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저평가 우량주’ 우성용, 이제야 ‘햇빛’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꼬이는 거야. 젊어서는 선배한테 눌리고, 짬밥 좀 먹으니 후배들이 치고 올라오고.' 아주 흔하게 들을 수 있는 신세 한탄 레퍼토리다.
이런 푸념, 우성용(33) 앞에서는 조심해야 한다. 자칫하면 번데기 앞에서 주름잡기, 공자 앞에서 문자쓰기가 될 수 있다. 지독히 불운한 사나이, 우성용. 그의 불운 속으로 들어가보자.
2006 프로축구 K리그 득점왕을 아는가. 정조국, 이천수 등 내로라하는 국가대표 스타가 아니다. 거액을 들여 전세계 곳곳에서 수입한 용병 스트라이커도 아니다. 성남의 꺾다리 공격수 우성용(33)이다. 192cm의 장신 우성용은 2006 프로축구 삼성하우젠 K리그 초반부터 기세를 올리며 득점 레이스에서 1위를 달리고 있다. 현재 10골로 2위 뽀뽀(부산)와는 1골 차다.
하지만 우성용은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득점 1위라는 타이틀에 비하면 그가 K리그에서 내뿜는 존재감은 상대적으로 작아보인다. 심하게 말하면 팬들과 언론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듯한 느낌이다.
이번 만이 아니다. 우성용의 축구인생은 이같은 안타까움으로 점철돼있다. 20대 초반, 아주대에 재학중이던 우성용은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대표팀인 비쇼베츠 사단에 발탁되는 등 촉망받는 센터포워드였다.
지역예선에서 짭짤한 활약을 펼치며 주가를 높여가던 우성용은 정작 올림픽 본선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결정적인 순간 비쇼베츠 감독은 와일드카드로 황선홍을 선택했고, 우성용은 엔트리에서 제외됐다.
우성용의 A매치 데뷔는 1995년. 그러나 23세에 불과한 우성용의 위로는 최용수, 김도훈, 황선홍 등 쟁쟁한 선배들이 진을 치고 있었다. 묵묵히 그 세월을 견뎠다. 그러나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도 우성용을 위한 자리는 없었다. 오히려 월드컵을 계기로 이동국이라는 샛별이 탄생했고, 이듬해 K리그에서 안정환이 스타로 떠오르며 우성용은 대표팀에서 완전히 잊혀진 존재가 됐다.
우성용은 코엘류 감독이 사령탑을 맡았던 2003년 아시안컵 지역예선에 대표로 다시 부름을 받았지만 해외파와의 경쟁에서 밀렸다. 2006 월드컵을 앞두고 이동국이 부상으로 낙마한 뒤 잠시 대표팀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지만 결국 아드보카트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
K리그에서도 우성용은 큰 행운을 누리지 못했다. 부산 시절에는 안정환에 가려 빛을 받지 못해고, 2003년 포항으로 이적해서는 실질적인 팀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2001년 16골, 2002년 13골(이상 부산), 2003년 15골, 2004년 10골을 터트리며 4년 연속 10골 이상이라는 쉽지 않은 기록을 세웠지만 주목받지 못했다.
지난 해 성남에 이적해서는 고참 김도훈에게 밀려 또 다시 교체멤버로 활용되는 불운을 겪으며 3골 2어시스트를 기록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우성용은 푸념하거나 신세한탄을 하지 않았다. "선수 생활을 하며 그렇게 안타까운 적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면 아마 선수생활을 오래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게 부족한 부분이 많았고 좋은 후배들이 많다. 큰 욕심이 없다."
우성용에게 어쩌면 2006년은 가장 빛나는 한 해가 될 수 있다. 전기리그 우승을 이끌며 득점왕을 달리고 있는 우성용이 이런 기세를 시즌 끝까지 끌고 나가 우승컵을 들어 올린다면 리그 MVP의 영광을 차지할 수 있다. 우성용은 올시즌 컵대회를 포함해 13골을 뽑아내며 1996년 K리그에 데뷔한 이래 통산 95골을 기록중이다.
5골만 더 추가하면 통산 100골의 금자탑도 세울 수 있다. 일부 팬들은 올시즌 우성용이 6골을 페널티킥으로 넣었다며 그 가치를 폄하하고 있다. 하지만 김학범 성남 감독은 "실축이 없는 선수다. 키가 커서 헤딩만 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지만 기술과 발재간도 갖춘 선수"라고 설명했다.
기량에 비해 '저평가된 우량주' 우성용은 "가능한 오랫동안 선수 생활을 하고 싶다. 올시즌 우승과 득점왕을 차지한다면 더 이상 바랄 나위가 없다"며 목표를 밝혔다.
우성용 "낙담했으면 오늘의 나 없었을 것"
-대표팀에 안 뽑힌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는가.
"크게 욕심이 없었다. 늘 좋은 선수들이 많았다. 그런 것에 낙담하면 축구를 하지 못할 것이다."
-지난해에는 김도훈에 밀려 벤치에 오래 앉았는데.
"주로 후반에 많이 투입됐다. 지난해만 10골 이상 넣었으면 6시즌 연속 두자리수 골을 터트릴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좀 아쉽다."
-1996 애틀랜타 올림픽 때 황선홍에 밀려 본선 엔트리서 제외됐는데.
"비쇼베츠 감독과 다소 불화가 있었다. 그 때문에 제외된 것 같다."
-프로 생활하면서 목표는.
"100골 고지에 오르고 개인적으로 득점왕을 차지하고픈 욕심도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팀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이다. 최소한 앞으로 2~3시즌은 더 뛰고 은퇴하고 싶다."
자질 탁월 위치선정·기술 뛰어나
전문가들이 보는 우성용
▲신문선(SBS해설위원)=참 안타까운 선수다. 장신이 주는 파괴력, 문전을 향해 돌아서는 능력 등 스트라이커에게 필요한 자질을 모두 갖췄다. 저돌성을 좀 더 갖췄더라면 더 좋은 활약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스피드나 힘으로 하는 선수가 아니라 기술이 좋은 선수이기 때문에 나이 들어서도 장수할 수 있는 스타일이다.
▲이용수(KBS해설위원)=위치선정이 좋은 선수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때 가능성이 많은 선수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2002 월드컵때도 대표 후보로 히딩크 감독이 크게 주목하지는 않았다. 감독이 원하는 스타일과 다소 맞지 않았던 것 같다.
▲김학범(성남 감독)=키만 큰 선수로 알고 있는데 발로도 골을 많이 터트리는 선수다. 파워와 스피드가 조금 더 좋았다면 대표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했을 것이다. 페널티킥을 우성용에게 차게 하는 것은 올시즌 단 한번도 실축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해준 기자[hjlee@ilgan.co.kr]
●우성용 프로필
▲생년월일: 1973년8월18일
▲체격: 192cm 78kg
▲출신교: 아주대
▲소속:부산(1996년)-포항(2003년)-성남(2005년)
▲K리그 통산기록: 346경기95골 31어시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