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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옹졸하게 김수영을 떠올렸습니다

지난달에 윤석열 대통령이 대통령실 출입기자단을 초청하여 만찬 행사를 가졌습니다. 만찬장에는 안동 한우고기, 완도 전복, 제주 오겹살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해진미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김치찌개와 달걀말이만 특별나게 언론에 부각되었습니다.윤 대통령이 제공한 레시피로 조리한 김치찌개이고, 윤 대통령이 직접 조리한 달걀말이여서 특별난 음식으로 보였던 것이지요. 만찬장에 대통령실 요리사가 조리한 김치찌개와 달걀말이가 놓였다면 안동 한우고기와 완도 전복, 제주 오겹살 등에 밀려서 언론에 단 한 줄도 나지 않았을 것인데 말입니다.“설렁탕은 조선시대 선농단에서 비롯한 음식이다. 임금님이 선농단에서 친경 행사를 할 때에 구경 나온 백성들을 위해 친경에 동원된 소를 잡아 국을 끓여 나눠 먹였는데, 선농단에서 먹은 탕이니 선농탕이라 하였다가 설렁탕으로 변하였다.” 온 국민이 아는 설렁탕 스토리입니다. 설렁탕 가게에는 반드시 이런 글이 붙어 있고 설렁탕을 다루는 방송과 기사 등에서 반복적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은 허구입니다. 그것도 최근에 밝혀진 것이 아니라 오래 전에 밝혀진 허구입니다. 한국음식문화 연구에 탁월한 업적을 남긴 이성우 교수는 한국식품문화사(1982년 간행)에서 설렁탕의 선농단 유래설에 대해 이렇게 정리해두고 있습니다. “영조(1724~1776)대에 간행된 것으로 보이는 몽고어사전인 ‘몽어유해’에 의하면 몽고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이라 적고 ‘슈루’라 읽고 있다. 맹물에 소를 넣고 끓인다면 곰탕이나 설렁탕의 무리이다. 따라서 곰탕은 '공탕'에서, 설렁탕은 ‘슈루’에서 온 말이라고 봤으면 한다. 오늘날의 곰탕과 설렁탕은 동류이종일 따름이다. 설렁탕을 선농단에 결부시키는 속설은 아무리 생각하여도 후세의 어거지 설인 듯하다.” 한국음식문화사 전공학자가 설렁탕은 선농단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일찌감치 선을 그었음에도 선농단 유래설은 지금도 강력하게 살아남아 있습니다. 설렁탕을 먹다가 제가 이성우 교수의 글을 들려주면 사람들이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보입니다. ‘왕이 백성에게 베풀었던 국물’이라는 강력한 스토리를 전공학자의 연구로도 이겨내지를 못하는 것이지요.저는 이런 일에 포기를 모릅니다. 학자가 안 되면 시인이라도 불러와야 합니다. 설렁탕 뚝배기 위에 숟가락을 걸어놓고 휴대폰을 꺼내어 시를 읽어줍니다."왜 나는 조그만 일에만 분개하는가저 왕궁 대신에 왕궁의 음탕 대신에오십원짜리 갈비가 기름덩어리만 나왔다고 분개하고옹졸하게 분개하고 설렁탕집 돼지 같은 주인년한테 욕을 하고옹졸하게 욕을 하고"시인 김수영의 ‘어느 날 고궁을 나오면서’ 중의 일부입니다. 시를 읽고 나서 사람들에게 조근조근 말을 합니다. 이때에 흥분하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진지해야 합니다. 음식 스토리도 역사관과 국가관, 그리고 시민의식과 공동체 정서까지 담아내어야 한다는 상식을 그 짧은 순간에 공유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조선에 훌륭한 왕도 있기는 합니다. 세종대왕님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조선의 왕들은 대체로 무능했습니다. 조선이 망국의 길로 접어들 때에 이씨 왕가는 한반도의 땅과 백성을 일본 왕족에게 팔아먹었습니다. 그 대가로 이씨 왕가는 일본 왕족 대우를 받으며 호화롭게 살았습니다. 조선 왕가에 분노하지는 못할망정, 그들에게 은혜라도 입은 듯한 표정으로 이 설렁탕 국물을 들이키는 것은 민주공화국 국민으로서는 차마 못할 일입니다.”대통령실 출입기자단 여러분이 윤석열 대통령이 내어주는 김치찌개와 달걀말이를 참 맛나게 드시는 것을 보며 저는 옹졸하게도 김수영의 시를 떠올렸습니다. 2024.06.20 08:04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노포에서 선불을 당하고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돈을 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돈부터 내고 음식을 먹는 식당도 있습니다. 손님이 음식을 가게 밖으로 들고 나갈 수 있게 해놓은 식당은 선불을 받습니다.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가 대표적이지요. 선불을 받는 식당이 또 하나 있는데, 노포가 그럽니다. 국밥이나 국수를 파는 식당인데 선불을 받습니다. 노포에 자주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다 보니 노포의 선불 관습을 잊어버립니다. 주문을 하고 나서 종업원이 “선불입니다” 하면 그때서야 “아, 선불이지” 하고 지갑을 찾습니다. 노포에서 단골인 척 종업원이 말하기 전에 지갑부터 꺼내는 일이, 저는 없습니다. 갈 때마다 저는 당황합니다.왜 노포는 손님에게 선불을 요구하는지 ‘진지하게’ 취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별것이 아니었습니다. 옛날에는 원래 거의 모든 식당이 선불이었습니다. 음식을 먹고 돈 없다고 외상을 달거나 도망을 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외상이 너무 많아서 문을 닫는 식당도 있었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노포는 옛날에도 선불이었고 지금도 선불이니 달라진 것은 없고, 요즘의 식당들이 선불을 받지 않는 것이지요. 노포에서 선불을 당하고 나면, 마침 제 앞에 누군가가 앉아 있으면, 제 직업 의식이 발동을 하여 한국 외식업의 역사가 제 입에서 조근조근 자동으로 ‘방송’됩니다. 저의 말은 대체로 이렇게 시작됩니다.“윤봉길 의사가 쓴 ‘농민독본’ 알지요? 충남 예산에서 농민 야학을 할 때에 쓴 책이잖아요. 그 책의 농민 편 첫 문장은 이렇습니다. ‘우리 조선은 농민의 나라이다.’ 