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축구 선수를 꿈꾸다가 지금은 LPGA투어에 선 루키….’ 서울 동작구 사당동 집 근처 담벼락을 친구 삼아 공(축구)을 차던 소녀에서 공인 2단의 태권도 실력까지 겸비한 19세의 옛된 김송희(휠라코리아). 그는 이제 LPGA투어에서 생애 첫승을 꿈꾸고 있다.
일간스포츠(IS)는 지난주까지 연재를 마친 ‘행크 헤이니& 장석기 교수의 하이 타이거’의 골프 레슨 칼럼의 후속편으로 매주 금요일자에 ‘LPGA 루키 김송희의 다이어트 골프’를 싣는다. 그는 이 코너를 통해 루키로서 LPGA투어에서 살아남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이 과정에서 자신이 터득한 골프스윙의 기술적인 테크닉을 독자 여러분께 생생하게 들려줄 예정이다.
그가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마치고 2006년 곧장 LPGA 2부투어인 퓨처스투어에 도전. 시즌 5승과 함께 상금랭킹 1위로 LPGA투어 풀시드를 획득한 숨은 뒷이야기도 흥미진진하다. 무엇보다 ‘다이어트 골프’는 아마추어 골퍼의 군더더기 스윙을 해결하고 스코어를 줄여주겠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타이틀이다.
김송희가 이 코너를 위해 자신의 소개글을 직접 적어 보내왔다. 앞으로 독자 여러분의 많은 성원을 부탁드린다.
▲초등 5학년때 골프와 첫인연, 축구선수 꿈꾸던 ‘태권소녀’
“너. 재미교포냐?”
“아뇨. 순수 한국 토종인데요.”
올 시즌 들어 많이 들은 질문이고 답변이다. 그도 그럴 것이 생전 이름도 듣지 못한 어린 골퍼가 지난해 LPGA의 2부 투어인 퓨처스투어에서 5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우며 상금랭킹 1위로 LPGA투어 풀시드를 획득했기 때문이다.
1년 반 전만 해도 난 그저 미국 무대에 대한 꿈을 가진. 그저 가능성 있는 골퍼였을 뿐이었다. 생각해보면 그저 재미없고 지루한 운동이었던 골프가 지금은 내 인생의 전부가 됐다는 것이 신기할 뿐이다.
나와 골프의 첫 인연은 초등학교 5학년 때 맺어졌다. 아빠의 손에 이끌려 우연히 끌려간 연습장에서 처음으로 쥔 클럽은 그저 막대기였을 뿐이었다. 그리고 솔직히 그때에는 또래 남자애들과 어울려 축구를 하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리고 검정띠를 두를 만큼 태권도를 열심히 했을 정도로 활발하고 격한 운동을 좋아했기 때문에 가만히 서서 막대기를 휘두르는 운동이 적성에 맞을리 없었다. 덕분에 처음 몇 번만 아빠와 같이 가고 클럽을 잠시 놓았었다.
골프를 다시 시작한 것은 6학년에 올라간 얼마 후였다. 결정적인 계기는 엄마의 태권도 반대 때문이었다. 여자애이기 때문에 선머슴처럼 격렬한 운동을 하는 딸이 못내 못마땅하셨는지. 골프를 할 것을 적극 권유하셨다. 보통 아빠의 손에 이끌려 골프를 시작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지만. 나의 경우는 정반대인 것이다.
그렇게 골프를 본격적인 시작을 한 후. 6학년 말쯤에 처음으로 대회라는 것을 나가게 됐다. 서울시장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처음 대회에 나간 나는 룰도 제대로 모르는 ‘초짜’였다. 드롭 룰을 몰라서 첫 대회부터 벌타를 먹어야 했다.
아직 끝나려면 몇 홀이 남았는데. 그때 이미 100개가 넘는 타수였다. 옆에서 같이 플레이하던 친구들이 보기에 안쓰러웠는지 사정을 해도 경기위원님은 가차없이 벌타를 주었고. 그때 골프라는 운동의 무서움을 알게 됐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취미로만 생각한 골프였는데. 이 대회를 꼴찌로 마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문여중의 조호 감독님께서 전화를 하셨다. 졸업 후 서문여중으로 오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선수로 키울 생각이 없으셨던 부모님께서는 처음에는 반대했지만. 골프를 하면서 공부도 같이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나를 서문여중으로 보내셨다. 본격적인 골프 선수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게 된 것이다.
골프 선수로서의 실력을 갖추게 된 것은 중학교에 올라가기 직전의 동계 훈련 때였다. 몇 개 나가지 않은 대회에서 다른 아이들의 실력을 보게 된 나는 어린 마음에 지기 싫어하는 오기가 발동했다. 그러고는 베트남으로 동계 훈련이라는 것을 갔는데 그때 처음으로 70대 타수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발전을 보였다.
그렇게 차츰 실력을 쌓다가 중고연맹 대회에서 서서히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고. 결국 태극마크까지 달게 됐다. 원래 계획대로였으면 2006년 아시안 게임까지는 출전을 할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2005년 중반. 아빠와 미국 진출에 대한 이야기를 진지하게 나눴고 ‘미국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몰라도. 그게 아니라면 일찍 가는 것도 좋겠다’며 어려운 결정을 내리게 됐다. 그때도 그랬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봐도 큰 모험이 아닐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그렇게 미국 무대에 들어선 나는 첫해에 6승을 거두며 상금랭킹 1위에 올라 꿈에 그리던 LPGA투어에 입성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미국에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게 되면 어떤 모습이 돼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정도 만족할 만한 성과를 안고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내 꿈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박세리 선배처럼 훌륭한 선수가 되는 것이 내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지금까지 내가 골프를 통해 배운 가장 소중한 것은 자신감이다. 골프스윙의 가장 좋은 결과는 바로 ‘자신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시작되는 레슨과 이야기에서 일간스포츠(IS) 독자 여러분께서 골프에 대한 지식과 자신감을 얻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