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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C 출신이 10타자 연속 퍼펙트, '또 셧아웃' SD 홈 경기 9전 전승 '신바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상승세가 거침 없다.샌디에이고는 13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펫코 파크에서 열린 콜로라도 로키스와의 홈 경기를 2-0으로 승리, 3연승 포함 시즌 12승(3패)째를 거뒀다. 메이저리그(MLB) 공식 홈페이지 MLB닷컴은 '시즌 첫 15경기에서 다섯 번째 완봉승(셧아웃)을 기록했다'라고 전했다. MLB 역대 관련 기록을 작성한 마지막은 팀은 2015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샌디에이고는 홈 경기 9전 전승 신바람도 이어갔다.잘 치고 잘 막았다. 이날 샌디에이고는 1회 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솔로 홈런, 4회 말 제이슨 헤이워드의 솔로 홈런으로 2득점 했다. 콜로라도보다 팀 안타가 1개 적은 3개에 불과했으나 효율적인 공격으로 결승점을 뽑은 것이다. 마운드에선 KBO리그 NC 다이노스 출신 카일 하트의 호투가 인상적이었다. 하트는 6이닝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쾌투로 시즌 2승째를 달성했다. 4회 초 1사 후 카일 파머의 2루타가 나오기 전까지 '10타자 연속 퍼펙트'로 콜로라도 타선을 꽁꽁 묶었다. 7회부터 가동된 불펜은 제레미아 에스트라다·제이슨 아담·로베르토 수아레스가 각각 1이닝 무실점했다. 시즌 6번째 홀드와 7번째 세이브를 챙긴 아담과 수아레스는 시즌 평균자책점 '0' 행진을 이어갔다. 하트의 투구 수가 74개로 많은 건 아니었지만 워낙 불펜의 힘이 강력하다 보니 어렵지 않게 승기를 잡았다. MLB닷컴은 '샌디에이고의 불펜 평균자책점은 1.51로 MLB 1위'라고 조명했다.부문 2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불펜 평균자책점도 1.79로 수준급인데 이를 압도하고 있는 셈이다. 간판스타인 타티스 주니어는 "그들 뒤에서 수비하는 게 재밌다"며 만족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타티스 주니어는 9회말 2사 1,2루에서 크리스 브라이언트의 우익수 방면 타구(기대 타율 0.770)를 점프 캐치로 처리, 홈팬들을 열광시켰다. 이정후의 소속팀 샌프란시스코(10승 4패), 오타니 쇼헤이가 이끄는 LA 다저스(11승 5패)의 초반 기세가 뜨겁다. 하지만 내셔널리그(NL) 서부지구 1위는 샌디에이고다. MLB 유일의 8할 승률 팀으로 만만치 않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배중현 기자 bjh1025@edaily.co.kr 2025.04.14 0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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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료·팬·언론이 인정하는 슈스...김하성, 20-20클럽? 빅딜이 기다리고 있다

김하성(27·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주가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연일 눈이 즐거운 퍼포먼스로 국내 야구팬에 강한 자부심을 주고 있다. 김하성은 23일(한국시간)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코메리카파크에서 열린 2023 메이저리그(MLB)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와의 원정 경기에서 1번 타자·2루수로 선발 출전해 4타수 3안타(1홈런) 2볼넷 1타점 2득점을 기록하며 소속팀 샌디에이고의 14-3 대승을 이끌었다. 개인 타율은 종전 0.262에서 0.268까지 끌어올렸다. 홈런 커리어 하이, 출루 한 경기 최다 기록을 번갈아 세웠다. 김하성은 1회 초 상대 선발 투수 맷 매닝으로부터 볼넷을 얻어냈다. 팀이 4-3을 앞선 4회 초 세 번째 타석에서는 2사 1루에서 나서 바뀐 투수 메이슨 잉글러트 상대 중전 안타를 치며 주자를 3루까지 보냈다. 후속 타자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의 적시타에 기여했다. 8-3으로 앞선 5회, 이 경기 2번째 볼넷으 얻어내며 ‘3출루’ 경기를 완성한 김하성은 7회 초, 2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나선 다섯 번째 타석에서 상대 투수 체이슨 쉬리브의 시속 145㎞/h 높은 포심 패스트볼(직구)를 공략해 맞는 순간 홈런을 직감할 수 있는 장타를 날렸다. 이 홈런은 김하성의 MLB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이다. 지난 시즌(2022) 11개를 넘어섰다. 김하성은 전날(22) 디트로이트전 2회 초 타석에서 홈런성 타구를 쳤지만, 상대 좌익수 아킬 바두의 점프 캐치에 잡히며 홈런 1개를 도둑 맞았다. 하지만 6회 타석에서 시즌 14호 2루타를 치며 위안 삼았다. 그리고 2루타를 쳤던 쉬리브를 상대로 결국 12호 홈런까지 때려냈다. 김하성은 샌디에이고 타선이 폭발하며 9회 초 다시 타석에 나섰고,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깔끔한 안타를 치며 16일 필라델피아전에 이어 7경기 만에 ‘3안타’를 기록했다. 볼넷 포함 5출루. 개인 한 경기 최다 출루도 다시 썼다. 김하성은 KBO리그 대표 유격수였다. 장타력과 빠른 발을 갖춘 내야수로 가치를 높였다. 공격력이 워낙 뛰어나, 정상급인 수비력이 주목받지 못하기도 했다. MLB 진출 첫 시즌(2021) 김하성은 빠른 공 적응에 애를 먹으며 타율 0.202·8홈런·34타점에 그쳤다. 하지만 백업 2루수와 유격수 그리고 3루수르 두루 맡으며 경쟁력을 보여줬고, 지난 시즌(2022)엔 부상과 징계로 이탈한 주전 유격수 페르난도 타티스 주니어 대신 자리를 메워, 견고하면서도 화려한 수비력을 증명하며 내셔널리그(NL) 골드글러브 최종 후보(3인)까지 올랐다. 김하성은 지난 5일 LA 에인절스전에서 두 차례나 환상적인 수비를 보여줬다. 4회 초 2사 1루에서 1루수 제이크 크로넨워스의 글러브에 맞고 타구가 굴절되자, 역동작에서 맨손으로 포구를 시도했다. 일명 베어핸드. 공을 한 번에 잡진 못했지만, 바로 후속 동작으로 타자주자 마이크 무스타커스를 잡아냈다. 마무리 투수 조쉬 헤이더가 2사 만루 위기에 몰린 9회 초, 테일러 워드의 빗맞아 회전이 걸린 타구를 순발력을 발휘해 잡아낸 송구, 간발 차이로 아웃카운트를 얻어냈다. 김하성은 올 시즌 타격에서도 빅리그 적응을 마친 모습이다. 월간 타율이 계속 오르고 있다. 4월 월간 타율 0.177에 그쳤지만, 5월 0.276로 올랐고, 6월은 0.291를 마크했다. 월간 개인 최다 홈런(4개)도 경신했다. 7월은 아직 일주일 더 남았지만, 타율 0.308·3홈런을 기록했다. 샌디에이고 지역 매체 유니온-트리뷴은 지구(내셔널리그 서부) 4위(48승 51패)까지 떨어진 팀 성적을 날카롭게 꼬집으면서도 “김하성은 올 시즌 실망스럽지 않은 유일한 선수”라고 극찬했다. 세이버 매트릭스 수비·공격 지표, 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WAR)를 두루 언급했다. 벤치 멤버에서 팀에서 가장 빼어난 선수로 성장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타선 기둥 매니 마치도, 마운드 에이스 블레이크 스넬도 김하성을 향한 애정을 감추지 않는다. 김하성은 23일 기준으로 팀 내 홈런 4위(12개) 장타율 4위(0.428)에 올라 있다. 총액 2억 8000만 달러(약 3600억원)에 지난겨울 계약한 주전 유격수 젠더 보가츠(11홈런·장타율 0.401)보다 나은 성적이다. 유격수보다는 상대적으로 타격 능력이 좋은 선수들이 많은 2루수. 김하성은 리그 주전들 중에서도 홈런 공동 9위, 장타율 11위에 올라 있다. 타율도 11위다. 마커스 세미엔(텍사스 레인저스)처럼 천문학적인 몸값(1억 7500만 달러·약 2060억원)을 받는 선수다. 브랜든 드루리(LA 에인절스)와 윗 메리필드(토론토 블루제이스)도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다. 니코 호너는 시카고 컵스 차기 리더, 루이스 아레에즈는 현재 타율 1위다. 아지 알비스는 로날드 아쿠나 주니어, 오스틴 라일리와 함께 애틀란타 브레이스브 타선을 이끄는 선수다. 국내 MLB팬이라면 대부분 잘 아는 선수들과 김하성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이런 페이스면 20홈런-20도루 달성 가능성은 매우 높다. 도루는 2개만 더 추가하면 되고, 홈런은 몰아치기를 기대할 수 있다. 추신수빅리그에서만 16시즌 동안 뛰었던 추신수도 데뷔 5번째 시즌(2009)에서야 해낸 20홈런-20도루다. 추신수는 서비스 타임 탓에 2010시즌까지 50만 달러도 못 받았다. 김하성의 계약은 2024년까지다. 현재 성장세가 이어지고, 경쟁력을 유지하면 김하성도 추신수에 버금가는 계약 성사를 기대할 수 있다. 6~7월 김하성이라면 가능할 것 같다. 안희수 기자 anheesoo@edaily.co.kr 2023.07.23 19:02
