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박주영 위기 진단] `축구 천재` 이전에 `조직의 톱니` 돼라
위기다. `축구 천재` 박주영(21.FC 서울)에게 시련이 찾아왔다. 한국 축구를 구할 `구세주`로 평가받던 박주영은 UAE-사우디아라비아-홍콩-미국으로 이어진 전지훈련에서 쓴맛, 단맛을 모두 맛보았다. 전훈 초반이었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그리스, 핀란드를 상대로 연속골을 터트릴 때만 해도 `역시 박주영`이란 소리가 여기 저기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그게 끝이었다. 홍콩에서 열린 핀란드, 크로아티아와의 칼스버그컵에서 단 한차례도 슈팅을 때리지 못하던 부진이 미국 전훈서도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16일 열린 멕시코와의 평가전에서는 선발에서 제외됐고 선배 정경호가 빠른 발로 그라운드를 누비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보는 초라한 신세가 됐다. 도대체 박주영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박주영은 이대로 주저앉는 것인가. 박주영에게는 어떤 가능성이 남아있는 것인가. 차근 차근, 그리고 조심스럽게 박주영의 위기에 대해 짚어보아야 할 때가 왔다.
구세주 박주영에 대한 추억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 지난 2004년 10월 9일 말레시아 콸라룸푸르에서 열린 20세 이하 아시아 청소년 선수권 중국과의 결승전. 중국 청소년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보고 특별 조련해 객관적인 전력에서는 한국에 앞선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그러나 한국 대표팀에는 중국에는 없는 `괴물`이 있었다. 박주영이었다. 전반 37분 페널티박스 왼쪽에서 공을 잡은 은 골대 정면을 향해 공을 치고 들어가며 중국 수비수 4명을 허수아비처럼 쓰러뜨린 뒤 골에어리어 왼쪽에서 오른발슛으로 골을 터트렸다. 너무도 아름다운 골이었다. 결국 한국은 중국을 2-0으로 꺾고 우승컵을 안았고 은 득점왕(6골)과 MVP를 독식했다. 박주영의 스타덤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이후 박주영은 2005년 1월 열린 카타르 친선 국제대회에서 5경기 동안 무려 9골을 쓸어담았다. K리그에서는 "신인이라 어떤 활약을 보일지 미지수"라는 주위의 우려를 비웃듯 입단 첫해에 18골을 터트리며 정규리그와 컵대회 득점을 합산한 통합득점왕에 올랐다. 지난해 6월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에서 열린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예선 우즈베키스탄전에서 0-1로 뒤지던 후반 종료 직전 골을 터트리며 "후 불면 날아갈 것 같다"고 자신을 외면했던 본프레레 전 대표팀 감독을 지옥에서 구해냈다. A매치 데뷔전서 터트린 데뷔골이었다. 박주영은 이어 열린 쿠웨이트전에서도 선제 결승골을 터트리며 한국의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지었다.
`백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이회택-차범근-최순호-황선홍의 계보를 잇는 초특급 스트라이커`라는 표현이 절대 과장이 아니었다. 이랬던 박주영이었다.
위기의 징후
화려함으로 점철된 2005년 박주영에게 아픈 기억이 있다. 6월 네덜란드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선수권이었다. 한국의 월드컵 본선행을 결정짓고 부랴부랴 청소년대표팀으로 복귀한 에게 네덜란드 세계 청소년선수권은 자신의 진가를 유럽 무대에 뽐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박주영의 존재만으로 역대 최강이라는 한국 대표팀은 부진했다. 스위스, 나이지리아, 브라질을 상대로 1승2패로 8강 진출에 실패했다. 박주영이 통하지 않은 게 가장 큰 원인이었다. 박주영은 나이지리아와의 2차전에서 골을 터트리며 기적같은 승리의 단초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그 뿐이었다. 그나마 프리킥 직접 슈팅을 통해 얻은 골이었다. 박주영이 `세계 무대의 벽`을 처음으로 실감한 순간이었다. 성인 대표팀에서도 통했던 박주영이지만 우즈베키스탄과 쿠웨이트 역시 아시아의 팀이었다.
지난해 10월 아드보카트 감독과 함께 한국 대표팀 코칭스태프로 부임한 핌 베어벡 코치는 11월 대한축구협회가 주최한 지도자 강습회에서 "박주영이 아직도 배울 게 많다. 찬스를 기다리지 말고 더 뛰어라"라고 쓴소리를 했다. 2002년 히딩크 감독과 함께 4강 기적을 일궜던 핌 베어벡의 발언이었기에 적지 않은 축구팬들이 귀를 쫑긋 세웠다.
