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정민철, 7년만의 PS 승리 비밀 완급의 미학
한때 시속 150㎞에 이르는 광속구를 뿌렸다. 주위에서는 제2의 선동열이라고 불렀다. 국보급 투수 선동열(삼성 감독)은 현역시절 일본으로 진출하면서 후계자로 지목했다.
한화 정민철(34)는 이렇듯 한국 프로야구의 강속구 투수의 계보를 잇는 우완 정통파 투수였다.
그러나 지난 14일 현대와의 플레이오프 2차전에서 보여준 정민철의 피칭 키워드는 '완급조절'이었다. 정민철은 이날 73개의 공으로 선발 5⅓이닝을 5피안타 1실점으로 막고 팀에 귀중한 승리를 안겼다. 1999년 한국시리즈 이후 7년만의 포스트시즌 승리였다.
달라진 모습으로 마운드에서 위력을 떨친 정민철이 플레이오프 뿐만아리라 포스트시즌 주목의 대상임에 틀림없다.
▲1 빠르고 또 느리고
정민철이 자신하는 구종은 직구·커브·슬라이더·반포크 등 4가지다. 이 가운데 직구와 커브가 주무기. 슬라이더는 상대가 커브를 노릴 때 뿌리는 '히든카드'이고, 1경기에서 2~3개 정도 던지는 반포크는 완전히 손에 익은 공이 아니다.
이런 면에서 언뜻 정민철의 구질은 단조롭다. 그러나 '완급의 미학'이 더해지면 복잡해진다. 대표적인 것이 커브다. 일반적인 커브에 일본 요미우리 시절(2000∼01년) 익힌 슬로 커브를 곁들여 던지고 있다.
슬로 커브는 90㎞대 후반에서 110㎞ 미만에서 형성되고, 일반적인 커브는 120㎞ 이상까지 나온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낙폭은 비슷하지만 속도의 변화가 최대 30㎞에 이른다. 상대 타자가 커브를 노리고 들어오더라도 헛스윙으로 물러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직구와 슬라이더도 마찬가지. 정민철은 "한방이 있는 타자에게는 초구 직구로 140㎞이상짜리는 던지지 않는다. 130㎞대로 낮춰 파울을 유도시킨다"고 했다.
▲2 완급은 경험을 통해
각 구질의 완급 조절은 경험을 통해 완성됐다. 포수는 슬로 커브 또는 일반적인 커브, 130㎞대 직구 또는 140㎞대 직구 등을 구분해서 사인을 내지는 않는다. 강약의 선택은 마운드에서 한다. 정민철의 머릿속에 저장된 데이터, 즉 타자의 스탠스 및 스윙궤적의 기억을 되살려 구속을 결정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은 투구폼이다. 일정한 폼에서 구속의 변화를 줘야 위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민철은 "당연히 똑같은 투구폼에서서 손끝의 감각으로 구속을 조절한다"고 말했다.
정민철은 이날 5회 2사 2·3루의 위기에서 106㎞짜리 슬로커브로 왼손 대타 전근표를 삼진 처리했다. 일반적인 커브를 노렸던 전근표의 방망이는 공이 떨어지기도 전에 허공을 갈랐다.
▲3.완급의 키는 직구 스피드
아무리 완급조절을 잘 한다고 하더라도 빠른 볼을 섞어 던지지 않으면 버티기 힘들다. 타순이 한바퀴 돌면 변화구 일변도의 볼은 눈에 익게 돼 결국 난타당하기 일쑤다. 일본 진출 전 8년 연속 두 자릿수 승리를 올렸던 정민철이 2002년 한국 프로야구로 복귀 후 10승(2003년 11승으로 1차례)을 넘기 힘들었던 이유이였다.
팔꿈치 뼛조각 및 인대부상으로 지난해까지 정민철의 직구 최고 구속은 140㎞에 불과했다. 직구의 위력이 떨어지니 자연히 변화구 의존도가 높아졌다. 눈에 익은 변화구는 배팅볼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올 시즌 후반기 팔꿈치 부상에서 완전히 벗어난 정민철은 구속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이날 정민철의 최고구속은 146㎞였다.
정회훈 기자 [hoony@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