당시에 농민이 제일 많았으니까 그의 말이 맞지요. 그 농민들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노동자가 되었습니다. 윤봉길 의사가 지금의 대한민국을 정의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이다.’”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저는 일단 입을 닫고 상대방의 표정을 읽습니다. ‘노동자’라는 말에 거부감을 보이는 분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노동자’는 빨갱이의 말이라고 배운 분들은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나라이다’라는 문장에 기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표정이 안 좋다고 느껴지면 “이 집 음식은 말이지요” 하며 말을 돌려야 합니다. 제 말에 동의를 하는 표정이면 말을 이어갑니다. “산업사회 이전, 그러니까 한반도 사람들이 대부분 농민이었던 시대에는, 그러니까 윤봉길의 시대에는, 밥은 집에서 먹었습니다. 집 근처의 논밭에서 일을 하다가 밥때가 되면 온 식구가 모여 밥을 먹었습니다. 산업사회의 노동자가 되면 집에서 밥 먹는 일이 줄어듭니다. 노동자는 자본이 지정하는 장소로 이동하여 노동을 팔아야 하니까 외식을 하게 됩니다. 외식업의 발달은 노동자 계급의 확장과 함께 일어납니다.”여기까지 말하면 우리 앞에 놓은 음식이 달리 보이기 시작합니다. 노포의 음식이 노동자의 음식으로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지요.“제가 외식이라고 했지만 사실을 매식이 적당한 말이지요. 외식은 음식을 먹는 장소에 의미를 둔 단어인데, 밥을 밖에서 먹을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처지가 반영된 단어는 아닙니다. 노동자가 도시락을 싸갈 수도 있는 거잖아요. 외식 중에 돈을 주고 사 먹는 음식은 매식이라고 해야 바릅니다.”매식이라는 말에 조금 전 종업원이 가져간 선불의 의미가 뚜렷해집니다. ‘돈을 내고 밥을 먹으라.’ 야박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노포의 선불 관습은 우리 선배 노동자의 삶이 고달팠음을 드러내는 것이라 오히려 저는 고무되어서 이런 말로 마무리를 합니다.“이제는 선불 안 해도 되잖아요. 외상 달자는 사람도, 도망가는 사람도 없을 것인데 말이지요. 그럼에도 이렇게 선불 관습을 유지하는 것이 저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을 해요. 선불을 당하면서 이런 말로 우리 스스로 위로할 수가 있잖아요. ‘예전에는 말야, 국밥 값 낼 돈도 없어서 먹고 튀는 사람들이 많았대요. 세상 참 좋아진 거지’ 하고요. 안 그래요?” 2024.06.13 07:00
세계

中 왕이 외교부장 "한반도 대립 도모하는 세력, 큰 대가 치를 것"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7일 오전 양회 기자회견을 갖고 한반도 문제 등 중국의 전반적인 대외 관계 및 국제 정세에 대해 답했다.​왕이 부장은 “한반도 문제의 근원은 평화 체제를 수립하지 못한 때문”이라며 “누구든 한반도 문제를 빌미로 냉전과 대립을 도모하고 시대를 거슬러 역행한다면 반드시 큰 대가를 치를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근본적인 대책은 평화 협상을 재개하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대만 문제와 관련해서 왕이 부장은 “국제 사회가 모두 '하나의 중국' 원칙을 지키는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믿는다”라며 “시간문제일 뿐이다”고 밝혔다. 또 “하나의 중국 원칙을 더 적극적으로 견지할수록 대만 해협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만이 중국에서 분리되는 것을 절대로 용납하지 않으며, 대만을 독립시키려는 자들은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라 밝혔다.​미·중 관계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왕이 부장은 “중국의 입장은 상호 존중, 평화공존, 협력 상생”이라며 “이는 미중 관계 반세기여 동안의 경험과 교훈이자 대국 간 교류 협력에 대한 파악으로 미중 양국이 공동으로 준수하고 노력해야 할 방향이다”라고 주장했다. 또 “전제는 상호 존중이다"라며 “미중 양국이 손잡고 함께 한다면 양국과 세계에 도움이 되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다”라고 언급했다.또 "일부 국가가 국제사무를 독점하고 실력으로 국가의 등급을 나눈다는 것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고 밝히며 “각국은 유엔을 핵심으로 하는 국제 체제의 틀 안에서 행동하고 글로벌 거버넌스의 프로세스에서 협력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중-러 관계와 관련 왕이 부장은 “중·러관계를 잘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는 것은 세계 발전 추세에 순응하는 필연적인 요구”라고 주장하며 "세계에서 패권은 더 이상 민심을 얻지 못하고, 냉전이 재현되어서도 안된다”라고 언급했다.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에 관해서는 “중국은 팔레스타인이 유엔의 정식 회원국이 되는 것을 지지한다”면서 “팔레스타인 국민이 겪는 역사적 불평등을 이어가서는 안 되며, 이를 오래도록 바로잡지 않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또 “이·팔 충돌의 악순환에서 벗어나야 중동 지역의 항구적 평화를 전적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우크라이나 위기에 관해서는 “중국은 휴전과 평화 협상을 위해 다리를 놓을 것”이라면서 “어떤 충돌이든 그 종점을 테이블에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중국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평화 협상을 진행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주장했다.