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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한국, 북한과 일본을 대표하는 축구팀

2021년 3월 열린 제93회 일본 선발고교야구대회(봄 고시엔)에 한국계 민족학교인 교토국제고가 외국계 학교로는 처음으로 참가했다. 이 경기에서 재학생, 졸업생, 학부모는 물론, 오사카에서 온 한국계 학교 학생들과 일본 각지에서 모인 재일동포 1000여 명이 열띤 응원전을 벌였다. 교토국제고는 연장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하는 감격을 누렸고, 선수들이 부른 ‘동해 바다’로 시작하는 한국어 교가는 공영방송 NHK를 통해 일본 전역에 생중계됐다. 축구를 통해서도 재일동포는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확립해 나갔다. 1961년 창설된 ‘자이니치 조선 풋볼 클럽’은 원래 친북 단체인조총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2002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실을 인정한 후, 이 클럽은 조총련과의 관계를 단절했다. 새로운 이름인 FC코리아로 재출범한 클럽은 대한민국에 소속된 선수들도 끌어들이기 위해 범 한국적 정체성을 채택했다. 2008년 간토 지역 2부 리그로 승격된 FC코리아는 2010년 1부 리그로 올라가는 데도 성공했다. 계속된 성공에 고무된 클럽은 J리그로의 승격을 목표로 삼았다. 하지만 클럽에 소속된 선수들 대다수가 한국계인 FC코리아는, 외국인 선수 등록 규정 때문에 J리그로의 승격이 불가능했다. 이에 이들은 코니파(CONIFA, 독립축구협회연맹) 월드컵을 새로운 도전 무대로 삼았다. FC코리아를 중심으로 재일동포를 대표하는 이 축구팀은 ‘일본의 통일 코리안들(UKJ, United Koreans in Japan)’이란 이름을 가지게 된다. 일본 사회에서 UKJ의 역할은 축구로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하는 것이다. 2016년 압하지야에서 열린 2회 코니파 월드컵에서 UKJ는 쿠르드 대표팀에 0-3으로 패했으나, 헝가리계 소수 민족인 세케이 대표팀을 1-0으로 물리치고 8강에 진출했다. UKJ는 8강전에서 강호 북키프러스를 만나 전반에 먼저 실점했고, 후반에 터진 만회골로 1-1을 만들었다. 정규시간에 승패를 가리지 못한 경기는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UKJ는 2-4로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순위결정전에서 UKJ는 예선에서 패배를 안긴 쿠르드 대표팀을 물리치고 최종 순위 7위를 기록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UKJ는 예선을 거쳐 영국 런던에서 개최된 2018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는 데 성공했다. 특히 K리그 부산 아이파크와 수원 삼성에서도 활약해, 국내 축구 팬들에게도 낯익은 재일동포 축구 선수 안영학(당시 39세)이 UKJ의 감독 겸 선수로 참가해 눈길을 끌었다. 안영학은 북한 대표로 2010년 남아공 FIFA 월드컵에 참가, 미드필더로 조별리그 3경기에서 풀타임 출전했다. 하지만 그는 월드컵 이후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고, J2 리그의 요코하마에서 2017년 1월 은퇴했다.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인으로 J리그와 K리그에서 선수 생활을 했고, 북한 대표로도 활약했던 안영학은 “축구를 통해 세 나라의 다리를 건넜다”고 밝혔다. 그는 “축구를 통해 전 세계 나라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는다”는 코니파의 대회 이념이 자신의 축구 인생과 닮아서, 코니파 월드컵 참가를 위해 잠시 현역 선수로 복귀했다고 한다. 안영학의 국적은 조선적(朝鮮籍, 광복 후 재일교포들이 부여받은 국적. 한국이나 일본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이 이에 해당)이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일본에서 그는 무국적자이다. 따라서 영국 비자 받는 게 쉽지 않았다. 영국대사관에 자신이 누구인지 증명하기 위해 안영학은 자신에 대한 위키피디아 영문판 등 준비할 수 있는 모든 서류를 제출했다. 그는 한 달 이상 기다려 비자를 받았다고 한다.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기 위해 들어가는 항공료나 체재비 등의 경비는 각 팀에서 부담해야 한다. 이에 안영학은 대회 출전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기업을 찾아다니며 스폰서를 구했다. 선수 영입도 직접 챙겼다. 선수 중에는 홍콩과 영국 축구팀 U19에서 활약하는 프로 선수들도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은 아마추어 선수였다. 런던 대회에 참가한 UKJ 선수단 18명 중에 한국 국적은 15명, 조선 국적은 2명, 일본 국적은 1명이었다. 월드컵 개막 전날이 돼서야 UKJ는 영국 현지에서 처음으로 선수 전원이 참가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다. 