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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그랜드 마스터' 이규형 전 국기원장의 태권도 인생과 정신 [이석무의 파이트 클럽]

이규형(76) 전 국기원장은 태권도계의 존경받는 스승이자 어른이다. 대한민국 태권도에서 그를 표현하는 호칭은 '그랜드 마스터'다. 그랜드 마스터는 태권도 사범 가운데 큰 업적을 이룬 원로를 일컫는다. 국기원으로부터 태권도 단증을 보유하고 태권도의 발전과 세계화에 큰 업적을 인정받아 태권도인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추대된다.'태권도 그랜드 마스터' 이규형 원장은 한국 태권도의 산증인이다. 특히 그는 오늘날 전 세계를 뒤흔드는 '한류 열풍'의 한 축인 태권도 시범의 아버지다. 평생 국내외를 돌면서 태권도 시범 활동을 펼치면서 태권도의 보급과 세계화에 앞장섰다. 1948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난 이규형 원장은 열 살인 1958년 태권도와 인연을 맺었다. 어려운 가정환경 속에서 힘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에게 태권도는 인생의 빛이었다. 어릴 적 태권도인으로서 정립된 자부심과 가치관은 60여 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삶을 지탱하는 뿌리가 됐다.이규형 원장의 태권도 인생은 곧 한국 태권도의 역사다. 그는 태권도가 전 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1970년대 초반부터 국내외를 돌면서 태권도 시범 활동을 펼쳤다. 특히 1972년 미동초등학교 사범으로 파견된 것은 그의 태권도 인생의 중요한 터닝 포인트였다. 미동초가 지금까지도 태권도 시범의 대표주자가 된 데에는 이 원장의 노력이 결정적이었다.이규형 원장이 미동초에서 가르친 제자 중 하나가 배우 김혜수다. 1982년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이 한국을 찾아 국기원을 방문했을 때 꽃다발을 선물했던 화동이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김혜수다.미동초 어린이 시범단이었던 김혜수는 이규형 원장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기억을 남긴 아이였다. 이 원장은 아이들을 가르칠 때 시간 약속을 지키는 것을 가장 강조했다. 당시 아이들은 1분이라도 늦을 경우 운동장을 돌기로 이 원장과 약속했다. 지각한 아이뿐 아니라 이 원장이 1초라도 늦으면 운동장 100바퀴를 뛰겠다고 제자들과 약속했다.어느 날 이규형 원장이 출근 전 마신 우유 때문에 탈이 났다. 화장실을 여러 번 들락날락하며 완전히 탈진했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다. 힘든 몸을 이끌고 학교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이미 모두 나와 수업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이규형 원장이 힘겹게 태권도 훈련을 시작하려는 순간, 한 학생이 손을 들어 당돌하게 말했다. "사범님 2분 늦었습니다." 시계를 확인해 보니 진짜 그랬다.음식을 잘못 먹었다는 이유를 댈 수도 있었지만, 이규형 원장은 약속대로 했다. 이를 악물고 아픈 배를 부여잡으면서 약속한 운동장 100바퀴를 뛰었다. 그때 손을 들어 지각을 알렸던 제자가 바로 김혜수였다. 이규형 원장의 최대 업적은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선보인 태권도 시범이다. 당시 출연진 섭외, 안무, 구성, 지도까지 총책임자인 그의 손을 거치지 않은 부분이 없었다.당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개회식에 참여한 인원은 각각 1001명과 1008명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이 정도 규모의 태권도 시범은 찾아볼 수 없었다. 세계인들의 눈과 귀가 쏠리는 스포츠 빅이벤트에서 펼쳐진 퍼포먼스는 태권도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이 외에도 이규형 원장은 영국 엘리자베스 2세 국빈 방한과 2002년 평양 공연, 미국 이민 100주년 기념 공연 등을 지휘했다. 태권도 국가대표 시범단을 이끌고 공산국가인 중국과 구소련에 대한민국 태권도를 알린 주인공도 그였다. 1995년과 2001년에는 빌 클린턴 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표창을 받기도 했다.이규형 원장은 2014년 당시 클 인기를 끌었던 KBS 예능프로그램 '우리동네 예체능'에서 태권도 마스터로 등장했다. 출연자들을 열정적으로 지도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다.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고 오늘날 뿌리내릴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역할이 컸다. 2013년에는 태권도인으로는 최고 영예라 할 수 있는 국기원장에 취임하기도 했다.이규형 원장은 팔순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제자들을 직접 가르치는 것은 물론 태권도 발전을 위한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해외도 계속 오가면서 태권도 보급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에는 올림픽 태권도의 무도적 가치를 어떻게 더 높일까에 대한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어떤 이들은 태권도의 실전성에 의문을 표하기도 한다. 올림픽 태권도는 너무 변질된 것이 아닌가라는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규형 원장은 그런 여러 지적이 태권도가 계속 발전하고 변화하는 동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태권도의 가치와 정신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태권도(跆拳道)에서 '도'를 뺀다면 그건 주먹으로 치고 발로 차서 상대에게 상처를 주는 싸움박질이 되겠죠. 하지만 태권도는 '도'입니다. 태권도 수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신'입니다. 태권도 수련의 근본 목적은 기술을 습득하는 운동 자체에 있기보다 운동을 통해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다운 사람'을 길러내는 데 있습니다. 무도로서 태권도는 자기 발전과 정신적 수양을 목적으로 한다는 걸 잊어선 안 됩니다." 2024.01.12 09:00
연예일반

웃찾사 출신 유튜버 ‘흔한남매’ 부모된다... 깜짝 임신 소식

유튜버 ‘흔한남매’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지난달 28일 개그맨 한으뜸, 장다운 부부가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흔한남매’에는 ‘흔한쀼 아기가 생겼습니다!!!’라는 제목과 함께 동영상이 공개됐다. 영상 속에는 장다운이 남편 한으뜸에게 깜짝 임신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이벤트를 계획하는 과정들이 담겼다. 잠시 뒤 한으뜸은 두 줄이 그려진 임신테스트기를 보고 놀란 듯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이후 장다운과 한으뜸은 서로를 부둥켜안으며 기쁨을 만끽했고, 보는 이들을 뭉클하게 했다.이를 본 누리꾼들은 “너무 축하드려요”, “두 분 닮아서 유쾌한 아이일 듯”, “제가 왜 눈물이 나는지” 등의 반응을 보이며 축하했다.‘흔한남매’는 구독자 263만 명(10월 2일 기준)을 보유한 인기 키즈 유튜버다. 한으뜸은 중학생 오빠 ‘으뜸’, 장다운은 초등학생 여동생 ‘에이미’로 분해 일상 에피소드를 전하고 있다.한으뜸과 장다운은 1988년생 동갑내기로 SBS 공채 13기 개그맨 동기로 SBS ‘웃찾사’를 통해 인연을 맞았다. 10년간 열애 끝에 2020년에 결혼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세 차례 결혼식을 미룬 끝에 백년가약을 맺었다.김지혜 기자 jahye2@edaily.co.kr 2023.10.02 09:48
연예일반