인공지능에 관해서는 “인공지능 분야에서 장벽을 설치한다면 새로운 역사적인 오류를 범하는 것”이라며 “각국의 과학기술 발전을 막지 못할 뿐만 아니라 국제 산업망과 공급망을 파괴하는 것”이라 밝히며 “기술 공유를 촉진하고 스마트 기술의 격차를 줄여 어느 나라도 뒤떨어지지 않도록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일대일로에 관해서도 언급했다. 왕이 외교부장은 “지난 10여 년 동안 ‘일대일로’는 세계인 국제 협력 플랫폼이 되었다”면서 “중국은 각 측과 함께 실크로드 정신을 전승해 두 번째 황금기를 열어갈 것”이라 말했다. 또 인류 운명공동체 구축에 관해 언급하며 “세계가 급속도로 발전하는 역사적 시점에서 인류가 나아가야 할 정확한 방향을 제시했으며, 인류의 운명은 여러 나라가 공동으로 결정하고 세계의 미래는 모두가 함께 창조해야 한다”고 덧붙였다.​자료제공: CMG 2024.03.08 09:44
연예일반

‘노량’·‘경성크리처’·‘일 테노레’, 한일 역사 직시하게 만드는 K콘텐츠의 힘 [줌인]

“일본 대중도 과거 반일로 여겼던 것을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K콘텐츠가 반일과 극일을 넘어 한일 양국의 역사를 직시하는 새로운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과거에는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민족주의를 자극하는 이른바 ‘국뽕’에 초점을 맞춘 서사가 많았다면 최근에는 당시의 역사적 배경을 보다 깊이 있게 짚으면서 그 안에 보편적인 감성을 드러내는 서사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최근 극장가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는 ‘노량: 죽음의 바다’, 일본에서도 화제가 된 넷플릭스 시리즈 ‘경성크리처’, 뮤지컬신에서 주목받고 있는 ‘일 테노레’는 모두 일본의 한반도 침략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다. 지난달 20일 개봉한 ‘노량: 죽음의 바다’는 임진왜란 시기인 1598년 12월 이순신이 왜군 함대에 맞서 싸운 노량해전을 배경으로 한다. 조선에서 퇴각하려는 왜군을 섬멸하기 위해 전장에 나선 이순신의 최후를 그린다.‘경성크리처’와 ‘일 테노레’는 일제강점기가 배경이다. ‘경성크리처’는 베일에 싸인 병원 지하실에서 벌어지는 일본군의 생체 실험을, ‘일 테노레’는 조선 최초의 오페라 테너를 꿈꾸는 윤이선과 공연을 함께 준비하는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세 작품 모두 암울했던 시기를 날줄로, 그 안에서 벌어진 개인의 서사를 씨줄로 엮어 보편적인 이야기로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다. ‘일 테노레’ 제작사 오디컴퍼니 신춘수 대표는 “일제강점기라는 험난한 시대에 꿈을 가진 한 인물의 서사에 관심이 갔다. 오페라 테너로서의 꿈을 꾸는 인물의 이야기에 보편성과 예술성을 충분히 확보하면 세계 시장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는 소재라고 생각했다”며 “보편성과 예술성은 어떤 소재,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예술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기에 이를 이루는 것에 집중했다”고 말했다.이 같은 서사는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구조나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라 시대에 맞선, 시대를 헤쳐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한국을 넘어 글로벌 공감대를 사고 있다. ‘경성크리처’ 시즌1은 공개 3일만에 국내 1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비영어) 부문 3위에 올랐으며 전 세계 69개국 톱10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는 등 뜨거운 반응을 불러 모았다. 일본에서도 관심이 높다. 공개 직후 일본 넷플릭스 7위를 기록한데 이어 이틀째에는 2위로 올라섰고 이후에도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노량: 죽음의 바다’도 아메리칸필름마켓에서 일본 배급사 트윈에 선판매돼 일본 개봉을 앞두고 있다.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에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면 우울하고 비극적인 내용이 많았는데 이제는 그 가운데서도 희망을 얻을 수 있는 내용을 담은 작품이 많이 나오고 있다. 결이 다르게 변하고 있다”며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먹혀들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생각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물론 이 같은 콘텐츠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경성크리처’에서 윤채옥 역을 맡은 한소희는 자신의 SNS에 직접 찍은 안중근 의사의 모습이 담긴 사진과 함께 “인간을 수단화한 실험 속에 태어난 괴물과 맞서는 찬란하고도 어두웠던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글을 게재했는데, 이후 일부 일본 네티즌의 악플 세례를 받기도 했다.이에 대해 한소희는 “‘경성크리처’ 시즌1이 공개되고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와 다른 쪽으로 의견이 흘러가는 것 같았다. 윤채옥과 장태상(박서준)의 러브스토리에만 집중하지 말고 다른 삶을 가진 사람들에 집중해줬으면 하는 마음에 올린 것”이라고 밝혔다. 