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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개막 특집 인터뷰]'울산 레전드' 김현석 VS '전북 레전드' 최진철…"나의 팀이 우승한다"

드디어 2020시즌 K리그1(1부리그)이 개막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극복한 방역 모범국가 한국에서 개막하는 축구리그. 한국을 넘어 아시아 그리고 전 세계에서 주시하고 있다. K리그1의 수많은 이슈 중 단연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 팀은 두 팀이다. '디펜딩 챔피언' 전북 현대와 '준우승 팀' 울산 현대. 지난 시즌 역대급 우승레이스를 펼친 두 팀이다. 시즌 최종전에서 우승 팀이 결정됐을 만큼 치열했다. 올 시즌도 그 흐름이 이어질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다. 두 팀 모두 공격적인 영입에 성공하며 다른 팀들과 차원이 다른, K리그1 최강의 스쿼드를 꾸렸다. 전북은 2020년에도 1위 수성을 자신하며 K리그 역사상 첫 4연패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울산은 지난 시즌의 한을 풀고, 2005년 우승 이후 15년 만에 정상을 바라보고 있다. 2020시즌 핵심 키워드는 다시 한 번 '현대가(家)' 전쟁이다. 2019시즌보다 더욱 치열하고 뜨거운 우승 경쟁이 이제 곧 시작된다. 전북과 수원 삼성이 8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공식 개막전을 치른다. 다음 날 울산이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상주 상무와 일전을 펼친다. K리그1 개막을 앞두고 일간스포츠는 울산, 전북 두 클럽의 '레전드'와 인터뷰를 가졌다. 한 명은 '가물치'라는 별명으로 울산의 황금기를 열였던 간판 공격수 김현석. 다른 한 명은 '전북의 방패'라 불리며 전북의 상징이 된 간판 수비수 최진철이다. 두 선수 모두 '원 클럽 맨'으로서 구단 역사상 최고의 레전드로 꼽히고 있다. 김현석은 1990년부터 2003년까지 울산에서 371경기 110골54도움을 기록했다. 1996년 울산을 사상 첫 우승으로 이끌며 MVP를 수상했고, 1997년에는 득점왕을 차지했다. 그는 울산을 넘어 K리그 역대 최고의 공격수 중 한 명이다. 최진철은 1996년부터 2007년까지 전북에서만 뛰며 312경기 출전, 28골11도움을 올렸다. 전북의 FA컵 3회 우승의 중심이었으며, 2006년 전북의 사상 첫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우승 주역이었다. 최진철 역시 전북을 넘어 한국 최고의 수비수로 이름을 날렸다. 두 전설은 인터뷰 내내 '나의 팀'에 대한 애정을 듬뿍 드러냈다. 그리고 2020시즌 우승 팀은 '나의 팀'이 될 것이라 확신했다. 전설적 공격수와 수비수 다웠다. 김현석은 울산의 강점을 앞세워 매섭게 공격했고, 최진철은 전북의 강점을 방패삼아 철통수비를 펼쳤다. 한 자리가 아니라 따로 인터뷰를 진행했고, 두 전설의 메시지를 한 곳에 모았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김현석은 울산대 감독, 최진철은 중국 U-25 대표팀 코치) 김현석(이하 김) : 코로나19로 인해 경기는 하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지난 주부터 훈련을 조금씩 시작을 하면서 준비를 하고 있다. 아직 구체적인 대학 축구 스케줄이 나오지 않았다. 최진철(이하 최) : 작년 초에 중국으로 가서 대표팀 2군 선수들 훈련을 시켰다.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한국에서 쉬고 있다. 중국의 코로나19 상황을 보고 어떻게 진행되는 지 지켜봐야 한다. 이렇게 쉬는 것도 나쁘지 않다. -'원 클럽 맨' 자부심에 대하여.(두 선수 모두 한 팀에서 12시즌, 300경기 이상 출전) 김 : 항상 울산은 나의 팀이라 생각을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울산은 내 팀이다. 요즘 보면 한 클럽에서 선수 생활을 해서 끝마치는 선수들이 많지 않다. 