‘부활’ 구수환 감독, 톤즈 한센인마을에 이태석 초등학교 개교

한센인마을에 이태석 초등학교가 생겼다. 영화 ‘부활’의 구수환 감독은 19일 자신의 SNS를 통해 톤즈 한센인 마을 이태석 초등학교 소식을 알렸다. 남수단 정부의 지원이 끊겨 문을 닫았던 톤즈 한센인 마을의 라이촉 초등학교가 이태석 재단에서 인수해 19일부터 정상 운영을 시작했다. 이태석 초등학교는 유치원생 34명과 초등학생 100명이 다닐 예정이며 교사 5명과 직원 3명이 근무한다. 구수환 감독은 “교실에 책상이 들어서고 교복을 입은 아이들을 보니 가슴이 뭉클하다”고 말했다. 학교가 문을 여는 자리에는 톤즈 정부, 한센인 마을 주민들이 참석해 축하를 했는데 오랜만에 웃음이 가득했다는 전언. 이태석 신부가 톤즈를 떠난 지 14년 만이다. 구 감독은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을 보고 정말 잘한 결정이라는 생각을 했다”며 학교가 문을 열수 있도록 도움을 준 이태석 재단 현지 직원과 이 신부의 제자들에게 깊은 고마움을 전했다. 재단의 현지 책임자인 타반볼딩은 이 신부의 제자로 영화 부활을 촬영할 때 알게 된 주인공이다. 당시 외국 NGO에서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 신부와 특별한 인연이 있어 구 감독이 재단 일을 부탁했다고 한다. 그는 이태석 재단 장학생과 함께 교실에 페인트를 칠하고 책상과 교복을 마련하기 위해 애를 썼는데 교사가 부족한 사실을 알고 초등학교 3~4학년을 직접 가르치겠다고 나설 정도로 학교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다. 이태석 재단에서는 아이들에게 또 다른 큰 선물을 준비했는데 한국과의 화상 수업이 가능하도록 장비와 시설을 마련했다. 앞으로 미술 등 다양한 수업을 통해 아이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할 계획이다. 구수환 감독은 “아무도 꿈꾸지 못한, 누구도 생각지도 않은 것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후원자분들의 진심을 담은 사랑”이라며 “행복하고 사랑이 넘치는 학교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2.12.20 15:01
사회

학교폭력 '교육적 해결' 토론회 개최...경기도민 '관계회복 초점'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가 열린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김병욱 국민의힘 의원과 문정복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하는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토론회’가 오는 14일 오전 9시30분 국회 의원회관 내 11간담회의실에서 개최된다. ‘교육적 해결’이란 학교폭력 사안 처리의 중심에 학생의 치유와 성장이라는 가치를 두는 것을 의미한다. 임태희 경기도교육청 교육감은 “현행 학교폭력예방법은 학교폭력 발생 시 절차와 규정에 따른 사안 처리를 강조하다 보니 교육적 해결을 위한 절차와 지원 방안이 미흡하다”며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을 강화하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개선안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2019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개정을 통해 2020년 3월 1일부터 일선 교육지원청에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심의위원회)를 설치해 학교폭력 사안을 심의하고 있다. 심의위원회 운영 이후 학교폭력 심의 전반에 대한 신뢰도 제고 등 긍정적 효과가 큰 반면 교육적 해결을 위한 중재 노력에는 다소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이에 사소한 갈등·다툼, 초등학교 저학년 사안 등의 경우 처벌보다는 가해·피해 학생 모두 학교생활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아울러 학생들이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과 힘을 길러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실제로 경기도교육청이 지난 10월 경기도민 약 12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여론조사를 진행한 결과 경미한 학교폭력의 경우 학교장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권한이 지금보다 강화돼야 한다는 응답이 74.2%, 초등학생 저학년의 경우 학교폭력예방법에 따라 처리하기보다 교육적 목적에 따라 관계회복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응답이 75.3%로 나타났다. 이날 토론회는 한유경 이화여대 학교폭력예방연구소장이 좌장을, 손정락 경기도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 장학관이 사회를 맡고, 박정행 경기도교육청 학생생활교육과장(주제: 경기도교육청 학교폭력 현장지원 체계 및 교육적 해결 정책)과 박주형 경인교대 교수(부제: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 필요성 및 방안)가 발제자로 나선다. 패널로는 이지은 교육부 학교생활문화과장, 김승혜 유스메이트 아동 청소년 문제연구소 대표, 정재욱 전북교육청 민주시민교육과 주무관, 장권수(변호사) 광주하남교육지원청 심의위원, 박현진 광명초 교사 등이 선정됐다. 김병욱 의원은 “화해·관계회복 중심의 교육적 해결을 통해 학생·학부모 등 학교 공동체의 신뢰를 높여나가야 한다”며 “학교폭력의 교육적 해결, 나아가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국회·교육청·교육 현장이 머리를 맞대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정복 의원은 “기존 학교폭력 대책은 사전예방과 교육적 해결 측면에서 미비한 점이 없지 않았다”며 “학교폭력으로 학생·학부모·교원 모두가 상처받지 않고 평화로운 학교 문화가 정착할 수 있도록 법·제도 개선 및 정책 지원에 힘쓸 것”이라고 밝혔다. 토론회는 경기도교육청TV 유튜브로 생중계된다. 김병욱·문정복 의원, 임태희 교육감, 교사, 학부모 등 50여 명이 참석한다. 김두용 기자 k2young@edaily.co.kr 2022.12.09 10:44
연예일반

이태석 초등학교 생긴다… ‘부활’ 구수환 감독 “故이 신부와 약속”