전훈지 부진, 왜?
박주영은 이번 전훈 동안 두 골을 터트렸다. 그러나 내용을 살펴보면 다소 실망스럽다. 그리스전 골은 세트 플레이 상황에서 이천수의 프리킥을 머리로 받아 넣은 것이다. 핀란드전은 프리킥 직접 슈팅이었다. 그 역시 쉬운 일은 아니지만 상대를 제치고, 예기치 못한 순간 한박자 빠른 슛으로 골을 터트리는 박주영의 특기는 발휘되지 않았다.
상황은 점점 나빠졌다. 홍콩서 슈팅 기회를 단 한번도 잡지 못한 박주영은 미국으로 이동한 뒤에도 미국전, LA 갤럭시전, 코스타리카전, 멕시코전에 모두 기용됐지만 그라운드에서 이 공을 잡는 모습은 점점 더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박주영은 전훈이 막바지로 치달을 수록 점점 희미한 선수가 되어가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 때문이란 말인가.
박주영은 "최전방이든 미드필드든 공격적인 포지션은 어디나 설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아드보카트사단 이전까지 은 어디에 서든 상관없이 팀 플레이의 중심이었다. 세계는 늘 박주영의 중심으로 돌았고 팀 플레이도 이 서 있는 곳이 중심이었다. 대구 청구고, 고려대는 물론 K리그 FC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드보카트 사단은 다르다. 11명의 선수들을 고무줄로 묶어 놓은 듯 강한 압박과 톱니바퀴 같은 조직력을 추구하는 아드보카트 사단에서 박주영은 `축구 천재`이기 이전에 `조직의 톱니`가 돼야 했다. 박주영에게는 어쩌면 낯선 역할일 수도 있다. "찬스를 기다리지 말고 더 뛰어라." 지난해 핌 베어벡이 말했던 것을 다시 한번 상기할 필요가 있다.
옆으로 드리블하면서 슈팅 기회를 노리는 것도 한계에 봉착했다. 아시아선수권 중국전에서는 4명을 제쳤지만 지난해 6월 세계 청소년 선수권서 통하지 않았고 이번 전지훈련 기간 동안 치렀던 평가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오는 6월 독일 월드컵에서라면 두말할 필요가 없다. 스트라이커는 기본적으로 공을 잡으면 골문을 향해 대시하는 것이 정석이다. 박주영의 변칙은 `동네축구`에서는 위력적이었지만 우물 밖에서는 사정이 다르다.
시련이 강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박주영은 이제 끝인가. 절대 그렇지 않다.
몇가지 문제점이 드러나기는 했지만 의 지능적인 플레이, 간결한 패스, 문전에서 무서울 정도로 침착한 집중력은 오롯이 남아있다. 이런 능력은 아무에게나 있는 게 아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득점 찬스 때마다 박주영은 그 부분에 서 있다"고 본능적인 위치선정에 찬사를 보낸 바 있다. 핌 코치는 지난해 박주영의 문제점을 언급하면서도 "그의 발전을 위해 자극을 주기 위한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에 대한 비난이 불거지자 홍명보 코치는 "한 선수에 대한 비난은 팀에 도움이 안되니 자제해달라"며 진화에 나섰다. 모두 박주영의 재능과 잠재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다.
스페인리그에서 실패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이천수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동국도 독일 분데스리가에서의 좌절, 2002년의 아픔을 통해 한층 성숙해졌다. 박주영에게도 이번 시련은 알을 깨기 위한 아픔일 뿐이다.
이번 전훈의 결과만 놓고 보면 박주영은 2006 독일 월드컵에 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미드필드에 자원이 넘쳐나는데다가 윙포워드에도 박지성, 설기현, 차두리 등 해외파들이 가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훈 기간에 박주영의 한계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오는 6월 더 큰 시련을 당할 가능성이 더 커질 수도 있다. 일찍 실패를 경험했다는 게 박주영에게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영리하고 성실한 이기에 무엇을 해야 할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찬스를 기다리지 말고 스스로 만들어라. 답을 구하려면 상대를 깨부술듯이 좀더 공격적으로 움직여라, 받아 먹는 밥은 체하게 마련이다.
LA=이해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