연예일반

[IS인터뷰] ‘#맨홀’ 구마키리 감독이 아이돌 헤이 세이 점프와 만났을 때

영화 ‘#맨홀’은 구마키리 가즈요시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굉장히 인상적인 작품으로 남을 것이 틀림없다. 투박한 방식으로 인물의 심리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드라마에 일가견을 보였던 구마키리 감독이 반전과 스릴이 가득한 추리물로 관객들과 만나게 됐기 때문이다.‘#맨홀’은 어느 날 갑자기 맨홀에 빠진 어떤 남자의 이야기다. 자신이 빠져 있는 곳이 어디인지,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든 것이 막막한 남자는 SNS 계정을 하나 만든다. 그리곤 귀여운 여자의 사진을 찾아 프로필로 설정한다. 귀여운 여자의 사진으로 누리꾼들의 시선을 끌어 구출되겠다는 마음에서다. 그때부터 남자는 SNS를 통해 자신이 있는 곳의 사진을 찍어 올리고 장소를 유추할 수 있을만한 정보 등을 공유하기 시작한다. 남자주인공은 일본의 유명 아이돌 그룹 헤이 세이 점프의 나카지마 유토가 연기했다. ‘#맨홀’로 ‘제27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찾은 구마키리 감독을 최근 일간스포츠가 만났다. 구마키리 감독은 이번 인터뷰에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처음 찾은 소감과 아이돌 그룹 헤이 세이 점프의 나카지마 유토와 호흡, 차기작에 대한 계획까지 진지하게 이야기했다.‘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장르 영화제다. 여러 종류의 영화를 두루 다루는 여타의 영화제들과 달리 색이 확실해 마니아층이 탄탄하다. 지금까지와 사뭇 다른 ‘#맨홀’이었기에 이번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참여가 가능했. 구다마키리 감독은 “항상 오고 싶었던 영화제”라며 “판타스틱계 영화를 그다지 연출하지 않아서 그동안 오지 못 했다. 이번에 초대를 받게 돼 기쁘다”고 소회를 밝혔다. 구마키리 감독이 ‘#맨홀’을 택한 건 영화가 가진 메시지의 힘이 컸다. 지금까지 해왔던 작품들과 다른 부분이 있어 시나리오만 봤을 땐 연출을 잘할 수 있을지 고민이 있었지만, 점차 잘해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감독은 “‘#맨홀’은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여러 성격과 문제를 축약시켜서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고, 잘 만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고 이야기했다.평소 아이돌 그룹에 관해 잘 모른다는 구마키리 감독은 영화 ‘핑크와 그레이’에서 배우 나카지마 유토를 제대로 보게 됐다.“굉장히 클린한 이미지더라고요. 그래서 이 배우가 주인공을 연기한다면 반전의 효과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마침 나카지마 본인도 지금까지와 다른 이미지를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더라고요.”나카지마 유토가 연기한 카와무라는 맨홀에 빠지기 전까지 번듯한 직장에 사장의 딸과 결혼까지 앞둔 상태였다. 그야말로 부족할 게 없는 그에게 갑자기 닥친 시련. 이 시련을 통해 카와무라는 자신의 인생을 되짚기 시작하고, 관객들은 곧 충격적인 광경과 목도하게 된다.“한 명의 배우지만 두 가지의 이미지를 표현해야 했어요. 그래서 카와무라는 어떤 인물일지 고민을 했고, 배경이 될 법한 이야기들을 써서 배우에게 전달을 했어요. 배우와 대화를 많이 했고 결과적으로 좋은 결과물이 나왔다고 봐요. 배우도 저도 만족할 수 있는 영화가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넥타이, 라이터 등 갖고 있던 도구를 사용해 생존을 도모하는 과정과 그를 구출하려는 SNS 누리꾼들의 노력. 카와무라 구출기와 그의 전사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추리물은 장르물을 사랑하는 한국 관객들에게 크게 소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2편이 나올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구마키리 감독은 “한국에서 크게 사랑받아서 한국에서 제작되면 좋을 것 같다”며 웃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그는 “‘#맨홀’은 플롯이 단순한 체감형 영화다. 편안한 마음으로 보다 보면 어느 순간 영화 속에 빨려들 것”이라고 예고, 영화에 관한 기대감을 높였다.정진영 기자 afreeca@edaily.co.kr 2023.07.11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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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IS] “J팝보다 K팝!” 1세대→4세대 점령…일본은 韓걸그룹 열풍

‘한류 원조’라 불리는 1세대 아이돌 보아부터 2세대 대표 카라, 3세대 대표 트와이스를 이어 4세대 걸그룹 르세라핌까지. 한국의 여성 아이돌은 세대를 막론하고 일본 열도를 뒤흔들고 있는 중이다.90년대까지 팝, 발라드, 록, 아이돌, 애니메이션 음악 등으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도하며 J팝이라는 단어를 만들어낸 일본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음악 시장에서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지난 1월 발표된 IBK투자증권 ‘2023 K팝 글로벌 코어팬덤 확장기 진입’ 보고서를 보면 2021년 전 세계 레코딩 음악 시장 규모는 미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 중국, 한국 순으로 형성됐다.특히 일본의 아이돌 시장은 SMAP, 아라시, 캇툰, 헤이세이 점프 등 보이그룹들만 발굴한 기획사 ‘쟈니스’의 독주가 지속됐다. 하지만 2000년대 한류가 급성장하면서 K팝이 점차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최근엔 글로벌 시장에서 열풍을 일으킨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의 음악을 계기로 일본에서 K팝 열풍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지난달 16일 관세청 수출입 무역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국의 음반 수출액은 2억 3311만3000달러(약 2895억원)였다. 한국 음반을 가장 많이 수입해 간 국가는 일본으로, 8574만9000달러(약 1065억원)를 기록했다.이처럼 세계 2위의 음악 시장 일본은 ‘한국 음반 수입 1위 국가’라는 타이틀을 얻으며 K팝의 인기를 대변하는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다만 방탄소년단을 기점으로 K팝이 널리 퍼진 미국과 달리, 일본에서는 1세대부터 4세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여성 아이돌이 꾸준히 큰 사랑을 받았다는 특이점을 갖고 있다.보아부터 르세라핌…일본 문 두드린 한국의 여성 아이돌일본 시장 점령의 첫 포문을 연 것은 ‘아시아의 별’ 보아다. 90년 말 쟈니스의 매니지먼트 시스템을 벤치마크한 SM엔터테인먼트는 연습생을 수년 간 트레이닝을 시킨 후 최종 데뷔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보아에게 들어간 투자금만 30억원으로, 보아는 국내 데뷔 후 2001년 일본으로 건너가 ‘아이디 ; 피스 비’로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당시 진입장벽이 높았던 일본 시장에서 보아는 첫 앨범부터 큰 인기를 끌지는 못했다. 하지만 2002년 보아의 첫 정규앨범 ‘리슨 투 마이 하트’는 한국 가수 최초로 오리콘 일간, 주간 앨범 차트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다. 이 앨범은 100만장의 판매고를 올려 밀리언 셀러에 등극했다. 보아는 일본 최고의 가수들만 출연한다는 연말 음악 축제 NHK ‘홍백가합전’(2002년~2007년)에 총 6년 연속 출연했다. 순식간에 일본 열도를 ‘보아 열풍’으로 물들인 것이다. 이어 2세대 걸그룹 중 카라가 2009년 ‘미스터’ 발매부터 일본에서 본격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2007년 데뷔한 카라는 일본 데뷔곡이자 엉덩이춤으로 화제를 모은 ‘미스터’로 오리콘 차트를 휩쓸었다. 2013년에는 한국 걸그룹 최초로 일본 도쿄돔(수용인원 4만6000명)에 입성했다. 또 지난해 말 데뷔 15주년을 맞아 ‘무브 어게인’으로 7년 만에 완전체 컴백한 카라는 5회 동안 진행된 일본 팬미팅을 모두 매진시키는 등 건재한 인기를 과시했다. 3세대 걸그룹 트와이스는 특히 일본에서 ‘원톱 인기’를 자랑했다. 