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은행 공격수 김종현(34)은 요즘 수시로 난데 없는 자괴감에 빠지곤 한다. "혹시 나 때문에 팀이 이 지경이 된 건 아닌가"라는 말도 안되는 자책감이다.
충북대를 졸업한 김종현은 1995년 국민은행에 입사했다. 3년차이던 1997년 IMF 위기로 축구팀이 희생양이 됐다. 구단 해체로 선수단은 뿔뿔이 흩어졌지만 김종현은 운 좋게도 K리그 전남의 유니폼을 입을 수 있었다.
국민은행서 갈고 닦은 실력을 바탕으로 김종현은 2005년까지 무려 8시즌 동안 K리그를 누비며 239경기 출전, 30골 28어시스트라는 만만치 않은 기록을 남겼다.
2006년 김종현은 연어가 모천으로 회귀하듯 2000년 재창단한 국민은행의 품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지만 또 다시 팀은 공중 분해의 위기에 빠졌다.
"그 때야 IMF 위기때문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하지만 이번에는 우승을 차지하고 팀이 이런 상황에 처하다니 정말로 어이가 없다." 12일 일산 연수원 훈련장에서 만난 김종현은 쓴 웃음을 참아가며 입을 열었다. "선수들끼리 회식을 할 때면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럴 줄 알았으면 우승을 하지 말 걸 그랬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정말 축구를 하면서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하지만 국민은행 선수들이 훈련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김종현은 "우승을 한 뒤 K리그에 가지 않는다고 할 때는 실망이 컸다. 하지만 지금은 내셔널리그에서라도 안정적으로 뛰고 싶다는 게 모든 선수들의 꿈"이라며 "머리 띠를 두르고 시위를 하고픈 심정이지만 그럴수는 없다. 하지만 대통령배든 FA컵이든 어떤 대회든 출전하게 되면 반드시 우승을 차지하고 싶다. 국민은행이 그렇게 쉽게 없어져도 될 팀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 보이고 싶다.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무언의 시위다"라고 열변을 토했다.
내셔널리그의 K리그의 승격제는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우승을 차지한 선수들이 퇴출 위기에 몰리는 것은 누가 책임을 질 것인가. 선수들은 불안한 마음으로 국민은행의 진로가 결정되는 14일을 기다리고 있다.
이해준 기자 [hjlee@ilgan.co.kr]
▲14일 국민은행 징계 최종 결정
실업연맹은 K리그 승격을 거부한 지난해 내셔널리그 챔피언 국민은행에 ▲은행장 또는 부행장의 사과 ▲벌금 10억원 ▲승점 20점 감점 ▲K리그 승격 이행각서 제출 등 4가지 징계를 결정했다. 하지만 국민은행은 과도한 징계라며 이를 거부했다.
이에 따라 국민은행은 2007 내셔널리그에 참가하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또 축구협회는 징계 수위에 따라 대통령배 전국선수권 등 축구협회 주관 대회에도 국민은행의 참가를 불허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최악의 경우 국민은행은 올 한해 아무런 대회도 참가하지 못하며 이는 곧 팀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 실업연맹은 14일 국민은행으로부터 징계안에 대한 최종 입장을 청취한 뒤 국민은행의 내셔널리그 참가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