‘부활’ 구수환 감독이 뜻깊은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이태석 재단은 아프리카 남수단 톤즈의 라이촉 마을에 이태석 초등학교(Lee TaeSeok primary school)가 생긴다고 23일 밝혔다. 재단에 따르면 이태석 초등학교는 다음 달 4일 문을 연다. 이 학교에는 유치원생 34명과 초등학생 100명이 다닌다. 교사 5명과 직원 3명이 근무한다. 이태석 초등학교가 문을 여는 라이촉 마을은 톤즈에서 차로 40분 거리에 있는 한센인 정착촌이다. 고(故) 이태석 신부가 한센병 환자 치료를 위해 마련한 곳이다. 고 이 신부는 매일같이 이곳을 찾아 진료하고 옷과 신발도 만들어주었으며 비를 피하도록 방도 만들어 준 것으로 알려졌다. 초기에는 500명의 주민이 살았지만 이 신부가 떠난 후 외부인의 발길이 뚝 끊기고 의료와 식량 지원도 없는 고립된 섬으로 전락했다는 게 재단의 설명. 이곳을 다시 찾아간 이가 바로 영화 ‘부활’의 구수환 감독이다. 그는 마을을 방문할 때마다 고 이태석 신부를 애타게 찾는 한센인의 눈물을 보면서 고인의 사랑을 부활시키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태석 초등학교의 시작은 어느 공립 초등학교로 돌아간다. 남수단 정부의 어려움으로 예산지원이 중단돼 문을 닫은 공립 초등학교를 보고 이태석 재단은 직접 운영하겠다는 제안을 남수단 와랍주에 넣었고, 이를 받아들이며 초등학교가 열리게 됐다. 교사의 월급, 학습기자재, 학비는 재단이 지원하고 대신 학교 이름을 이태석 초등학교로 변경하는 조건이었다. 재단이사장인구수환 감독은 “학교 운영은 대단한 자랑거리가 아니라 고 이태석 신부가 생전에 해오던 일을 계속해서 이어가겠다는 이 신부와 약속”이라며 “무엇보다도 어린아이들에게 이 신부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2020년 이태석 재단 이사장에 취임한 구 감독은 우선적으로 한센인 마을에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했다. 지난해는 고 이태석 신부의 제자인 의과대학생을 마을에 보내 무료진료도 시작한 바 있다. 이태석 재단의 이러한 노력은 한센인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다. 손가락 발가락이 없어 움직임조차 힘들어하던 주민들이 소에 쟁기를 걸어 농사를 짓기 시작하는 등 마을 자체가 변화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구수환 감독은 “주민들이 보내온 사진을 보며 너무나 놀랐다”며 “이 모든 것은 재단 후원자분들이 만들어낸 기적”이라고 감사를 표했다. 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2.11.23 11:59
스포츠일반

[IS 피플] 나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뜨겁다... ‘장애체전 MVP’ 윤경찬의 이중생활

“전문 운동 선수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려면 내가 더 노력해야 하는 게 맞다. 나의 목표는 패럴림픽 입상이다.” 휠체어육상 선수 윤경찬(30·경기)은 지난달 24일 울산에서 끝난 제42회 전국장애인체육대회(장애체전)에서 3관왕에 올랐다. 휠체어육상 남자 100m T53, 200m T53, 계주 400m T53, 54에서 금메달을 쓸어 담았다. 400m T53에서도 은메달을 목에 걸며 출전한 4개 종목에서 모두 메달을 받았다. 그는 출입기자단 투표 24표 중 20표를 받아 최우수선수(MVP)에 선정됐다. 윤경찬이 참가한 남자 계주 400m 경기가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당시 경기, 서울, 경북이 출전한 경기에서 3등으로 처졌던 경기는 4번 주자 윤경찬이 레이스를 시작하자마자 단숨에 역전 우승에 성공했다. 윤경찬은 “마지막 경기이니까 부담감을 내려놓고 ‘유종의 미를 거두자’는 생각이었다. 컨디션이 좋지 않았지만, 스트로크를 일정하게 한 게 주효했다”고 했다. 윤경찬은 ‘이중생활’을 하는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다. 본래 캐릭터는 교사, 부가 캐릭터는 휠체어육상 선수다. 초등학생 때 교통사고로 하체 장애를 얻은 그는 한국체육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진학해 특수교사의 꿈을 가졌다. 2017년 2월에 임용고시에 합격한 후 2017년 3월 탄벌중학교에서부터 특수교사로서의 인생을 시작했다. 현재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 초등교육지원과에서 근무 중이다. 윤경찬이 휠체어육상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해부터다. 탄벌중학교 재직 당시 제자들을 이끌고 전국장애인학생체전에 인솔 교사로 참여한 바 있는 그는 운동으로 휠체어육상을 시작했다가 선수의 꿈을 갖게 됐다. 오전에는 순회 교육, 오후엔 행정 업무를 하며 교사로서의 본분을 다한 다음 퇴근 후 오후 6시 30분부터 약 2시간 동안 안산와~스타디움의 트랙을 질주한다. 윤경찬은 “본업은 교사다. 그런데 선수이기도 하다”라며 웃은 뒤 “기관장(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 교육장)의 허가를 받아 겸직하고 있다. 장애를 가진 특수교사가 운동하니, 장애 인식 개선의 한 방향으로 좋게 생각해주셨다. 메달 소식을 접한 제자들에게서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교육적 보람을 느끼고, 내가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5일 야간에 이어 토요일 오전까지 훈련을 갖는 윤경찬에게 큰 힘이 되어주는 건 친구들의 응원이다. 교통사고 당시 현장의 목격자였던 이들이다. 실의에 빠져있던 윤경찬에게 힘이 되어주고자 친구들은 매주 병문안을 와 시간을 보냈다. 윤경찬은 “나의 앞에는 큰 장벽이 있었는데, 나를 업어서 장벽을 넘게 해준 고마운 친구들(김경동, 김광용, 임종하, 박건우, 김태형)이다”며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윤경찬의 꿈은 패럴림픽 입상이다. 올해 처음 국가대표로 선발된 윤경찬은 지난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장애인육상그랑프리 대회에서 T53 100 3위, 400m 2위에 올랐다. 그는 “내년 7월 파리에서 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 출전해 파리패럴림픽 출전권을 얻어낼 것이다. 패럴림픽에서 정상의 자리에 서서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순간이 왔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김영서 기자 zerostop@edaily.co.kr 2022.11.09 09:02
축구