런던 대회에서 UKJ는 서부 아르메니아, 인도 북부의 펀자브 지역 이민자 대표팀, 알제리 북부에 거주하는 커바일 민족 대표팀(지네딘 지단이 커바일 혈통이다)과 한조를 이뤘다. UKJ는 우승을 목표로 했지만, 조별 예선 3경기를 모두 비기며 8강 진출에 실패했다. 특히 안영학은 예선 두 번째 경기에서 팔이 부러져 남은 경기에 더는 뛰지 못했다. 런던 대회에서 만족할 만한 성적은 거두지 못했다. 하지만 UKJ는 비슷한 역사를 안고 있는 팀을 만나 축구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뜻깊은 경험을 했다. UKJ는 2020년 열릴 예정이었던 4회 월드컵 본선에도 참가 자격을 얻었으나, 코로나 19로 인해 대회가 아쉽게 취소됐다. 향후 UKJ는 코니파 월드컵에 참가하는데 만족하지 않고, 차기 대회를 개최할 의사도 있다고 한다. FIFA 월드컵 출전은 모든 축구 선수들의 꿈이다. 하지만 재일동포 축구 꿈나무들은 국적, 정치적 이유와 차별 등 많은 문제로 꿈을 꾸기조차 쉽지 않다. 그들에게 코니파 월드컵은 재일동포 대표로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소중한 무대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3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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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월드컵②

어느 국가이든 세계 축구무대에 얼굴을 내밀려면 FIFA(국제축구연맹)에 가입해야 한다. 간혹 FIFA에 관심이 없는 국가도 있긴 있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독립국이자 이탈리아 로마에 위치한 바티칸 시티는 “축구를 통해 전달할 수 있는 사랑의 메시지는 아마추어 신분일 때만 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FIFA 축구는 비즈니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바티칸은 FIFA에 가입할 의사가 없다. 가입에 필요한 기준을 충족한 지중해 연안 국가이자, 세계적인 부국인 모나코도 FIFA가입에 관심이 없다. 하지만 FIFA에 소속되지 않은 나라는 가입 의사가 있어도 허가를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새로 가입을 신청한 국가의 축구 인프라 지원 비용에 부담을 느낀 FIFA는 의도적으로 가입 프로세스를 지연시킬 때도 있다. 신청국이 지친 나머지 가입을 포기하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는 것이다. 정치적인 이유로 가입하지 못하는 국가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조지아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다. 사실상의 독립국이지만, 이들을 국가로 인정하는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극소수다. 북키프러스도 마찬가지다. 터키계가 다수인 북키프러스는 1983년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를 승인한 국가는 터키가 유일하다. 국제사회는 그리스계로 이루어진 남부의 키프러스 공화국만 합법 정부로 인정하고 있다. 여러 이유로 FIFA에 가입하지 못한 국가나 민족을 위한 단체가 코니파(CONIFA·독립축구협회연맹)다. 코니파의 모토는 ‘모두를 위한 축구(football for all)’다. 자원봉사자가 이끄는 비영리 단체 코니파는 정치적으로는 중립을 표방하고 있다. 따라서 코니파는 어떤 정치적인 견해나 행동도 허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모든 정치를 뒤로 하고(leave all politics behind)’ 싶다는 코니파의 목표는 이상주의자의 이룰 수 없는 꿈과 같다. 코니파를 폄훼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미승인국이나 국가 없는 민족 등을 회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들을 위한 축구 대회를 연다는 것 자체가 정치적인 이슈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라 없는 민족들은 코니파 월드컵을 통해 국가 건설 같은 정치적 의제를 표출할 때도 있다. 이런 이유로 3회 코니파 월드컵이 2018년 런던에서 개최될 당시 가장 주목받았던 팀이 티베트(Tibet)였다.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티베트는 불교의 영향으로 17세기부터 달라이 라마(현재의 달라이 라마 14세는 비폭력 저항운동의 결과로 198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를 정치·종교상의 군주로 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1950년 국공내전에서 승리한 중국 공산당은 티베트를 침공해 중국에 합병시켰다. 이후 협상을 통해 티베트는 중국의 영토임을 인정하지만, 달라이 라마의 자치권을 보장하는 선에서 양측이 타협했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은 반종교 정책의 일환으로 티베트 승려들을 탄압하고 처형했다. 