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떡하기는 뭘 어떡해. 그렇게 안하면 되지’라고 에릭에게 말하기는 쉽지만 당사자로서는 좀체 고치기 어려운 타고난 문제였다. 마음씨 좋은 사람이 흔히 그렇듯 에릭은 세상을 모질게 살지 못했다.
팁을 주는 것도 그랬다. 플레이어들은 이기면 당연히 딜러들에게 팁을 꽤 많이 주지만 지면 한 푼도 안주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에릭은 졌을 때에도 팁을 꼭 줬다.
이런 사람이니 그에게 돈 좀 꿔준들 어떠랴. 카지노에서는 게임을 하다 1시간 이상 자리를 뜨는 사람의 칩은 봉투에 넣어서 따로 보관한다. 어느 날 게임을 하다가 저녁을 먹고 돌아와 봉투를 열어보니 칩이 원래 있던 것보다 모자라는 것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냐고 플로어맨에게 묻고 있는데 에릭이 헐레벌떡 뛰어왔다.
“헤이. 지미지미. 내가 급해서 말이야. 글쎄 말이야. 그걸 조금 가져갔거든.”
주인 허락 없이 칩을 가져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 좋은 에릭에게 화를 내면 화를 낸 사람이 속 좁은 인간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에릭. 그 칩들이 행운을 부르기를.”
에릭은 카드 속임수에 관해 전문가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속임수를 판별하는데 최고의 전문가이다. 그 자신이 남을 속이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다. 카드 게임에서 사기꾼들이 써먹는 속임수가 800가지나 된다. 나도 속지 않으려고 속임수에 관해 많은 공부를 했지만 이에 대해 나보다 조금 더 아는 사람은 에릭뿐이다.
속임수 때문에 에릭에게 덕을 본 사람 중 하나가 요시 나카노다. 요시는 이상하게도 속임수에 약해 여러 차례 당했다. 요시가 산호세에서 온 타짜들과 게임을 하는 데 사용하는 카드가 마킹카드라는 걸 에릭이 적발한 것이었다. 마킹카드란 카드에다가 한패끼리만 알아보게끔 특수한 표시를 한 카드로 마킹 방법만 300가지가 넘는다.
당시 산호세 타짜들은 카지노의 플로어맨을 매수하여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 정상카드를 마킹카드로 바꿔치기하는 수법을 썼다. 하이와 로우를 구분하기 위해 불빛이 비치면 하이자는 광이 나고 로우자는 광이 나지 않는 카드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전문용품점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타짜들은 직접 만든 마킹카드를 쓰는 경우가 더 많다.
요시 사건은 카지노측이 요시에게 변상하고 플로어맨을 해고하는 걸로 수습됐다. 산호세 친구들은 요시 사건 이전에도 타짜라고 알려져 경계의 대상이었는데 에릭에게 들통이 난 뒤로는 어디 변두리 하우스를 떠도는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에릭이 속임수 적발 일인자가 된 것은 오랫동안 포커 룸을 직접 경영하면서 타짜란 타짜는 다 만나봤고 자연스럽게 속임수 방법에 통달했기 때문이었다.
에릭을 생각하면 지금도 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돌고래의 얼굴처럼 생긴 미소 띤 얼굴로 내게 타짜들이 어떻게 속임수를 쓰는지 이야기하곤 했다.
에릭은 지금 LA에 주로 머물고 라스베이거스에는 바람 쐬듯이 훌쩍훌쩍 다녀가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