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너머에서 동녘 하늘에 해가 떠오르는 광경을 주로 ‘장엄하다’는 단어로 표현한다. 어찌 보면 일출은 단순하다.
짧은 시간 검푸른 일직선 위로 붉은 불덩이가 솟아오르는 것으로 끝나는 아주 간단한 퍼포먼스이다. 반면 장엄이란 조금은 무거운 단어다. 그런데 이 단어가 일출에 어울리는 것은 보는 이의 생각과 상관없이 감동을 전해주기 때문이다. 특히 매서운 칼바람이 휘몰아치는 겨울바다에서의 일출은 색다르다.
●속초해수욕장의 일출
올해 들어 가장 추웠던 지난 2일 새벽 속초시 조양동에 자리한 속초해수욕장 끝 방파제에는 인적이 끊겼다. 두툼하게 차려입고 나섰지만 얼마나 추운지 차가운 새벽 공기는 옷섶을 파고들고. 장갑으로 무장한 손 끝은 어느새 조금씩 아리기 시작했다.
바다는 수평선 너머의 붉은 기운을 맞으려는 등 조금씩 출렁이고 있지만 해가 솟아오를 기미는 어디도 보이지 않았다. 요즘 동해안 일출 시간은 오전 7시 40분 전후. 그런데 엎친데 덮친 격인지 저 멀리 해가 나오려는 곳에는 구름이 낮게 깔려 애를 태웠다. 안타까운 마음에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사이 고마운 ‘해님’이 구름을 걷어내고 살포시 모습을 드러냈다. 조금씩 붉은 기운을 퍼뜨리던 해가 구름 위로 솟아오르자 세상은 온통 한 가지 색으로 변했다.
이에 맞춰 이른 새벽 바다로 나갔던 배들도 만선을 알리는 기쁨의 고동 소리와 함께 조도 등대를 지나 항구로 돌아오고 있었다. 속초해수욕장 방파제 바로 앞에 있는 조도는 새 둥지가 많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뱃일을 나선 시간이 다른 만큼 들어오는 순서도 제각각이다. 수십 마리의 갈매기들은 새벽잠도 잊은듯 ‘끼륵끼륵’ 배 위를 날며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고 있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갑판에서는 곧 있을 아침 경매를 위해 종류별로 물고기를 분류하는 작업이 한창일 것이다. 붉은 해를 배경으로 이들이 펼쳐내는 실루엣는 이 시간 아니면 볼 수 없는 장관이다. 그 아름다움에 살을 에는 추위마저 간 곳이 없다.
파도소리를 자장가 삼아 밤을 보낸 백사장은 일출이 끝나고 날이 밝아지면서 몰려든 발자국 소리에 잠을 깨고 있다. 삼삼오오 찾은 이방인들은 추위도 잊은듯.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쉴 새 없이 재잘거린다.
경기도 안산에서 왔다는 김연정(22·대학생)씨는 “춥기도 하고. 늦잠을 자는 바람에 일출을 보지 못해 아쉽다. 그래도 상큼한 겨울바다를 볼 수 있어 좋다”며 밀려오는 파도와 달리기 경주를 반복했다. 바닷가의 아침은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멋진 풍경 품은 실속형 펜션
속초해수욕장 인근에는 펜션이 여러 곳 있다. 외관은 깔끔하지만 화려하지 않고. 내부 인테리어도 간결하다. 이국적 풍경의 예쁜 펜션을 연상하는 고정관념으로 접근하면 상당히 어색할 수밖에 없다.
건물은 대부분 콘도식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통나무 등으로 멋지게 꾸밀 수도 있지만 바닷바람에 섞여 날아온 염분으로 인해 금세 삭기 때문이다.
속초해수욕장에서 대포항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한 하얀등대펜션(whitepension.ne.kr)도 마찬가지. 바닷가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진 이 펜션은 5층 규모로 겉모습은 화강암·대리석 등으로 흑백의 조화를 이뤄 나름대로 멋을 냈다. 원룸형 객실 어디에서든 조금씩 다르지만 바다를 볼 수 있고. 뒤쪽으로는 설악산이 한눈에 들어올 만큼 조망권이 뛰어나다.
게다가 이용 요금도 저렴하다. 8평형·10평형·16평형 등 3종류인데 주중에 4만~8만원. 주말엔 5만~10만원에 불과한 ‘실속형 펜션’이다. 이처렴 저가 정책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하태우(54) 사장은 “화려함은 부족하지만 항상 깔끔하고 깨끗한 분위기를 유지하려고 애쓴다. 고객이 편안히 쉬었다 가면 그것으로 만족한다”고 설명했다.
젊은 시절 대기업에서 오랫동안 마케팅 업무를 담당했던 하 사장은 지난 2005년 1월 펜션을 오픈하면서 ‘펜션 리콜제’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즉 청결·취사·조망권·예약 등의 조건을 내놓고 이 중 하나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요금을 두 배로 환불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늘면서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하 사장은 “좋은 취지에서 출발했지만 한계를 느꼈다. 지금은 리콜제를 포기했지만 고객을 대하는 초심의 마음은 그대로다”고 말했다. 033-636-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