일본 인기 만화 ‘크레용 신짱(짱구는 못말려)’에 짱구가 트와이스의 히트곡 ‘TT’의 자세를 따라하는 장면이 등장했고, 트와이스를 모델로 한 게임 ‘고! 고! 파이팅’도 만들어졌다. 음악적으로는 해외 여성 아티스트 최초로 ‘5연속 플래티넘 앨범(앨범 25만 장 이상 판매 시 부여하는 증표)’에 등극했으며, 5개의 돔투어를 성공시켰다. 트와이스와 아이즈원 이후 4세대 걸그룹은 일본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보이지 못했지만, 1월 데뷔한 르세라핌이 요주의 신인그룹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르세라핌의 데뷔 앨범 ‘피어리스’는 초동(발매일 기준 일주일간의 음반 판매량) 판매량 22만2286장을 기록, 역대 K팝 걸그룹의 일본 데뷔 음반 초동 신기록을 세우고 오리콘 차트 3개 부문 1위를 석권했다.일본에서 좀처럼 식지 않는 한국 여자 아이돌의 인기는 바로 현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완성형’ 실력과 독보적 콘셉트 덕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일본의 국민 걸그룹 AKB48의 타이틀은 ‘성장을 지켜볼 수 있는 아이돌’로,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와 아직은 미숙한 소녀들을 주된 콘셉트로 내세웠다.임진모 대중문화 음악 평론가는 “일본에는 한국 같은 여성 아이돌이 없다”며 “한국은 파워 퍼포먼스가 가능하다. 일본은 귀여운 콘셉트만 고수하는데, 한국 여성 아티스트는 강한 콘셉트와 무대로 일본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특히 일본의 여성 팬들에게 완전히 자리매김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권혜미 기자 emily00a@edaily.co.kr 2023.02.15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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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두 번 확진되고도 보란듯 마스크 내린 일본 아이돌

일본 대형 연예기획사 쟈니스 소속 아이돌이 코로나 시국 속 ‘턱마스크’로 비난을 사고 있다. 일본매체 주간문춘은 16일과 17일에 걸쳐 그룹 헤이세이점프의 멤버 이노오 케이(伊野尾慧)가 지난 6일 도쿄 도심에서 2명의 여성을 포함해 회식을 즐긴 사진을 공개했다. 당시 이노오는 만취 상태로 두 여성의 자택으로 이동하면서 마스크를 내린 이른바 ‘턱스크’ 상태로 거리를 돌아다녔다. 이노오는 첫 회식 이후에도 새벽까지 지인들과 술자리를 더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주간문춘의 이같은 보도에 대중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노오는 벌써 두 차례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확진됐다. 2002년 8월과 올 1월 코로나19 확진으로 헤이세이점프의 콘서트까지 중단됐다. 또 코로나19 확진자로서 소속사 쟈니스가 진행한 코로나19 감염 확대 방지를 위한 ‘트웬티★트웬티’ 지원 활동도 참여했다. 그럼에도 불구 이노오가 코로나 시국 속 늦게까지 술자리를 가지고 보건 위생도 무신경한 태도를 보이자 팬들의 분노도 폭발 직전이다. 평소 소속 연예인에 대한 대응을 하지 않는 쟈니스조차 주간문춘에 “본인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 및 재발 방지의 뜻을 보였다”고 사과했다 이노오 케이는 2001년 쟈니스에 들어와 2007년 헤이세이점프로 데뷔했다. 아이돌치고는 드물게 메이지대학 건축학과를 졸업했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2.03.17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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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쟈니스 메리 명예회장 타계… 아이돌왕국 위기론 대두

일본 남성 아이돌 그룹 기획사 쟈니스 사무소의 후지시마 메리 야스코(藤島メリー泰子) 명예회장이 폐렴으로 타계했다. 향년 93세. 쟈니스는 17일 공식 홈페이지에서 메리 명예회장의 사망을 공식 발표했다. 회사 측은 “당사의 명예회장 후지시마 메리 야스코가 2021년 8월 14일 오전 7시 35분 도쿄의 한 병원에서 영면에 들었다”고 전했다. 고인의 장례식은 가까운 가족, 친척들만 초대해 거행했다. 코로나19의 상황이라 수많은 소속 연예인들의 조문도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메리 명예회장은 2019년 사망한 쟈니스 사무소의 창업자 쟈니키타가와 사장의 누나다. 고인 역시 쟈니 사장과 함께 미국 LA에서 출생했다. 진언종(일본 불교 종파) 승려의 딸로 태어나 1962년부터 쟈니스의 모든 경영을 진두지휘해왔다. 쟈니스는 소년대, 스맙(SMAP), 킨키키즈, V6, 아라시, 캇툰, 헤이세이점프, 섹시존, 킹앤프린스 등 일본을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이 소속된 연예기획사다. 쟈니 사장에 이어 메리 명예회장의 별세로 현지 연예시장을 주름잡는쟈니스의 입지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전망이다. 쟈니스는 지난 몇 년 동안 ‘국민 아이돌’ 스맙의 해체와 아라시의 무기한 휴식을 비롯해 V6의 해산, 칸쟈니8 멤버의 탈퇴 등 인기를 견인하던 그룹들이 차례로 내홍을 겪었다. 또 선배의 뒤를 이은 후속 그룹들의 인지도가 예전만 못해 아이돌 왕국의 명성이 빛바랬다는 시선이다. 쟈니스는 고인의 장녀 후지시마 쥬리 케이코가 현재 대표를 맡고 있다. 쟈니 사장이 생전 후계자로 지명한 타키&츠바사 출신의 타키자와 히데아키도 대표이사로 취임,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이현아 기자 lee.hyunah1@joongang.co.kr 2021.08.18 10:25
스포츠일반

[창간 50 특별기획]한국스포츠 50년, 슈퍼스타 50인, 환희의 50신

일간스포츠는 한국스포츠 반세기를 함께 했다.1969년 창간해부터 2019년까지 50년 동안 한국 스포츠에는 수많은 스타가 등장했다. 그중 시대를 풍미한 독보적인 슈퍼스타들이 존재했다. 일간스포츠와 스타들을 돌아보면 한국 스포츠의 역사가 보인다. 스타들이 만들어낸 환희의 장면들을 통해 역사를 되돌아보고자 한다.일간스포츠는 중앙일보-일간스포츠의 스포츠 담당 기자들을 통해 50년의 기간을 10년 단위로 나눠 각 세대별 최고스타 10인을 선정했다. 이어 한국 스포츠전문가들의 자문 등을 두루 구해 총 50인을 확정했다. 지도자와 행정가는 제외했다. 오직 당시 현역으로 뛴 선수로만 구성했으며 또 각 시대별 같은 종목 선수들은 최대한 배제했다.50년을 수놓은 영광의 슈퍼스타 50인을 소개한다. <1969~1979 : 배고팠던 시절 국민들을 위로한 영웅>1960년, 70년대 한국은 힘들고 배고팠던 시절이었다. 국민들이 위로를 받을 수 있었던 거의 유일했던 쉼터가 스포츠였다. -김일(프로레슬링)김일은 1960년대부터 70년대 중반까지 한국과 일본에서 박치기왕으로 최고의 인기를 누린 스타였다.박치기를 특기로 극동 헤비급 챔피언·올아시아 헤비급 챔피언·세계 헤비급 챔피언에 오르는 등 활약을 펼쳤다. 한국을 넘어 아시아 프로레슬링 전설로 위용을 떨쳤다. 국민들은 김일의 경기가 열리는 날에 흑백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했다. 김일의 움직임으로 인해 용기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다. 김일은 배고팠던 시절 조국의 영웅이었다. -홍수환(복싱)4전5기의 신화. 두 체급에 걸쳐 세계 타이틀을 거머쥐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한 복싱 선수다.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WBA(세계복싱협회)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세계 정상에 섰다. 당시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는 한 마디는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또 1977년 파나마에서 열린 WBA 주니어페더급 타이틀결정전에서 헥토르 카라스키야를 상대로 2회 4번 다운당한 뒤 3회에 KO승을 거뒀다. 4전5기 신화. 국민들은 홍수환의 투혼을 보며 힘겨운 삶을 포기하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양정모(레슬링)1976년 8월 1일. 한국 최초의 올림픽 금메달이 나왔다. 주인공은 양정모였다.1976년 몬트리올올림픽 레슬링 자유형 62kg급에서 양정모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광복 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첫 금메달이 등장하는 순간. 한국은 첫 금메달 소식에 열광했다. 