이적이라는 게 활성화가 된 시대다. 그래서 '원 클럽 맨' 되기가 쉬운 상황이 아니다. 이런 걸 보면 자부심도 생긴다. 어떤 면에서 '원 클럽 맨'을 꿈꾸는 후배들의 롤모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원 클럽 맨'으로 남은 것에 만족한다. 최 : 개인적으로 전북은 정말 많은 애정이 가는 팀이다. 내가 선수생활 동안 한 팀에서만 뛰었다. 그래서 전북은 항상 관심이 가고 신경이 쓰이는 팀이다. 자부심, 물론 있다. 당시 내가 고지식한 면이 있어서 한 팀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하면 그 팀에서 선수 생활을 끝내는 것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팀에서, 다른 지역에서 다른 경험을 느껴보지 못한 것에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후회하지는 않는다. 아쉬움 보다는 '원 클럽 맨'의 자부심이 더욱 크다. -'나의 팀'에게 우승 응원 메시지를 보낸다면. 김 : 선수로 1996년 울산의 첫 우승을 경험했고, 코치로 2005년 두 번째 우승을 했다. 공교롭게도 내가 울산에 몸담고 있을 때 우승 2번 했다. 축구라는 종목이 전력이 좋다고 우승할 수 있는 종목이 아니다. 26년 축구인으로서 경험한 것을 비춰보면 멤버도 좋아하고 하고 운도 따라줘야 한다. 우승을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우승은 하늘이 점지해주는 것 같다. 하하. 작년에도 울산이 95% 우승했다고 본다. 하지만 5%의 우승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좋은 멤버와 함께 승운도 따라줘야 하고, 홈 팬들의 응원과 지지, 그런 기가 다 모아져야 점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한다. 올해 그렇게 될 수 있다. 울산이 우승할 수 있다. 울산이 우승하기를 원한다. 나의 마음도 항상 울산의 우승을 응원하고, 몸도 항상 운동장에 가서 울산을 응원한다. 최 : 전북이라는 팀은 워낙 좋은 팀이다. 선수 각자가 굉장히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때문에 올해도 우승권에 가장 근접해 있는 팀이다. 선수 개인 능력을 100% 발휘한다면 어떤 팀도 넘보지 못하는 팀이 될 것이다. 항상 전북이라는 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러다보면 당연히 우승이라는 타이틀도 가능할 것이다. 전북의 이런 상황이 개인적으로는 부럽다. 내가 선수생활할 때 전북은 우승권에 있지 않았다. 선수 시절을 생각할 때마다 항상 부럽다는 생각이 든다. -이래서 '나의 팀'이 우승한다. 김 : 올해만큼은 울산이 우승을 해야 한다. 그동안 울산은 준우승 경험을 많이 했다. 이 경험 또한 우승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준우승 말고 우승을 경험하기를 바란다. 내가 울산의 연습경기를 봤는데 스쿼드도 너무 좋고, 경기력도 너무 좋다. 우승팀 전력, 경기력이었다. 실전에서 이 모습을 어떻게 발휘하느냐가 중요하다. 지금으로 봐서는 우승할 수 있는 경기력이다. 올 시즌 울산이 1강이라고 생각한다. 울산이 우승을 해야한다는 마음이 앞서서 그런가, 울산이 다 잘하는 것 처럼 보인다. 하하. 최 : 일단 선수 개인의 능력이 너무나 뛰어나다. 하지만 축구라는 게 개인 능력만 뛰어나다고 해서 우승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전북은 이 부분도 채울 수 있는 팀이다. 전북의 경우 모자라는 부분들을 선수들끼리 서로 많이 채워주고 있다. 조직력까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정상으로 갈 수 있는 팀이다. 아시아에서도 충분히 우승할 수 있는 팀이 될 수 있다. -'나의 팀'에 기대되는 선수 1명. 김 : 울산에 여러 좋은 선수들이 있지만 역시나 이청용이다. 유능한 선수를 울산이 영입했다. 이 정도 퀄리티의 선수를 영입했으니, 이청용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클 수 밖에 없다. 나 역시 이청용에 대한 기대감이 가장 크다. 