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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일반

'어겐마' 김재경, 캐릭터에 날개 달았다

배우 김재경이 '어게인 마이 라이프'를 통해 캐릭터에 날개를 달았다. 인생 2회차, 능력치 만렙 열혈 검사의 절대 악 응징기를 그린 SBS 금토극 ‘어게인 마이 라이프’(이하 ‘어겐마’)가 시청률 상승 곡선을 그려가는 가운데, 이준기(김희우)의 인생 조력자 김한미 역으로 사랑받고 있는 김재경이 이번 작품에서도 성공적인 연기 변신을 거듭했다. ‘어겐마’ 극 초반 김재경은 탐욕에 눈먼 검사 최광일(김석훈)의 혼외자로 자란 탓에 방황을 일삼는 한미를 구현하며 첫 등장부터 시청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후 이준기의 도움으로 김재경은 가슴 한편에 자신도 모르게 숨겨져있던 변화의 싹을 틔웠고, 그의 강한 의지로 이준기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정의로운 기자로 성장했다. 또한 김재경의 가슴 아픈 서사는 보는 이들의 눈가를 촉촉이 적시기도. 아버지 최광일은 항상 입맛대로 김재경을 재단하려 했고, 그럼에도 꿋꿋이 제 뜻을 굽히지 않고 맞섰다. 반면 뒤에서는 상처 입은 눈빛과 달리 덤덤한 모습으로 짠내를 유발했다. 특히 지난 12회에서는 이준기에게 최광일을 확실히 보내달라고 부탁하며 지원사격을 약속한 김재경의 태연한 모습은 시청자들의 가슴까지 먹먹하게 만들었다. 이처럼 김재경은 악에 맞서는 당당한 기자의 모습부터 감성을 자극하는 '맴찢' 서사를 탄탄히 쌓아나가며 ‘어겐마’의 필수 캐릭터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이 밖에도 이준기와의 케미스트리는 안방극장에 과몰입을 불러일으켜 매회 즐거움을 선사하고 있는 상황. 이 가운데, 남은 회차에서 어떤 행보를 보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박정선 기자 park.jungsun@joongang.co.kr 2022.05.20 09:13
야구

