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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대비’ 채시라 “티아라 은정, 대범한 면이 있더라”
배우로서도 제작자로서도 큰 모험수다. 한 인물을 두 번 연기하는 일. 그건 잘해야 본전인 가혹한 함수관계다. 인수대비, 그녀는 조선왕조에서 가장 극적인 삶을 살다 간 여성이었다. 왕비가 될 운명이었다가 청상과부가 된, 그리고 다시 궁으로 돌아와 권력의 야망을 품고 대비로 올라선 여인. 일찍이 '왕과 비'로 인수대비의 파란만장한 인생사를 완전히 보여준 이가 있어 애초 다른 대안은 없었다. '인수대비'(JTBC) 제작진은 간청했고, 그는 기꺼이 받아들였다. 14년 만에 여왕의 자리에 복귀한 채시라, 감히 드라마 촬영 현장을 급습했다. -인수대비라면 '왕과 비'(KBS1, 1998) 이후 두 번째죠? 인수대비 같은 큰 역할을 두 번 한다는 게 배우한테는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제의를 받고 무척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하겠다고 했어요. ‘예전에 해봤는데 뭘’이 아니라 ‘이번에 하면 또 어떨까?’ 하는 궁금함이 생기더라고요. -당시 엄청난 사랑을 받았고 대상까지 수상했었는데, 그 이상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은 없었나요? 말리는 사람도 많았죠. 그런데 두렵다고 좋은 기회를 피한다는 건 나답지 않은 일이에요. 똑같은 인물이라고 해서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요. 14년 전의 인수대비와는 다른 동시에, 지금 시대에 필요한 드라마라고 봤어요. -그때보다 무르익은 연기를 보여주겠다는 자신감도 있겠죠? 물론이죠. 예습보다 복습을 했을 때 완전히 내 것이 되잖아요. 한 번 했던 역할이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여유로워요. -이제 인수대비라면 웬만한 전문가 수준 이상일 것 같은데요? 감독님께서 마침 사극이 처음이라며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많이 가르쳐달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게 있나요? '왕과 비' 때는 아들을 왕으로 만들기 위해 냉철하게 싸우고 쟁취하는 인물이었죠. 강인하고 어떤 때는 정말 모질고요. 지금 '인수대비'는 좀 더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봐요. 열아홉 살에 혼자가 돼 아들 둘을 키우며 겪는 외로움, 가녀린 여자의 마음속 고통 같은 게 더 세밀하죠. 소위 ‘여자들 드라마’의 매력이 첨가된 거죠. 이게 따지고 보면 인수대비와 시어머니, 며느리 3대 고부의 이야기거든요. -지상파에 비해 종편 채널의 드라마는 시청률이 저조한 편인데 아쉽지는 않나요? 섣불리 판단하고 싶지는 않아요. 50부작 중에 이제 반 정도 왔어요. 끝까지 가봐야 알죠. 지금도 출발이 나쁘다고는 생각 안 해요. 새 방송국의 개국 드라마니 회자될 일이 많은 작품이기도 하고요. 섣불리 ‘누가 얼마나 보겠어’ 하는 마음을 갖고 연기를 하거나 제작을 하면 절대 안 되죠. 시청률은 정말 한 부분일 뿐이에요. 요즘은 꼭 본방이 아니어도 볼 수 있는 기회가 넘쳐나잖아요. 볼 사람들은 다 볼 거고 괜찮은 작품이면 좋은 평가를 받겠죠. -인수대비의 젊은 시절은 가수 티아라의 함은정이 연기했는데, 내심 불안하지는 않았나요? 같은 인물을 나눠 연기하는 입장이라 조언을 많이 해줬어요. 서로 바쁘니까 주로 전화나 문자로 잘한 부분은 잘했다, 그 신에선 이런 게 추가되면 좋겠다 정도의 이야기를 매주 해줬어요. 부담스러웠을 만도 한데 은정이가 대범한 면이 있더라고요. 