올 시즌 울산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할 것이고, 많은 역할을 해낼 것이다. 최 : 개인적으로 (이)동국이를 잘 알고 있다. 동국이가 팀의 구심점 역할을 한다. 올해도 팀의 중심을 잘 잡아줄 것이다. 다치지 않고 이렇게 오래할 수 있는 것, 후배지만 대단하다. 나도 선수생활을 37세까지 했다. 지금 보면 그 이상을 하는 선수들이 많다. 체력적으로 준비됐고, 체력 이외로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팀을 잡아줄 수 있는 선수가 있다는 건, 단순히 경기장에서만 도움이 되는 것이 아니라 경기장 밖에서도 도움이 된다. 이런 선수의 존재는 중요하다. -'나의 팀' 라이벌을 어떻게 보고있나. 김 : 전북이 올해 팀을 어떻게 정비하고 스타트 할 지는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에는 간절함과 동기부여에서 울산보다 약할 거라고 본다. 우승을 계속하다보면 타성에 젖을 수 있다. 보강 선수를 봐도 전북보다 울산이 훨씬 낫다고 본다. 개인적으로 울산을 1강으로 보고있다. 최 : 울산에 대해 파악을 잘 하지 못했다. 하하. 작년 두 팀 덕분에 매우 재미가 있었다. 이 라이벌 관계가 안갯속에서 끝까지 재미있었다. 울산도 어느 정도 뒷심을 발휘한다고 하면, 이청용도 왔고, 우승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리그가 축소된 만큼 한 경기, 한 경기가 두 팀에 매우 중요할 것이다. 올해 역시 두 팀의 라이벌 구도가 좋은 장면, 재미있는 장면을 만들어낼 것이다. 최용재 ·김희선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20.05.08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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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①"끼와 실력 있는 선수들 해외로 유출…K리그 인기 추락 이유"

1998년은 'K리그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경기가 열리는 날이면 축구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언론 매체는 앞 다투어 축구 소식을 전했다. 그 중심에는 '앙팡테리블'이란 애칭으로 불렸던 고종수(39) 현 수원 삼성 코치가 있었다. 현역시절의 고종수는 "저돌적이고 창의적인 축구를 한다"고 평가받았다. 동시에 거침없는 언변과 쇼맨십으로 '반항아'라는 이미지를 얻었다. 그래서 일까. 소녀팬 사이에 큰 인기를 끌었다. 일간스포츠가 2017시즌 개막에 앞서 20년 전 K리그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1998 트로이카 이동국(38·전북 현대)-고종수-안정환(41·MBC 해설위원)을 차례로 만난다. 2편의 주인공 고종수 코치를 만나 'K리그의 황금기가 다시 오지 않는 이유'와 함께 '옛 추억'을 들었다. ◇소녀팬이 점령했던 1998년 K리그 -1998년은 K리그의 전성기였다. "중고등학교에 다니는 소녀팬 300여 명이 팀 훈련을 보기 위해 매일 모여들었다. 언젠가 울산으로 원정을 갔는데 관중이 너무 많이 몰려서 경기가 시작됐는데도 입장을 다 하지 못했다. 구장 측에서 동서남북에 있는 운동장 문을 개방했더니 사람들이 그 문을 통해 그라운드까지 내려와 응원을 하는 바람에 경기가 중단됐다." -당시 고종수의 인기는 어느 정도였나. "구단으로 보내오는 팬레터와 선물이 정말 많았다. 내 방에 놓을 수 없어서 구단 숙소에 있던 창고와 손님용 방까지 사용했다. 소녀팬이 나에게 준 삐삐(무선호출기)만 수 백여 개였다. 아마 나에게 연락을 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밤에 자려고 하면 선물 받은 삐삐들이 한꺼번에 울리는 통에 잠을 못 잤다." -안정환·이동국과 인기 경쟁은. "세 명의 매력이 모두 다르다고 생각했다. (이)동국이는 동정심을 자극하는 순수함과 풋풋함, (안)정환이 형은 만화에 나올 것 같은 잘생긴 외모로 인기를 끌었다. 