한소희의 뜻처럼 일본 네티즌 중에선 ‘경성크리처’를 통해 조선인 등을 대상으로 생체실험을 한 731부대 등 몰랐던 역사를 알게 됐다는 의견도 올라오고 있어 K콘텐츠를 통한 양국의 인식 개선도 이뤄지고 있다는 걸 방증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옛날처럼 민족주의 정서에 기댄 게 아닌,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작품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것이 배경적인 요소를 넘어 재미를 주기 때문에 꾸준히 나오는 것”이라며 “서사의 힘이 글로벌 감성을 만나 일본 대중도 과거 반일로 여겼던 것을 이제는 콘텐츠 그 자체로 받아들인다”고 짚었다.역사적 사실을 조명하는 것은 물론 흡인력 있는 이야기를 통해 일본 대중까지 이해시키고 한국과 일본 사이 가교 역할을 하며 민간 차원의 갈등 봉합에 기여하고 있는 K콘텐츠. 한국이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했는지, 그 안의 사람들의 삶은 어땠는지를 전하는 문화 사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이세빈 기자 sebi0525@edaily.co.kr 2024.01.18 05:50
프로축구

20년 희로애락 담았다…인천 창단 20주년 전시실, 팬들에게도 공개

인천 유나이티드의 지난 20년간의 희로애락이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전시 공간에 모두 담겼다.인천 구단은 창단 2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24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원큐 K리그 1 2023 37라운드 홈경기에 경기장 내 구단 20주년 기념 전시실을 신설했다고 29일 밝혔다.인천 구단은 지난 울산전 홈경기 사전 행사로 구단의 20년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 공간을 공개했다. 기존의 인천축구전용경기장 서측 오션라운지 공간을 창단 20주년 기념 사업의 일환으로 구단 역사 전시실로 새로 단장한 것이다.본 전시실은 2023년 4월부터 6월까지 인천시립박물관에서 개최된 기획특별전 <다시, 비상: 인천유나이티드 F.C. 2003-2023>의 연장선으로 시립박물관 측의 협조하에 해당 전시회를 참고하여 조성됐다.또한, 2005시즌 통합 준우승을 이끌었던 장외룡 감독을 비롯해 문학경기장 시절 팀을 이끌었던 주장 임중용 선수 및 골키퍼 김이섭 선수 등 구단 레전드들과 팬들의 소중한 기증품으로 꾸려졌다.전시실은 크게 세 가지 주제로 구성됐다. 1부는 한반도에 축구를 가장 먼저 전파했다고 알려진 영국 군함 ‘플라잉 피시(Flying Fish)호’부터 2002 한·일 월드컵 대한민국 대 포르투갈전 승리의 열기를 발판 삼아 시작된 인천 구단의 창단 과정 등 인천 축구 역사를 전시하였으며, 2부는 2004시즌부터 2022시즌까지 인천 구단의 주요 연혁, 유니폼 그리고 유물 전시 및 구단을 빛냈던 레전드들의 유물 전시 등으로 구성됐다. 마지막으로 3부는 ‘팬 존(Fan Zone)’으로 인천 구단 서포터즈 응원 물품 및 영상 등으로 구성되었으며, 특히 서포터즈가 기부 방식으로 해당 공간을 손수 꾸며 의의를 더욱 빛냈다. 울산전 홈경기 전 열린 개관식에는 전달수 구단 대표이사, 손장원 인천시립박물관장을 비롯해 기증자 등 인천 시민과 팬들도 함께하며 자리를 빛냈다. 개관식은 전달수 대표이사의 환영사로 막이 올랐다. 전달수 구단 대표이사는 “인천시립박물관 및 팬 여러분들의 소중한 도움으로 우리 구단 20주년 역사를 기념하는 전시 공간이 조성되었다. 앞으로 구단이 명문 구단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후 손장원 시립박물관장의 축사가 이어졌고 테이프 커팅식 이후에는 유물 기증자들을 위한 기증식이 진행됐다. 전시 공간 라운딩 및 인천시립박물관 도슨트의 일일 전시 해설을 끝으로 개관식이 마무리됐다.기념관은 2023시즌 종료 후 전시 콘텐츠를 보완하여 2024시즌 매 홈경기 시민과 팬들에게 본격적으로 공개될 예정이다. 기념관 전시 시간은 매 홈경기 경기장 개방 시간부터 킥오프 전까지다.김희웅 기자 2023.11.30 00:43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맛보지도 못한 새만금 밥맛 타령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고 촉촉한 물기가 배어 있어야 한다. 냄새를 맡았을 때 구수하고 달콤한 향이 나며, 입안에 넣었을 때는 밥알이 낱낱이 살아 있음이 느껴지고, 혀로 밥알을 감았을 때 침이 고이면서 단맛이 더해지며, 살짝 씹을 때는 무르지도 단단하지도 않게 이빨 사이에서 기분 좋은 마찰을 일으켜야 한다.”졸저 ‘미각의 제국’(2010년, 따비)에 실려 있는 글입니다. 맛있는 밥의 기준을 제 나름대로 정리를 한 것이었지요. 당시에 식당 밥이 맛이 없어서 혼자 궁시렁거리며 썼던 것입니다.요즘 식당 밥이 어떠냐 하면 “대체로 만족”입니다. 좋은 쌀로 그때그때 밥을 해서 내는 식당이 많이 생겼습니다. 공장에서 가공한 밥까지도 맛있습니다. 여유가 있으면 음식의 질은 저절로 올라갑니다. 2010년에 했던 밥투정이 어색해 보일 정도로 세상은 크게 바뀌었습니다.쌀이 우리 민족의 주식이라고는 하나 쌀밥을 넉넉하게 먹게 된 것은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닙니다. 이 땅의 민중은 잡곡과 초근목피로 버티었습니다. 극히 일부의 지배계급 빼고는 가을걷이 때에 잠시 쌀밥을 구경할 뿐이었습니다. 1973년 통일벼가 보급되었습니다. 인디카계의 유전자가 포함되어 있어 밥의 찰기가 떨어지고 키가 작아 볏짚의 활용도가 떨어지는 등 여러 단점들이 있었으나 다수확이라는 단 하나의 장점에 비하면 그 단점들은 전혀 중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1976년 쌀 자급률 100%를 기록하였습니다. 한반도 사람들이 마음껏 쌀밥을 먹을 수 있는 시대가 열린 것이지요.1980년대에 들면서 한국 경제는 급성장을 하였습니다. 중산층이란 계급이 만들어졌습니다. 아파트에 살면서 자가용차를 몰고 다니는 핵가족이 등장하였지요. 그들은 햄버거, 피자, 프라이드 치킨 등 미국식 음식을 먹는 것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확인하였습니다.