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와 사령탑인 허재 감독의 추락이 심상치 않다. 아무리 악재가 겹친 올 시즌이라지만 져도 경기 내용이 예사롭지 않다. 1주일간의 올스타 브레이크를 거친 후 반전을 기대했지만 5라운드 접어들어 상황은 더 나빠진 듯 싶다.
6일 삼성전에서 KCC는 68-108. 40점차로 대패했다. 시작 5분만에 한 점도 넣지 못하는 극심한 골 가뭄에 22점을 내리주며 사실상 승리를 헌납했다.
31점차였던 올 시즌 최다 점수차 패배 기록을 경신한 것은 물론 프로농구 최다 점수차 패배(현재 기록은 42점차)가 목전이었다. 종료 10초 전 손준영의 3점포만 없었다면 기록을 갈아치울 뻔했다.
올 시즌 두 번째 6연패다. 그러나 농구 관계자들은 이전의 6연패보다 상황이 더 안 좋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5라운드 첫 경기인 LG전에서 전반 33-51로 뒤지며 일찌감치 승부가 갈렸고 4일 전자랜드전에서는 3쿼터에 무너지면서 40-62로 백기를 들었다. 4쿼터 가기도 전에 힘을 제대로 못써보고 경기를 내주다보니 선수들 사이에도 패배 의식이 팽배한 것이 더욱 큰 문제다.
허 감독이 이를 모를 리 없다. “시소 경기를 하다가 지면 모르는데 일방적으로 지니…. 선수들이 집중력을 발휘해줘야 하는데 잘 안된다. 디펜스가 안되고 용병이 약하다 보니 힘이 부친다”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허 감독도 힘이 빠진 듯 싶다. 허 감독은 경기 전이나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보통 반말을 한다. 친근함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스타 출신의 ‘깡’을 과시하는 의미도 있다.
그러나 이날만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줄곧 존대말을 하며 오히려 기자들을 의아스럽게 했다. “마무리를 잘해 줘야 할텐데 큰일입니다. 시즌 시작도 전에 용병 부상으로 일이 틀어지더니 꼬여도 한참 꼬이고 있습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허 감독은 이날 경기 전에 기자들이 “‘부상투혼…사상 최초 준우승팀에서 MVP 배출’ 뉴스가 프로농구 10년 10대뉴스에 포함됐다”는 얘기를 꺼내자 모처럼 얼굴이 펴졌다.
허 감독은 특히 갈비뼈가 부러진 채 지켜본 TG-동양의 2002~2003챔피언 결정전을 제일 기억나는 경기로 꼽았다. “IMF의 여파가 있던 시절이어서 특히 실직하신 30대 후반·40대들의 격려 전화가 장난이 아니었죠. 절 보고 힘을 얻었다는 거였죠. 나도 38살 때여서 체력이 꼬여 실수도 많았지만 깡으로 했습니다.”
허 감독은 “실력이 안 되면 체력으로 해야죠”라며 앞으로의 각오를 밝혔다. 과연 KCC가 허재 감독이 보여준 투혼을 재현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