나는 사실 잘생긴 편도 아니고 왜 인기가 있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아마도 저돌적인 플레이를 좋아하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누가 제일 잘 나갔나. "음…. 98년 인기상을 누가 받았더라. 아마 나인 것 같은데.(웃음) 그거면 다 끝나는 거다. 경쟁은 없었다. 한때 아이돌 그룹 중에 HOT와 젝스키스가 굉장한 인기였는데, 그들처럼 우리도 팬을 나눠 가졌다." -스포테이너의 선두주자였다. "외모 때문에 그런지 모델 쪽은 섭외가 없었다. 디자이너 앙드레김 선생님이 이동국과 안정환을 거론하며 '바디가 좋다'며 칭찬을 하셨다. 나에게는 '축구를 열심히 해 줘 감사하다'고만 했던 기억이 난다.(웃음) 뮤직비디오도 찍고 방송도 나가고 그랬다. 그때는 정말 순수하게 방송을 통해 색다른 팬서비스를 하고 싶었다."-그래서일까. '너무 튄다'는 소리를 들었다. "머리도 노랗게 물들였었고. 솔직히 우리 정서에 안 맞는 행동을 많이 했다. 당시는 염색을 하면 '날라리'처럼 보고 그랬는데 (내 덕에) 지금은 그런 편견이 없다. 어릴 때 그런 행동을 해보니까 지도자 생활을 하면서 상담을 할 때 도움이 된다. 고기도 씹어 본 사람이 맛을 안다고 하지 않나." ◇오지 않는 르네상스를 기다리며-자만하지는 않았나.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었다. 그래서 방황도 했었고. 소녀팬은 내가 볼만 잡으면 소리를 질러댔다. 언론 보도도 힘들었다. 나는 그 경기에 만족을 못했는데 '고종수가 완벽하게 했다'며 칭찬했다. 언론에 의해 내가 만들어진다고 해야 할까. 인터뷰를 할 때도 거침이 없이 속 이야기를 다 하다 보니 이미지가 '반항아'가 됐다." -2017년 K리그는 98년과 비교해 인기와 명성이 식었다. "재능있고 스타성 있는 선수들을 해외 리그로 계속해서 빼앗긴다는 점에 있다. 어느 한 선수를 보려고 수원 삼성을 응원했는데 어느 날 중국으로 가버리면 경기장에 오겠는가. 다른 리그에서 뛰다가 은퇴 무렵에 국내로 복귀하면 전성기는 지나 있다. 여기에 독창적인 색깔이 있는 어린 선수들마저 잘 나오지 않고 있다." -색깔있는 선수란. "과거에는 각자 잘하는 것이 뚜렷했다. 그런데 요즘은 조금씩 다 잘하려고 든다. 자신만의 개성이나 색깔이 사라진다. 자신만의 무기를 만들고 팬에게 어필해야 하는데 그게 안 된다. 하나같이 운동장에서 너무 착하기만 하고 열심히만 한다. 어쩌다 '끼'를 가진 선수들이 나오면 '골때린다'며 욕한다.'나를 보러 경기장에 오라'고 외칠 선수가 없다." -언젠가 르네상스를 열 후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만의 색깔이 있는 선수가 돼주길 바란다. 그리고 하나 더. 남자의 의리는 감독님과 동료에게만 지켜야 한다. 젊을 때 인기를 얻으면 파리처럼 달라붙는 사람들이 생긴다. 이런 지인들과 어울리다가 귀한 시간과 피땀 흘려 모은 돈을 탕진하는 사례가 많다. 승부조작도 거기서 시작된다." 서지영 기자 [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①"끼와 실력 있는 선수들 해외로 유출…K리그 인기 추락 이유" [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2편 고종수]②안정환-이동국에게 하고 싶은 말 2017.03.02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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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트로이카 특집인터뷰-1편 이동국]"1998년, 나는 '과대 포장' 됐다"

K리그 역사는 1998년을 '르네상스'로 기록했다. 1983년 시작된 K리그 역사상 가장 뜨거웠던 황금기. 경기장에는 구름관중이 몰렸고 사상 첫 200만 관중(211만7448명)을 돌파한 영광의 해였다. 르네상스의 시작은 3명의 슈퍼스타가 등장하면서부터였다. '라이언 킹' 이동국(38·전북 현대), '앙팡테리블' 고종수(39·수원 삼성 코치), 그리고 '테리우스' 안정환(41·MBC 해설위원)이 주인공이다. 이들은 실력과 외모를 모두 갖춘 'K리그 트로이카'라 불리며 소녀팬들을 몰고 다녔다. 2017시즌 K리그 개막을 앞둔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20년 전 시즌이다. 