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항저우에 애국가를” 복싱 임애지, 메달리스트 아닌 ‘금메달리스트’ 꿈꾼다 [항저우 2022]
생애 두 번째 아시안게임(AG) 출전을 앞둔 복싱 여자 국가대표 임애지(24·화순군청)는 “항저우에 애국가를 울리고 싶다”는 당찬 포부를 밝혔다. 은·동메달보다 이왕이면 ‘금’이 좋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임애지는 한국 복싱의 기대주로 불린다. 어릴 적부터 ‘복싱 천재’ 소리를 듣고 자랐다. 그도 그럴 것이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복싱을 시작해 고교 3년 내내 금메달만 목에 걸었고, 유소년 시절 세계랭킹 1위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반골 기질’ 덕에 복싱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본지와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난 임애지는 “집이 어려웠을 때가 있었는데, 당시 학원도 안 다니고 복싱만 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복싱 다니는 데 돈이 든다며 선수 안 할 거면 뭐 하러 (체육관에) 다니냐고 하더라. ‘선수 하면 그만두지 않아도 되냐’고 물은 다음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오기가 생겼다”고 회상했다. 승승장구했다. 10대 때 태극 마크를 단 임애지는 2018 자카르타-팔렘방 AG, 2020 도쿄 올림픽 등 한국을 대표해 굵직한 대회에 나섰다. 타고난 ‘승리욕’이 ‘국가대표 임애지’란 타이틀을 지속하게 했다.
그는 “지금은 메달에 대한 목표가 있다면, 그때(고등학생)는 매일매일 목표가 있었다. 당시 남자 선수들과 스파링을 자주 했는데, 한 대도 못 때린 적이 있다. 그때 한 대 때리는 것을 목표로 뒀다”고 일화를 전했다. 펀치 한 방을 맞춘다는 목표를 기어이 이뤘고, 이후에는 더 큰 목표를 이루며 성장했다. 임애지는 국내에서 적수가 없을 정도의 기량을 갖췄지만, 세계적인 선수들이 모이는 AG에서는 8강, 올림픽에서는 16강에서 쓴잔을 들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항저우 AG 여자 복싱 54㎏급에 나서는 임애지는 “누구든 메달리스트를 꿈꿀 것 같다. 그런데 메달리스트보다는 금메달리스트가 낫겠다고 생각했다”며 “항저우에 애국가를 울린다는 각오로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푸른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인터뷰에 나선 임애지는 어엿한 국가대표 포스를 풍겼고, 털털한 말 뒤에는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러나 그 역시 평소에는 영락없는 20대였다. 운동을 쉴 때는 친구들과 카페에 가고 영화를 본다고 한다. 여느 20대처럼 SNS(소셜미디어) 활동도 즐긴다. 활기가 느껴진 그에게는 다소 의외의 취미도 있었는데, 바로 독서다.임애지는 “어렸을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는데, 읽고 느낀 점을 말하면 어머니가 돈을 줬다. 무언가를 읽는 것에 거부감이 없다”며 “책을 읽으면 나 자신을 더 사랑하게 되는 효과가 있다. 아침에 어떤 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깨어 있는 것 같고 신선하지 않은가. (독서하면) 아침에 채소를 먹는 느낌”이라며 웃었다.책은 그에게 아픔을 잊게 하는 ‘약’이기도 했다. 그는 공교롭게도 AG, 올림픽 등 대회에서 사우스포(왼손잡이) 선수 앞에서 고개를 떨궜다. 왼손잡이에 약하다는 평가가 그를 둘러쌌는데, 책 덕에 자기도 모르게 갖게 될 징크스에서 벗어났다.
임애지는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었는데, 책에서 실패한 원인은 전부라고 하더라. 내가 진 이유는 왼손잡이라서가 아니라 그냥 그 자체로 진 것이다. 만약 (상대가) 왼손잡이가 아닌, 오른손잡이였다면 이겼을까. 아니라고 생각한다. 실력이 부족해서 졌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왼손잡이를 만나도 상관없다”고 자신했다.‘복싱 강국’이었던 한국은 최근 세계 무대에서 빈손으로 돌아오는 일이 잦아졌다. 지난 자카르타-팔렘방 AG에서도 여자 60㎏급에서 오연지만 금메달을 땄을 뿐, 이외 남·여 통틀어 은메달과 동메달을 획득한 선수는 없었다. 임애지는 “(이번 대회는) 자신 있다. 애국가를 울리는 사람이 내가 되기를 바란다”면서도 “내가 아니어도 다른 언니, 오빠들이 울릴 거라고 믿고 있다. 우리가 정말 열심히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힘줘 말했다.김희웅 기자
2023.09.22 0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