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만화 <월드컵의 축구 황제> 를 그리면서 우리 팀이 월드컵 8강에 진출하는 걸 그렸다. 그 때는 4강의 가능성을 언급하는 수준이었다. 2002년 우리가 실제로 4강에 갈 지는 몰랐다. 이제는 월드컵 우승을 그리겠다.”
만화가 오일룡(57)씨가 독일 월드컵 열기로 지구촌이 끓어오르고 있는 요즘 축구 만화 인생 23년으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그가 23년 동안 선보인 축구 만화만 200여 종·3000여 권. 지난 83년 <축구 황제전> 으로 축구 만화를 처음 그린 이후 초지일관 이 길을 걸어왔다. 국내 만화계에서 ‘축구 만화=오일룡’이란 공식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토록 장기간 축구 만화에만 전념하는 만화가는 전세계에서도 찾아보기 드물다.
<춤추는 쎈타포드> <슈퍼 스트라이커> <레드 싸커> 등으로 알려진 그는 83년 한국팀의 세계청소년 축구대회 4강 진출에 감동을 받고 축구 만화를 그리게 됐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스파이더맨> 의 창시자 스탠 리. 미국의 유명 만화가 조 쿠버트 등과 펜팔 교류를 했고 SF 만화를 꾸준히 작업 해오다가 83년을 기점으로 축구 만화로 돌아섰다.
<축구 황제전> 은 기대만큼 반응도 좋았다. 축구 붐이 오래 갈 것이라는 판단도 축구 전문 만화가의 길을 걷게 하는 계기가 됐다. 그 때부터 대중의 뇌리엔 오일룡은 축구 만화가로 각인됐다. 그의 작품에 항상 등장하는 유비· 관우·장비 등은 오일룡 만화의 트레이드 마크다.
그는 “내가 다른 장르의 만화 해 봐야 먹히지 않는다. 축구 만화의 경우 주인공이 항상 이기고 해피엔드로 끝나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고교 축구·대학 축구·유럽 축구·남미 축구·이탈리아의 지하 축구. 아프리카밀림에서 타잔처럼 지내다 발탁된 이야기. 성인용 축구 만화 등 안 다루어 본 축구 이야기가 없다”고 말했다.
상상할 수 있는 축구 이야기는 그에 의해 모조리 작품화 됐다. 91년 인기를 끈 <시베리아의 축구 황제> 는 한 해군사관 생도가 탄 배가 풍랑을 만나 소련의 구조를 받는 내용이다. 기억 상실에 걸린 주인공은 시베리아 벌목장에서 죄수들과 함께 축구를 하다 탈출해 이탈리아 리그에서 뛰게 된다. 심지어 부상을 당해 폐인이 된 주인공이 발목 뼈가 툭 튀어나오는데 그걸 이용해 가공할 스핀킥을 구사하는 작품도 있다.
축구에 대한 자신의 열정과 달리 그는 축구를 잘 하진 못한다. 40대 때 축구를 하다가 배에 공을 맞고 쓰러진 후로 직접 축구를 하는 것은 자제했다. 월드컵 만화를 많이 그리지 못한 것. 현재 대본소의 침제로 작품을 제대로 발표하기 어렵다는 점을 안타까워 한다.
그는 “이번 월드컵을 보며 열심히 연구하고 있다. 우리 팀이 잘 하면 16강은 가지 않겠는가. 유명 스타들을 바탕으로 한 캐릭터를 개발해 새로운 작품에 등장시키겠다”면서 축구 만화 인생길을 계속 갈 것임을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