본지는 올 시즌 'K리그 개막 특집'으로 1998 트로이카와 만나 인터뷰를 했고 차례로 소개할 예정이다. 이들과 '어떻게 황금기가 올 수 있었는지' 1998년 추억을 공유했다. 그리고 '다시 부흥기가 올 수 있는지' 2017년 희망을 기약했다. 첫 주자는 이동국이다. "프랑스월드컵을 위해 공항에 갔을 때 나를 알아보는 포항팬 4명이 있었다. 월드컵이 끝나고 귀국하자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13분이 이동국 인생을 바꿨다. 그는 1998 프랑스월드컵 조별예선 2차전 네덜란드전에서 후반 32분 교체 투입돼 13분을 뛰었다. 이동국은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남기는 등 인상적인 모습을 보였다. 0-5 참패 속에 발견한 희망이라는 극찬이 쏟아졌다.무명의 선수가 월드컵 13분을 뛰고 돌아오자 '최고 스타'가 돼 있었다.지난 17일 전라북도 완주군 봉동읍 전북 현대 클럽하우스에서 만난 이동국은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이런 흐름은 K리그에서 이어졌다. 1998년 포항 스틸러스에서 데뷔한 이동국은 빼어난 실력과 '미소년' 이미지가 더해져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포항은 정규리그 평균 관중이 1997년(5313명)과 비교해 3배 이상(1만7427명) 늘어나는 '이동국 효과'로 뜨거웠다. ◇1998년. 가장 인기 많았고 가장 거만했던 시절 -월드컵 참패에도 K리그 흥행 붐이 일어난 이유는."월드컵 성적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마지막 벨기에전에서 피를 흘리면서 뛴 붕대 투혼 등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었다. 또 막내인 내가 당돌하게 경기를 뛰는 모습에서 작은 희망을 얻은 것 같다. 월드컵이 끝난 뒤 K리그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그때가 K리그 최고 절정기였다고 생각을 한다." -월드컵 귀국 현장은 어땠나."프랑스에서는 한국 상황이 어떤지 몰랐다. '한국에서 난리가 났다'는 전화를 받았다. 통화를 길게 하지 못해 자세한 내용은 물어보지 못했다. 공항에서 계란을 맞을 걱정부터 했다. 그런데 와보니 수많은 팬들이 내 이름이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반겨줬다. 이런 경험은 처음이었다." -월드컵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식당을 가도 밥 한 그릇을 더 주고 택시를 타도 택시비를 안 받으려고 했다. 유명인이 누릴 수 있는 것을 모두 누릴 수 있었다." -인기가 월드컵으로 끝나지 않았다."그때는 아날로그 시대다. 인터넷과 SNS가 발달되지 않았다. 좋아하는 선수를 볼 수 있는 방법은 직접 찾아가서 보는 방법뿐이었다. 경기장에 정말 많은 팬들이 왔다. 포항 숙소에도 전국 각지에서 팬들이 모였다. 몇 십 명이 밤을 새면서 내가 아침 먹는 모습을 보고 집으로 가곤 했다. 그때 숙소 관리하시는 분이 정말 고생이 많았다." -팬레터를 받을 시대다."보통 하루에 300통 정도는 온 것 같다. 많게는 하루에 1000통 이상도 왔다. 포항 우체국에 내 우편물을 관리하는 팀이 따로 있다고 들었다. 소중한 선물이다. 어머님이 그때 편지를 버리지 않고 다 모아놓고 있다." -트로이카 중 누가 인기가 가장 많았나."(고)종수 형이 인기가 가장 많았다. 실력적으로 정말 뛰어 났다. 튀고 자신감이 넘쳤다. 국내 선수 중에서는 찾을 수 없는 캐릭터였다. 지금 시대에 태어났다면 분명 종수 형은 더 큰 스타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종수 형과 (안)정환이 형은 광고도 찍고 뮤직비디오에도 나왔다. 나는 그런 방면에 끼가 없어 거의 방송은 하지 않았다." -외모 순위는."정환이 형이 당연히 1등이다. 정말 꽃미남이었고 귀공자 이미지였다. 테리우스라는 별명과도 잘 맞았다. 나는 중간이다. 종수 형이 3등이다. 본인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웃음)" -서로 시기와 질투는 없었나."셋이 잘 어울려 다녔다. 휴가 때 만나서 밥도 먹으면서 함께 놀았다. 