한국 외식 음식들도 중산층의 수요에 맞추어 재편성되었습니다. 식탁에 불판을 올리고 소갈비와 등심, 삼겹살과 돼지갈비를 구웠습니다. 불판 위에 냄비를 올리고 끓이는 탕도 번창하였습니다. 생선회도 대중화되었고요. 그 모오든 상차림에서 밥은 후식으로 밀려났습니다. 고기 구워 먹고, 탕 끓여 먹고, 생선회 먹고 나서, 더 먹을 배가 남아 있으면 밥을, 그것도 국수나 냉면과 비교해가며, 먹었습니다. 그렇게 하여, 1인당 쌀 소비량은 급격하게 줄었습니다.한순간에 남아도는 쌀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1992년 통일벼가 퇴출되었습니다. 한민족 역사상 처음으로 쌀의 자급을 이루게 해준 벼 품종이 기껏 20년 만에 사라진 것이지요. ‘쌀밥 더 먹기 운동’이 30년이 넘게 진행되었지만 성공적인 방법은 단 한 건도 없었습니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새만금은 원래 농지로 쓰기 위해 간척을 한 땅입니다. 새만금 계획 당시에는 도시화로 농지가 줄어들고 통일되면 북한 주민도 먹여 살려야 한다는 논리가 있었습니다. 쌀이 남아돌고 남북 관계도 안 좋으니 새만금을 농지로 쓰자는 말은 쑥 들어가고, 온갖 활용 방안이 제시되고 있습니다.새만금 간척지에서 잼버리를 한다고 세계 각국에서 온 4만여 명의 청소년들을 무더위와 벌레에 시달리게 하여 돌려보냈습니다. 새만금에 텐트를 쳤던 청소년들에게 그 땅은 원래 어떤 용도로 간척한 땅인지 설명이나 했는지 궁금합니다. ‘통일 이후의 식량 안보를 위한 농지’ 같은 말은 어렵더라도, 한반도에서 쌀밥은 유토피아를 상징했으며 새만금이 그 유토피아를 이루어줄 것이라고 한때 온 국민이 믿었다는 설명은 해주었어야 하지 않나 싶었습니다.새만금이 만경평야와 김제평야의 첫 자를 따와서 붙인 이름입니다. 새만금이 벼농사 짓기에 더없이 좋은 땅입니다. 간척지 쌀이 맛있는 것은 다들 아시지요. 새만금에서 거둔 쌀을 잼버리 야영장 청소년들에게 밥을 지어 먹어보라고 주었는지 어땠는지, 그런 거 신경 쓸 겨를도 없었겠지요. 인명 사고가 안 나서 다행이다 생각하고 맙니다. 2023.08.17 07:08
프로축구

‘구단 첫 FA컵 우승을 향해’…제주, 결승 길목서 포항과 맞대결

제주 유나이티드가 FA컵 결승전 길목에서 난적과 만난다.제주는 오는 9일 오후 7시 30분 제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리는 포항 스틸러스와의 2023 하나원큐 FA컵 4강전을 펼친다. 구단 역사상 첫 FA컵 우승 트로피를 도전하는 제주는 이날 두 가지 토끼를 노린다. 먼저 제주는 최근 리그 10경기 연속 무승(4무 6패) 부진을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 경기력과 별개로 골 결정력에서 연일 아쉬움을 삼켰다. 제주는 FA컵 승리로 분위기 반전을 노린다. FA컵을 우승하면 다음 시즌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본선 진출권이 주어지는 만큼 동기부여도 크다. 마침 제주는 통산 FA컵 우승 0회다. 이번 시즌 절호의 기회를 잡은 셈이다.제주는 올 시즌 포항을 상대로 웃지 못했다. 올 시즌 리그에서 3차례 만나 1승 2패를 거뒀다. 특히 지난달 원정경기에선 4-2로 무너지며 아쉬움울 삼켰다. 두 팀은 매 경기 3골 이상씩 주고받는 난타전을 벌이기도 했다. 이날도 치열한 승부가 예상된다.한편 짧은 휴식기를 마친 제주는 8월 6일 강원FC·9일 포항·12일 수원FC로 이어지는 홈 3연전 일정을 앞뒀다. 이미 로테이션을 가동하며 만반의 대비를 마쳤다. 정운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지난 강원전(1-1 무)에서는 백포 라인을 가동하는 동시에 최근 영입한 광주대 출신 멀티플레이어 권순호에게 프로 데뷔전 기회까지 주면서 전술 변화와 체력 안배를 가져갔다.이번 포항전에서는 정운이 복귀한다. 올 시즌 포항을 상대로 골 맛을 봤던 헤이스·김봉수·김주공·연제운이 출격을 기다린다. 특히 강원전에서 막판 극적인 페널티킥 동점 골을 터트린 헤이스는 당시 아쉽게 못보여줬던 ‘제주숲’ 세리머니를 제대로 보여주겠다는 각오다. 제주 선수단은 최근 친환경 재생 유니폼 제주숲 출시 및 착용에 맞춰 환경보호의 실천 의지를 담은 제주숲 세리머니를 준비한 바 있다.헤이스는 구단을 통해 “쉽지 않은 승부지만 결코 물러설 생각은 없다. 현재 리그에서 부진하지만 FA컵에서 분위기를 반전시키고자 코칭스태프, 선수들, 프런트까지 모두 합심하고 있다. 나 역시 공격을 책임지는 외국인 공격수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면서 준비하고 있다. 특히 강원전에서 막판 경기 흐름으로 아쉽게 보여주지 못했던 제주숲 세리머니를 이번에는 제대로 보여주겠다. 팬들의 많은 성원과 관심 부탁드린다”라고 강조했다.헤이스의 바람이 현실로 이어지기 위해선 ‘골 결정력’ 향상이 우선이다. 제주는 올 시즌 리그 25경기에서 293개의 슈팅(리그 6위)를 시도했고, 118개의 유효슈팅(리그 2위)으로 전환했다. 득점은 총 33골로 리그 5위. 하지만 최근 10경기 무승 기간 10골에 그쳤다. 무득점 경기도 두 차례 있었다. 즉, 찬스 대비 득점 전환이 좋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제주는 FA컵을 앞두고 골 결정력 훈련에 더욱 매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남기일 제주 감독은 구단을 통해 “찬스를 많이 만들고 있지만 득점으로 마무리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숙제다. 포항과의 FA컵 4강전은 정말 중요한 경기다. 우리의 문제를 해결하는 무대가 됐으면 한다. 득점 찬스 창출에 그치지 않고 골이 더 나와야 한다. FA컵을 앞두고 이러한 부분을 선수들과 함께 더 보완하겠다”라고 선전을 다짐했다.한편 제6호 태풍 ‘카눈’의 예상 진로가 한반도 중앙으로 향하면서 제주도 역시 영향권에 들어간다. 제주 구단은 “FA컵 운영 규정에 의거해 경기 당일 상황에 따라 경기 연기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 때문에 정상적으로 철저한 경기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김우중 기자 2023.08.08 15:07
해외축구

[이정우의 스포츠 랩소디] 당신은 퍼거슨의 명언을 알아들을 수 있을까?