[단독인터뷰]기성용 초등 감독 "성폭력은 절대 없었다"

기성용(FC 서울) 성폭력 사태가 진실공방으로 흐르고 있다. 기성용에게 초등학생 시절 성폭력을 당했다는 주장이 제기됐고, 이에 기성용은 '사실 무근'이라고 부인했다. 법적대응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또 기성용 성폭력을 폭로했던 피해자들이 중학교 시절 성폭력 가해자였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실제로 전남의 한 중학교 축구부에서 성폭력 사태가 일어나 큰 논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성용의 초등학교 스승이 입장을 밝혔다.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그는 감독이었다. 그는 강한 어조로 기성용의 성폭력은 없었다고 주장했다.그는 25일 일간스포츠와 인터뷰에서 "내가 당시 팀을 관리하는 감독이었다. 성폭력을 몰랐던 게 아니다. 성폭력은 절대로 없었다"고 강하게 밝혔다. 이어 그는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소원수리를 받았다. 선수들은 말다툼도 못했다. 나쁜 짓을 하면 엄청나게 체력훈련을 해야 했다. 인성교육을 철저히 시켰다. 합숙을 하면서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었다. 내가 봐주는 스타일의 지도자가 아니다. 만약 일어났다면 내가 모를 리 없다. 어떤 이야기도 듣지 못했다"고 강조했다. 당시 함께 숙소 생활을 했던 한 선수에게 연락도 받았다. 그는 "그때 제자가 '기사를 보고 정말 어이가 없었다. 합숙생활을 하면서 그런 일은 없었다. 괴롭힘이 있었다면 감독님이 잡아줬기 때문에 그런 일은 일어날 수 가 없었다'고 말했다"고 말했다. 기성용과 소통도 했다. 그는 "(기)성용이가 절대 그런 적이 없다며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 했다. 법적 대응을 하겠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ongang.co.kr 2021.02.25 10:23
연예

'대한외국인' 김연자 "일본 활동만 30년" 인생 경험으로 퀴즈 승부

트로트계의 대모 김연자가 '대한외국인'에 출연한다.6일 설 연휴를 맞아 아모르 파티로 역주행 신화를 기록한 트로트계의 대모 김연자와 행사의 제왕 박현빈, 차세대 트로트 여신 조정민이 ‘대한외국인’에 떴다. 이날 녹화에서는 한국인 트로트 올스타뿐만 아니라, 이미자 선생님의 독일 출신 애제자 로미나와 예능 유망주 모에카 역시 흥 넘치는 트로트를 뽐내며 신나는 퀴즈 대결을 펼칠 예정이다.특히 한일 양국에서 최정상급 가수로 등극한 김연자의 출연에 많은 이들의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1974년 데뷔한 김연자는 수은등, 아침의 나라에서, 씨름의 노래 등을 크게 히트시키며, 한국을 비롯한 일본 엔카계에서도 그 실력을 인정받아 일본 최고의 가수들만 출연하는 연말 프로그램인 ‘홍백가합전’에 출연하기도 했다.일본에서 활동을 얼마나 했냐는 질문에 김연자는 "작년까지 일본 활동 30주년이었다"고 밝혀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 일본에서 온 모에카 역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도 김연자 씨를 좋아하신다"며 김연자의 인기에 대해 직접 언급하기도 했다.뿐만 아니라 국내에서는 아모르파티로 역주행에 성공하며 각종 대학교, 지역 축제 등에서도 끊임없이 러브콜을 받으며 소위 말하는 ‘대세 인증’을 하기도 했는데. MC 김용만은 “요새 아모르 누님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초등학생까지 노래를 따라 부른다. 퀴즈 실력도 기대된다”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내 보였다. 모두의 기대에 김연자는 “3단계 정도만 가도 대 성공이라고 생각한다. 자신 없지만 열심히 해보겠다”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고.본격적인 퀴즈 대결이 시작되자, 김연자는 평소 무대 위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과는 달리 한복을 입고 귀엽게 방방 뛰는 등 애교 넘치는 반전 모습을 드러내 모두를 깜짝 놀라게 했다.국민 아모르 누나 김연자의 숨겨진 퀴즈 실력은 6일 수요일 오후 8시 30분 MBC에브리원 ‘대한외국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황지영기자 hwang.jeeyoung@jtbc.co.kr 2019.02.06 16:18
야구

[창간 단독인터뷰] '금메달 아버지' 이종범·여홍철 "정후·서정 아빠 듣기 좋다"

