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부안은 ‘상처받은 땅’이자 동시에 ‘약속의 땅’이기도 하다. 최근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새만금 방조제 때문이다. 어민들이 대대로 이어온 삶의 터전이자 세계적 보고인 갯벌 수백만 평이 사라져 버렸지만 장기적으로 새롭게 생긴 육지는 장밋빛 미래를 담보하고 있다.
그러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고. 약속은 약속일 뿐 보장되지 않은 미래의 일이다. 상처입은 주민들은 당장 생계가 걱정이다. 사라지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 갯벌은 마지막 숨을 헐떡이고 있다.
●육지 속에 갇혀버린 계화포구
부안 계화면 끝자락에 ‘붙어 있는’ 계화도는 원래 섬이었다. 1960년대 동진강 하구언 공사를 시작으로 1978년 육지와 잇는 방조제가 완공되면서 광활한 간척지를 갖게 됐고. 이젠 이름만 섬일 뿐 육지나 다름없다.
다행스러운 점은 섬 북쪽에 작은 포구가 있었다는 것이다. 길이 400m쯤 되는 작은 포구는 이 지역 주민들의 생업인 어업을 이어올 수 있는 생명선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이 포구마저 사라질 판이다. 저 바깥쪽으로 엄청난 길이의 방조제로 인해 물이 말라버릴 예정이기 때문이다. 계화포구는 새만금방조제 공사가 모두 끝나면 작은 물길이 흐르는 흔적만 남을 뿐 더 이상 포구로서의 임무는 수행할 수 없게 된다.
어두운 그림자는 벌써 드리우고 있다. 계화도는 전국적인 백합조개 산지다. 백합 외에 다양한 조개류가 생산되면서 조개구이 또한 명성이 자자하다. 그런데 갯벌이 말라버리면서 수확량이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이다.
이로 인해 상인들은 자연산 백합조개를 구하기가 어렵다고 하소연이다. 계화포구에서 15년째 조개구이 전문 식당을 운영하는 박덕근씨는 “날씨도 추울 뿐더러 멀리까지 나가야 하기 때문에 조개 채취꾼들이 잘 나서지 않는다”고 말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수평선 아닌 지평선
계화도 서쪽으로 나가면 새만금 방조제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물의 유입량을 줄이면서 갯벌이 사라진 곳에 ‘새로운 땅’이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수평선이 사라지고 지평선이 새로 생긴 것이다. 그 선 너머로 신시도·선유도 등이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계화도 서쪽 장금마을 주민은 신시도를 가리키며 “저 섬 너머에 유명한 신시도해수욕장이 있지라우. 예전에는 배로 가야 했는디. 이젠 차로 갈 수 있지라우. 얼마나 편해진 세상이요”라며 쓴웃음을 짓는다.
바닷물은 과거의 해안선에서 짧게는 1㎞. 길게는 3㎞ 정도 물러나 있다. 말라버린 갯벌은 자동차가 달려도 무리가 없을 만큼 단단해져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표면에는 백합을 비롯해 바지락 등 수많은 조개류들이 말라죽어 있고. 무수히 뚫린 구멍 속에는 더 많은 생물들이 살았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지난해 방조제 연결공사가 끝난 후 바닷물의 유입을 차단했으나 죽은 갯벌 생물들이 부패하면서 악취가 진동하자 차선책으로 물의 유입량을 조금씩 줄이고 있는 상황이다.
해질녘 경운기에 피곤한 몸을 의지한 채 양식장을 나선 한 어민은 “얼마나 더 할 수 있을지 모르겄소. 내년이 될지. 내후년이 될지…”라며 뿜어내는 담배 연기에 허탈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