영국 TV 중계사는 축구 경기가 끝나도 방송을 바로 종료하지 않는다. 예상보다 중계 시간이 길어져도, 경기 분석, 하이라이트, 선수와 감독의 인터뷰 등을 꼭 보여준다. 원어민이 아닌 이들은 일정 수준의 영어 구사능력이 있어도, 선수나 감독의 인터뷰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난해하고 독특한 악센트(accent, 억양)를 구사하는 이들이 꽤 많기 때문이다. 얼핏 들으면 영어가 아닌 다른 언어라고 착각하게 만들 정도다.영국(UK: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면적은 24만2495㎢로 한반도(약 22만㎢)보다 약간 크다. 인구는 약 6800만 명이다. 영국에는 서로 완전히 다르게 들리는 약 40개의 방언(dialect)이 존재한다. 게다가 영국은 109개의 카운티(county)로 이루어져 있는데, 카운티마다 악센트가 거의 하나씩 있다. 참고로 미국은 영국보다 국토가 40배 크고 인구는 3억3000만 명이 넘는다. 하지만 미국이 가진 독특한 방언은 26개에 불과하다. 이렇게 영국은 국토 크기에 비해 다양한 방언과 억양을 가지고 있는 조금은 독특한 나라다. 영국의 표준 발음인 ‘RP(Received Pronunciation)’는 지적이고 세련되게 들리기 때문에, 지구상에는 영국 영어를 좋아하는 사람이 꽤 많다. 그러나 RP를 구사하는 영국인은 전체 인구의 2~3%에 불과하다. 즉 대부분의 영국인은 RP가 아닌 그들만의 고유한 억양을 갖고 있다. RP를 구사하는 영국의 유명 프로 축구선수는 없다. 따라서 학교 등에서 RP만 배운 외국인이 영국 축구인의 인터뷰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것은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영국인도 서로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는 그들의 독특한 악센트를 외국인이 어떻게 이해하겠는가?필자에게 어느 선수와 감독의 억양이 어렵냐고 물어본다면, 당장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들만 꽤 된다. 하지만 딱 1명만 고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말할 수 있는 인물이 있다. 바로 26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를 이끌었던 전설적인 감독 알렉스 퍼거슨이다.퍼거슨과 연관된 에피소드는 정말 많다. 특히 ‘퍼기 타임(Fergie Time, 골이 필요할 때 사이드라인까지 나와 왼손에 찬 시계를 가리키며 추가시간을 더 달라고 주심을 압박하는 행동), 게임 중에 항상 씹는 껌, 트위터(SNS)는 인생의 낭비다’ 등이 국내 팬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다. 영국인들 사이에서도 퍼거슨의 억양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필자도 퍼거슨의 인터뷰에 앞서 “이번에는 알아듣자”는 결심을 여러 번 했다. 하지만 언제나 “도대체 뭔 소리를 하는 거야”라는 원망으로 끝나곤 했다. 그는 도대체 무슨 억양을 쓰길래 그리도 이해하기 어려웠을까?스코틀랜드 제1의 도시 글래스고와 수도 에든버러는 자동차로 1시간 20분이면 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깝다. 하지만 'You'll have more fun at a Glasgow funeral than an Edinburgh wedding(에든버러 결혼식보다 글래스고 장례식이 더 재미있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두 도시는 많이 다르다. 법, 행정 및 금융의 중심지인 에든버러는 영국에서 런던 다음으로 관광객이 많이 방문하는 도시다. 중세 시대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는 이 도시는 에든버러 성, 미술관, 박물관, 프린지 페스티벌 등 즐길 거리가 많다. 또한 에든버러는 부유한 가정이 많아 우아하고, 화려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이곳에는 스코틀랜드 특유의 영어가 아닌, 부드럽고 알아듣기 쉬운 영어가 주로 쓰인다.그에 반해 산업도시 글래스고는 강인한 노동자 계급의 이미지를 갖고 있다. 글래스고에는 19세기 빅토리안 시대의 건축물이 많고, 시민들은 친절하고 재미있으며 따뜻하다. 하지만 이들이 구사하는 글라스위전(Glaswegian)은 19세기~20세기 초 고지대인 하이랜드(Highland)와 아일랜드에서 대규모로 이주해온 이민자들의 영향을 받아, 원어민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독특하다.퍼거슨이 바로 글래스고 출신이다. 물론 모든 글라스위전이 다 퍼거슨처럼 말하는 것은 아니다. 퍼거슨의 뒤를 이어 맨유의 감독이 된 데이비드 모이스도 글래스고 출신이지만, 그보다 알아듣기 쉽게 말한다. 특히 맨유의 비 영어권 선수들이 퍼거슨의 말을 이해하지 못 했다는 증언은 꽤 많다. 호날두도 맨유 시절 초반에는 자신에게 퍼거슨만을 위한 통역사가 있었다고 한다. 2015년 영국 ITV의 유명 토크 프로인 ‘조나단 로스 쇼’에서 진행자인 로스가 “(원어민인 자신도) 퍼거슨 감독의 억양을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라고 말하자 호날두는 ”I still don’t understand him(아직도 퍼거슨의 말을 이해 못한다)"라고 말해 폭소를 자아내기도 했다.‘세르비아 산 통곡의 벽’이었던 맨유의 센터백 네마냐 비디치는 “많은 선수들, 특히 비 영어권 선수들이 퍼거슨의 글래스고 억양을 이해 못 했지만, 선수단은 결과로 그의 메시지가 전달됐음을 확인시켜줬다"고 말했다. 치차리토라는 애칭으로 알려진 하비에르 에르난데스도 퍼거슨과의 첫 번째 전화 통화 때 “(그의 억양을 이해하기 어려워) 자기 인생에서 그렇게 전화에 집중한 적은 없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남아공 출신의 퀸튼 포춘도 1999년 맨유에 합류했을 때, 퍼거슨의 억양을 이해할 수 없어 "알았다"라고 대답하면서 고개만 연신 끄덕거렸다고 한다.