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붙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올 시즌 구대성(37.한화)의 피칭을 보면 `대성불패`라는 닉네임이 딱 어울린다. 1점차든 3점차든, 주자가 있든 없든 그가 오르면 경기는 끝난다. 안타는 맞을지언정 결코 역전을 허용하지 않는다. 8경기 연속 세이브에 23일 현재 시즌 15세이브(무패)로 부문 공동 선두. 한화에는 승리의 수호신이자 상대 팀에는 `저승사자`와 다름없는 구대성의 피칭을 파헤쳐 봤다.
▲자신의 몸을 100% 이용하는 투구폼
구대성의 투구폼은 독특하다. '한국판 토네이도'라고 불려도 무방할 만큼 몸을 꽈서 던진다. 멋이 아닌 자신의 공을 타자에게 최대한 숨기기 위한 전략.
여기에 준비동작 시 취하는 크로스 스탠스(오른발을 1루로 향하는 것은 보통의 투수와 같지만 발 앞부분을 2루쪽으로 틀어 선다)는 순간적인 힘을 쏟아내기 위한 자기만의 비법이다. 용수철이 높이 튀어 오르기 위해 최대한 수축하는 것을 연상해보자.
피칭 시 밟는 투구판 위치도 여느 투수들과 다르다. 축이 되는 발의 옆 부분을 홈 플레이트 쪽으로 향한 투구판에 살짝 붙이고 던지는 게 보통이지만 구대성은 투구판 모서리면을 발바닥으로 누르면서 던진다. 피칭 시 마지막 '추진력'을 얻기 위해서다. 자칫 발목을 삐끗할 수 있는 위험성이 있지만 "충남중 때부터 익혀 온 투구 폼이라 괜찮다"고 말한다.
결론적으로 왼손 투수라는 이점을 최대로 활용한 투구폼이라고 할 수 있다. 발바닥부터 시작해 온몸을 풀가동시켜 에너지를 모아놨다가 공을 릴리스 할 때 팔 스윙으로 집중시키는 것이다. 오른손 투수의 경우 1루 견제 동작에서 무리가 따르기 때문에 크로스 스탠스를 취하기는 힘들다.
▲체감 구속 150㎞
6년 만에 복귀한 구대성의 피칭에서 놀라운 점은 구속이 갈수록 점점 늘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내 복귀 첫 등판인 시즌 개막전 때 최고 시속 139㎞에 불과했던 구속은 최근 146㎞까지 찍었다. 한 달반 만에 무려 시속 7㎞가 빨라진 셈이다.
일본 오릭스 시절이나 지난 해 뉴욕 메츠에서는 평균 구속이 140㎞ 미만이었고, 최고 구속은 아무리 빨라도 140㎞ 초반대에 그쳤다. 해외 진출 전 마지막 해인 2000년에도 비슷했다.
이유가 뭘까. 스스로는 "한국에 돌아오니 몸과 마음이 편해서 그런 모양"이라며 너스레를 떨지만 하체 밸런스와의 관계를 무시할 수 없다. 구대성의 크로스 스탠스는 어지간한 하체 힘이 없으면 버티기도 힘든 투구폼이다. 따라서 구대성은 비시즌 때도 뛰어서 산에 오르는 등 하체 강화 운동만큼은 게을리 하지 않는다. "최근에는 나이를 의식해 피칭 전후에 하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고 있다"는 게 팀 관계자의 전언이다.
그럼 해외 무대에선 146㎞의 강속구를 뿌리지 못했을까. 일본에서는 선발로 뛰느라 체력 안배가 필요했고, 지난 해에는 어깨와 옆구리 부상으로 제공을 뿌리지 못했다. 말이 146㎞이지 몸을 뒤로 꽈서 던지는 투구폼에서 상대 타자들이 느끼는 체감구속은 150㎞에 이를 듯하다.
▲빠른 공을 돋보이게 하는 비밀병기
아무리 공을 숨기는 투구폼에 체감구속 150㎞짜리 광속구를 던지다고 하더라도 구질을 알고 있다면 못칠 공은 아니다. 150㎞대의 공을 심심찮게 보는 요즘 프로야구다. 아울러 커트 능력 등 타자들의 타격 기술은 구대성의 해외진출 전보다 월등히 나아졌다.
구대성의 강속구가 빛나는 것은 다양한 변화구가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2가지로 던지는 체인지업은 기존의 슬라이더·커브·싱커와 섞여 '대성불패'의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구대성은 느린 체인지업과 빠른 체인지업 등 2가지를 구사하는데 말그대로 2구질은 구속에서 시속 10㎞ 정도 차이가 난다. 느린 체인지업은 반포크처럼 잡되 집게와 약지 손가락을 벌려 잡고 던지고, 빠른 체인지업은 느린 체인지업 그립에서 가운데 손가락을 공에 살짝 갖다 댄다.
빠른 체인지업의 구속은 130㎞ 초반대로 일본에서는 '싱킹 패스트볼'로 불리기도 한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참가 준비차 지난 2월 플로리다 브래든턴의 현대 캠프에서 대학(한양대) 선배인 김시진 현대 투수코치로부터 전수받은 구질. 캠프 때마다 현대 투수들이 번번이 실패했지만 구대성은 불과 1주일 만에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다.
▲킬러 스마일
미국 일본에서 5년 간의 경험을 두루 거친 구대성의 마운드 운영은 정점에 달한 느낌이다. 경쟁자 오승환(삼성)이 '포커페이스'로 타자들과의 수싸움을 숨기는 반면 구대성은 한술 더 뜬다. 안타를 맞더라도 씩 한번 웃는다. 그리고 나선 경기를 끝낸다. "누구도 절대 내 공을 칠 수 없다"는 자신감의 표출. 김경문 두산 감독은 "국내에서 내로라 하는 A급 타자도 구대성의 공을 공략하기는 힘들 것이다. 시쳇말로 타자들을 가지고 놀 줄 안다"고 거들었다.
구대성은 최근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아슬아슬 세이브'에 대해 "일부러 위기를 자초하는 바보가 어디 있겠나"고 반문한 뒤 "다만 최근 8회부터 나가는 경기가 잦고 자주 등판하다보니 체력 관리가 필요하다. 삼진을 잡는 것보다 맞혀 잡는 게 힘이 덜 들기 때문에 최근 들어 안타를 맞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위기를 관리하는 것을 뛰어넘어 스릴까지 즐길 줄 아는 천상 마무리다.
<사진1> 은 전매특허인 크로스 스탠스. 오른발의 앞코가 2루쪽을 향하고 있다. 키킹 동작에서 디딤발을 내릴 때까지 타자들에게는 백넘버만 보여준다. <사진3> 과 <사진4> 에서 왼발을 자세히 살피면 투구판 모서리를 이용해 추진력을 얻는 장면이 눈에 들어온다. 공을 뿌릴 때( <사진6> ) 어깨와 왼팔의 각도가 가장 이상적인 90도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