세 명이 함께 모여 있으면 주변에서 난리가 났다." -신인상 경쟁에서 안정환에 이겼다."K리그 역대 가장 치열한 신인왕 경쟁을 펼쳤다고 생각을 한다. MVP 경쟁보다 치열했다. 내가 정환이 형을 이겼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내가 월드컵을 뛰어서 가산점을 얻은 것 같다." -사상 첫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이런 시대를 팬들과 함께 보낸 것은 감사한 일이다. 열정적인 팬들이 많았다. 경기 끝나고 버스가 이동하지 못할 정도였다. 나는 몰래 승용차를 타고 따로 빠져나가야 할 때가 많았다. 한 번은 울산에서 원정 경기를 했는데 팬이 넘쳐 경기장 트랙 앞까지 바리게이트를 쳐서 관중을 앉혔다. 지금은 안전 이유로 용납할 수 없는 모습이다." -자만하지 않았나."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 누군가 옆에서 충고를 잘 해줬다면 나는 더 좋은 선수가 됐을 것이다. 아니 선배들이나 누군가 조언을 해줬을 텐데 인기가 너무 많다 보니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거만했다. 건방진 행동도 많이 했다. 누구도 내 중심을 잡아줄 수 없었다. 사회생활도 해보지 않은 20살이었다. 어린 나이에 큰 인기를 얻었고 말하는 대로 다 됐다. 그때로 돌아간다면 더 성실하고 열정적으로 선수 생활을 할 것이다." ◇2017년. 다시 부흥기를 기다린다 -왜 부흥기가 다시 오지 않는가."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지금 팬들은 너무나 쉽게 스타에 접근할 수 있다는 점이다. 핸드폰으로 어디서나 스타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다. 굳이 경기장에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 또 스타도 부족하다." -스타가 나오지 않는 이유는."젊은 스타가 나오기 힘든 상황이다. 젊은 스타들은 해외에 진출한다. 또 과거처럼 과대 포장을 할 수도 없다. 내가 그랬다. 월드컵 다녀오니 내가 가진 실력에 비해 더 많은 사랑을 받았다. 미디어들이 축구 신동, 축구 천재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줬다. 과대 포장된 면이 있었다. 과한 관심을 받았다. 경기력보다 축구 외적인 선수 마케팅 부분 이슈를 위해 노력했던 기억도 난다." -스타가 나오기 위해서는."K리그 팬들은 성숙해졌다. 외모와 이미지로 선수를 좋아하지 않는다. 축구를 보는 수준도 엄청 높다. 경기력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아무리 포장을 잘 한다고 해도 인기를 얻기 힘들다. 경기를 못하면 바로 시선에서 멀어진다. 실력이 있다는 전제 하에 구단과 선수, 미디어가 함께 열심히 스타로 만들어야 한다. 경기력에 지장을 주지 않는 한 선수 마케팅도 필요하다." -스타로는 한계가 있다고."예전에는 특정 선수를 보기 위해 경기장에 왔다. 하지만 지금 응원 문화, 관람 문화가 바뀌었다. 한 두 명의 스타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팀 전체를 보러 경기장에 오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제는 1~2명 스타가 빠졌다고 해서 팀 흥행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특정 선수에 빠져 팀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팀을 좋아하면서 자연스럽게 그 팀 선수에 매료되는 과정이다. 팀 전체적으로 팬들에게 어필하고 소통해야 한다. 팬들에게 나의 팀이라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트로이카 후계자 1명을 꼽는다면."이재성이다. 실력도 있고 끼도 있다.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다. 스타성을 갖춘 선수다." ◇떠난 형들에게 -트로이카 중 홀로 현역에 남아있다.(고종수 2009년 은퇴, 안정환 2012년 은퇴)"형들 보다 내가 오래 뛸 거라는 생각은 했다. 