당시 한국은 일요일. 신문이 발행되지 않는 휴일이어서 전국에 호외가 깔렸다. 양정모는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과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까지 2회 연속으로 금메달을 차지하며 최고의 레슬링 영웅으로 군림했다. -조오련(수영)'아시아의 물개' 조오련은 한국 수영의 아버지다.1970년 방콕아시안게임 자유영 400m와 1500m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초의 아시안게임 2관왕이 탄생했다. 무명의 18세 고교생이었던 그는 자연스럽게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이어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도 400m, 1500m 2관왕에 올랐다. 조오련은 한국신기록 33개, 대회신기록 17개를 갈아치웠다. 한국 수영은 그렇게 조오련으로부터 출발했다. -김진호(양궁)양궁 최강국 한국. 그 시작은 고교생 신궁 김진호였다. 1970년대 세계양궁은 김진호의 시대였다.그는 1979년 베를린 세계양궁선수권에서 5관왕을 차지하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18세 고교생이었던 김진호를 위해 카퍼레이드 행사까지 열며 국민들은 뜨겁게 환영했다. 이어 김진호는 1983년 LA세계선수권에서 또 다시 5관왕에 올랐다. 여자 신궁 계보의 시조. 한국 양국의 위대함을 세계무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알린 전설이다. -이에리사(탁구)한국 탁구의 어머니라 불리는 이에리사다.그는 1973년 유고슬라비아 사라예보에서 열린 세계탁구선수권에서 단체전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사상 처음으로 세계대회에서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정현숙과 박미라 그리고 이에리사가 팀을 이뤘고, 19세 막내 이에리사가 에이스였다. 우승을 결정짓는 마지막 스매싱도 이에리사의 손에서 나왔다. 이 쾌거는 '사라예보의 기적'이라 불렸고, 한국에는 탁구 열풍이 불었다. 전국의 탁구장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백옥자(육상)1970년대 '아시아의 마녀'라 불리며 아시아 육상을 지배한 선수가 있었다. 바로 백옥자다.그는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 포환던지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대회 신기록을 작성하며 한국 여자 선수 최초의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로 이름을 올렸다. 그의 행보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16m28cm, 아시아 신기록을 세우며 한국 육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육상 불모지 한국에서 등장한 영웅이었다. -김응용(야구)프로야구가 출범하기 전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는 김응용이었다.1966년부터 1972년까지 한일은행 소속으로 한국 야구를 주도한 주인공이다. 김응용이 있기에 한일은행의 전성시대가 열렸다. 그는 홈런황 3회를 차지하는 등 실업야구 최고의 거포였다. 통산 타율 3할7리를 기록했다. 또 김응용은 국가대표 4번 타자였다. 1971년 서울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에서 일본을 누르고 우승을 이끌었다. 아시아선수권 2번째 우승. 김응용 이름 앞에 '영원한 국가대표 4번 타자'라는 이름표가 붙은 이유다. -신동파(농구)1960년대와 70년대 한국 농구를 이끌었던 슈퍼스타 신동파다.그는 1967년 중소기업은행에 입단해 1974년 은퇴할 때까지 3만 득점 이상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에는 라이벌이 없었다. 그의 위상은 해외까지 퍼졌다. 1969년 방콕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결승 필리핀과 경기에서 50점을 넣으며 한국의 우승을 이끌었다. 신동파의 활약에 반한 필리핀에 신동파 신도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1970년 유고슬라비아 세계선수권에서 평균 30득점을 넘기며 득점왕에 올랐고,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조혜정(배구)'작은 새'라 불린 한국 여자배구의 전설 조혜정이다.그는 165cm의 단신이었지만 엄청난 점프와 파워로 한국 배구의 간판 공격수로 이름을 날렸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서 조혜정이 이끄는 배구대표팀은 3위 결정전에서 헝가리를 3-1로 꺾고 동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이 탄생하는 명장면. 올림픽과 함께 조혜정은 1970년 방콕아시안게임과 1974년 테헤란아시안게임에서 연속으로 은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여자배구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1979~1989 : 구기종목에서 등장한 불세출의 스타 그리고 1988년 서울올림픽>이 시대에는 유독 구기종목에서 불세출의 스타들이 등장했다. 축구와 야구 그리고 농구와 배구까지 역사상 최고의 선수들이 이름을 날렸다. 또 1988년 서울올림픽의 감동이 찾아왔다. -차범근(축구)1970년대와 80년대, 한국 축구에는 불멸의 슈퍼스타가 등장한다. 바로 차범근이다.차범근은 한국 선수 최초로 유럽 무대를 밟았다.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리그로 꼽혔던 독일 분데스리가. 그는 다름슈타트를 시작으로 프랑크푸르트, 레버쿠젠 등에서 활약했다. 차붐은 UEFA(유럽축구연맹) 컵 우승을 2회를 이끌며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또 당시 분데스리가 외국인 최다골 신기록(98골)도 세웠다. 한국 대표팀에서도 136경기 출장, 58골로 최다출전, 최다골 기록을 가지고 있다. 한국의 영웅이자,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선수로 꼽히고 있다. -선동렬(야구)야구에는 국보급 투수가 탄생했다. 한국야구는 선동렬 시대에 돌입했다.프로야구가 출범한 뒤 1985년 해태 타이거즈에 입단한 선동렬. 이후 프로야구는 해태 왕조가 지배했다. 그 중심에 '무등산 폭격기' 선동렬이 있었다. 3년 연속 투수 3관왕(다승·승률·평균자책점) 정규리그 MVP 3회·골든글러브 6회·7년 연속 평균자책점 1위 등을 기록하는 등 해태를 6번 우승으로 이끌었다. 통산 146승, 132세이브, 방어율 1.20이다.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이견이 없다. -최동원(야구)선동렬이 등장하기 전 프로야구의 유일한 전설, 최동원이다.그는 1984년 다승왕·탈삼진왕·골든글러브에 이어 MVP까지 수상하며 프로야구를 평정했다. 그해 7전4선승제의 한국시리즈에서 삼성 라이온즈를 만나 홀로 4승을 따내며 롯데 자이언츠를 사상 첫 정상에 올려놨다. 강속구와 폭포수 커브를 장착한 무쇠팔 최동원이었다. 이후 1985년 20승·1986년 19승·1987년 14승까지 해마다 10승 이상을 기록하며 최고 투수로 명성을 이어갔다. 선동렬과 라이벌 구도는 프로야구 최대 빅이슈였다. -이충희(농구)신동파의 뒤를 이은 최고의 슈터, 이충희의 등장은 한국 농구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농구대잔치 출범 후 3시즌 동안 두 차례 팀 우승과 MVP를 동시에 석권했다. 현대전자의 상징. 한 경기 69점을 기록하며 팬들을 열광시켰고, 최초로 4000득점 돌파 그리고 5시즌 연속 득점왕 등 슛도사를 막을 자 없었다. 그의 영향력은 대표팀까지 번졌고,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1986년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에서 브라질을 상대로 홀로 45점을 성공시키며 세계적 주목을 받기도 했다. -강만수(배구)타고난 힘과 기술 그리고 센스까지, 모든 것을 다 갖춘 최고의 공격수. 강만수를 정의하는 말이다.1970년대와 80년대를 풍미한, 배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 공격수다. 1972년 17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다. 한국은 강만수로 뜨거웠다. 한국 구기종목 사상 최연소 국가대표였기 때문이다. 이후 1978년 방콕아시안게임 우승과 1979년 멕시코유니버시아드 우승을 이끌며 '아시아의 거포'로 불렸다. 컴퓨터 세터 김호철과 최고의 호흡을 자랑하기도 했다. 1984년 LA올림픽에서는 5위를 기록했다. -현정화(탁구)한국에서 처음 개최된 올림픽. 1988년 서울올림픽 최고 스타는 현정화였다.한국 여자탁구의 상징.