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샤와르에서 비자를 받기 위해 며칠을 보낸 후 이슬라마바드를 출발해서 파키스탄 제2의 도시인 라호르를 지나 물탄에 다다랐다. 라호르에서 350㎞ 정도 떨어진 카네왈에 이틀을 걸려 도착하려 했지만 우린 카네왈에서 수십㎞ 떨어진 미안찬눈이란 작은 마을의 입구에서 서로를 쳐다보며 헥헥거리고 있다.
미안찬눈. 지도에 달랑 점 하나 찍혀있는 이 작은 마을에 잘 곳이 있을까 싶어 경찰서에 가서 물었다. 우릴 호텔까지 안내하겠다고 한다. 찾아간 호텔은 음식점을 겸하고 있는 곳이다. 외관으로도 그리 깨끗하지 않을 거란 걸 짐작할 수 있지만 이곳에 발 뻗고 누울 데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고마울 뿐이다.
짐을 풀고 체크인을 하려는데 주인이 우리에게 돈을 안 받겠다면서 엽서 한 장과 종이 한 장을 펼쳐 보여준다.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고 이곳을 지나간 외국 여행자가 주인에게 보낸 고마움을 담은 엽서다. 종이에 적힌 글은 자전거 여행자에겐 돈을 받지 않으며 필요한 모든 것을 정성껏 제공하겠다는 그만의 다짐을 담은 글이었다.
왜 그런지 궁금해 이유를 물어보니 대답은 기대보단 무척 심심했다. 이유인즉. 본인이 자전거를 너무 좋아하고 사이클 선수인 랜스 암스트롱의 팬이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자전거를 타는 사람을 보면 잘 해주고 싶다며 피곤할텐데 올라가서 쉬라고 하신다. 물탄까지 남은 120㎞를 달리기 위해 자전거를 손 보고 짐을 정리하고 있는데 다운은 계속 화장실만 들락날락이다.
◀우리를 걱정하고 보살펴준 라시드 아저씨.
그 동안 일행들이 다들 한 번씩은 배앓이로 고생을 한 경험은 있는데 다운이가 오늘 여느 때보다 더 힘들어보여 ‘괜찮니?’하고 물어보니 ‘아니요…’란다. 웬만해선 아픈 내색 잘 안 하는 녀석인데 ‘아니요’라고 할 정도면 좀 심각한가보다.
다음날 아침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출발을 위해 준비하려는데 다운이 힘없는 목소리로 하루만 쉬었다 가자고 한다. 그리곤 그 말이 끝나자마자 다시 화장실로 급히 들어가는데 심상치가 않다.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는 다운을 보고 주인 아저씨에게 전하니 오히려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심각한 표정으로 방으로 올라가시더니 무조건 병원에 가야 한다며 릭샤를 부르고 사람까지 붙여주신다.
병원에 도착한 다운은 아픈 와중에도 ‘형 여기 병원 맞아요? 병원이 사람 더 아프게 할 것 같네요…’하며 왠지 허술해 보이는 병원에 불만을 표시한다. 그도 그럴 것이 낡은 벽돌 건물인데다 에어컨도 없고 그나마 파키스탄식 에어쿨러도 정전으로 작동되지 않으니 은근히 못 미더울만도 하다.
몇 시간 동안 침대에 누워 다운의 앓는 소리를 듣고 있을 때 카네왈 가는 길에 한국 건설회사가 있는데 거길 한번 가보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란 아저씨 친구의 말을 듣고 주저없이 친구분의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찾아간 곳은 삼부토건이란 한국의 회사였다. 마침 외출 준비 중이던 소장님을 만나 자초지종을 말씀드리니 이곳에 와서 한국 음식 먹으며 하루라도 쉬었다 가라시며 숙소로 같이 가자신다.
다운에게 전화를 해서 어디서 쉬는 게 좋겠냐고 물어보니 “형. 거기가 좋지 않을까요? 한국 음식도 있고…”하는 목소리가 좀 전보단 분명 밝다. 아프고 힘들어 제대로 못지도 못했는데 한국 음식이라니 얼마나 반가울까.
숙소 주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나려는데 아저씬 잘 해주질 못해서 마음 아프다며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다니라는 말씀을 하시곤 그새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러면서도 미네럴워터와 요구르트를 싸서는 가지고 가라며 챙겨주신다. 단 하루 이곳에 머물렀지만 진심으로 우릴 반기고 걱정해준 아저씨의 마음을 잊지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