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만화에 약 17억 원의 예산을 집행하는 한국문화콘텐츠진흥원(이하 콘진)이 지나치게 성과에 의존하는 사업을 펼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다. 콘진은 만화가 예술임에도 불구하고 얼마만큼의 수익을 낼 수 있는가라는 산업 잣대로 사업 방향을 잡는 성격이 강하다. 기획예산처의 경영 평가와 국회의 국정감사 등이 예술로서 만화의 특성을 외면한 채 예산 집행에 대한 결과와 책임만을 콘진에 묻고 있기 때문.
■ 일부 기업에 의존하는 사업 집행
2006년 1월 콘진에서 해외 홍보만화 자료집 선정위원회가 열렸다. 해외에 소개할 우리 만화를 선정하는 자료집을 프랑스.일본.중국 3개국 언어로 만드는 프로젝트. 만화업계에서 거의 카르텔로 불리고 있는 서울문화사.대원씨아이.학산문화사 등 3개 대형 회사의 편집장급이 다섯 명의 선정위원 중 세 명을 차지했다.
그 결과 자사의 만화들을 자료집에 대거 실었다. 유럽판에 실린 18개 작품 중 12개, 일본판 18개 중 12개, 중국판 19개 중 12개가 3사의 작품이었다. 게다가 자신들이 추천한 자사의 만화가 타인의 검토 없이 고스란히 실렸다. 말하자면 나눠먹기식이다.
3사는 콘진의 각종 사업 심사에도 관여하며 지원 혜택을 직접 챙기고 있다. 한 관계자는 "선정위원회는 형식적 절차다. 추천인이 되어야 할 해당 출판사 편집장들이 직접 심사에 참여하는 자체가 우습다. 어차피 실적주의다. 콘진도 문제를 알면서도 되는 곳을 밀어주어야 한다는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매년 되는 곳만 되는 이유가 있다"라고 말했다.
■ 학습만화로 몰리는 우수 만화 지원 사업
콘진은 수년 동안 우수 만화 창작 출판 지원 사업을 해 왔다. 시장에서 팔릴 만한 만화를 사전 지원하는 제도. 편당 2000만원꼴로 대략 15편 내외의 만화를 지원한다. 좋은 의도에도 불구하고 이 사업은 실질적으로는 어린이 학습만화 지원 사업이 되어 버렸다. 철저하게 출판사의 기획으로 짜맞추어 만들어지는 학습만화가 출판물 시장에서 잘 통하는 것도 사실. 작가의 창의성을 드러내는 만화는 철저히 지원 사업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었다.
심사에 참가한 손기환 교수(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 학부)는 "제출된 만화의 70~80%가 학습만화였고, 이런 류가 선정작의 다수를 차지했다. 학습만화를 만드는 출판사 관련자들이 심사위원으로 나온다. 만화 콘텐츠가 풍족하고 창의성 있게 만들어져야 하는데 그런 부분이 간과된 프로젝트다. 지금의 방식이 재검토 돼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콘진은 올해부터 이 사업의 상당 부분을 스토리가 있는 서사만화 지원으로 선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 실적만 따지는 분위기 없애야
콘진은 올해부터 잡지.인터넷에만 국한된 우수 만화 창작 연재 지원 사업을 일간지까지 확대했다. 6개월(절대적 기준은 아니지만) 연재를 조건으로 편당 1000만 원(매체 60%.작가 40%)을 지원하게 된다. 일간지까지 연재하도록 유도한다는 정책이지만 그 조건으로 신인 작가의 작품을 연재할 제대로 된 매체가 있을지 의문시되고 있다. 지원 숫자를 15개에서 20개로 늘렸다는 만족감을 빼면 속은 텅 비어 있다.
이런 가운데서 가장 난감해 하는 당사자는 콘진이다. 국정감사 때 모든 걸 숫자로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상황에선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국회나 기획예산처 등이 안목을 바꾸지 않는 한 콘진의 체질 변화는 불가능하다. 콘진은 올해 새로 시작하는 만화백서 사업.웹진 사업.만화 유통 박람회 사업 등에 기대를 걸고 있다.
만화가 이희재 씨는 "콘진이 열심히 하는 것은 인정한다. 창작 부분에 좀 더 지원했으면 한다. 통계니 몇 불 수출이니가 중요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