보루시아 도르트문트 시절 로베르트 레반도프스키는 퍼거슨과 비밀 통화를 한 적이 있다. 레반도프스키 역시 그의 억양을 이해하기 어려워했기에, 퍼거슨은 천천히 말하며 설득에 들어갔다. 통화 후 그는 맨유에 가고 싶었지만, 당시 도르트문트의 감독이었던 위르겐 클롭의 강한 반대로 무산됐다고 한다. 사람은 흔히 나이가 들면 성격이 유해진다고 한다. 목소리와 말투도 바뀐다. 그래서인지 1990년대와 2010년대 퍼거슨의 억양은 차이가 난다. 나이가 들면서 말투가 부드러워졌을 수도 있고, 맨체스터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에 그가 잉글랜드 억양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수도 있다.2017년 마이클 캐릭의 자선 경기 때 ‘맨유 2008년 베스트 팀’ 감독을 맡은 퍼거슨의 스피치는 부드러웠고 명료했다. 그의 억양이 마침내 들렸지만, 필자는 반가움보다는 슬픈 생각이 들었다. 한 시대가 지나가고 있음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이화여대 국제사무학과 초빙교수 2023.08.05 09:10
생활문화

[황교익의 Epi-Life] 빵의 시대

뉴스공장 금요미식회에 가끔 먹을거리를 가져오는 분들이 계십니다. 빵이 들어온 날이었습니다. 변상욱 대기자가 빵을 들고 프랑스의 명언을 날렸습니다. “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이 말에 다들 한순간의 머뭇거림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빵은 생명이지요.프랑스인의 빵에 해당하는 우리 것은 밥입니다. ‘빵’의 자리에 ‘밥’을 넣어보면 어떨까요. “밥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 어색합니다. 빵이나 밥이나 생명인데 말입니다. 우리는 밥만 있으면 안 됩니다. 반찬도 있어야 하고 국도 있어야 합니다.“빵만 있다면 웬만한 슬픔은 견딜 수 있다”는 프랑스 명언에 대비될 수 있는 한국의 명언으로 해월 선생의 말씀인 “밥이 하늘이다”가 있습니다. 인간은 먹어야 삽니다. 먹을거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 인간은 없을 것입니다. 마침 변상욱 대기자가 포르투갈을 간다고 하여 제가 “빵의 나라에 가시네요” 했습니다. 빵이라는 말이 포르투갈어 pão에서 왔으니 “빵의 나라”라고 했던 것입니다. 제 곁에 있던 젊은 분이 이렇게 되물었습니다. “빵이 우리말 아니었어요?”빵은 곡물을 가루 내어 반죽을 하고 이를 부풀려서 굽는 음식이지요. 이런 음식이 우리에게는 없었습니다. 우리 조상이 빵을 싫어해서 안 만들었던 것은 아니고요, 한반도의 자연 조건이 빵을 구워 먹기보다는 밥을 지어 먹는 게 효율적이었던 것이지요. 조선 말기에 ‘곡물을 가루 내어 반죽을 하고 이를 부풀려서 굽는 음식’이 우리 땅에 들어왔고, 이를 이르는 명칭으로 포루투갈어인 pão이 선택된 것이지요.빵은 분명히 근래에 이식된 외래어인데 이를 외래어라고 느끼는 일은 거의 없는 듯합니다. 저도 그냥 우리말인 듯이 쓰다가 별스런 일이 발생했을 때에나 빵이 외래어임을 강조해서 말하곤 합니다.빵은 한 음절로 된 단어입니다. 우리말 중에 한 음절로 된 단어를 입에 올려 소리를 내어보십시오. 해·달·별·땅·물·논·밭·몸·손·발·입·코·귀·눈·벼·쌀·콩·팥·밥·국·술·똥… 느낌이 오십니까. 우리말에서 한 음절의 단어는 자연과 몸, 그리고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주 먼먼 옛날에 탄생한 단어라고 보아야 합니다. 빵. 외래어인데 한 음절입니다. 그리고 생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외래어인 빵은 한 음절의 우리말이 주는 느낌을 자연스레 공유하고 있습니다. “빵이 아니면 죽음을 달라”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못한 자와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 등 빵과 관련한 서양의 속담이나 명언이 우리의 오랜 속담이나 명언인 것처럼 받아들여져서 우리의 가슴을 흔드는 것이 그 이유이지 않나 추측을 하게 됩니다.아침으로 빵을 먹는 사람이 참 많습니다. 밥을 차려서 먹는 것보다 간편하기 때문입니다.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빵집이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유명 빵집 앞에 줄을 섭니다.밥의 시대는 가고 빵의 시대가 왔습니다. 한국 국민의 먹을거리를 책임지는 농림수산식품부도 빵의 시대에 맞춘 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국민이 밥을 안 먹으니 쌀로 빵가루를 만드는 사업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한국인의 주식이 밥이 아니라 빵으로 바뀔 수도 있을 것입니다.밥의 시대가 끝날 수도 있다는 말에 한민족이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한민족이 밥의 시대를 연 것은 고려 중기입니다. 벼 재배는 그 이전부터이지만 밥을 지을 정도의 도정 기술과 무쇠솥의 보급 등을 고려하면 고려 중기에 밥을 주식으로 삼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밥의 시대 이전에는 떡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곡물을 가루 내어 시루에 쪄서 먹었습니다. 떡의 시대 이전에는 죽의 시대가 있었고요. 서양에서 최초 곡물 음식으로 오트밀(귀리죽)을 꼽는데, 한민족 최초 곡물 음식으로는 콩죽 정도를 상상하는 게 적당합니다.한반도에서의 큰 흐름으로 보자면 빵의 시대가 온다고 해도 크게 어색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밥의 시대가 저물면서 한반도의 농민은 고통을 겪게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는 밥이 하늘이고 빵은 하늘이 아닙니다. 하늘을 지키는 농민을 잘 보듬어야 합니다. 2023.06.15 07:03
연예일반

[오!뜨뜨] 김우빈의 ‘택배기사’로 무겁게? 나영석의 ‘지락실2’로 가볍게?