하지만 (박)지성이 보다 오래 뛰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 지성이 아버님도 언젠가 나에게 '네가 지성이 보다 오래 뛸 줄 몰랐다'고 놀라워 하셨다." -현역의 고충이 클 것 같다."내 선택에 후회하지 않는다. 내가 택한 길이다. 저마다 자신의 인생을 잘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현역으로 경기력으로 보여주고 있고 증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팬들의 시선은 냉정하다. 좋아하는 척을 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못한다. 경기력이 떨어지거나 경기장에 무언가 보여주지 않으면 바로 반응이 온다. 은퇴를 앞두고 있다고 봐주는 건 없다." -안정환에게 하고 싶은 말은."정환이 형 '제2의 인생'을 응원한다. 방송에서 좋은 모습을 봐서 기분이 좋다. 축구로 성공하고 축구 외적으로도 능력과 끼를 보여주고 있다. 정환이 형은 잘 할 거라고 생각했고 본인이 잘 해냈다." -고종수에게는 어떤 말을."종수 형은 수원 원정에 가거나 할 때 본다. 경기 끝나고 서로 인사를 한다. 연락도 가끔씩 하는 사이다. 형은 지도자 길을 걷고 있다. 성격상 선수들하고 잘 지낼 수 있다. 선수들이 형을 잘 따를 것이다. 소통을 잘 하는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솔로인 고종수가 안타깝다고."종수 형이 독수공방 그만하고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 노총각으로 살지 말고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가정을 꾸리면 다른 것들이 보인다. 종수 형이 결혼을 하고 아이가 생겨서 아이가 초등학교를 가면 형은 몇 살이야?(웃음)" -인터뷰를 마치며."정환이 형, 종수 형과 1998년의 추억을 공유할 수 있어 행복하다.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다. 언제라도 3명이 함께 만나서 소주 한 잔 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싶다." 완주=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7.02.28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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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개막 특집 인터뷰]'전설의 득점왕' 윤상철·김현석 "올 시즌 득점왕은 데얀과 아드리아노"

득점왕은 리그의 '꽃'이다.2016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개막이 하루 앞으로 다가온 지금 누가 리그의 꽃이 될지에 관심이 크다. 쉽게 예상할 수 없다. 올 시즌 유독 득점왕에 오를만한 공격수 후보들이 많기 때문이다. K리그 클래식 감독과 주장, 그리고 많은 전문가와 팬들이 득점왕을 예상하고 있다.일간스포츠는 '특별한' 이들에게 득점왕 예상을 부탁했다. 그들은 K리그 득점왕을 경험한 '골의 전설' 윤상철(51)과 김현석(49)이다. 한 시대를 풍미하며 K리그 득점 꽃을 만개시킨 영웅들이다. 젊은 K리그 팬들은 잘 모를 수 있다.이 중에 윤상철은 K리그 득점왕의 전설이자 FC 서울의 전설이다. 서울 전신인 럭키 금성에 지난 1988년 입단해 1997년까지 오직 한 팀에서 활약했다.지금은 통산 100골을 넘긴 선수가 8명이 있다. 시작은 윤상철이었다. 그는 K리그 최초로 100호골을 기록했고, 총득점 101골로 8위에 올라있다. 또 최초로 300경기 출전을 달성하기도 했다. '얼룩 치타'라 불린 그는 지난 1990년, 1994년 두 번의 득점왕을 차지했고 1993년에는 도움왕도 거머쥐었다.또 1993년 동대문운동장에서 세 번의 해트트릭을 달성해 '동대문의 사나이'로 유명했다. 1994년에는 21골을 넣어 한 시즌 역대 최다골 기록을 달성했다. 이 기록은 2003년 김도훈(28골)으로 인해 깨졌다. 지금 그는 모교인 경신고 감독을 지내다 잠시 축구계에를 떠나 있다.김혁석 역시 울산 현대의 레전드다. 지난 1990년 현대에 입단해 2003까지 K리그에서는 울산 원 클럽 맨으로서 위용을 떨쳤다.