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와 한국만화가협회가 공동 주최하고 문화관광부가 후원하는 ‘2006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 만화’는 한국 만화계에 등장한 신예들의 치열한 작가 정신을 높이 샀다. 폭발할 듯한 에너지로 강력한 액션을 담아낸 박중기씨의 <단구> . 서른 살 노처녀의 좌충우돌 생활기를 보여 준 박기홍(글)·김선희(그림) 부부의 <불친절한 혜교씨> . 바퀴벌레와 동거하는 남자의 즐겁고도 슬픈 이야기를 그린 장경섭씨의 <‘그’와의 짧은 동거> 등 세 작품이 2006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 만화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새로운 주류를 지향하는 젊은 만화가의 작품을 한 편 이상 뽑는다는 2006년 상반기 오늘의 우리 만화의 기준에 따라 뽑힌 <‘그’와의 짧은 동거>를 비롯한 세 작품 모두 젊은 작가들이 열정을 쏟아 선보인 데뷔작이나 마찬가지다. 그중에서도 다음달로 3년 동안의 연재를 마치기 직전 영광의 상을 수상한 <단구> 의 박중기씨를 소개한다. 시상식은 오는 25일 문화관광부에서 열린다.
피 튀기는 액션의 향연이랄까? 쿠가이(몽고 부족으로 추정)란 부족국가에서 벌어지는 만신 사냥. 신의 강림으로 싸우는 전사인 만신들은 쿠가이를 위해 싸웠지만 통일 후 제거되는 운명을 맞는다. 뒤쫓는 자들과 살아 남으려는 자들의 처절함.
무협 판타지 <단구> 의 작가 박중기(27)씨는 수상 소식을 전해 듣고 기뻐하면서도 부끄러워했다. 2003년부터 만화 잡지 <부킹> 에서 연재한 <단구> 는 그의 데뷔작. 프랑스·이탈리아·대만·태국·미국 등에 수출됐을 정도로 성공적 결과를 거두었지만 자신을 만족시키기에는 모자랐다고 냉정하게 평가했다.
“공부 많이 됐다. 처음에 시작할 때 그림만 잘 그리면 될 줄 알았다. 지망생 때 생각한 것과 너무 달랐다.스토리 개념이 없었다. 무협 장르에 종합격투기 같은 액션이 좋아서 이 작품을 시작했는데 스토리에 액션을 맞춘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는 액션을 위해 스토리를 끼워 맞췄다. 욕도 많이 먹고 스토리에 치이면서 깨달았다. 만화 그만둘까 여러 번 생각했다.”
그럼에도 <단구> 는 매력이 충만하다. 후반기의 <드래곤볼> 이 싸움 하나 가지고 한 권을 채우던 것처럼 지나친 액션으로 스토리의 묘미는 살리지 못했지만 매 컷마다 터질 듯한 작가의 열정이 묻어 나왔기 때문.
스스로의 지적처럼 스토리는 보완해야 할 과제다. 혼자서 글과 그림을 모두 하는 부분에 한계를 느낀 그는 일단 다음달 <단구> 를 끝내고 새 스토리 작가를 구해 더욱 완성도 높은 작품에 도전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단구> 에서 보여준 남성적 액션은 그의 생활 자체다. 전북 고창 출신으로 전주에 살고 있는 그는 실제로 브라질 유술을 배우고 있다. 머리를 짧게 민 181㎝의 건장한 체격 조건. “아마 차기작도 장르에 관계 없이 액션 위주로 하게 되지 않을까? 남자다운 그림을 그리고 싶다. 지금은 이종격투기를 하고 있지만 과거 복싱 등 여러 가지 운동을 했다”라고 밝혔다.
그는 묘한 시점에서 오늘의 우리 만화를 수상하게 됐다. 3년 간의 연재를 마감하는 마지막 원고를 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지난 13일 예비군 훈련 갔다 와서 맨발로 계단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탈골됐다. 깁스를 한 우울한 신세를 영광의 상으로 보상받게 됐다.
포탈 연재 시작부터 직장 여성들에게 인기 ■ <불친절한 혜교씨> (박기홍/김선희씨)
눈빛만 봐도 척척 알아채는 1973년생 부부의 환상의 콤비 플레이. 남편이 글을 쓰고 아내가 그림을 그렸다. 남편 박씨는 99년 LG동아국제만화페스티벌 극화 부문 대상자 출신이고. 아내 김씨는 몇 년 전 <아키타이프> 로 주목을 받은 순정 만화가이지만 두 사람 모두 이렇다 할 만한 활약을 보여 주지 못했다. 2004년부터 두 개의 인터넷 포털에서 연재를 이어 온 이 작품은 두 사람이 부부로서 호흡을 맞춘 첫 작품이다.
연재 시작부터 직장 여성들이 공감할 만한 내용으로 인기를 끌었다. 게임 회사에 다니면서 가부장적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와 남녀 차별이 여전한 사회의 시선에 맞서는 부잣집 막내딸 혜교씨의 캐릭터가 도드라졌기 때문.
옥스퍼드 경제학 박사에다 7개 국어나 하지만 얼굴은 그저 그런 혜교씨가 서른 살이 되서도 직장을 제대로 구할 수 없는 상황이 코믹하게 그려진다. 꿋꿋하게 사회에 맞서는 혜교씨가 결국 사랑에 골인하면서 여러 제작사에서 드라마로 제작하겠다는 러브콜을 받고 있다.
‘인간보다 더 인간적’ 바퀴벌레 이야기>/b> ■<‘그’와의 짧은 동거>(장경섭씨)
연재 10년 만에 단행본화. 그리고 수상. 이 작품은 만화가 장(36)씨가 95년 인디만화 잡지 <화끈> 에 연재한 이후 10년 만에 출간했다. 옥탑방에서 혼자 사는 고독한 만화가가 어느 날부터인가 ‘인간보다 더 인간적’인 바퀴벌레와 동거하면서 생긴 이야기다. 주인공의 의식으로 만들어진 판타지가 딱딱한 현실의 껍데기를 깨고 스며든다. 작가가 10년 동안 만화가로 얼마나 고독하고 힘든 세월을 보냈는가는 만화를 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장씨도 이 작품을 5회 연재하다 <화끈> 이 폐간되자 더 이상 다른 작품을 그리지 않았다. 자신의 만화 주인공처럼 은거했고 바퀴벌레가 밟히는 자취방을 떠나 여자 친구와 결혼했다. 인간의 고독함을 위로해 주다가 주변의 손가락질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떠나가는 희생적 바퀴벌레의 모습이 진한 감동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