아울러 토지개혁 같은 공산당 정책이 시행되자 티베트인들의 반중 감정은 폭발했고, 1959년 독립을 위한 봉기가 일어났다. 중국군이 이를 무력으로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명의 티베트인이 목숨을 잃었고, 달라이 라마는 인도로 피신해 망명정부를 수립했다. 망명한 티베트인들은 2001년 자신들을 대표하는 축구협회(TNFA)를 설립했다. TNFA는 대표팀을 조직했고 열악한 환경에서 한 달 동안 준비한 끝에 그린란드를 상대로 첫 번째 국제경기를 갖게 된다. 개최 장소는 덴마크의 수도 코페하겐이었다. 하지만 망명한 티베트인들로 구성된 선수 중의 상당수는 해외여행에 필요한 여권 등이 없어 덴마크로 갈 수 없었다. 중국 정부는 티베트 대표팀이 못마땅했다. 이에 경기를 취소하지 않으면 중국은 덴마크와 그린란드와의 모든 교역을 중단하겠고 압박했다. 위협에도 불구하고 덴마크와 그린란드도 물러나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열린 경기에서 티베트는 그린란드에 1-4로 패배했다. 하지만 티베트는 자신들의 깃발 아래서 처음으로 국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승리자였다. 그 후 티베트 대표팀은 가끔 국제 경기를 소화했으나, 프랑스령 프로방스 대표팀에 0-22로 대패하는 등 10년 넘게 승리를 거두지 못했다. 마침내 2013년 티베트는 분쟁지역인 서사하라 대표팀을 12-2로 물리치고 첫 승리를 기록했다. 티베트는 코니파 랭킹은 최하위권이지만, 2018년 월드컵에 와일드카드 자격으로 참가할 행운을 얻었다. 달라이 라마는 대표팀을 축복하며 “티베트인들의 명예와 존엄을 지키라”는 당부의 말도 함께 건넸다. 전 세계의 티베트인들은 대표팀의 경비에 보태쓰라며 성금도 보냈다. 해외 곳곳에서 선수들이 오는 관계로 대표팀은 런던에 도착해서야 한 팀이 될 수 있었다. 티베트가 월드컵에 참가하자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튀었다. 스폰서로 참여하려던 글로벌 기업들이 중국 정부에 밉보이지 않기 위해 후원 의사를 줄줄이 철회한 것이다. 티베트를 대회에서 아예 쫓아내라고 하는 기업까지 있었다. 이에 도박업체 패디 파워가 단독 스폰서로 참여했다. 어차피 도박은 중국에서 불법인 관계로 패디 파워는 중국 시장에 진출할 의사가 없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대진운이 따라주지 않아 티베트는 강호 카르파탈랴, 북키프러스와 디펜딩 챔피언 압하지야와 한 조로 묶였다. 결국 3전 전패로 예선 탈락한 티베트는 순위 결정전에서 선전해 16개 참가국 중 12위라는 성적으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사실 티베트에게 경기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았다. 경기에 앞서 그들의 국가를 불렀던 티베트인들은 티베트 국기를 단 대표팀을 응원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했다. 티베트인들은 런던 대회 동안 그들의 문화와 정체성을 세상에 보여줬다는 사실에도 감격했다. 비록 열흘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2018년 6월 티베트는 런던에서 독립국이 된 것 같은 기쁨을 누린 것이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17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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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우의 스포츠랩소디] 보이지 않는 국가들의 월드컵①

국제축구연맹(FIFA)은 국가대표 경기(A매치), 월드컵 같은 국제 축구 경기를 통할하는 단체이다. FIFA에 가입된 축구 협회는 211개로 국제연합(UN) 가입국(193개) 수보다 많다. 영국(UK)을 구성하는 4개의 홈 네이션(Home Nations,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과 팔레스타인·코소보 등 정치적으로 분쟁 중인 지역도 회원국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FIFA의 회원국 자격 기준은 모호한 면이 있다. FIFA 회원국인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몽세라트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인구가 5000명이 채 안 된다. 이렇게 FIFA는 독립국이 아닌 지역에도 회원 자격을 주고 있다. 그에 반해 지중해의 휴양 국가인 모나코는 독립국이고, 인구도 거의 4만 명에 이르지만 FIFA 회원국이 아니다. FIFA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국제축구협회가 있다. 2013년에 창설된 독립축구협회연맹(Confederation of Independent Football Associations)이 바로 그것이다. 코니파(CONIFA)란 약어로 알려진 이 연맹에는 소수민족·언어소수자·무국적민족·미승인국(기존 국가로부터 국제법상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나라)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현재 63개 단체가 회원이다. 