'금메달 아빠'가 만났다.야구와 체조 종목에서 최고의 스타플레이어였던 이종범(48)과 여홍철(47). 이번에는 그들의 자녀들이 '아버지 명성'의 부담감을 극복하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고의 정상에 올랐던 아버지들의 마음은 같다. "더 미안하고 고맙다"고 했다.이종범 국가대표 코치와 여홍철 경기대 교수는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출신이다. 이 코치는 2002 부산아시안게임 5경기에서 타율 0.353(17타수 6안타) 4득점 2도루로 대표팀의 우승을 이끌었다. 여 교수는 자신의 이름을 딴 '여1' '여2' 기술을 선보이며 1994 히로시마·1998 방콕아시안게임 남자 체조 도마 경기에서 대회 2연패를 차지했다.이제는 자녀 덕에 '금메달 아빠'가 됐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에서 이종범 코치의 큰아들 이정후(20·넥센)는 야구대표팀의 일원으로, 여홍철 교수의 둘째 딸 여서정(16·경기체고)은 여자 체조 개인 도마에서 각각 우승했다.아버지들은 자녀들의 야구, 체조 입문을 반대했다. 하지만 피는 못 속였다. 아버지의 DNA를 고스란히 물려받아 같은 길을 걷고 있다. '바람의 손자'는 만 스무 살, '도마공주'는 열 여섯 살. 그들의 아버지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특히 그들의 아버지는 현지에서 자녀들의 금메달 획득의 영광을 함께했다. 이종범은 대표팀 코치로 합류했다. '아들' 이정후가 출루하면 '아버지' 이종범과 1루에서 만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여홍철 교수는 방송 해설위원으로 관중석에서 딸의 경기 장면을 지켜봤다. 그래서 기쁨이 두 배였다.선수로서 최고였던 둘은 자녀의 선전 속에 또 하나의 진기록을 작성했다. 이종범-이정후는 한국 야구 사상 최초로 '부자(父子) 금메달리스트'가 됐다. 여홍철-여서정 역시 체조 사상 최초로 '부녀(父女) 금메달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특히 여서정은 1986 서울아시안게임 이후 32년 만에 여자 체조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다.사실 두 사람의 인연은 35년여 전 초등학교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구슬땀을 흘리던 그땐, 여러모로 이런 날이 올 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일간스포츠 창간 49주년을 맞아 동반 인터뷰를 요청하자 이종범 코치는 "(여)홍철이와 함께하는 인터뷰라면 꼭 하겠다"고 했다. 여홍철 교수도 "함께하는 인터뷰는 처음이다"며 반겼다. 2시간여의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두 사람은 옛 추억을 더듬고, 앞으로를 축복하며 뜨거운 우정을 자랑했다. - 첫 만남을 기억하는지.여홍철(이하 여)= "초등학생 때 이종범 형이 다니던 서림초에 체육관 시설이 갖춰져 있어 우리 학교 체조부가 항상 오후에 훈련하러 갔다. 당시 (선생님께서 체벌을 위한 지시로) 방망이를 빌리러 종범이 형을 많이 찾았다."이종범(이하 이)= "(웃음)체조부는 엄청 많이 맞더라. 야구부도 많이 맞았지만 유니폼을 입은 상태였고, 체조부는 맨살에 많이 맞아 무섭더라. 체조를 안 하길 잘한 것 같다." - 왜 유독 이종범만 찾아 방망이를 빌렸을까.여= "글쎄. 처음 (방망이를) 빌릴 때 종범이 형에게 갔다. 그다음부터는 아는 사람이 형밖에 없어서 계속 찾았다. 인연이 되려니까 그랬던 거지."이= '(웃음)' - 첫인상은 어땠나.이= "조그마한 친구가 도마, 평행봉을 훈련하는 모습을 봤다. 체조도 도움닫기를 위해 빨리 뛰지 않나. 스피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정도면 야구를 했어도 될 것 같더라."여= "농담으로 밖에서 '내가 야구를 했으면 해태 유격수를 했을 거다'라고 말하고 다닌다.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 해태 유격수라면 이종범과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이 불가피한데.여= "농담이다. 이 사람(이종범)을 어떻게 이기겠나. 정말 야구를 좋아했다. 초등학교 클럽 시간에 야구 수업을 신청했는데 야구부가 없어졌다. 이후 야구부가 다시 생겼고, 양현종(KIA)이 학강초를 나왔더라. 요즘도 사회인야구(여 교수는 여러 종목 국가대표 출신 선수들로 구성된 사회인리그 챔피언스의 단장을 맡고 있다)를 하면서 유격수를 보고 있다. 예전에 2루수를 볼 땐 심판이 내게 '사회인리그 소속 동호인 중 2루를 가장 잘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이= "그렇다면 수준급 실력이다. 나도 사회인 야구를 해 봤는데 많이 다치고, 불안불안한 모습을 보이더라. 사회인 야구에선 안정된 수비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 안 그래도 이번에 아시안게임 중계를 다녀온 뒤 네가 바로 사회인리그에서 뛰는 뉴스를 보고 깜짝 놀랐다. 곧 시간을 내서 경기장을 찾아가 실력을 점검하고, 한번 평가해야겠다." 여홍철/연합뉴스- 반대로 이종범 코치가 체조를 했다면 어땠을 것 같나.여= "한 종목에 어느 정도까지 올라간 선수는 다른 종목을 해도 잘한다고 생각한다."이= "(여)홍철이를 알고선 '그때 텀블링을 배웠어야 한다'는 아쉬움 속에 훈련했다. '조금만 연습하면 되겠다' 싶었지만 원리를 모르니까. 메이저리그에선 아지 스미스가 홈런 치고 나서 텀블링을 했다. 수비 때나 베이스러닝 때 요령 있게 하면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포수가 태그할 때도 텀블링을 해서 피하면 세이프가 되는 상황이 있다. 내가 가진 베이스러닝 기술과 (체조 기술을) 접목했으면 더 재미있는 상황을 연출했을 것 같은데. 완전 획기적이었을 텐데 후회된다. 나만의 생각이다." 잠시 끊겼던 두 사람의 인연은 10여 년 뒤 우연히 다시 이어졌다. 여= "우리가 어렸을 땐 통신망이 잘 갖춰지지 않았다. 서로 각자의 길을 걷다 보니 한동안 연락이 안 됐다. 1996년 군 복무 중인 친구에게 면회를 갔다가 정문에서 (이)종범이 형을 만났다. 