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충무로 씨네월드영화사 사무실. 영화 <왕의 남자> 이준익(47) 감독은 투덜거리면서도 무엇을 고를까라는 설렘으로 사무실 곳곳에 `짱 박힌` 중절모들을 뒤적거렸다.
"바로 이 놈이야. 이번엔 요 걸 써 봐야지."
그는 검은색 바탕에 갖가지 꽃무늬와 색감이 어우러진 가장 화려한 모자를 집어 들었다. <왕의 남자> 팬 클럽 회원들이 선물해 준 모자란다. 인기 절정이다. 전날 밤(14일) 국립극장에서 열린 제42회 백상예술대상 시상식에서 내로라하는 스타들을 제치고 대상을 거머쥔 후 "소박한 마음으로 절박하게 찍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을 줄 알았으면 더 잘 찍을 걸 그랬다"는 소감으로 좌중을 웃기던 그 순간에도 그는 검은 중절모를 쓰고 있었다.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 버린 중절모. "이번에 처음 써 본다"면서 집은, 만개한 꽃들이 바람에 날리다 착 달라붙어 버린 듯 보이는 그 화려한 모자는 인생의 절정을 맞이한 그의 처지를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것 같았다. 아마도 `비주류`를 견지하는 그는 기자의 이런 시각에 동의하지 않으리라. "태어날 때부터 낙천적이었고 특별히 행복한 적도, 불행한 적도 없이 항상 즐겁다. 일하는 게 놀이고, 놀이가 일하는 거다"라는 그의 철학관을 유추해 보면 `인생의 절정을 맞은 적이 없다. 나에겐 항상 과정이면서 절정이기 때문이다. 상을 받았다고 절정인가`라는 답이 그에게 어울리기 때문이다.
"나이 먹으니까 중절모가 어울린다. 중절모가 열세 개쯤 있고, 야구 모자까지 합쳐 모자만 서른 개쯤 된다. 남들 잘 안 쓰니 스타일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는 사무실 한구석에 세워진 야구 방망이를 붕붕 휘두르며 자신이 만들었다는 `3S`론을 들어 보겠냐며 물어 왔다.
■ 내가 사는 방식, `3S`
이 감독은 하회탈처럼 항상 웃는 얼굴로 대하는 이를 편하게 해 준다. 현장에서도 부리는 스태프들과 격의 없이 수다를 떤다. 지장.용장.덕장 스타일로 굳이 구분하자면 덕장이라고 할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어야 한다. 멋있게 나이 먹는 방법은 `3S`다. 첫째가 스케일(Scale), 둘째가 스타일(Style), 셋째가 스마일(Smile)이다. 스케일 있게 하고, 스타일 있게 행동하고, 친근감 있게 굴어야 한다는 말이다. 첫째와 둘째를 다 갖춰도 스마일이 없으면 앞의 것은 다 무너진다. (안 웃으면) 누가 (나를) 찾을까? 즐겁게 살아야지."
그는 누구와 만나도 어울릴 만큼 잡기에 능하다. 그 중심에는 야구가 있다. 신용산중학교 1학년 때 정식 야구 선수였다. 캐처 겸 센터필더라는 두 가지 포지션을 겸하면서 팀에서 6번 타자를 쳤다. "운동을 하면 할수록 내가 체력이 좋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그만 두었다. 자질이 있었으면 지금쯤 야구 감독이 되어 있지 않을까."
취미는 야구 방망이로 스윙하는 것이란다. 그의 차에는 항상 야구 글러브 두 개, 방망이 한 개가 준비되어 있다. 방망이의 경우 집.사무실.차에 각각 하나씩 있다. 현장에서 틈만 나면 배우나 스태프들과 캐치볼과 토스 배팅을 한다. 특히 캐치볼은 경직된 몸을 풀어 주는 측면에서 좋다.
야구 외에도 당구 250, 골프 90대에 볼링.고스톱.포커.바둑, 심지어 술과 담배 등 온갖 잡기에서 빠지는 부분이 없다. "바둑을 두면 성격을 알 수 있다. 강우석 감독은 성격이 급한데 바둑 둘 땐 신기하게 천천히 둔다. 더 늦게 두는 인간은 안성기다. 한 수 놓는 데 몇 분씩 걸린다. 그림 그리고, 조각도 하고. 회화과 출신이니까 나중에 전시도 해야 한다. 한 가지를 오래 못한다.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게 내 특기다."
■ 영화 제작은 전쟁? 그는 포병 경험이 영화 제작에 무척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나는 포병 출신으로 155㎜포를 다루었다. 12명이 한 조로 포탄이 목표한 시간에 발사되려면 완전한 콤비 플레이가 이뤄져야 한다. 군 3년 동안 내내 하니 조직적으로 일하는 시스템이 대단히 효율적임을 알게 됐다. 영화 현장도 비슷하다. 여러 명을 동시에 움직여 짧은 시간 내에 짜맞추는 게 무척 재미있다. 그것도 아주 신속하게."
