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9개월 여전이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한국에 첫발을 디딘 것은 지난해 9월 29일이었다. 일본은 2002년 월드컵을 마친 후 브라질 출신 스타 감독 지코를 영입해 착실히 4년을 준비해왔다. 하지만 한국은 코엘류→본프레레의 시행착오 끝에 아드보카트를 한국호의 선장으로 골랐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2002년 4강 기적을 일군 히딩크 감독이 한국팀을 지도한 기간은 1년 6개월이었다. 또 선수들을 마음대로 차출하며 대표팀을 프로팀처럼 훈련시켰다. 이에 비교하면 아드보카트 감독은 훨씬 어려운 조건 속에서 시간과의 싸움을 이겨냈다.
짧은 기간에 한국을 세계적인 강호에 뒤지지 않는 팀으로 만든 비결은 의연함과 자신감으로 요약할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의연함
“인상이 참 좋죠. 아주 믿음직스럽습니다.” 아드보카트 감독과 첫 대면한 정몽준 대한축구협회장의 소감이었다. 이는 정 회장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다부진 체구. 꽉 다문 입술. 굳게 팔짱을 낀채 매섭게 선수단의 훈련을 지켜보는 모습. 아드보카트 감독은 외모만으로도 신뢰감을 주었다. 그러나 그 외모가 아니라 선수들에게 믿음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결코 흔들리지 않는 의연한 태도 때문이었다.
세네갈·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의 평가전을 마치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캠프를 차린 대표팀은 김남일·박지성 등 주축 선수의 부상이라는 뜻 밖의 암초를 만났다. 언론은 호들갑을 떨었고. 국민들도 걱정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의 표정에는 아무런 변화도 없었다.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것이 아드보카트의 메시지였다.
위기는 좀처럼 잦아들지 않았다. 박지성과 김남일이 빠진 노르웨이전에서는 무기력한 경기 끝에 0-0 무승부. 가나전은 더 심했다. 1-3 완벽한 패배. 한국은 벌처럼 웅웅대기만 했을 뿐 벌처럼 쏘아대지는 못했다는 유럽 언론들의 혹독한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기자회견장에 아드보카트 감독은 ‘뻔뻔스럽다‘ 싶을 정도로 꿋꿋했다. “중요한 것은 13일의 결과”라며 선수들을 두둔했다. 패한 후 적반하장 격으로 넘치는 자신감은 가나전 뿐만이 아니었다. 지난 2월 해외 전지훈련 막바지에 미국 오클랜드에서 치른 코스타리카와의 평가전서 0-1로 패한 뒤 그는 “환상적인 경기를 펼쳤다. 사실상 경기를 지배했다. 선수들의 플레이에 만족한다”라며 승장처럼 기뻐했다.
앞서 1월 말 홍콩에서 열린 덴마크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패한 뒤에는 “졌지만 많은 것을 배웠다”라고 당당했고 선수들에게는 “졌다고 죄진 게 아니다. 당당히 고개를 들라”고 다그쳤다. 패배에 낙담하지 말라는 것과 패배로부터 뭔가를 배우라는 것이 아드보카트가 선수들에게 전한 메시지다.
▲끝 없는 자신감
아드보카트 감독은 한국 대표팀을 맡은 후 국내 언론과의 첫 공식 인터뷰에서 “자신감을 끌어올리는 게 급선무”라며 “선수들에게 한국은 2002년 4강 국가라는 명성을 지녔다는 점을 강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 대표팀은 오만전 패배. 베트남과의 졸전. 2000년 아시안컵 8강전 패배. 사우디아리바아와의 월드컵 지역예선 2연패 등의 시련을 겪으며 ‘2002년의 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처방전은 의외로 ‘2002년의 꿈을 다시 꾸라‘는 것이었다.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부임 후 채 보름도 안돼 치른 10월 12일 이란과의 평가전서 2-0 완승을 거뒀다. 단지 감독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팀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전술이 달라진 게 아니었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들에게 강한 자신감을 심어 주었을 뿐이다.
그의 자존심 또한 하늘을 찌른다. 비교당하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아드보카트 감독은 히딩크와 자신을 비교하는 것에 아주 의연하다. 입국 직후 인터뷰에서는 “본프레레 감독 보다는 히딩크와 비교하는 게 맞겠다”고 말했던 아드보카트 감독은 토고전을 앞두고 “히딩크가 2002년 한국의 영웅으로 불렸다면 나는 한국의 대통령으로 불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지도자의 자신감은 태극 전사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염되며 긍정적인 효과를 낳고 있다.
세네갈. 가나 등 아프리카와의 평가전서 잇달아 부진한 경기를 펼치고도 토고를 물리치고. 세계 최강 프랑스와도 조금도 두려움없이 맞설 수 있었던 것도 거침없는 자신감이 선수단의 사기를 북돋았기 때문이다.
훈련장선 호랑이,밖에선 선한 아저씨
아드보카트 감독은 두 얼굴의 사나이다. 훈련장 안팎에서 선수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르다. 일단 훈련이 시작되면 매섭게 고함을 지르고. 손가락으로 휘슬을 불어대며 강하게 다그친다. 한 치의 에누리도 없다. 하지만 밖에서는 농담도 잘하고. 장난도 치면서 분위기를 바꿔 놓는다. 훈련장에서는 매섭게 다루지만 막상 경기 중에는 질책하는 일이 없다. 경기 내용이 나빠도 잘 한 면을 부각시켜 기를 살려놓는다. 질책이 아니라 전술 변화를 통해 경기 흐름을 반전시킨다.
아드보카트 감독이 좋아하는 노래는
‘심플리 더 베스트’. 아드보카트 감독이 아주 좋아하는 티나 터너의 팝송이다. 아드보카트 감독은 A매치를 치르기 전 이 음악을 배경으로 멋진 플레이를 펼친 선수들의 플레이를 편집해 보여주곤 한다. 아드보카트 감독의 요청으로 국내에서 치러지는 평가전 때는 선수들이 경기에 앞서 훈련할 때 이 노래가 반복해서 울려퍼지곤 한다. 단순하게 최선을 다하라. 자신감을 가져라. 가사 내용은 아드보카트의 평소 지론 그대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