그는 '기록의 사나이'라 불린다. 1996년 MVP에 올랐고, 1997년 득점왕을 품었다. 6번의 K리그 베스트 11과 함께 K리그 최초의 50-50클럽 가입자이기도 하다. 그는 K리그 통산 371경기에 출전해 110골·54도움을 성공시켰다. 당시 110골은 역대 1위의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김도훈(114골)로 인해 깨져 지금은 득점 6위다. 그는 현재 모교인 강릉중앙고 감독이다.이 두 명의 전설에게 공통 질문을 던졌다. -K리그 전설로서 K리그가 개막할 때 기분이 어떤가요.윤상철(이하 윤) : 내가 K리그에서 활약한지는 20년도 더 지났지. 그래도 K리그가 개막한다니 설레고 기분이 좋아. 아쉬운 점도 있어. 내가 뛸 때 보다 지금 K리그 인기가 조금 시들어진 것 같아서. 내가 작년에 자주 챙겨보니 그런 느낌을 받았어. 아쉬워. 하지만 K리그를 믿어. 분명히 새로 다시 일어 날거야.김현석(이하 김) : 몸은 K리그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항상 K리그에 있어. 올해는 선수들 이동이 많아서 예측하기 어려워 더 재미있을 거야. 내 개인적 생각에는 전북 현대와 FC서울의 2강 체제로 가지 않을까. -100호골 넘긴 후배들이 계속 등장하고 있습니다. 순위가 계속 밀리는데 솔직한 느낌은 어떤가요.(100호골을 넘긴 8인 : 이동국·180골, 데얀·141골, 김은중·123골, 우성용·116골, 김도훈·114골, 김현석·110골, 샤샤·104골, 윤상철·101골)윤 : 순위는 중요치 않다. 아쉬운 것은 이미 200골도 나오고 300골도 나왔어야지. 더 많은 골이 나오지 않아 아쉬워. 특히 한국 선수들이 많은 골을 넣고 좋은 활약을 해줬으면 좋겠어. 조금만 잘하면 외국으로 나가니까 안타까워. K리그에 꾸준히 활약할 수 있는 한국 선수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어.김 : 기록은 깨지라고 있는 거야. 내가 활약할 때는 경기 수도 적었고 팀 수도 적었지. 지금이야 팀도 많고 경기 수도 많아 기록은 깨질 수밖에 없었어. (이)동국이의 기록도 시간이 더 지나면 후배들이 깰 날이 올거야. 그래도 사람 마음이라는 게 내 기록은 깨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물론 있어. 이제 내 순위는 더 밑으로 내려가야지. 톱10 안에는 있어야 하는데 개인적으로 서글퍼지네. 하하. 한국 축구 성장을 위해서라도 기록은 깨져야 해. -득점왕 출신으로 올 시즌 득점왕을 예상한다면요.윤 : 외국인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지 않을까 생각을 해. 일단 리그가 시작해봐야 알겠지만 서울의 데얀과 아드리아노가 유력한 후보라고 판단하고 있어. 데얀은 서울에 다시 와서 기대감이 커. 국내 골잡이들 중에서는 이동국과 김신욱이 있는데 두 선수가 한 팀에서 얼마나 잘 조화가 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김 : 데얀과 아드리아노가 가장 유력한 후보라고 봐. 국내 선수라면 이동국과 김신욱이지. 그리고 다른 팀도 지켜봤는데 특히 눈에 들어오는 공격수가 없었어. -서울과 울산에 응원의 메시지를 전한다면요.윤 : 나는 서울이 매년 우승하기를 원했어. 최근에는 초반에 어렵게 가더라고. 슬로우 스타터라 불리는 것도 알아. 올해는 초반 잘 극복해서 꾸준히 잘 했으면 좋겠어. 고생이 많겠지만 올해 전북을 넘고 꼭 6번째 우승을 해다오. 성남이 7회로 최다 우승이지. 서울이 따라가야지.김 : 몸을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항상 오래 몸담았던 울산에 있어. 나의 모든 마음을 가진 팀이지. 아직 내가 코치로 가르쳤던 선수들도 있어. 작년의 시행착오를 올해는 겪지 않았으면 좋겠어. 울산은 항상 우승권에 들어야 하는 팀이야. 올해 그런 위용을 보여줬으면 좋겠네. 윤정환 감독이 준비를 잘 했을거야. 올해 울산의 우승을 밖에서 열심히 응원할거야. 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ins.com 2016.03.11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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