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장을 박차고 나간 선수들이 프로 맞아?"
e스포츠에서 있어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될 일이 일어났다. 프로선수가 퇴장에 의해서가 아니라 구단과 프런트의 정치적인 논리에 의해 자진해서 경기장을 떠나는 일이 발생했다.
지난 16일 오후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e스포츠 상설경기장에서 열린 MBC게임 개인리그 'MSL 서바이버' 예선 중 선수들이 불참을 선언하고 경기장에서 철수했다. 감독과 프런트의 지시 때문이었다.
▲ 중계권과 개인리그가 무슨 상관?
그들의 경기장을 박찬 이유는 e스포츠협회와 방송사간 중계권 협상 결렬 소식 때문이었다. 선수들은 "방송사가 e스포츠협회와의 중계권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으면 개인리그 및 프로리그 참가를 유보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중계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실상 경기가 무기 중단하겠다는 것으로 이제 선수들까지 감독들과 프런트의 사주에 의해 정치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중계권 문제를 놓고 e스포츠협회와 구단-IEG 연합군이 방송사와의 대결을 벌인 것은 어디까지나 스타리그나 MSL이 아닌 팀리그인 프로리그였다. 중계권 문제는 MSL 같은 개인리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또한 이미 시즌에 참가한 상태라면 시즌 1이라도 끝내놓고, 경기를 포기하든지 하는 게 프로 선수의 도리다. 하지만 반칙에 의한 퇴장도 아니고, 일부 강경파의 정치싸움에 휘말려 자진 퇴장한다는 것은 선수가 경기장을 박차고 나가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 정치판에 휘둘리는 선수들
이날 프로선수들의 경기 거부는 협회와 일정정도 조율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몇몇 구단의 강경파가 주동이 돼 밀어붙였다는 후문이다.
이날 성명 발표에 참여한 감독은 김은동 STX SouL , 이재균 한빛 스타즈, 성재명 팬택 EX, 김철 KTF 매직엔스, 조정웅 르까프 오즈, 김가을 삼성전자 칸, 주훈 SK텔레콤 T1, 조규남 CJ 엔투스 감독 등 8명이다
이 성명의 한 대목 중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12개 프로게임단은 프로리그의 파행을 원치 않는다. 프로리그와 개인리그 모두 e스포츠의 큰 틀을 이뤄온 리그라 생각하고, 팬들에게 좋은 경기를 보여주기 위해 최선을 다해왔다. 그러나 양 방송사가 중계권 협상에서 보여준 태도는 e스포츠를 주도하는 게임 방송사로서의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더욱이 팬들을 볼모로 일방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태도는 객관적이지 않다"는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건 무슨 논리인가. 팬들을 볼모로 경기를 거부하고 주도한 사람들이 누구인가. 프로리그 중계권과 개인리그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더욱이 경기중인 선수를 경기장에서 내쫓는 것이 반칙이나 전쟁 때문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때문이라는 게 대부분 팬들의 여론이다. 경기에 아예 참여를 하지 말든지, 시즌 1이라도 끝내놓고 철수하든지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중계권 결렬 때문에 철수했다는 것은 명분이 너무 약하고 논리도 빈약하다.
이같은 정치적인 발상을 팬들이 이해해주리라고 본다면 e스포츠판이 한심한 거고, 이해 못한다면 적어도 모처럼 일어난 e스포츠 열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로 누군가는 책임을 지어야만 한다.
한편 지난 2003년 VOD 판매권을 놓고 시즌 시작 전 1주일간 거부한 해프닝이 있었던 적이 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e스포츠업계의 한 인사는 "감독들까지 프런트들의 정치싸움에 끼어들고, 선수까지 볼모로 삼아 e스포츠판을 뒤엎는 상상할 수도 없는 몰상식한 일이 벌어졌다"며 명분도 없는 일에 감독·선수까지 끼워넣는 협회와 구단측을 맹비난했다.
▲ 싸울 땐 싸우더라도 예선은 참가하고 싸워라
"선수들은 게임하고 싶어 난리인데 예선은 참가하고 싸워라."
MSL 시작 전에 프런트간의 묵계가 있었던 걸로 확인되었다. 만약 중계권 협상에 방송사의 귀책사유로 결렬되면 참가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하기로 프런트들끼리 전화연락망을 가동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날 현장에서는 한 프런트 담당자가 여기 저기 전화해서 개인리그 거부라는 뜻을 모으는 모습을 목격되기도 했다. 일부 생각이 다른 감독도 있었지만 프런트들의 생각이 워낙 강해 발언권을 거뒀다는 얘기도 들린다.
상황이야 어쨌든 선수도 팬들도 경기를 하고 싶고 보고 싶다. 중계권 갈등도 다 거기서 나온다. 그런데 구단들은 방송사를 압박할 카드로 생각한 게 겨우 선수를 볼모로 잡는 일이었다. 이 같은 일은 어느 스포츠계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희귀한 사례가 될 것이다.
적어도 각 방송사의 개인리그와 팀리그인 프로리그를 섞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면 이 같이 어리석은 행동으로 e스포츠의 팬들을 우롱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협회와 구단은 '중계권'을 빌미로 선수 자진 퇴장이라는 최악의 카드를 던졌다. 경기 중에 다른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면서 '게도 구럭도 다 잃었다'. 스포츠의 룰도 까부수고 명분 싸움에서도 졌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예선은 참가하고 싸워라"는 말을 되새기지 않으면 e스포츠는 다 함께 가라앉는 e스포츠 타이타닉호가 될 것이다.
한편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서는 '한국 e스포츠 협회 폐쇄 서명운동'이 진행되고 있고, 네이버에는 'e-sports 우리가 지킨다!'(cafe.naver.com/esportsfighting)라는 카페도 개설돼 왜곡된 e스포츠 관행에 팬들이 직접적인 행동으로 나설 것을 알려져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박명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