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일반
[나의 삶, 나의 도전] `박치기왕` 김일 <26>
"승패는 병가지상사"라고 하지 않던가. 조 히구치에게 맥없이 무너진 후 처음에는 의기소침했다. 그러나 한 경기에서 졌다고 해서 낙심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겐 다음이 있었다. 첫 경기를 치른 후 거의 보름 단위로 경기가 이어졌다. 두 번째 경기에선 승리했다. 그 상대의 이름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스모를 했던 일본 선수였다. 그와의 경기는 씨름과 스모의 한판 대결이었던 셈이다. 티는 내지 않았지만 나는 한국의 씨름이 스모 기술보다 뛰어나다는 사실을 입증해 보이고 싶었다.
그 경기의 승자는 나였다. 이겼지만 기쁘지는 않았다. 스승 역도산도 "축하한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다음에도 잘해"란 말뿐이었다. 하면 할수록 기술과 체력 또 자신만의 히든 기술을 갖고 있어야만 프로레슬링 세계에서 버틸 수 있다는 것을 절감했다.
경기에서 이기기 위해선 야비할 정도로 상대에게 공격을 가해야 했다. 안면에 대한 주먹 가격, 급소 차기, 이마를 기둥에 부딪치기, 로프에 목 감기, 로프에 눈 비비기, 보디 슬램 등 거친 플레이를 견뎌야 했다. 그뿐인가. 펀치 쥐어뜯기, 해머 던지기, 태클 등 모든 기술을 동원해 상대를 무찔러야 했다.
프로레슬링 기술은 내가 사각의 링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다. 상대의 머리를 감싼 후 매트에 박아도 상대가 쓰러지지 않으면 정말 당황한다. 양손으로 상대의 손목을 잡고 공중에서 한 번 회전시켜 쓰러뜨리는 기술을 몇 번을 시도해 봐도 단지 팔을 비트는 정도의 기술이 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프로레슬링 기술을 터득하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았다.
이러한 기술을 터득하지 못해 프로레슬링계에서 은퇴한 선수가 한두 명이 아니다. 특히 프로레슬링은 스포츠 중 유일하게 반칙이 합법화된(?) 경기다. 오죽하면 `반칙 기술`이란 게 있을까. 단순한 반칙을 넘어선 반칙 기술은 중요한 레슬링 기술 중의 하나였다.
난 그때서야 스승의 가르침을 깨달았다. 왜 남들이 두 시간 연습하면 세 시간 해야 하고, 남들이 하루 하면 이틀 더 연습해야 한다고 강조한지 알 것 같았다. 나는 씨름을 했지만 그것은 소용없었다. 일본과 외국 선수들은 기술적 면에서 나보다 한 수 위였다. 대부분 스모.유도.아마레슬링 출신이고 어릴 때부터 격투기 운동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이었기 때문에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이기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맞고 맞아도 오뚜기처럼 일어나는 불굴의 정신이 필요했다. 스승은 그 정신을 심어 주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때렸다. 하지만 불굴의 정신도 고난도 기술 앞에선 필요없었다.
그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선 나만의 히든 기술이 필요했다. 고난도 기술과 나만의 히든 기술, 그리고 불굴의 정신. 이 삼박자만 갖춰지면 상대할 자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스승에겐 가라테 촙이란 기술이 있었다. 스승의 가라테 촙을 한 방 맞으면 덩치 큰 서양 선수도 맥없이 주저앉았다. 스승은 생전에 자신의 훈련담을 얘기하지 않았다. 아마도 스승이 좀더 오래 살았더라면 당시를 떠올리며 "실은 그때 참 힘들었어 …"라고 털어놓았을지도 모른다.
스승은 평양 출신의 가라테 사범인 나카무라 히데오로부터 가라테를 전수받았다. 스승은 손을 단련시키기 위해 돌이나 서까래처럼 단단한 물건의 같은 부위를 계속해서 내려치는 훈련을 반복했다. 5000회를 때리라고 하면 1만 회를 소화해 냈다. 1951년께. 스승은 자신이 터득한 공격술에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싶었다. 카라테 촙. 촙(chop)은 영어로 도끼로 나무를 팬다는 뜻과 개척해서 나아간다라는 뜻도 함께 갖고 있다. 스승의 가라테 촙은 이렇게 탄생했다.
그렇다면 나에게도 가라테 촙 같은 히든 기술이 필요했다. 그 기술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질 무렵 스승이 불렀다. "박치기를 익혀라."
<계속>
정병철 기자
사진=이호형 기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