그는 영화 제작을 고지 탈환 전투에 비유한다. "제작 과정에서 여러 명이 마라톤 회의를 한다. 화장실에 있을 때와 밥 먹을 때 빼고 계속이어서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중간에 픽픽 쓰러진다. 정신적.육체적 한계까지 도달한다. 시나리오를 독파하는 일은 전쟁터에서 고지를 탈환하는 모드다. 전우의 시체를 밟고 가는 거다. 상대를 비판하고 작업자들의 멘탈을 할퀴면서 간다. 인신 공격까지 서슴지 않는 처절한 멘탈 게임이다."
이 감독은 지휘자로서 어떤 스타일로 전쟁에 임하는 것일까. "타깃을 정해 놓고 전 파트가 각자의 기능을 일치시키는 게 영화다. 감독의 능력에는 창의력.묘사력 등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게 커뮤니케이션 능력이다. 감독 혼자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잘 조율하는 게 감독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발가벗는 스타일이다. 내 생각을 무장해제한다. 그러면 상대방도 무장해제한다. 상대방을 불편하게 하면 결국 내가 불편해진다."
그는 여기서도 놀이의 개념을 살짝 끼워 넣는다. "내가 먼저 곤경에 처하는 거다. 연민을 유발하는 작전이다. 내 콤플렉스를 여러 사람에게 꺼내 축구공처럼 갖고 논다. 그러면 그것은 더 이상 내 콤플렉스가 아니다. 내 지식은 여럿이 합쳐 나온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
■ 아직까지는 영화가 재미있다
그가 영화감독이 된 사연을 들으면 `인생 역정`이란 말이 떠오른다. 어릴 적부터 집안이 어려웠고 화가가 되고자 세종대 회화과에 들어갔으나 스물다섯 때 군 복학 직후 붓을 꺾었다. 스물한 살에 낳은 아이의 분유값을 벌어야 했다. 영화판에 들어가려고 한 것도 아니었다. 잡지사에서 봉급 15만원 받고 디자인하고 있을 때 선배가 30만원 준다는 말에 솔깃해 서울극장에 취직했다. 간판 디자인, 포스터를 만들다가 영화 수입.제작.배급을 하고 결국 영화감독이 됐다.
그는 자신의 고생담을 모두 공개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젊은 시절 분노에 사로잡혀 있었다. `최대의 복수는 성공`이라는 경구도 있지만 다시 그것(성공담)에 기대는 것은 좋지 않다. 사회적 분노를 갖는다 할지라도 모든 사람이 성공할 수는 없다. 그 사회적 분노를 성공의 샘플로 소개하는 것은 상대적 열등감만 조장하는 것이 된다."
그는 지독한 행복론자다. "나는 매일 행복하다. 바람이 많이 부는 벌판에서 바람을 느끼고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차 탈 땐 항상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는다. 추운 겨울에도. 오늘은 덜 행복하다. 바람이 안 부니까. 비도 일부러 맞고 다닌다. 우산을 안 쓴다. 모자가 편리할 수밖에 없다. 나는 놀면서 일한다. 노는 게 곧 생산이다. 재미없는 일은 하지 않는 게 내 철학이다. 영화도 재미없으면 그만 할 거다. 아직까지는 영화가 재미있다."
30억 빚지고 있어도 불행하지 않았다
이준익 감독은 <왕의 남자> 를 통해 한 방에 빚을 날린 것으로 유명하다. <왕의 남자> 전까지 5년 동안 빚을 30억원씩이나 짊어지고 있었다. 그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30억 빚지는 것도 쉽지 않다. 그 정도 빚지는 것도 대단한 능력 아닌가. 채권자들에게 시달리면서도 그들에게 미안해 불편했지, 빚을 져 불행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장생의 말처럼 `잃을 것도 없었다`. 스케일 있게 생각하면 초인적으로 일해 한 방에 값을 수밖에 없는 거다. 30억 빚지면 그게 스케일이 된다."
<왕의 남자> 처럼 히트했으면 느긋하게 쉴 만도 하건만 새 영화 촬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다. "단 하루도 쉰 적이 없다. 영화 <도마뱀> 에 이어 또 새 작품 <라디오 스타> 을 크랭크인한다. <왕의 남자> 가 안될까 그전에 잡아 놓은 거다. <왕의 남자> 로 이렇게 될 줄 몰랐으니 끝까지 배수진을 친 거다. 빚을 져 본 사람은 갚을 수 있는 사람이다. 게으른 사람은 안되지만. 나는 게으르지 않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