당시 31사단에서 (방위) 복무 중이었는데 퇴근한다고 하더라."이= "깜짝 놀랐다. 홍철이가 1996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뒤여서 '얘는 군대에 안 들어오는데, 왜 왔지?'라는 생각에…."여= "당시 정말 반가웠고 고마웠다. 나는 언론을 통해 (이)종범이 형의 활약과 소식을 알고 있었다. '과연 날 기억하고 있을까' '날 알아봐 줄까' 싶었다. 그래서 기쁨과 반가움이 두 배였다."이= "그렇게 다시 인연이 됐다. 1996년 10월 17일 광주에서 열린 해태-현대의 한국시리즈 2차전 시구자로 구단에 홍철이를 추천했다. 오래됐네."여= "맞다. 당시 시구자로 나섰다."이= "학창 시절 때는 인생이 이렇게 화려해질지 몰랐다. 어렸을 땐 빈곤했다. '국가대표가 되고 싶다'는 목표 속에 '헝그리 정신'을 앞세워 열심히 땀을 흘렸다. 홍철이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땄고, 나는 프로에서 열심히 뛰었고." - 서로의 선수 시절 모습을 유심히 지켜봤겠다.여= "야구를 좋아해서 종범이 형, 해태와 관련된 뉴스를 많이 봤다."이= "비록 몸과 마음은 떨어져 있었지만 1996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 때 굉장히 아쉬웠다. 좋아하는 후배였으니까…. 올림픽 체조 사상 첫 금메달을 염원하며 착지 순간에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요즘도 두 사람은 자주 통화하고, 가끔씩 골프 치는 것도 함께한다. 이야기 주제는 잠시 골프로 흘러갔다. 여홍철 교수가 "야구는 오른쪽에 중심을 두고 때리고, 골프는 좌측에 중심을 놓고 친다. 완전히 다르다. 야구선수들이 (골프 칠 때) 슬라이스가 나오는 이유는 중심을 뒤쪽에 두고 때려서 어퍼스윙이 되는 거다"며 야구와 골프 이론에 대해 한참 동안 얘기를 늘어놓았다. 이종범 코치는 "역시 여 교수, 완전 야구 코치들이 하는 얘기 같아. 야구 이론까지 다 섭렵했네"라며 웃었다. - 이정후와 여서정이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연락을 많이 받았을 텐데.여= "지금까지 연락 한 번 안 온 친구한테 갑자기 메시지가 오더라. 와~ '이 친구 살아 있네' 싶었다. 약 300통의 연락을 받았다. 나흘에 걸쳐 답장했다."이= "메달 획득 소식을 접한 뒤 홍철이와 (여)서정이가 함께 나온 사진을 캡처해 축하 인사를 전했다. 정말 기쁘더라. 인도네시아 선수촌에서 임도헌 국가대표 배구팀 코치를 만났는데 '서정이 몸은 남다르다. 남자 선수 근육 같다. 무조건 메달을 딸 것 같다'라는 얘기를 하더라."여= "예전에는 여자 체조의 경우 마른 체형의 선수가 많았는데, 최근에는 남자 선수 못지않은 기술이 유리하다. 그래서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체조에서 4연패를 차지한 미국의 시몬 바일스처럼 파워풀한 몸매의 선수가 많다. 아시아권 체조가 고전하는 이유도 힘이 부족해서다. 그런데 서정이가 최근 '아빠, 나도 여자고 싶어'라고 하더라." 이= "한창 (외모에) 관심 있는 나이인데. 운동을 안 하면 체중과 근육량은 2~3주면 금방 빠진다고 말해 줘." 여= "네. 만약 아들이 있었다면 야구를 시켰을 거다. 그랬다면 같이 캐치볼도 하고 그랬겠지. 부모가 관심 있는 종목을 시키기 마련이니까." - 자녀의 운동선수 생활을 말리진 않았나.이="사실 여기까지 오는 과정이 굉장히 힘들었다. 게다가 아빠가 화려한 선수 생활을 했기에 (이)정후가 멘틀적으로 흔들리지 않을까 많이 걱정했다. 차라리 다른 종목을 했다면 내가 문외한이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았겠지만)…. 그래서 축구, 골프, 쇼트트랙 등 다른 종목을 많이 시켜 봤다. 그런데 정후가 어릴 적부터 두드러진 게 공으로 하는 종목을 잘하더라. 야구공, 테니스공, 축구공을 원했고 장남감을 사 달라고 한 적이 없다. 심지어 책상 아래로 슬라이딩을 하더라. '나중에 뭐 하려고 그러지' 싶었다. 마음속으로는 '야구는 하면 안 될 텐데'라고 생각했다. 나 때와 환경도 다르고, '헝그리 정신'도 부족한 것 같고. 고등학교에 진학하거나 프로에 진출하면 많이 힘드니까 '야구 말고 다른 종목을 해 보라'고 권유도 했다. 엄마의 선택이 가장 큰 영향을 끼쳤다. (정후의 야구 입문과 관련해) 두려움이 앞섰다. 프로에서 성공하기 전까지 엄청 불안하고 초조했다."여= "역시나 (여)서정이가 체조를 하려고 할 때 나도 말렸다. 아내가 2009년 국가대표 체조 코치를 역임할 때 자연스럽게 서정이가 체조장에서 놀곤 했다. 체조를 따라 하는데 곧잘 하더라. 큰딸보다 (여)서정이가 훨씬 잘하더라. 어느 날 (여)서정이가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당황했다. 그래서 용인대 체조 영재센터에 보냈다. 20명 정도 있었는데 눈에 확 띄었다. 계속 체조를 하고 싶다고 하더라. 서정이가 어렸을 때 서울과 광주에 있는 학교를 다녀서 떨어져 지냈는데, 주말에 학교에 데려다주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더라. 또 몇몇 부모들은 서정이의 체조부 생활을 반대했다. 담당 코치가 내 제자뻘이니까 '본인 자식이 불이익을 당할 것 같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더라. 그래서 지금도 죄인 아닌 죄인으로 살고 있다."이= "나도 (이)정후 학창 시절 때 일부러 학교를 한 번도 안 찾아갔다." - 아버지의 DNA를 물려받은 것 같나.이= "당연하다. 어떤 플레이를 하면 '나도 그랬는데 비슷하네'라고 가끔 생각하기도 한다. 그런데 DNA는 물려받더라도 가르침은 엄마의 영향력이 크다. 100을 놓고 보면 엄마의 몫이 90%라고 본다. 아빠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면, 엄마가 인성을 비롯해 그외 많은 교육을 맡는다. 별로 (이)정후에게 많은 말을 하진 않는다. 올봄에 좋은 활약을 펼치다 여름에 나태해지기에 식사 자리에서 한 번 엄청 질책했다."여= "나도 엄마의 역할에 동의한다. 기량은 나보다 나은 것 같다."이= "제수씨도 체조선수 출신이니까."여= "(웃음) 서정이에게 '체조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고 얘기한다. 