이번 주말 볼 만한 따끈따끈한 OTT 신작을 소개합니다. 너무 많은 OTT와 작품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간은 이제 끝. 정주행을 부르는 작품들만 일간스포츠가 모아모아 엄선했습니다. 나홀로, 가족, 친구, 연인 등 다양한 사람들과 즐겨주세요. <편집자 주> #넷플릭스: 택배기사12일 넷플릭스 기대작인 ‘택배기사’가 첫 선을 보인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한 ‘택배기사’는 극심한 대기 오염으로 산소호흡기 없이는 살 수 없는 미래의 한반도, 전설의 택배기사 5-8과 난민 사월이 새로운 세상을 지배하는 천명그룹에 맞서며 벌어지는 일을 그린 넷플릭스 시리즈다.택배기사 5-8 역에는 김우빈이, 매력적인 빌런이자 천명그룹 후계자 류석 역은 송승헌이 맡아 열연을 펼칠 예정이다. 택배기사 선발대회에 출전한 난민 사월 역에는 강유석이, 군 정보사 소령 설아 역에는 이솜이, 사월의 든든한 지원군인 뚝딱할배 역은 김의성이 맡았다.‘택배기사’는 사막화된 대한민국을 배경으로 단 1%의 인류만 살아남은 디스토피아 세계관을 촘촘하게 그렸다. 어둡고 황량한 배경 속 무거운 분위기가 치열한 생존을 위한 싸움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해준다. 척박한 환경에서 영웅처럼 등장한 택배기사 김우빈이 어떤 활약상을 펼칠지 기대감을 모은다. 총 6부작으로 상영시간은 4시간 38분 48초다. #티빙: 뿅뿅 지구오락실2느슨해진 예능계에 나영석 표 예능이 돌아온다.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 등 총천연색 매력을 가진 엔터네이너들이 모인 ‘뿅뿅 지구오락실2’(이하 ‘지락실2’)이 12일 공개된다.‘지락실2’는 시즌1에 이어 지구로 다시 탈출한 토롱이를 잡기 위해 다시 한 번 뭉친 경력직 지구 용사 4인방의 대모험을 담았다. 신개념 여행 예능인 ‘지락실’ 시리즈는 도망친 외계인을 잡는다는 특이한 설정으로 4명의 ‘지구 용사’들이 곳곳을 탐험한다. 이번엔 겨울왕국 핀란드와 신들의 섬 발리에서 특별한 모험이 펼쳐질 예정이다.앞서 공개된 1회 예고 영상에는 이은지, 미미, 이영지, 안유진이 K드라마 왕국 멀티버스 콘셉트로 분장을 해 이목을 끌었다. 이은지는 드라마 ‘도깨비’의 지은탁으로, 미미는 ‘SKY 캐슬’의 카리스마 선생님 김주영으로, 이영지는 ‘꽃보다 남자’ 구준표로, 안유진은 ‘커피프린스 1호점’ 고은찬으로 변신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웃으며 주말을 보낼 이들은 4명 멤버들의 하이텐션과 함께 하면 된다. #디즈니+: 앤트맨: 퀀텀매니아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의 새로운 시작인 ‘앤트맨: 퀀텀매니아’(이하 ‘앤트맨3’)가 디즈니+에서 오는 17일 공개된다. 지난 2월 극장에서 개봉한 ‘앤트맨3’는 마블 페이즈5 시작을 여는 영화로, 앤트맨 스콧 랭과 그의 가족들이 양자 세계로 빨려 들어가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특히 ‘앤트맨3’에서는 페이즈5의 핵심 빌런 ‘정복자 캉’이 새롭게 등장해 마블 팬들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앤트맨3’에서는 앤트맨과 와스프였던 행크(마이클 더글라스)와 재닛(미셸 파이퍼)까지 합세하며 마블 블록버스터 작품 중에서도 유일무이한 히어로 패밀리의 활약을 담아냈다. 전작인 ‘앤트맨’(2015)과 ‘앤트맨과 와스프’(2018)까지 가족, 휴먼, 코미디, 아기자기함이 담긴 앤트맨 시리즈의 따뜻함을 느껴 보자. #웨이브: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소설과 영화 모두 ‘클래식’으로 취급되는 작품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한국개봉 1957)가 지난 8일부터 웨이브에서 감상 가능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대사로 유명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남북전쟁 발발 직전 1930년대 미국 격동의 시기를 잘 표현했다.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기념비적인 영화로, 인플레이션을 적용하면 ‘아바타’ 시리즈보다 흥행한 역사상 최고 흥행작이다.‘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미국 오하라 가문의 장녀 스칼렛 오하라(비비안 리)와 그에게 반한 레트 버틀러(클라크 게이블)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스칼렛은 짝사랑하던 애슐리가 자신의 친구 멜라니와 결혼한다는 것을 알고 애슐리에게 고백하지만, 일언지하에 거절당한다. 새로 이사 온 러트는 그 모습을 목격하게 되고, 아름다운 스칼렛을 사랑하게 된다.김혜선 기자 hyeseon@edaily.co.kr 2023.05.12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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