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단체전 금메달을 시작으로 1987년 뉴델리세계선수권 복식 금메달을 차지했다. 조국에서 열리는 올림픽 메달에 대한 기대감이 컸다. 기대는 현실이 됐다. 서울올림픽 복식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선수로 최초로 2010년 국제탁구협회 명예의 전당에 헌액됐다. 현정화라는 이름으로 한국 여자탁구의 황금기가 시작됐다. 그가 은퇴한 뒤 한국 여자탁구는 단 한 번도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김수녕(양궁)한국 양궁 역사상 최고의 신궁, 단연 김수녕이다.그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압도적 실력, 카리스마 그리고 냉정함까지, 김수녕 그 자체가 한국 양궁의 얼굴이었다. 1987년 16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됐고,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관왕 탄생. 이어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 개인전 은메달을 품었다. 한국 최초의 올림픽 2회 연속 금메달의 주인공도 김수녕이다. 세계신기록을 무려 35회나 달성했고, 한국 역대 올림픽 메달 횟수(6개) 공동 1위다. -손미나(핸드볼)우생순의 시작은 1988년 서울올림픽이었다.1984년 LA올림픽에서 여자 핸드볼대표팀은 은메달을 차지했고, 4년 뒤 조국에서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소련과의 마지막 경기에서 21-19로 승리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구기 종목 역사상 첫 번째 금메달은 그렇게 나왔다. 금메달 멤버는 총 15명. 그중 골키퍼로 한국 골문을 든든히 지켰고, 서울올림픽 개회식에서 대표로 선서를 한 손미나가 국민들의 뇌리에 강하게 박혀있다. -이만기(씨름)예능에 나오는 친근한 옆집 아저씨가 아니다. 이만기는 한국 씨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였다.이만기는 1980년대 씨름 황금기를 이끈 스타였다. 1983년 첫 천하장사를 차지한 뒤 총 10회 정상에 올랐다. 역대 1위. 또 백두장사 19회, 한라장사 7회를 차지했다. 기술씨름을 도입한 최초의 선수로 기억되고 있다. 압도적 실력과 준수한 외모로 국민적인 인기를 누렸다. 이만기의 경기를 보기 위해 대통령이 경기 시간을 늦췄다는 일화가 있을 정도로 이만기가 수놓은 씨름은 한국 최고 인기스포츠였다. -장재근(육상)한국 육상의 전설이 등장했다. 한국 육상 역대 최고의 스프린터, 장재근의 등장이다.그는 20세의 나이로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에 출전해 200m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아시안게임 최초 육상 트랙 금메달이었다. 육상 천재 장재근에 한국은 열광했다. 그는 이어 1986년 서울아시안게임에서도 200m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에 성공한다. 1985년 자카르타아시아선수권에서 장재근은 20초41이라는 한국신기록을 작성했다. 이 기록은 이후 33년 동안 한국신기록으로 남아있었다. <1989~1999 : IMF로 실의에 빠진 국민들 희망을 안긴 영웅>1997년 한국에 불어닥친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 실의와 고통에 빠진 국민들에게 용기를 안긴 스포츠 스타들이 있었다. 이들의 존재가 곧 희망이자 위로였다. -박찬호(야구)한국 최초의 메이저리거 박찬호. 그는 IMF 위기 당시 전성기를 구가하며 한국 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긴 영웅이었다.1994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에 입단한 박찬호는 1997년 14승을 거두며 주목을 받았고, 1998년 15승을 수확하며 정상급 선수로 성장했다. 2000년 18승을 달성하며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 명으로 꼽혔다. 메이저리그 통산 124승. 아시아 최다승이다. 또 1998년 방콕아시안게임 금메달, 2006년 월드베이스볼 클래식 동메달 등을 이끌며 야구대표팀에서도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했다. -박세리(골프)IMF 위기의 시절 국민들을 위로했던 또 한 명의 슈퍼스타, 박세리다.미국 LPGA 개척자. 1998년 LPGA 무대에 뛰어들었고, 데뷔 4개월 만에 맥도널드 챔피언십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US오픈 최연소 우승을 차지하며 국민적 영웅으로 등극했다. 특히 US오픈 연장 18번 홀에서 양말을 벗고 맨발로 연못에 들어가 샷을 한 장면은 한국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힌다. 위기의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박세리의 모습에 국민들은 힘을 얻었다. LPGA 25승으로 한국인 최다 우승자 역시 박세리다. -황영조(마라톤)'몬주익의 영웅'의 등장으로 한국 육상은 다시 한 번 세계적으로 위용을 떨쳤다.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 황영조는 몬주익 언덕에서 모리시타 고이치를 따돌린 뒤 홀로 몬주익 스타디움에 들어섰다. 그리고 두 팔을 힘차게 들고 골인했다. 한국 정부 수립 이후 육상 첫 올림픽 금메달. 1936년 베를린올림픽 손기정의 금메달 이후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이후 황영조는 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목에 걸며 다시 한 번 포효했고, 1994년 미국 보스턴마라톤에서는 당시 한국 최고 기록인 2분8초09를 기록했다. -심권호(레슬링)심권호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라는 의미다.1994년 히로시마아시안게임에서 48kg급 금메달을 목에 건 뒤 1995년 프라하세계선수권,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까지 정상을 차지했다. 48kg급이 폐지되자 54kg급으로 체중을 늘려 다시 한 번 똑같은 코스를 밟았다. 1998년 예블레세계선수권·1998년 방콕아시안게임·2000년 시드니올림픽까지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계올림픽 최초 올림픽 2연패, 한국 올림픽 사상 첫 두 체급 석권 그리고 세계 레승링 최초 두 체급 그랜드슬램 달성. 기록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기영(유도)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는 유도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전기영이다.유도 천재, 업어치기의 달인으로 불린 그는 20세의 나이로 참가한 1993년 해밀턴세계선수권 78kg급에서 우승했다. 한국 역대 최연소로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1995년 지바세계선수권에서는 86kg급에 도전해 금메달을 차지, 두 체급을 석권했다. 1996년 애틀란타올림픽에서는 1회전을 제외하고 모두 한판승으로 이기며 정상에 섰다. 1997년 파리세계선수권에서도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다. -박주봉(배드민턴)배드민턴의 교과서 박주봉. 그는 한국을 넘어 세계 배드민턴의 전설이었다.1980년 17세의 나이에 대표팀에 발탁됐고, 1982년 덴마크오픈에서 이근구와 한 조로 역대 최연소로 국제대회 우승을 일궈냈다. 1985년 캘거리세계선수권 우승·1986년 서울아시안게임 3관왕·1989년 자카르타세계선수권 금메달·1990년 베이징아시안게임 금메달·1991년 코펜하겐세계선수권 1위 등 승승장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차지했다. 1996년 '배드민턴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허버트 스칠 상을 수상했다. -전이경(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라 불리는 유일한 선수, 전이경이다. 그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1988년 12세의 나이로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로 발탁된 그는 1994년 릴레함메르올림픽 1000m와 3000m 계주에서 금메달을 석권, 2관왕에 올랐다. 이어 1995년 요빅세계선수권을 시작으로 1996년 헤이그, 1997년 나가노까지 개인종합 3연패를 일궈냈다. 1998년 나가노올림픽에서도 1000m와 3000m 계주를 석권하며 한국 여자 최초로 올림픽 2회 연속 2관왕에 오르는 영광을 품었다. -허재(농구)농구대통령이 당선됐다. 농구 9단이라 불리며 한국 농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선수, 허재다.