기죽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부분에서 최선을 다해 줬어요. -준비할 것도 많고 사극은 힘들다는 배우도 많은데, 어떤가요? 사극 하면 현대극이 그립고 현대극 하면 사극이 그립고, 누구나 다 그런 것 같아요. 사실 전 환경적으로 사극에 애정이 많아요. 한복도 좋아하고 마음의 안정감도 생기거든요. 손동작 하나에도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고 하나부터 열까지 예의를 차려 연기해야 하지만, 왠지 모를 뿌듯함도 많이 느껴요. 요즘 학생들이 그 시대를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게 사극이잖아요. 그런 생각 하면 사명감이 생겨서 절을 해도 바닥에 머리가 닿도록 끝까지 하게 돼요. -화면에서는 베테랑 배우의 느낌인데, 현장에서 보니 신인 같은 열정이 아직도 엿보였어요. 인터뷰하면서는 영락없는 소녀 같고요. 하하. 아마 일에 대한, 작품에 대한 열정이나 애정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또 인수대비는 제가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 중에서도 손에 꼽을 만큼 좋아하는 인물이라서 매순간 설레고 열성을 다하게 돼요. 인수대비는 저한테 좋은 기억밖에 없거든요. 나이든 역할까지 연기하며 좋은 반응도 얻고, 결혼도 했고, 상도 받았고.(웃음) -배우로서 나이를 먹는다는 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요. 선배님들이 누누이 말씀하신 대로 할수록 어렵다는 말이 맞아요. 멋모르고 열정을 바쳐서 했을 때의 느낌과 같을 순 없죠. 너무 많이 알아버려서 탈인가. 열정에 책임감을 덧붙이고, 변신과 발전에 대한 추구까지 고려하면서 또 원숙해져야 하니까 쉽지 않죠. 연륜은 나이 먹는다고 저절로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요즘은 최대한 부담을 안 가지려고 해요. 왜 대가들이 힘을 뺀다고 표현하잖아요. 저도 복잡하지 않고 단순하게 핵심만 전하고 싶어요. 곁가지 없이 심플하게. -'천추태후' 이후 2년 정도 휴식기를 가졌는데, 손에 들어온 작품들도 많았죠? '인수대비'가 아니었으면 벌써 현대물로 돌아왔겠죠. 2년 동안 작품에서 손을 떼고 있었더니 영화 쪽에서도 시나리오가 들어오더라고요. 반가웠어요. -영화 출연은 안 하실 작정인가요? 전작이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1995)라니 이게 벌써 17년 전이에요. 안 그래도 쉬면서 시나리오도 몇 개 받아놓고 고민도 했었는데, 결국 마음에 드는 작품을 찾지 못했어요. 거의 80퍼센트 이상 마음이 움직인 영화도 있었는데, 너무 캐릭터가 진한 것 같아 고사했어요. 오래간만에 출연하는 영화인데 너무 무겁게 보이긴 싫었거든요. 다시 영화를 하면 작품성을 택하든지, 오락성을 택하든지 하나를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에요. 그 영화는 전자 쪽이었는데 진해도 너무 진했죠. -출연하고 싶은 영화들은 어떤 느낌인가요? '몬스터'(2003)에서 샤를리즈 테론이 했던 강한 연기나 '철의 여인'의 마거릿 대처 수상 같은 캐릭터라면 얼굴에 특수분장을 해서라도 꼭 하고 싶어요. -엄마 채시라는 어떤 사람인가요? 스파르타식 엄마에요.(웃음) 아이들한테 매일 참아라, 인내심이 많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니.(웃음) 어린 시절 데뷔해 쉽지 않은 길을 걸었기 때문인지 아이들한테도 그런 걸 강조하게 돼요. 고생 끝에 낙이 오고, 성실하고 인내심이 많아야 성공한다고요. 강요 아닌 강요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죠? 무비위크 백종현 기자글·사진=무비위크 제공
2012.03.11 0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