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등포에 먹을 곳이 있나?" 영등포는 넓은 상권을 갖추고 있음에도 딱히 맛집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도 그럴 것이 수많은 나이트클럽과 술집, 그리고 조폭과 삐끼가 떠오르는 유흥가의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등포도 한 때 먹거리로 '잘 나가던' 시절이 있었다. 여의도·구로동 심지어 부천에서부터 찾아온 인파로 가게마다 줄을 서던 때가. 그 부흥기의 중심이 바로 연흥극장 뒷골목이었다. 그러나 여의도 등 각 지역마다 다양한 먹거리들이 생기면서 이곳은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그래도 역사의 세월 속에 내공을 다지며 튼실히 자리한 몇몇 맛 고수가 남아있다. 대형 음식점 같은 세련된 맛은 없지만, 실한 맛과 왁자지껄한 풍경이 정감 넘친다.
그 중 최고령의 영등포 맛집은 '함흥냉면'을 꼽을 수 있다. 1967년부터 시작했으니 올해로 딱 40세다. 육수부터 감동스럽다. 보통 냉면집에서 내주는 뽀얀 사골국물이 아니다.
사골에 양지·무·양파·마늘 등의 야채를 넣고 갖은 양념 후 24시간 우려낸 진국이다. 건더기만 있으면 요리라 해도 무방하다. 육수를 두 세 잔 들이킬 때쯤이면 벌건 간재미를 올린 냉면을 내온다.
98% 고구마 전분으로 만든 다소 굵은 면발은 아삭하게 씹히면서 탄력있다. 유일한 사이드 메뉴 김치만두도 좋다. 직접 담근 김치와 두부·숙주나물 등을 큼직하게 썰어 넣은 왕만두는 어린시절 집에서 만들어 먹던 음식처럼 소박하다. 냉면 6000원, 김치만두 5000원
도심에 나가도 찾아보기 힘든 오향장육 전문점. 영등포에서는 오향장육에 있어 오랜 연륜을 갖춘 양대산맥이 있다. 바로 '북창원'과 '대문점'이다. 두 곳 모두 전문점다운 단촐한 메뉴와 세월이 느껴지는 묵은 인테리어로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촉촉하고 쫄깃한 육질과 부추를 넣은 간장 소스 등 내오는 형세는 비슷하다. 맛 또한 그 편차가 크지 않아 단골들도 기분에 따라 두 집을 오가며 술 한 잔을 청한다.
대문점의 오향장육(1만2000~1만5000원)은 오픈 때부터 끓여온 39년 된 장육소스가 맛의 비결이다. 다른 곳과 달리 오이채를 내주는데 뒷맛이 상쾌하다.
20년 이상의 내공은 갖춘 북창원(1만2000~1만8000원) 역시 애호가들의 꾸준한 사랑을 받는 곳이다. 진한 양념이 고기에 스며들어 따로 소스를 찍지 않아도 좋다. 젤리처럼 녹으며 고기의 간을 더하는 짠슬(돼지껍데기에 간장, 각종 한약재를 넣고 국물을 굳혀 만든 젤라틴)과 향긋한 내음으로 입안을 개운하게 하는 파채를 얹어 먹어도 좋다.
매운맛으로 유명한 오징어볶음 전문점 '여로집'도 빼놓을 수 없다. 여로집이라는 같은 간판이 길 하나를 두고 마주보고 있는데 노란 간판이 본점이다.
주방이 각각 따로 있지만 오징어 볶음과 오징어 무침은 본점에서 모두 조달한다고 하니 어느 집에 들어가도 같은 맛이다. 오징어 볶음은 눈물 쏙 빠질 정도로 맵지만 달콤해 술안주로 인기다. 밥을 시켜 비벼먹어도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오징어 볶음 1만 5000~3만원.
낙지 곱창전골(1인분 9000원) 전문인 '동백집'은 대 여섯 시나 돼야 문을 연다. 해물요리를 다루니 만큼 재료의 신선도 유지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철칙. 생낙지 사용을 위한 문 앞의 전용 수조가 눈에 띈다. 싱싱한 낙지에 곱이 실한 두터운 곱창과 얼큰한 육수가 어우러져 속을 확 풀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