중앙대 1학년 시절 농구대잔치에 나서 평균 24득점을 올리며 신인왕을 수상했다. 이어 기아자동차에 입단하자 기아 왕조가 구축됐다. 기아의 에이스로 농구대잔치 5연패 등 7회 우승을 일궈냈다. 3번 MVP를 수상했고, 베스트 5에 6회 포함됐다.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은 스타. 국가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1990년 아르헨티나세계선수권 이집트전에서 62점을 넣으며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홍명보(축구)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수비수,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다.그는 1992년 포항제철 아톰즈에 입단해 K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신인 최초로 MVP를 수상하는 영광을 품었다. 이후 일본 J리그에서 진출하며 베스트 11에 선정되는 등 활약을 이어갔다. 한국 대표팀 전설이다. 1990년 이탈리아월드컵을 시작으로 1994년 미국월드컵, 1998년 프랑스월드컵에 이어 2002년 한·일월드컵까지 아시아 최초로 4회 연속 월드컵 본선 무대를 밟았다. 홍명보는 A매치 136경기 출전으로 한국 최다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씨름)이만기를 1인자에서 내려앉히고 새로운 1인자로 등극한 괴물, 강호동이다.이만기의 은퇴는 곧 강호동이라는 새로운 황제의 등극과 연결된다. 1989년 일양약품에 입단한 20세 강호동은 첫 백두장사 타이틀을 차지했다. 당시 4강에서 이만기와 첫 공식전에서 맞붙어 2-0으로 승리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1990년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올라섰다. 이후 백두장사 7회, 천하장사 5회를 차지했다. 최단기간 천하장하 5회라는 신기록을 가지고 있다. 강호동이 은퇴하자 씨름의 황금기도 끝났다. <1999~2009 : 불모지에서 태어난 올림픽 스타 그리고 붉은물결 2002년>불모지 한국. 그동안 한국에서 약했던 종목에서 슈퍼스타들이 등장해 행복했던 시기다. 또 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영광이었던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가 탄생했다. -박태환(수영)박태환의 등장. 한국스포츠는 새로운 역사를 맞이했다.수영 불모지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15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에 참가했던 그는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에서 3관왕을 차지했다. 2007년 멜버른세계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 금메달을 따더니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아시아 최초로 400m 정상에 섰다. 200m에서도 은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3관왕, 2011년 상하이세계선수권 금메달 등 세계 정상급 기량을 이어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400m, 200m에서 은메달을 땄다. -장미란(역도)한국 역도 역사의 새로운 신화, 장미란이 썼다.2002년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5년 카타르세계선수권부터 2006년 산토도밍고·2007년 치앙마이·2009년 고양까지 4연패를 일궈내며 세계 역도계에 독주체제를 구축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압권이었다. 여자 +75kg급 경기에서 인상 140 kg·용상 186 kg·합계 326kg을 기록, 세계신기록을 수립하며 우승했다. 이 과정에서 세계신기록을 두 번이나 경신했고, 2위와 격차가 무려 49kg이나 났다. 압도적인 우승, 압도적인 선수였다. -진종오(사격)한국은 세계최고의 권총 사수를 가지고 있는 나라다. 한국에는 진종오가 있다.2008년 베이징올림픽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딴 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2연패를 달성하더니,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세계 사격 역사상 최초로 3연패를 일궈냈다. 2010년 뮌헨·2014년 그라나다·2018년 창원 등 세계선수권에서도 연이어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는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 은메달 2개로 김수녕과 함께 역대 한국인 올림픽 최다 메달 공동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유승민(탁구)한국 탁구의 마지막 자존심, 유승민이다.2000년 18세의 나이로 국가대표에 발탁된 유승민은 2004년 이집트오픈에서 우승하며 기대를 받았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남자탁구 단식에서 금메달을 차지하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금메달이 나왔다. 이 금메달은 21세기 올림픽에서 유일한 비중국인 탁구 금메달이었다. 이후 2012년 런던올림픽 단체전 은메달, 2018년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동메달 등을 목에 걸며 한국 탁구의 간판 역할을 했다. 유승민 이후 한국은 단 한 번도 올림픽 정상에 서지 못했다. -이승엽(야구)국민타자. 이승엽이 아니면 붙을 수 없는 이름이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고의 홈런왕. 1999년 54홈런을 기록하며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50홈런을 돌파했다. 2003년에는 한국 역대 최다인 56홈런을 때렸다. KBO 통산 465개의 홈런으로 역대 1위에 오른 이도 이승엽이다. 타점(1495점) 득점(1351점) 등도 1위다. 홈런왕 5회·MVP 5회·타점왕 4회·골든글러브 10회 등 기록이 이승엽의 위대함을 말해주고 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과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주역이기도 하다. -안현수(쇼트트랙)쇼트트랙 여제가 전이경이라면 황제는 안현수다.많은 선수들이 세계 정상에 선 경험이 있지만 안현수보다 압도적인 선수는 없었다. 쇼트트랙 역사상 가장 이상적인 선수. 16세에 국가대표에 발탁된 그는 2003년 바르샤바부터 2004년 예테보리·2005년 베이징·2006년 미니애폴리스·2007년 밀라노까지 세계 최초로 세계선수권 5연패를 달성했다. 2006년 토리노올림픽에서 1000m·1500m·5000m 계주까지 3관왕을 차지했다. 500m 동메달도 추가했다. 한국 올림픽 역사상 단일 대회 최다 메달 신기록이다. -김세진(배구)한국 배구에 등장한 처음이자 마지막 월드스타, 김세진이다.1995년 실업배구 삼성화재의 창단멤버로 합류해 삼성화재 왕조를 이끈 스타였다. 김세진이 활약하던 시기 배구는 폭발적 인기를 받았다. 김세진을 앞세운 삼성화재는 리그 9연패를 일궈냈다. 배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였다. 2001년 창원아시아배구선수권과 2003년 톈진아시아배구선수권 우승을 이끌었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금메달도 목에 걸었다. 특히 1994년 월드리그에서 베스트 6에 오르며 월드스타라는 칭호를 얻었다. -서장훈(농구)한국 농구 역사상 가장 위대한 빅맨, 단연 서장훈이다.1994년 연세대를 대학 최초로 농구대잔치 우승을 이끌 때부터 그는 국보급 센터였다. 공격과 수비 외곽능력까지 갖춘 전천후 선수. 1998년 청주SK 입단 후 서울 삼성·전주 KCC·인천 전자랜드 등에서 활약했다. 1999년 리바운드 상 수상. 프로농구 사상 외국인 선수를 제치고 리바운드 왕을 차지한 최초의 선수가 됐다. 프로통산 1만3231득점·5235리바운드 기록, 역대 1위.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에서 야오밍이 이끄는 중국을 꺾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최경주(골프)한국 남자 골프의 세계화를 이끈 선구자, 최경주다.1999년 한국 남자 선수 최초로 PGA투어 자격을 획득했다. 2001년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시작했고, 2002년 5월 뉴올리언즈 콤팩 클래식에서 한국 첫 PGA 투어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탬파베이 클래식에서 2승을 챙겼다. 