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2호선과 5호선이 만나는 충정로역의 종근당 건물 뒤편은 그야말로 동네 골목이다. 그 동네 사람이 아니면 결코 알지 못하는 아지트 같은 장소 말이다. 산처럼 우뚝 솟은 고층빌딩 뒤편으로 개미굴처럼 들쑥날쑥 이어진 좁은 골목길이기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들어가기조차 주저하게 된다.
하지만 리스크 앤드 어워드. 즉 위험 감수와 보상의 공식은 여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너른 대로변의 가지런한 보도블록 길을 뒤로하고 선택한 비포장길 골목엔 수많은 맛집이 미각을 즐겁게 한다. 건물 생김새로만 보아선 분명 가정집인데 걸린 간판을 보면 식당이다. 이곳 가게들이 다 그렇다.
원래부터 가게 터가 아니라 오래된 가정집을 식당으로 개조해서 만든 곳들이다. 그렇다 보니 테이블에 의자 놓고 장사하는 집은 드물고 신발 벗고 방에 들어가 방석에 앉아 먹는 좌식 스타일이 대부분이다.
골목을 주름 잡는 것은 인근의 회사원들이다. 동아일보·종근당·LIG 같은 대기업뿐 아니라 작은 사무실로 가득 찬 오피스텔까지 합세한 오피스 타운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이다. 사무실이 문을 닫는 일요일은 식당들도 덩달아 쉬는 날이다.
더욱이 손님 대부분이 매달 수입이 일정한 월급쟁이다 보니 밥값은 몇년이 지나도 그대로다. 하루 이틀 기분 내는 외식도 아니고 매일 먹는 점심 값이기에 100원. 200원도 함부로 올릴 수 없는 게 단골 장사다.
골목에 자리 잡은 할매추어탕은 들큼한 충정도식 뚝배기추어탕과 낙지찜으로 유명한 곳이다. 추어탕의 재료인 미꾸라지는 1㎏에 5000원 이상 저렴한 중국산 대신 비싸지만 부안에서 들여오는 것만 고집한다.
네 시간 이상 푹 고아낸 진한 국물에 산초 가루를 뿌려 한 숟가락 입에 떠 넣으면 지난 밤 음주로 인한 속 쓰림이 금세 가신다. 홍합·새우 등 매일 아침 수산시장에서 장을 봐오는 신선한 재료로 만드는 낙지찜은 저녁 회식 단골 메뉴다. 자작한 국물의 홍합이 같이 나오기 때문에 술안주로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 골목의 식당들은 대부분 점심시간이 지나면 썰렁하다고 느껴질 만큼 손님이 뜸해지는데(3시부터 5시까지 아예 문을 닫는 곳도 있다) 전통만두칼국수는 꾸준히 손님이 드는 곳이다.
철제 미닫이문을 드르륵 열고 들어와 “고기만두 포장이요 ”를 외쳐 대는 손님들 때문에 사진 촬영은 커녕 인터뷰도 제대로 하기 힘들다. 주방 한쪽에선 주인 아저씨가 수시로 만두를 빚고 있다. 찌는 동안 만두피가 터지지 않을까 싶을 만큼 소를 가득가득 채워 넣는다.
골목의 식당들이 최근 1~2년 사이에 생겨난 신출내기라면 횟집 까막섬은 10년 된 충정로의 터줏대감이다. 대로변에 위치한데다 그간 정 쌓아온 단골들이 많아 멀리서 찾아오는 손님들도 상당하다.
재료가 신선하다는 것이 손님들의 한결같은 말이다. 중국산은 절대 쓰지 않는다. 목포 세발낙지. 무안 낙지. 포항 해풍 과메기. 수산물계의 로열 패밀리만 모아서 음식을 만드니 맛이 없으려야 없을 수가 없다.
고릴라 2는 항정살 또는 천겹살이라 불리는 모서리살로 유명한 고깃집이다. 허름한 대폿집 분위기의 서소문 본점보다 인테리어는 세련됐지만 주인이 같은 만큼 음식 맛은 그대로다. 둥그런 양은 테이블 위에 고기 한 판 구워먹고 나면 온몸에 고기 냄새가 배게 되는데 촘촘한 마블링의 담백한 고기 맛에 어느 누구도 쉽사리 자리를 털고 일어나지 못한다. 두툼한 돼지고기를 넣고 자작하게 끓인 된장찌개도 빼놓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