예를 들어 국가대표 5명을 뽑는데 실력이 엇비슷해 5등으로 겨우 선발되면 '부모의 영향력 때문에 뽑혔다'는 이야기가 나돌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이= "그렇지."- 이번에 메달 획득을 각각 그라운드와 중계 부스에서 봤다.여= "내가 더 긴장되더라."이= "말 안 해도 알 것 같다. 속으로 얼마나 '넘어지지 마라'고 (기도를) 했는지…." 여서정과 여홍철 부녀/연합뉴스여= "아버지의 마음으로 응원하는 게 아니라 해설위원으로서 전달해야 되는 입장이니 속마음과 달리 (흥분과 긴장감을) 자제하려고 노력했다."이= "나 역시 억누르게 되더라. 금메달을 획득하면 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제 됐다' 싶었다. 정후한테 고맙더라. 이제 갓 스무 살 된 선수가 1번 타자를 맡으니 내가 더 부담스럽더라. 아무리 약팀과 승부라 해도 잘 헤쳐 나가야 했다. 농담이지만 김재현 코치한테 '(이)정후를 9번 타순에 넣어 줘. 타선이 적게 돌아가도록'이라고 한 적도 있다. 판단력과 선수 보는 안목이 좋은 김 코치가 '정후는 충분히 1번을 맡겨도 잘할 겁니다'라고 하더라. 사실 1루 베이스코치와 주자로 만나도 공과 사는 구분해야 되니 감정 표현을 거의 안 했다. 또 일본과 대만전은 투수 견제력을 알려 주고 대표팀 아웃 카운트도 다시 한 번 주지시켜 줘야 한다. '리드 폭과 주저하면 다치니까 슬라이딩을 거칠고 빠르게 하라' 등 기술적 조언을 처음 해 줬다."여= "당시 예정된 TV 중계가 태풍 북상으로 취소됐다. 당시 KBS2 채널에선 여자 배구 (가장 관심을 모은) 한국-중국전 예선 중계가 잡혀 있었다. 그래서 중계 직전까지 편성 여부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서정이가 출전한 체조 종목 중계로 대신했다. 그날 서정이가 금메달을 못 땄으면 큰일 날 뻔했다고 하더라." - 자식 자랑을 한다면.이= "칭찬할 게 없다. 아들이라 그런지 대화도 많이 하지 않는다. 엄마가 바라는 아들의 역할도 못 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해한다. 선수 시절을 떠올리면 습성이 나와 비슷하다. 야구선수는 하루에 10시간을 잠자고, 10시간은 그라운드에서 생활한다. 남자들은 집안에서 인터넷, 게임, 친구들과 연락하며 시간을 대부분 보내지 않나. 엄마가 잔소리하면 PC방 혹은 카페에 가더라. 사실 나도 그렇게 해 왔다. 그래도 아빠처럼 좀 더 엄마에게 살갑게 대하는 아들이 됐으면 한다." - 그래도 칭찬한다면. 이= "칭찬할 만한 게 없다. 딱 한 가지, 지금까지 사고를 안 치고 무난하게 선수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여= "운동 외적으로 보면 주변 사람들을 챙기는 스타일이다. 퍼 주기도 하고. 나와 엇비슷한 것 같다. 쉬는 날엔 친구나 선후배들과 나가서 같이 놀고, 성격이 모나지 않아 좋은 것 같다." 이종범과 이정후 부자/연합뉴스- 자녀에게 기술적인 조언도 하나.여= "내가 지도하고 싶어도 한창 배워 가는 단계에서 서정이가 헷갈려 할 수 있다. 어릴 때 집에서 체조에 관해 얘기하면 '아빠, 나 쉬면 안 돼'라고 하더라. 그래서 될 수 있으면 특별히 얘기하지 않는다. 본인이 답답하면 먼저 연락해서 물어 온다. 그러면 동영상을 찍어서 보내 달라고 한 뒤 조금씩 조언해 주지만 될 수 있으면 안 한다. 대개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서정이한테 연락이 올까 말까 한데 이번 아시안게임 기간에는 연락을 정말 많이 해 오더라. 아무래도 국제 종합대회는 처음이어서 그랬나 보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의미다."이= "절대 물어 온 적이 없다. 눈빛만 봐도 알기 때문에 '무조건 쉬라'고 한다. 정타가 안 나오면 체력이 떨어졌다는 의미다. 그럴 땐 '밖에 나가지 마라'고 할 뿐이다." - 이종범 코치는 올해 이정후를 보기 위해 잠실구장 외야에서 관전하는 모습이 TV 중계 화면에 잡힌 적이 있다. 자녀 몰래 가끔씩 경기장에 방문하나.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너는?"여= "심판위원도 역임하고 있어 경기장에서 서정이의 모습을 항상 본다."이= "맞다. 사실 당시 에피소드가 있다. 아내가 '잠실구장을 한 번 가 보고 싶다'고 하더라. 그래서 일부러 외야석으로 가자고 했다. 괜히 중앙에서 보면 '(선수 출신이라) 대접받는다'는 이야기가 나올까 봐, 또 팬들이 몰릴 수 있어서였다. 아내가 '모자를 쓰고 가는데 어떻게 당신을 알아보냐'고 하더라. 그래서 장난으로 50만원 내기를 했다. 티켓을 끊고 외야석에 들어선 지 1분 만에 내가 이겼다. 아내가 '이제는 당신하고 함께 야구장에 못 오겠다'고 하더라." - 그동안 '이종범의 아들' '여홍철의 딸'이 아닌 이젠 'OOO의 아버지'로 많이 불릴 것 같다.이= "그렇다. 또 그게 맞다고 본다. 솔직히 '이종범'보다 '정후 아빠'라는 이야기가 훨씬 더 듣기 좋고 대접받는 것 같다. 아들(이정후)이 실력으로 이겨 냈고."여= "'서정이 아빠'라는 수식어가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 사실 여홍철, 여서정 각자로 불렸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서로 부담이 더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한 가지 고른다면) '서정이 아빠'가 낫다. 나는 이제 가는 세월이고.(웃음)"이= "차범근 감독의 아들 차두리 선수가 정후를 만나 '네 마음을 잘 알 것 같다'고 했다고 한다. 2세 선수들은 얼마나 부담감이 크겠나. 오히려 우리들이 얘들한테 미안하다. 아빠보다 뛰어나면 더 좋다."여= "마찬가지다. 나보다 더 높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게 부모 마음이다." - 서로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한다면. 이= "홍철이는 대학교수를 역임하고 있고 체조계에서 큰 역할을 하는 만큼 앞으로 건강하고 생각대로 다 이뤘으면 한다." 여= "어릴 적부터 해태팬이었지만 형이 한화에서 코치 생활을 할 땐 한화팬이 되기도 하더라."이= '(웃음)'여= "팬으로서 후배로서 형이 앞으로 감독까지 맡았으면 한다. 그래야 주변에 또 자랑할 수 있다.(웃음)" 이형석 기자 lee.hyeongseok@jtbc.co.kr 2018.09.21 06:00
축구

