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
[MLB인사이드] 박찬호의 패스트볼과 ‘팝(pop)’ 투구 이론
휴스턴의 트리플A 팀인 라운드락 익스프레스에서 메이저리그 복귀를 준비 중인 박찬호(34)가 후반기 첫 선발 등판인 지난 15일 오클라호마 레드혹스전 1회 시속 150㎞(93 마일)의 패스트볼을 구사했다.
넬슨 크루스를 상대할 때 볼카운트 2-1에서 헛스윙 삼진을 이끌어낸 볼이다. 박찬호의 전성기 때는 물론 메이저리그 기준으로도 시속 150㎞는 '보통 빠르기'이다.
파워피처를 논할 때 일단은 볼 스피드(velocity)를 평가의 기본으로 삼고 있다.
그런데 더 깊게 들어가 투구 이론적으로 파워 피처의 특징인 패스트볼에 접근하면 스피드보다 더 중요한 요소가 있다.
우리 말로 바꾸기 어려운 '팝(pop)'의 존재 여부이다. 패스트볼의 스피드가 아무리 빨라도 '팝'이 없으면 타자를 압도할 수 없다는 이론이다.
투구 이론에서 '팝'은 타자 앞에서 볼이 더 빨라지는 듯한 느낌을 주는 '엑스트러 스피드(extra speed)', 솟아오르는 '합(hop)' 그리고 타자를 겁나게 만드는 특유의 '소리(sound)'를 말하며 '팝'이 있는 볼을 '가장 위력적인 패스트볼'이라고 명시해놓고 있다.
현장에서 목격한 박찬호의 패스트볼을 회고해 보면 국가대표로 1998년 12월 태국 방콕 아시안게임에 출전했을 때의 '팝'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구장의 전광판에 시속 153㎞가 찍혔을 때 타자들은 몸을 움찔하기까지 했다. 당시 일본 투수 한 명이 150㎞ 이상을 던지기도 했으나 박찬호의 패스트볼과는 '팝'에서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LA 다저스 시절이었던 그해 7월, 6경기에 선발 등판해 4승무패 방어율 1.05를 기록하며 내셔널리그 월간 투수상을 받은 메이저리그 특급 파워 피처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던 것이다.
문제는 파워 피처가 구사하는 패스트볼의 특징인 '팝'이 영원히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부상을 당하거나 30대 중반에 접어들면 '팝'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중요한 것은 힘을 회복하는 훈련이나 투구 폼의 교정을 통해 떨어진 스피드는 회복할 수 있어도 없어진 '팝'은 결코 다시 만들어낼 수 없다는 사실이다. 투수론에는 이 상황에 이르면 파워 피처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 가지 중 하나라고 명시돼 있다.
첫번째는 스타일 자체를 파워 피처에서 기교파인 '피네스(finesse) 피처'로 바꾸는 것이다. 피네스 피처는 평균 이하의 패스트볼 스피드를 가지고 있으면서 정교한 컨트롤과 스피드의 다양한 변화를 통해 타자의 약점을 공략하는 투수이다.
두번째는 '피네스 피처'로의 변신이 싫거나 그에 실패하면 마운드를 떠나는 것이다. 파워 피처로 출발한 한화의 정민철은 기교파로 재기했고, LG와 일본 주니치,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SK를 거친 특급 좌완 이상훈은 '팝'이 사라진 순간 홀연히 야구 공을 놓고 기타를 들었다.
박찬호도 만약 패스트볼에 팝이 없어졌다고 판단되면 스피드에 대한 미련을 과감하게 버려야 한다.
로스앤젤레스=장윤호 기자 [changyh@ilga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