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축구연맹(FIFA)은 국가대표 경기(A매치), 월드컵 같은 국제 축구 경기를 통할하는 단체이다. FIFA에 가입된 축구 협회는 211개로 국제연합(UN) 가입국(193개) 수보다 많다. 영국(UK)을 구성하는 4개의 홈 네이션(Home Nations,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과 팔레스타인·코소보 등 정치적으로 분쟁 중인 지역도 회원국으로 인정하기 때문이다.
사실 FIFA의 회원국 자격 기준은 모호한 면이 있다. FIFA 회원국인 카리브해의 작은 섬나라 몽세라트는 영국의 해외 영토로 인구가 5000명이 채 안 된다. 이렇게 FIFA는 독립국이 아닌 지역에도 회원 자격을 주고 있다. 그에 반해 지중해의 휴양 국가인 모나코는 독립국이고, 인구도 거의 4만 명에 이르지만 FIFA 회원국이 아니다.
FIFA에 가입하지 못한 이들을 위한 국제축구협회가 있다. 2013년에 창설된 독립축구협회연맹(Confederation of Independent Football Associations)이 바로 그것이다. 코니파(CONIFA)란 약어로 알려진 이 연맹에는 소수민족·언어소수자·무국적민족·미승인국(기존 국가로부터 국제법상의 주체로 인정받지 못한 나라)등이 회원으로 가입돼 있다. 현재 63개 단체가 회원이다.
비바 월드컵의 후속 대회로 코니파는 2014년부터 격년으로 월드컵(World Football Cup)을 개최하고 있다. 이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은 거의 모든 사람이 국가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곳에서 온다. 대부분 참가 팀들의 이름과 그들의 국기 또한 매우 낯설다. 코니파 소속 단체 중 일부는 궁극적으로 FIFA 회원국이 되고 싶어한다.
1회 월드컵은 스웨덴의 중부 도시 외스테르순드에서 열렸다. 개최 단체는 스칸디나비아 북부에 사는 소수 민족인 사프미(Sápmi)였다. 12개 팀이 초청된 가운데 그중에는 캐나다의 퀘벡 주를 대표하는 축구팀도 있었다. 하지만 퀘벡팀은 대회를 한 달 앞두고 FIFA에 가입한다며 불참 의사를 밝혔고, 대신 조지아(그루지야) 북부에 있는 미승인국 남오세티야(South Ossetia)가 참가했다.
또한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자치구 잔지바르(Zanzibar)는 스웨덴 입국 비자를 얻을 수 없어서, 대회 참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잔지바르를 대신해 참가한 프랑스의 니스 백국(County of Nice) 축구팀이 초대 대회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누렸다.
2016년에 열린 2회 대회는 압하지야(Abkhazia)에서 열렸다. 압하지야는 조지아에 위치한 사실상 독립국이지만, 이를 국가로 인정한 나라는 러시아를 포함해 5개국밖에 안 된다. 따라서 거의 전 세계인의 관점에서 2회 대회 주최국은 압하지야가 아니라 조지아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압하지야가 개최지로 결정되기에는 사연이 있었다. 2015년 제1회 유로피언 축구 대회는 헝가리계 소수 민족인 세케이(Székelys, 소설 주인공 드라큘라 백작이 세케이족이다)가 주최했고, 개최 장소는 헝가리였다. 하지만 헝가리 정부는 조지아에 위치한 남오세티야와 압하지야의 입국을 불허했다. 이에 코니파는 헝가리 정부의 정치적인 결정에 강한 거부감을 표시했고, 집행위원회는 만장일치로 압하지야를 2016년 월드컵 주최국으로 선정했다. 이러한 결정을 통해 코니파는 모든 회원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압하지야 대회부터 초청 대신 예선전을 거친 팀들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쉽게도 개최지 압하지야에 입국하기 위해서는 보안상의 문제가 있었고, 전 대회 우승팀 니스 백국을 비롯해 여러 팀이 대회 참가를 포기했다. 2회 대회 우승은 개최국 압하지야가 차지했다.
2018년 열린 3회 대회의 개최 단체는 바라와(Barawa) 축구협회였다. 바라와는 소말리아의 항구 도시 이름이다. 코니파의 규정에 의하면 대회는 반드시 개최국 영토에서 열릴 필요는 없다. 아울러 소말리아는 내전이 진행 중이어서 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바라와 축구협회는 잉글랜드에 있는 소말리아인의 공동체 역할도 대표하는 관계로, 실제 대회는 런던과 근교 지역에서 개최되었다.
2018년 대회부터 참가팀이 16개국으로 늘어났고, 대회의 퀄리티 또한 높아졌다. 글로벌 도시인 런던에서 개최된 덕에 3회 대회는 세계 주요 언론사의 관심을 받는 데도 성공했다. 아일랜드의 도박업체 패디 파워(Paddy Power)도 스폰서로 참여했다. 초록(green)이 상징색인 스폰서 패디 파워의 제안으로 기존의 엘로·레드 카드 외에 3번째 카드로 그린 카드 제도가 신설되었다. 그린 카드는 지속적인 어필을 한 선수 혹은 페널티 킥을 유도하기 위해 다이빙을 한 선수에게 주어졌고, 이 카드를 받은 선수는 즉시 교체돼야 했다. 코니파 대회는 FIFA와 연관이 없어 이러한 독자적인 규칙 도입이 가능했다.
코니파 월드컵을 통해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는 깃발 아래서 축구를 할 수 있다. 국제사회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소수민족이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낼 소중한 기회인 것이다. 코로나 19의 영향으로 북마케도니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0년 대회는 취소됐다. 그들은 2022년 대회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