1998년 한국이 버린 '차붐' 위로한 중국 선전…'20년의 약속'

사진=스포츠공감 제공1998년 차범근은 한국 축구의 '역적'이었다.1998 프랑스월드컵에서 한국 대표팀을 지휘했던 차범근 감독은 월드컵 참패의 원흉으로 낙인찍혔다. E조 1차전 멕시코와 경기에서 1-3 역전패를 당한 뒤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0-5 참패를 당했다. 대한축구협회는 초유의 월드컵 도중 감독 경질이라는 선택을 했다. 한국 축구가 한국 축구의 '영웅' 차붐을 처참하게 버렸던 장면이다.차 감독은 더 이상 한국에 있을 수 없었다. 온갖 비난의 목소리와 대한축구협회의 외면으로 한국 축구에 차 감독이 자리 잡을 수 있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서 차 감독은 중국으로 떠났다. 바로 중국 광둥성의 '선전'이었다. 차 감독은 1998년 7월 선전 핑안 감독으로 부임했다.지금이야 선전은 경제 발전으로 중국 4대 도시로 IT 산업의 중심 도시로 유명하지만 당시는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였다. 그리고 차 감독에게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던 따뜻한 장소였다. 차 감독은 이곳에서 1999년 12월까지 머물렀다. 그에게 선전은 나락으로 몰렸던 자신을 위로해 준 곳 그리고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 준 장소기도 하다. 20년 뒤 차 감독이 다시 선전을 찾았다. 선전에 진 마음의 빚을 갚고자 그리고 20년 전 선전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차붐은 몸과 마음을 선전으로 이끌었다. 사진=스포츠공감 제공19일 선전 샹그릴라 호텔에서 '팀차붐 플러스 론칭 기자회견'이 열렸다. 내외신 취재진 60명 이상 운집하는 등 선전에서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팀차붐 플러스는 한국에서 진행하고 있는 팀차붐 유소년 프로그램을 한국을 넘어 아시아 전역으로 넓히는 프로젝트다. 그 시작이 중국이다. 차범근 축구 교실로 한국 유소년 축구에 큰 힘을 쏟아 온 차붐이다. 차범근축구상은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해 차범근축구상을 수상한 11인은 팀차붐이라는 팀을 꾸려 독일 원정을 다녀왔다. 한국 축구의 미래는 유소년에게 달렸다는 차붐의 철학과 유소년을 발굴해 한국 축구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차붐의 소명이 합쳐진 작품이다. 이제 차붐은 중국에 첫발을 내디뎠다. 기존 팀차붐과 차이점도 있다. 팀차붐은 초등학생 육성에 집중하고 있고, 팀차붐 플러스의 대상은 중학생이다. 초등학생에 이어 중학생도 발굴하겠다는 차붐의 신념이 만들어 낸 결과물이다. 사진 = 스포츠공감 제공"선전에 마음의 빚이 있다."선전에서 만난 차붐은 그윽한 표정을 지은 채 말을 꺼냈다. 그는 "1998년에 나는 정말 많이 힘들었다. 한국에서 상황은 어려웠다. 많은 괴롭힘도 받았다"며 "그때 나를 받아 준 곳이 선전이다.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였다. 이곳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정말 고마운 도시"라고 20년 전을 떠올렸다.1년 반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선전이 차붐에게 준 감동은 컸다. 차붐은 "선전에 있을 때 나의 제자들, 팬들은 지금까지 나를 잊지 않고 반겨 준다. 내가 선전으로 오면 이들은 항상 나를 반겨 줬고, 나를 보기 위해 먼 거리를 달려온 친구들도 있었다. 진심을 느꼈다"며 미소를 보였다.이런 감동은 항상 차붐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반드시 보답하겠다고 다짐했다. 1999년 차붐은 선전을 떠났다. 재계약 제의가 강했지만 아내가 아팠다. 폐 수술을 해야 했다. 선전과 이별할 수밖에 없었다. 선전을 떠나면서 차붐은 이렇게 약속했다."선전이 나를 사랑해 주고 위로해 줬다. 언젠가 선전에서 좋은 축구로 후진을 양성하겠다. 선전 축구 발전을 위해 차범근 축구 교실을 열겠다."이 약속이 '20년' 만에 지켜졌다. 그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꾸준히 기회를 노렸지만 수차례 무산됐다. 이번에는 중국 국영기업인 중정문체발전관리유한공사의 후원으로 성사할 수 있었다.차붐은 "중국에서 유소년 프로젝트를 함께하고 싶다는 제의가 왔다. 처음에는 반대했다. 한국에서도 할 일이 많고, 많은 제의도 뿌리쳤다"며 "지속적으로 제의가 왔다. 그래서 선전에서 시작하면 수락하겠다고 내가 역제안을 했다. 받아들여졌다. 선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너무 기쁘다"고 설명했다.시작은 선전이지만 크게는 중국 축구 전체 발전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차붐은 "중국 축구는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나의 축구 삶을 보여 주면서 중국 유소년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유소년이 변하면 중국 축구 전체도 변한다"고 강조했다.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는 중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매해 범위를 확대해 아시아 축구 전체적인 발전을 꿈꾸고 있다. 아시아축구연맹(AFC)에 속한 46개국 대상으로 아시아 유소년 기량을 높이는 차원으로 진행될 예정이다. 차붐은 한국 축구 영웅이기도 하지만 아시아 축구의 영웅이다. 그가 분명히 아시아 축구에서도 할 일이 있다. 이는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이 부탁한 일이기도 하다. 인판티노 회장은 팀차붐 플러스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도움을 주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나도 이제는 아시아 축구를 위해 무엇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목소리를 높인 차붐은 "아시아에서 한국과 일본만 잘한다고 아시아 축구가 발전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동남아시아·중동 등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경쟁해야 함께 발전할 수 있다. 이번 프로젝트가 아시아 축구 발전에 힘이 되고, 월드컵에서도 아시아 축구가 선전하는 날을 꿈꾼다"고 말했다."나는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98골을 넣었다.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왜 100골을 채우지 못했냐고.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2골 중 1골은 한국 축구 발전을 위해, 1골은 아시아 축구 발전을 위해 남겨 뒀다' 인생에서 남은 시간 동안 최선의 노력을 다해 나머지 2골을 꼭 채우겠다."차붐이 한국과 아시아 축구의 '희망'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선전(중국)=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8.07.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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