이후 AT&T 내셔널 등 PGA에서 6회 우승을 더 차지하며 통산 8회 우승을 기록했다. 한국 남자 선수로는 최고의 기록이다. 잡초 골퍼라 불리며 열악한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한국 골프의 자존심을 높인 영웅이다. -박지성(축구)한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환희,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 그 중심에는 두개의 심장을 가진 박지성이 있었다.한국은 포르투갈·이탈리아·스페인 등을 꺾고 아시아 역대 최고의 성적인 4강에 진출했다. 거리는 붉은물결르 뒤덮혔고, 선수들은 국민영웅으로 등극했다. 그중 핵심은 박지성. 그는 2005년 잉글랜드 최고 명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 유니폼을 입었다. 한국 최초의 잉글랜드 진출. 이때부터 맨유는 국민클럽이 됐다. 박지성은 맨유에서 리그 우승 4회 등 총 13개의 우승트로피를 수집했다. <2009~2019 : 동계스포츠의 비상 그리고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과거 한국의 동계스포츠는 쇼트트랙으로 모두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시대는 달랐다. 상상도 하지 못했던 다른 종목에서 세계 1등이 탄생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100년에 한 번 나올까말까 하는 천재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김연아(피겨)한국 동계스포츠의 역사는 김연아가 있을 때와 없을 때로 나눌 수 있다. 피겨스케이팅 불모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 김연아가 나온 건 기적이다.김연아는 한국을 넘어 세계 피겨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하이라이트는 2010년 밴쿠버올림픽. 김연아는 쇼트 78.50점, 프리 150.06점 총합 228.56점으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또 올림픽·세계선수권·4대륙 선수권·그랑프리 파이널 등을 모두 제패하며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최초의 선수로 역사에 기록됐다. 11번 세계신기록을 경신하기도 했다. -이상화(스피드스케이팅)'빙속여제' 이상화를 빼놓고 한국 동계스포츠를 논할 수 없다.2010년 밴쿠버올림픽 여자 500m에서 76초09로 우승, 한국 여자 최초로 스피드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2014년 소치올림픽에서 74초70, 올림픽 신기록으로 2연패에 성공한다.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기록하며 아시아 선수 최초로 3개 대회 연속 메달을 딴 선수로 남았다. 2013년 미국 솔트레이크에서 열린 월드컵에서 나온 36초36의 세계신기록은 지금까지 그 누구도 깨뜨리지 못하고 있다. -윤성빈(스켈레톤)한국을 넘어 아시아 최초로 올림픽 썰매 종목 금메달을 딴 주인공, 윤성빈이다.한국 스켈레톤의 간판인 그는 2018년 평창올림픽에서 압도적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평창올림픽 남자 스켈레톤 1∼4차 레이스에서 무려 3차례나 트랙 신기록을 갈아치우면서 1∼4차 합계 3분20초55로 정상을 차지했다. 한국과 아시아 동계스포츠의 새로운 역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스켈레톤 불모지에서 혜성처럼 등장한 윤성빈. 그의 헬멧에 그려진 아이언맨처럼 그는 한국 스포츠의 영웅이었다. -양학선(체조)한국 체조의 새로운 역사, 도마의 신이 창조했다. 양학선이다.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이어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 우승으로 큰 기대를 받았던 양학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신의 경지를 보여준다. 지구에서 단 한 명만 할 수 있는 최고난위도 기술 '양학선'을 앞세워 도마 금메달을 차지했다. 16.533점. 압도적 우승이었다. 한국 체조 역사상 첫 번째 올림픽 금메달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후 2013년 앤트워프 세계선수권에서도 우승하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군림했다. -황경선(태권도)태권도 종주국 한국. 수많은 선수가 세계 정상에 섰다. 그중 가장 많은 최초의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이는 '태권여제' 황경선이다.18세 나이로 2004년 아테네올림픽 여자 67kg에 나서 동메달을 차지한 그는 2005년 마드리드세계선수권과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그리고 2007년 베이징세계선수권까지 재패한다. 남은 건 올림픽.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멈추지 않고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태권도 최초의 올림픽 2연패. 최초의 올림픽 3회 연속 진출을 일궈냈다. -박인비(골프)미국 LPGA에는 한국 여성 열풍이 불었다. 그 열풍 최선봉에 자리를 잡은 스타, 박인비다.골프 여제의 2008년 US오픈 우승. 박세리의 최연소 우승 기록을 깨면서 정상을 차지했다. US오픈 총 2회 우승 등 메이저대회에서 7회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 최고 기록이다. LPGA 통산 19승으로 박세리에 이은 2위다. 56주 연속 세계랭킹 1위를 유지했고, 4개 메이저대회 타이틀을 모두 거머쥐는 커리어 그랜드 슬램을 아시아 최초로 달성하기도 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금메달 역시 박인비 품에 안겼다. -정현(테니스)2018년 1월, 한국에 테니스 열풍이 불었다. 그 바람은 정현이 일으켰다.정현은 한국인 최초로 메이저대회 4강에 진출하는 역사를 썼다. 2018년 호주오픈 1~3라운드에서 미샤 즈베레프·다닐 메드베데프·알렉산더 즈베레프를 연이어 꺾으며 기대를 받았다. 16강 상대는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한 명인 노박 조코비치.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정현이 조코비치를 꺾고 8강에 진출한 것. 한국에 정현 신드롬이 일어났다. 8강에서 테니스 샌드그렌마저 넘으며 4강에 올라섰다. 4강에서 로저 페더러를 만나 부상으로 기권했다. -김연경(배구)한국 여자배구에 이렇게 독보적인 선수는 없었다. 김연경이다.흥국생명에 입단한 2005년. 득점상·공격상·서브상·신인왕·정규리그 MVP·챔피언결정전 MVP까지 싹쓸이한다. 얼마나 압도적인 선수인 지 알 수 있는 기록. 이후 3년 연속 정규리그 MVP에 올랐다. 2009년 일본 JT마베라스 유니폼을 입은 뒤 2011년 터키 페네르바체로 이적했고,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거듭난다. 가는 팀마다 우승으로 이끌면서 가치는 올라갔다. 2012년 런던올림픽 4강,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배구대표팀에서도 기둥이었다. -류현진(야구)21세기 한국야구 최고의 선수라 불리는 그의 이름은 류현진이다.2006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하자마자 다승·탈삼진·평균자책점 1위로 신인왕과 MVP를 동시석권한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3년 미국 메이저리그 LA다저스로 이적한 첫해 14승 올리며 기대를 충족시켰다. 이후 꾸준함을 보이다 2019년 평균자책점 전체 1위를 기록, 올스타전 선발로 나서는 등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 중 한명으로 평가받고 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 금메달 등 야구대표팀 역사와도 함께 했다. -손흥민(축구)지금 한국 축구는 '손흥민의 시대'다.2010년 독일 분데스리가 함부르크를 시작으로 레버쿠젠을 지나 2015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토트넘으로 이적했다. 세계 톱클래스 공격수로 거듭났다. 특히 2018~2019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 2경기에서 3골을 넣으며 우승후보 맨체스터 시티를 침몰시켰다.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손흥민을 앞세운 토트넘은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축구대표팀에서도 에이스다. 2018년 러시아월드컵 독일전 승리 주인공. 2018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금메달도 품었다. 최용재·김지한 기자 2019.09.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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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와이스, '캔디팝' 3연속 플래티넘 인증 및 오리콘 2월 월간차트 2위

