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100여 년 전 주린 배를 움켜쥔 채 아르헨티나 드림을 꿈꾸며 이탈리아·스페인 등지에서 몰려들었던 유럽 이민자들의 애환이 담겨 있는 곳이자 탱고의 발상지다.
19세기 말 스페인의 자취를 지워 버리고 파리를 능가하는 도시를 만들고자 도시 전체를 뒤집어 엎었던. 유럽보다 더 유럽다운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여전히 탱고로 인해 빛을 발하고 있다. 아. 탱고!
이민자 애환 담긴 탱고 발상지 보카항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도착하자마자 보카(La Boca)항으로 발길을 옮겼다. 시내의 남쪽. 광대한 라플라타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에 보카항은 자리 잡고 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짠 바다 내음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른 것도 잠시. 엄습하는 매캐한 시궁창 냄새에 그만 코를 감싸 쥐고 말았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을 사로잡았던 그 많던 북적거림은 다 어디로 갔는지 반쯤 물에 잠긴 채 녹슬어 가는 대형 화물선과 함께 보카항은 쓸쓸한 웃음만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바다를 등진 채 보카 거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빨강·파랑·노랑의 화려한 원색으로 칠해진 판잣집들이 시선에 잡혔다. 그 옛날 보카항에 몰려든 이민 노동자들의 젊은 혈기는 추레한 판자집을 그 어떤 궁전보다도 더 화사한 공간으로 바꿔 놓았다. 보카항 한가운데 자리 잡은 조선소에서 쓰다 남은 페인트를 가져다 벽이며 지붕을 원색으로 색칠하기 시작한 그들의 매끈한 손놀림은 아직까지 꾸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두 블록 정도 더 걸어가자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스타디움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마라도나가 꿈에서도 잊은 적이 없다고 고백했던. 남미 최고 축구 클럽의 홈구장이다. 보카 주니어스는 부자들이 사랑한 클럽이자 리버 플레이트(River Plate)에 맞서 전쟁과도 같은 100년을 흘려 보내며 그 명성을 더욱 높여 간 가난한 이민 노동자들의 축구팀이다.
스타디움 앞 기념품 가게에서 보카 주니어스의 유니폼을 찾았다. 이탈리아에서 막 도착한 5명의 앳된 청년들이 항구에 정박해 있는 스웨덴 국기를 본떠 만들었다는 유니폼.
고된 노동에 지쳤던 청년들은 주말이면 파랑과 노랑이 뒤섞인 이 유니폼으로 갈아 입고 꿈과 희망을 품고 뛰었을 것이다. 100년간 이어진 아스라한 함성에 귀를 기울이고 있자니 멀리 길모퉁이에서 애잔한 탱고의 선율이 들려온다. 갈수록 붉어지는 노을을 배경으로 그림 같은 탱고 스텝을 밟는 젊은 남녀의 그림자. 이제부터는 탱고의 시간이다.
탱고에 취해 ‘7월 9일거리’로 나서다
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탱고의 선율에 흠뻑 젖은 채 정신없이 걷고만 있었다. 가끔 콧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좋은(Buenos)’. ‘공기(Aires)’가 몽롱하게 취한 이방인의 정신을 다잡아 줬다. 어느덧 보카 항구와 닿아 있는 산텔모 지구에 이르렀다. 1870년 황열병이 이 도시를 덮쳤을 때 부자들이 모두 북쪽으로 이주해 버려 쓸쓸한 폐허로 남았던 곳. 팜파스에서 쫓겨난 혼혈 가우초(Gaucho·팜파스에서 소를 몰던 아르헨티나의 카우보이)들이 이곳에 흘러들면서 밀롱가(milonga)라는 전통 노래를 갖고 들어왔다 한다.
잇달아 보카에 자리를 잡은 이탈리아 이민 노동자들은 이 경쾌한 무곡에 애잔한 선율을 가미해 탱고라는 이제껏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격정의 춤을 창조해 냈다.
조선소·피혁 공장·도살장에 둘러싸인 보카 지구를 삶의 터전으로 삼았던 이민 노동자들에게 밤늦게 맥주 한잔과 함께 누리는 탱고 가락은 지친 인생에 크나큰 위안이었을 것이다.