비바 월드컵의 후속 대회로 코니파는 2014년부터 격년으로 월드컵(World Football Cup)을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국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곳에서 온다. 대부분 참가 팀들의 이름과 그들의 국기 또한 매우 낯설다. 코니파 소속 단체 중 일부는 궁극적으로 FIFA 회원국이 되고 싶어한다. 1회 월드컵은 스웨덴의 중부 도시 외스테르순드에서 열렸다. 개최 단체는 스칸디나비아 북부에 사는 소수 민족인 사프미(Sápmi)였다. 12개 팀이 초청된 가운데 그중에는 캐나다의 퀘벡 주를 대표하는 축구팀도 있었다. 하지만 퀘벡팀은 대회를 한 달 앞두고 FIFA에 가입한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고, 대신 조지아(그루지야) 북부에 있는 미승인국 남오세티야(South Ossetia)가 참가했다. 또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자치구 잔지바르(Zanzibar)는 스웨덴 입국 비자를 얻을 수 없어서, 대회 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잔지바르를 대신해 참가한 프랑스의 니스 백국(County of Nice) 축구팀이 초대 대회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누렸다. 2016년에 열린 2회 대회는 압하지야(Abkhazia)에서 열렸다. 압하지야는 조지아에 위치한 사실상 독립국이지만, 이를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5개국밖에 안 된다. 따라서 거의 전 세계인의 관점에서 2회 대회 주최국은 압하지야가 아니라 조지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압하지야가 개최지로 결정되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2015년 제1회 유로피언 축구 대회는 헝가리계 소수 민족인 세케이(Székelys, 소설 주인공 드라큘라 백작이 세케이족이다)가 주최했고, 개최 장소는 헝가리였다. 하지만 헝가리 정부는 조지아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입국을 불허했다. 이에 코니파는 헝가리 정부의 정치적인 결정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고, 집행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압하지야를 2016년 월드컵 주최국으로 선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코니파는 모든 회원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압하지야 대회부터 초청 대신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최지 압하지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보안상의 문제가 있었고, 전 대회 우승팀 니스 백국을 비롯해 여러 팀이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2회 대회 우승은 개최국 압하지야가 차지했다. 2018년 열린 3회 대회의 개최 단체는 바라와(Barawa) 축구협회였다. 바라와는 소말리아의 항구 도시 이름이다. 코니파의 규정에 의하면 대회는 반드시 개최국 영토에서 열릴 필요는 없다. 아울러 소말리아는 내전이 진행 중이어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바라와 축구협회는 잉글랜드에 있는 소말리아인의 공동체 역할도 대표하는 관계로, 실제 대회는 런던과 근교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2018년 대회부터 참가팀이 16개국으로 늘어났고, 대회의 퀄리티 또한 높아졌다. 글로벌 도시인 런던에서 개최된 덕에 3회 대회는 세계 주요 언론사의 관심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아일랜드의 도박업체 패디 파워(Paddy Power)도 스폰서로 참여했다. 초록(green)이 상징색인 스폰서 패디 파워의 제안으로 기존의 엘로·레드 카드 외에 3번째 카드로 그린 카드 제도가 신설되었다. 그린 카드는 지속적인 어필을 한 선수 혹은 페널티 킥을 유도하기 위해 다이빙을 한 선수에게 주어졌고, 이 카드를 받은 선수는 즉시 교체돼야 했다. 코니파 대회는 FIFA와 연관이 없어 이러한 독자적인 규칙 도입이 가능했다. 코니파 월드컵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깃발 아래서 축구를 할 수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북마케도니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0년 대회는 취소됐다. 그들은 2022년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 이정우 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1.03.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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