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를 포함한 대부분의 축구팬들은 '최강' 브라질과 '종가' 잉글랜드의 월드컵 준결승전을 기대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고의 클래식 매치로 꼽힐 수 있었던 브라질-잉글랜드전은 기약없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잉글랜드. 참으로 월드컵과 인연을 맺지 못하는 '비운의 종가'라 할 수 있겠다.
국제축구연맹(FIFA) 창설에 반대하며 콧대높던 잉글랜드는 1953년 11월 25일 잉글랜드 축구의 성지인 웸블리에서 푸스카스가 버틴 헝가리에게 3-6으로 패하며 종말을 고했다. 이후 월드컵은 잉글랜드의 고난의 역사다.
86멕시코월드컵서는 손으로 골을 넣은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에게 변변한 항의조차 못해보고 내줬고 번번이 승부차기에서 패하고 말았다. 독일월드컵에 나선 잉글랜드대표팀은 종가의 기세는 등등했지만 경기내용은 과거에나 통하던 천편일률적인 롱패스에 의존하며 실망을 안겨줬다.
잉글랜드의 유일한 자랑인 66잉글랜드월드컵 우승도 여전히 논란거리다. 독일 TV들은 지금도 잉글랜드와 서독의 당시 결승전에서 결승골이 됐던 잉글랜드의 제프 허스트의 슛이 크로스바를 맞고 골라인을 통과하지 않았다고 시비를 걸고 있다. 독일 땅에서 보란듯이 우승을 거두며 당시 논란의 종지부를 찍으려던 잉글랜드는 또다시 극성스러운 팬들의 욕설만을 듣는 지경에 놓였다.
독일월드컵은 브라질 호나우지뉴의 전성기를 지켜볼 수 있던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소속팀 FC 바르셀로나에서 프리메라리가와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를 우승시킨 그는 지쳐 있었다.
브라질이 이번 대회 들어 기대이하의 경기를 보여준 데는 호나우지뉴의 부진 탓이 컸다. 최고라는 자만심에 승리에 절박한 팀정신을 갖추지 못한 브라질은 팀의 중심인 카푸의 은퇴 이후 한동안 시련을 겪을 수도 있을 듯 보인다.
20여일간 초를 다투며 마감하는 기자 생활을 체험하며 필드와 벤치 밖의 축구세상을 느낄 수 있었다. 축구는 필드에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독일월드컵 8강전을 마친 후 필자는 이제 귀국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