땀에 절은 작업복을 벗고. 화려한 수트로 갈아입은 채 보카 지구의 밤거리를 활보하던 이민 노동자들. 격정적 춤을 앞세워 항구의 창녀들을 유혹했던 청년들. 여성의 숫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던 탓에 뒷골목 으슥한 곳에서 동성 짝을 찾기에 여념이 없었던 슬픈 표정의 사람들.
초창기 탱고에는 이 모든 풍경들이 함께 담겨 때로는 애절하게. 가끔은 비정하게. 결국은 격정적으로 스텝을 밟아 왔다고 한다.
자정이 다 된 시각 물에 스며들 듯 조용히 들어선 탱고바에는 사람들의 물결로 촘촘했다. 아코디온을 독일식으로 변용한 악기 반도네온(Bandoneon)이 쉴새 없이 흐느끼고 있다. 몽롱한 눈망울의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아득한 옛날을 회상하고 있다.
미국·영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좋았던 시절. 소가죽만 벗기고 고기는 땅에 버릴 정도로 풍성했던 그 옛날. 끝 간데없이 추락한 현재의 아르헨티나가 역사상 최고의 탱고 가수 카를로스 가르델을 흉내내는 모창에 맞춰 과거로 돌아가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다.
가수가 무대에서 내려오자 바로 이어지는 격정의 춤 동작. 1930년대 파리로 수출돼 유럽에서 발달한 콘티넨탈(Continental) 탱고의 우아한 춤사위와 달리 아르헨티나 정통 탱고는 거의 90도로 꺾이는 절도 있는 동작이 인상적이다.
끊임없이 남성의 허리에 감기는 여성의 유려한 다리의 곡선. 붉은색 조명에 흔들리는 댄서의 서글프면서도 매혹적 표정. 끓어오르는 섹슈얼리티를 속으로 꾹꾹 눌러 담다가 한순간에 폭발시켜 버리는 스텝. 함께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이별을 예감하는 듯한 서글픈 춤이 무대 위에 넘쳐 나고 있다.
숨막힐 듯한 뜨거운 공기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밖으로 뛰쳐나오고 말았다. 눈앞에는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도로 ‘7월 9일거리’가 펼쳐졌다. 글=박지호(자유 기고가) 사진=박지훈(프리랜서)
먹을거리
옛 영광은 빛이 바랬지만 아르헨티나는 여전히 인구 수보다 키우는 소의 숫자가 더 많은 대표적 목축 국가다. 이 나라를 대표하는 음식은 바로 아사도. 소가죽을 팔아 생활하던 가우초들이 남은 고기를 야외에서 숯불에 구워 먹기 시작하면서 탄생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근처 팜파스 대농장에 들르면 예전 방식 그대로 구운 아사도를 맛볼 수 있다.
탱고바에서 ‘쉘 위 댄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탱고의 도시다. 거리 어디에서도 애절한 선율에 맞춰 탱고를 추는 댄서를 만날 수 있다. 탱고의 발상지인 보카 지구에는 여전히 작은 탱고바들이 늘어서 있지만 안전 문제 때문에 가능하면 늦은 밤에는 방문을 피하는 것이 좋다.
시내 중심가에서 가까운 산텔모 지구나 몬세라트 지구에서는 상대적으로 편안하게 탱고 음악과 춤을 감상할 수 있다. 만약 탱고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다면 세뇨르 탱고극장이나 콤플레호 탱고극장 등 규모가 큰 탱고바로 가는 것이 좋다. 탱고의 탄생부터 최근의 트렌드까지 뮤지컬 형식으로 탱고의 모든 것을 보여 준다. 가격은 1인당 30~40달러 수준.
박지호
<우먼센스> 등 월간지에서 5년 동안 여행·문화 담당 기자로 근무했다. 평소 꿈꾸던 ‘라틴아메리카 100일 투어’를 위해 잠시 일을 중단하고 지난 7월부터 여행 중이다. 남미 7개국 각 도시에 얽힌 문화 이야기와 함께 건축가 오스카 니마이어. 작가 에두아르도 갈레아노. 영화감독 페르난도 메이렐레스 등을 인터뷰. 일간스포츠(IS)에 격주간으로 연재할 예정이다.
박정훈
사파티스타 민족해방군 원주민 사령관 인터뷰를 필두로 라틴아메리카 전문 프로랜서로 활동하고 있으며. 지난 6년간 라틴아메리칸의 삶과 자연을 렌즈에 담아 왔다.우먼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