트와이스가 일본 두 번째 싱글 '캔디팝(Candy Pop)'으로 오리콘 싱글 2월 월간차트에서 일본 대표그룹 아라시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또 일본 레코드협회로부터 플래티넘 인증을 획득, 3연속 플래티넘 행진을 이어갔다. 최근 오리콘에 따르면 트와이스가 지난달 7일 발표한 '캔디팝'은 총 32만 4035포인트로 약 42만 포인트를 얻은 아라시에 이어 2위에 올랐다. 또다른 일본 대표 아이돌그룹 헤이 세이 점프는 약 26만 포인트로 트와이스의 뒤를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또 '캔디팝'은 최근 일본 레코드협회로부터 25만장 이상 판매고를 올린 음반에 부여하는 플래티넘 인증을 획득했다. 지난해 6월 일본 데뷔 베스트앨범 '#TWICE', 10월 일본 데뷔 싱글 'One More Time'에 이은 3연속 플래티넘 기록이다. 일본서 한국 걸그룹 최초로 같은 해 싱글과 앨범 모두 플래티넘 인증 및 일본 첫 앨범과 첫 싱글을 모두 플래티넘으로 등극시킨 한국 최초 아티스트가 된 트와이스는 '캔디팝'으로 해외 아티스트 최초 '데뷔 싱글부터 두 작품 연속 첫 주 판매고 20만장 돌파' 기록을 수립한 데 이어 데뷔와 함께 3연속 플래티넘 인증이라는 신기록 행진을 이어갔다. '캔디팝'은 공개 후 오리콘 데일리 싱글차트 6일 연속 1위 및 위클리 싱글 차트 정상에 올랐다. 아울러 발매 첫 주 빌보드 재팬 집계 기준 30만 3746장의 판매고로 싱글 1위를 비롯 조회수, 스트리밍, 동영상 재생 부문 등 4관왕으로 '빌보드재팬 핫 100' 종합 1위에 오르며 일본서 확고한 트와이스의 인기를 재확인 시켰다. 또 '캔디팝'은 발매 2주 만에 트와이스의 음반 중 출고량 40만장을 최초로 돌파했고 이같은 수치 덕분에 트와이스는 일본 데뷔 8개월여 만에 출고량 100만장을 넘어서는 기록도 세웠다. 앞서 트와이스는 지난달 27일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 홈페이지가 공개한 제32회 일본 골드디스크 대상에서 신인 아티스트로는 최초로 'New Artist of the year' 등 5관왕을 석권하기도 했다. 트와이스가 팬들에게 외치는 '원 인 어 밀리언(One in a Million)'이라는 구호처럼 일본에서 스스로 '원 인 어 밀리언(아주 특별한 존재)'이 되어가고 있는 트와이스는 8일 '라이키' MV로 K팝 걸그룹 사상 최단기간 2억뷰 돌파를 하며 의미있는 기록행진을 이어가기도 했다. 4월 초 한국서 컴백 계획을 전하면서 팬들을 설레게 하고 있는 트와이스는 5월 18일부터 20일까지 3일간 서울 송파구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두 번째 투어 '트와이스랜드 존 2 : 판타지 파크(TWICELAND ZONE 2 : Fantasy Park)'의 막을 올린다. 이를 앞두고 지난 5일 팬클럽 'Candy', 7일 팬클럽 'Jelly', 9일에는 일반 예매 오픈을 개시했는데 3회 1만 8000석이 모두 매진되며 '티켓 파워'를 과시했다. 트와이스는 2017년 2월, 데뷔 1년 4개월 만에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SK올림픽핸드볼 경기장에서 첫 투어의 포문을 연 단독 콘서트 '트와이스랜드 -디 오프닝-(TWICELAND -THE OPENING-)'의 3회 1만 5000석, 6월 2회 1만 2000석 규모로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개최한 앙코르 공연 역시 모두 매진시키며 뜨거운 인기를 입증한 바 있다. 서울 콘서트 후 일본에서는 5월 26일과 27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 6월 2일과 3일 오사카 성 홀에서 총 4회로 공연을 연다. 특히 이번에 4회로 진행하는 일본 콘서트는 지난 1월과 2월 진행한 첫 쇼케이스 투어와 비교해 볼 때 더욱 규모를 넓혀 1만명 이상 수용한 아레나 공연장에서 개최하는 무대로 벌써부터 현지팬들의 기대를 모은다. 트와이스는 일본에 이어 싱가포르 등에서도 콘서트를 개최하며 해외 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김연지 기자사진제공=JYP엔터테인먼트 2018.03.19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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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판 '미생', 17일 후지TV서 첫 방송…원작 캐릭터·설정 대부분 그대로

'미생' 일본 리메이크작 드라마가 후지TV에서 첫 방송된다. 일본판 드라마 '미생'인 '호프~기대 제로의 신입사원(이하 호프)'이 17일 오후 9시부터 후지TV에서 처음 전파를 탄다. '호프'는 원작 '미생'의 설정을 대부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장그래, 오상식 등의 주연 캐릭터도 거의 비슷하다. 일본판 장그래 캐릭터인 이치노세 역에는 아이돌 그룹 헤이세이점프의 나카지마 유토가 맡는다. 이성민이 연기한 오상식 캐릭터인 오다 역은 배우 엔도 켄이치가 분한다. 강소라가 연기한 안영이의 일본 버전인 카츠키 역은 영화 '사다코 대 카야코'에서 주연을 맡은 배우 야마모토 미즈키가 열연할 예정이다. 이 외에도 키리야마 아키토, 세토 코지 등이 출연한다. 후지TV는 직장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라는 점과 바둑을 접목시켰다는 점에 관심을 갖고 원작 '미생' 리메이크를 결정했다. '미생'의 스토리와 설정이 일본 현지 시청자들에게도 충분히 사랑받을 것이라는 게 일본 대중문화 관계자들의 관측이다. '호프'는 매주 일요일 오후 9시 방송된다. 김연지 기자 kim.yeonji@joins.com 2016.07.14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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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P, 네번째 일본 싱글 오리콘 2위 달성…일본 열도 접수

그룹 B.A.P가 네 번째 일본 싱글로 오리콘 2위를 기록하고 일본 열도까지 접수했다.B.A.P는 지난 3일 일본에서 네 번째 싱글 앨범 ‘EXCUSE ME(익스큐스 미)’를 발표하고, 발매 당일 일본 타워레코드 온라인 판매 순위 차트를 장악한 B.A.P가 어제(4일)자 오리콘 데일리 차트에서 일본 쟈니스 소속의 아이돌 그룹 ‘헤이세이점프’의 뒤를 바짝 추격하며 차트 2위에 진입하는 ‘겹경사’를 맞이했다.B.A.P는 지난 4월 발매한 일본 세 번째 싱글 ‘NO MERCY(노 머시)’에 이어 네 번째 싱글 ‘EXCUSE ME’ 역시 연달아 오리콘 데일리 차트 2위에 이름을 올리며 새로운 ‘한류 대세’ 아티스트로서의 자리를 굳건히 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첫 번째 일본 싱글 ‘WARRIOR(워리어)’를 발표하고 일년이 채 되지 않아 얻은 성과로 그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쟁쟁한 일본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독보적인 음악 색깔을 추구해온 B.A.P가 국내를 넘어 열도 팬들의 마음까지 사로잡고 있는 것.일본에서 발표한 4장의 싱글 앨범 전부를 일본 최대 음반 집계사이트 오리콘 차트 TOP 9에 진입시킨 B.A.P의 성장세는 발매 당일 열린 ‘프리 라이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네 번째 일본 싱글 ‘EXCUSE ME’ 발매를 기념해 일본 라 조나 가와사키 플라자 루화 광장 그랜드 스테이지에서 열린 프리 라이브 행사에는 약 3천 여 명의 팬이 몰리며 B.A.P의 뜨거운 인기를 실감하게 했다.본 이벤트는 B.A.P가 일본에서 단독으로 개최하는 첫 프리 라이브로, 약 3000 명의 인파들을 비롯해 일본 취재진들의 열기 또한 뜨거웠다는 것이 관계자의 전언이다. 이날 멤버들은 포토세션, 팬들과 기념 촬영뿐 아니라 타이틀 곡 ‘Excuse Me’와 수록곡 ‘ZERO’, 지난 앨범 타이틀 곡 ‘NO MERCY’ 무대를 선보이며 명불허전 ‘실력파 아티스트’로서의 면모를 톡톡히 뽐냈다.특히 이번 ‘프리 라이브’는 일본 니코 니코 라이브를 통해 실시간 방송으로 중계 돼 호응을 얻었으며, 현재 B.A.P는 일본에서 싱글 앨범 발매를 기념한 다양한 프로모션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져 팬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김연지 기자 yjkim@joongang.co.kr 2014.09.05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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