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운동하는 여자들②] 출산 후 몸은 망가지고, 우울했는데...치어리딩 동작으로 에너지 얻었어요
일간스포츠는 3회에 걸쳐 대한민국 여성들의 ‘운동’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리즈를 마련했다. 입시 준비에 짓눌린 10대 여학생들, 출산 후 영유아를 키우느라 자기 시간을 내기 힘든 여성들, 그리고 부쩍 건강이 나빠져 몸을 움직이기 힘들어진 노년층 여성은 특히나 운동의 사각지대에 있다. 어려운 환경과 선입견을 극복하고 땀 흘리고 즐기는 여성들로부터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경기도 화성시 봉담읍의 한 상가 건물 치어리딩 학원. 흰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열한 명의 여성들이 신나는 음악에 맞춰 전면 거울 앞에서 절도 있는 동작을 맞춰보고 있다. 이곳에서는 주로 오후 시간대에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주를 이루는데, 일주일에 두 번 오전에 영유아를 육아 중인 여성들을 대상으로 한 수업이 열린다. 아이를 키우는 중이라는 공통점이 있는 수강생들은 10회차까지 수업을 함께 해오면서 마치 오래 알고 지낸 친구들처럼 금세 친숙해졌다. 열심히 몸을 움직이다가도 누군가의 말 한마디에 까르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둘째를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나도 운동을 하고 싶어서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50분 수업이 너무 힘들어서 ‘내 길이 아닌가’ 싶었는데 적응하니 에너지가 생겼어요.” 김슬기씨는 “시작이 어려웠지, 막상 해보니까 재미있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장소라씨는 “아이를 낳고 키우는 과정이 사람을 지치게 한다. 뭔가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고, 한 곡을 완전히 익혀서 치어리딩 동작으로 ‘완곡’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겨서 배우고 있다. 이제 수업 시간이 기다려진다”고 했다. 대학 때 무용을 전공한 최지안씨는 졸업 후 14년 만에 몸을 움직이는 짜릿함을 느낀다고 했다. 자녀가 치어리딩을 배우면서 엄마도 함께 배우는 케이스도 있다. 아이가 추천해서 나왔다는 한 참가자는 “집에서 아이가 한껏 자랑하면서 엄마한테 ‘그렇게 하는 거 아냐’라며 가르쳐준다. 그런 모습도 예쁘고, 같이 치어리딩 동작을 해보면서 스킨십도 늘게 되어서 더 좋다”고 했다. 이들은 육아의 어려움과 고됨에 대한 이야기에 서로 공감하면서 한마음이 됐다. 가장 마음이 통한 부분은 출산 후 몸의 변화, 그리고 건강에 관한 것이었다. 한 수강생은 “둘째를 낳고 건강이 안 좋아졌다. 몸이 붓고, 병이 생기고, 무섭게 체중이 늘더라. 어느 날은 앉았다가 일어나는데 피가 아래로 쏠리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쓰러져서 119에 실려 갔다. 이후엔 ‘내가 살기 위해선 운동해야 겠다’고 이를 악물게 됐다”고 전했다. 그는 그 뒤로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밖으로 나가서 7㎞를 달린다. 50분에서 1시간 정도가 걸린다고 했다. “아이들이 잠들어 있고, 아빠가 그 옆에 있고, 온전히 내 시간으로 쓸 수 있는 건 그 시간뿐이다”라면서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다른 수강생들이 ‘대단하다’며 감탄사를 내뱉자 웃으면서 “달리기도 좋지만, 치어리딩 수업은 정말 재미있어서 즐겁게 하고 있다. 개인 운동에서는 느낄 수 없는 재미가 있고, 팀을 이뤄서 운동하는 뿌듯함도 있다”고 했다. 슈팅업 치어리딩의 대표이자 이 수업을 진행하고 있는 손주희 강사는 “나도 아이 둘을 출산하고 체중이 불어나고 몸이 변하는 걸 느꼈다. 심한 우울증을 경험했다. 나는 한국 무용을 했던 사람이다. 출산하면서 내가 공연하던 자리에 다른 무용수가 있는 걸 보는 게 정말 너무 힘들더라”며 “치어리딩으로 또 다른 즐거움과 성취감을 찾아가면서 그런 어려움을 극복했다”고 말했다. 이 수업은 대한체육회의 여성생활체육활동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대한치어리딩협회가 함께해 육아 중인 여성들에게 20회의 무료 수업을 진행하는 클래스다. 여성 생애주기에 맞춰 임산부, 육아기, 갱년기 등으로 연령대를 나눠서 타깃층을 세분화했다. 단순히 연령대로 나눈 게 아니라 범위를 좁혀서 '육아 중인 여성'에게 생활체육 지원사업을 하는 이유가 있다. 의지가 있으면 비교적 쉽게 운동할 수 있는 다른 연령대와 달리 영유아 육아 중인 여성은 운동을 하기에 가장 취약한 층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치어리딩 수업을 듣는 장소라씨는 “처음에는 50분 수업도 힘들어했던 나 같은 사람도 한다. 출산과 육아로 시간도 없고, 몸도 힘들다고 느끼는 사람도 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전했다. 화성=이은경 기자
2022.10.28 0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