[김인식의 클래식] 1960년대 서울대 야구부를 추억하며②

최근 들어 옛 서울대 야구부원들을 만났다. 1964년부터 1968년까지 서울대 야구부에서 활약했던 이들이다.김영하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과 교수와 윤영섭 학교법인 계원학원 이사장이다. 김 교수는 한국과학기술연구원 고분자연구부장을 지냈다. 윤 이사장은 고려대학교 부총장을 거쳐 지금은 고려대 경영대 명예교수다.특히 윤 이사장과는 인연이 깊다. 배문고 재학 시절 경기고 야구선수였던 윤 이사장과 맞붙었던 추억이 있다. 1984년 동국대 감독 시절 미국으로 워싱턴 스테이트 유니버시티 야구팀과 친선 경기를 하러 갔을 때도 우연히 재회했다. 윤 이사장이 당시 그 학교에 교수로 재직했다. 나를 알아보기에 반갑게 인사했다. 윤 이사장은 한국에 돌아온 뒤 10년간 고려대 야구부장을 역임했다.그렇게 만나서 서울대 야구부의 역사를 듣게 됐다. 1955년에 첫 승을 올린 얘기는 1편에서 했다. 1960년대에도 서울대 야구부는 승리 기록이 있었다. 당시 대학본부 학생처를 통해 훈련비를 지원받았고, 서울시청 야구선수 출신인 고(故) 김재경 감독을 모셔 지도받았다. 문리대, 상대, 공대, 사범대, 농대 등에서 1~3명씩 참여해 팀이 꾸려졌다.경기고와 선린중 야구부 출신, 사범대 체육과 학생, 재일교포, 의대에 다니던 미국인 선수까지 배경도 다양했다. 당시 서울대는 캠퍼스가 동숭동(문리대), 종암동(상대), 태릉(공대), 청량리(사범대), 수원(농대) 등으로 흩어져 있었다. 선수 전원이 모여 훈련하기가 무척 어려웠다. 실제 경기에서도 손발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다.그렇다고 모두 진 것은 아니다. 1963년과 1964년 전국대학추계연맹전에서 2년 연속 7전 전패로 물러났지만, 1965년에는 연세대(4-3)와 동국대(1-0)를 꺾고 2승을 올렸다. 이듬해 1966년 춘계연맹전에선 경희대(1-0)와 동국대(6-2) 전에서 승리했다.그해 추계연맹전에서도 한양대(2-1)를 상대로 1승을 추가했다. (2013년 KBO가 발간한 ‘한국 야구사 연표 1896-1979’와 1999년 대한야구협회가 펴낸 ‘한국 야구사’에는 서울대 야구부가 1965년과 1996년에 총 6승을 올린 것으로 나와 있다. 1965년 춘계연맹전 2승 5패, 1966년 춘계연맹전 2승 6패와 추계연맹전 1승 1무 1패가 기록됐다.)특히 선수들은 1965년 연세대전 승리를 최고의 기억으로 꼽는다. 전날 고려대를 이기고 사기가 충천했던 연세대를 한 점 차로 꺾었다. 약체 서울대를 만만하게 봤던 연세대는 이 일격의 여파로 고려대에 우승을 내줬다. 그 이후 연세대는 서울대만 만나면 이상하게 경기가 안 풀리는 징크스도 생겼다고 한다. 쟁쟁한 멤버도 많았다. 법대 61학번 이영희(투수·외야수) 씨는 이명박 정권 초대 노동부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 1950년대 말 경기고 선수 시절부터 타격의 달인으로 이름을 날렸다. 사범대 64학번 김창룡(포수) 씨는 20년간 용인대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한국전문자원봉사센터 이사장이다.상대 62학번 동기인 이관호 씨와 이두호 씨는 선린중 야구선수 출신이었다. 선린상고를 졸업하고 대학까지 함께 왔다. 특히 이관호 씨는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였다. 1965년 대회에서 이관호 씨가 감투상, 이두호 씨가 타격상을 각각 받았다.당시 멤버들 가운데 일곱 명(김도명, 김영하, 최정웅, 한용희, 박무인, 안영구, 윤영섭)은 1960년대 초반 경기고 야구부의 전성시대를 이끌었다. 고교 3학년 때까지 매일 훈련을 하고 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하면서도 학업으로 치열한 입시 경쟁을 뚫고 서울대에 진학했다. 윤 이사장도 마찬가지였다.그때 서울대 야구부 선수들은 졸업 이후에 사회에서도 성공을 거뒀다. 박사 학위 취득 후 연구원으로 일하다 교수가 된 인물도 있고, 대기업 임원이 되거나 사업으로 크게 성공한 사람도 있다.그때 선배들은 지금도 여전히 서울대 야구부 후배들을 응원하고 있다. 오래 전에도 좋은 성적을 냈던 서울대 야구부의 역사를 기억하면서 힘을 내주길 바라고 있다. 윤 이사장은 후배들에게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언젠가 결과는 따라 온다. 야구를 즐기면서 해 달라"는 당부도 했다.사실 내가 서울대 야구부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금의 학생 야구에 바라는 게 있다. 이렇게 야구를 하면서 공부도 같이 해서 서울대에 들어간 선수들이 있다. 야구를 열심히 해서 크게 성공한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그러나 특급 선수로 성장하는 게 얼마나 힘든가.야구를 한다고 해서 모두가 류현진(LA 다저스), 이대호(시애틀), 오승환(세인트루이스), 박병호(미네소타), 강정호(피츠버그), 김현수(볼티모어)가 되는 게 아니다. 도중에 그만 두고 힘들어 하는 선수들이 훨씬 많다. 비단 야구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에서든 톱 클래스로 성공하지 못했을 때 제 2의 삶을 어떻게 꾸려 나가느냐도 중요하다.꼭 이 분들처럼 서울대를 갈 만큼 공부를 잘 해야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학교에서 공부를 하면서 교우 관계와 여러 가지 상식, 사회 생활에 적응하는 방법 등을 배울 수 있다. 학창 시절 야구를 한 선수가 나중에 사회적으로도 성공한다면, '야구'는 그의 인생에 또 하나의 훈장이 된다.좋은 예가 있다.매년 5월 한국 도미노피자에서 전국리틀야구대회를 개최한다. 오광현 한국 도미노피자 회장이 바로 리틀 야구선수 출신이다.오 회장은 지금까지도 사회인 야구를 한다. 그만큼 야구를 좋아하고, 한때 자신이 야구를 했다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 여전히 사회 각 분야에서 리틀야구를 했던 사람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고 한다. 결국 어릴 때부터 공부를 등한시하지 말아 달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이다. 지도자들에게도 부탁하고 싶은 부분이다. 물론 나 역시 상황이 녹록치 않다는 것을 잘 안다.모든 학교에 훈련할 수 있는 야구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야구부 성적에 대한 압박을 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학생 야구 지도자들 역시 선수들이 자꾸 교실에 들어갈 수 있도록 유도를 해줬으면 좋겠다.과거 우리를 가르쳤던 스승들은 스코어북을 읽고 쓰는 시험도 보게 하고, 틈틈이 한자나 영어 단어를 공부하게 했다. 그게 지금 와서 큰 도움이 된다. 야구를 가르치는 것만으로도 무척 어렵겠지만, 그래도 학생들의 미래를 위해 조금이라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다.김인식 KBO 규칙위원장정리=배영은 기자 2016.06.1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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