가 얻어가는 게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이날 취중토크 장소는 하춘화가 평소 자주 들른다는 서울 신사동의 H낙지집. 매운 낙지볶음과 감자탕이 전문인 곳이었다. 하춘화가 들어서자 가게 주인은 입구부터 반기며 안부를 물었다. -일간스포츠와는 인연이 깊다고요."맞아요. 전 '일간스포츠 가수'였어요. 예전에는 매년 1월 1일에 일간스포츠 사옥 옥상에 모여 시무식 비슷한 파티를 한 적도 있어요."-작년 말에 jTBC(동양방송) 축하파티에도 참여했더군요."TBC와도 참 인연이 많았죠. 그 때 내부규정을 깨고 제가 4년 연속으로 TBC 가요대상을 받았어요. 당시 제 스케줄의 3분의 2가 TBC여서 다른 방송국의 항의가 빗발쳤던 기억이 나요." ▶최연소 음반 취입, 대중가수 출신 1호 철학박사-옛날 이야기 궁금한 게 많은데요. 데뷔 때 기억나나요."물론이죠. 전 개인적으로 운명 같은 건 안 믿는데 아마 그런 게 있었나봐요. 전남 영암에서 태어나고 유년시절은 부산에서 보냈는데 6세 무렵에 아버지가 잘 하던 사업까지 접고 상경하는 바람에 유명 작곡가님을 만나게 되고 그게 최연소 음반 취입으로 이어진 거예요."-그 나이에 뭘 알아서 한 건 아닐 것 같은데요."그런 건 아니지만 하여튼 노래가 너무 좋았어요. 세살 아이가 대중가요를 수백곡씩 불렀다고 하니까… 그래서 아버지가 어린 나에게 기회를 만들어주신 거죠. 부모님이 지금 90세가 넘으셨는데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해요.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가수 하춘화는 없을 거야."-학교생활은 잘 할 수가 없었겠네요."그런데 또 아버지가 늘 강조하셨던 게 공부였어요. 아무리 스케줄이 많아도 공부를 게을리 할 수는 없었어요. 저도 외부활동한다고 해서 학업을 소홀히하는 게 너무 싫었고요."서울 수송초, 정화여중을 나온 하춘화는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할만큼 성적이 좋았다. 가정교사를 데리고 다니며 과외수업을 하고 이동차량 안에서도 교과서를 읽도록 한 아버지의 억척과 정성 때문이었다.-역시 대중가수 출신 박사 1호를 그냥 딴 게 아니군요.하춘화는 2006년에 성균관대 예술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박사과정에 들어간지 4년만의 결실로 대중가수로는 처음이었다. "늦깎이 결혼 후 남편이 학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응원해줘서 96년에 한국방통대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98년에 동국대 공연예술학과 석사를 마쳤고 내친 김에 박사까지 했어요. 그때 안 하면 영영 못할 것 같아서 용기를 냈죠."▶늦깎이 결혼에 유산, 이젠 사회봉사에 더 힘쓰고 싶어-결혼 과정이 궁금해요."1995년에 제 나이 마흔이 다 돼서 했죠. 남편도 당시 KBS 방송국에서 소문난 노총각이었고요. 언니의 동창분이 KBS에 계시는데 그분의 소개로 만났어요. 둘다 늦은 결혼이라 요모조모 많이 따져봤죠."(웃음)-프러포즈는."처음 만난 후 한 1년간 못 만났어요. 그래서 잊고 있었는데 그 해 연말 디너쇼에 남편이 절 찾아와서 장미 100송이로 프러포즈했어요. 평범한 사람이지만 나를 진정으로 위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그런데 한번도 가족을 소개한 적은 없는 것 같군요."결혼할 때 남편의 조건이 자신을 카메라에 안 나가게 해달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결혼 전에 잠적하다시피 했다가 서둘러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죠."-아이들은."아직 없어요. 신혼 초에 유산을 했어요. 그래서 시험관 아기를 시도했는데 그것도 쉽지는 않았어요. 지금까지 20여차례에 한 3년 전까지도 해봤지만 소식이 없었어요. 하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혹시 입양은."한 때 생각했지만 이젠 다른 쪽으로 생각을 정리하고 있어요. 사회봉사죠. 제가 사랑을 쏟을 수 있는 곳은 그 외에도 너무 많은 것 같아요."-남편에겐 내조 잘하는 '알파걸'이라고요."부끄럽지만 제가 남편 내조 잘 해요. 저는 아침 안 먹는데 남편에겐 국 끓여서 밥해주고 공연 없는 날엔 남편 헤어스타일도 직접 만져줘요. 한번은 공연 끝나고 곧바로 집에 달려가서 드레스 입은 채로 저녁상 차려준 적도 있어요."(웃음)>>2편에 계속김인구 기자 [clark@joongang.co.kr]사진=이호형 기자
2011.01.07 07: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