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방송사에서 이천의 쌀밥거리 음식점들이 저렴한 다른 지역 쌀을 쓰고 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억울한 집이 한 두 곳이 아니다.
지역민을 통해 수매한 쌀로 밥을 지어내는 양심적인 곳도 많기 때문이다. 사실 농협 쌀보다 저렴하게 들여오므로 질은 한 단계 떨어지는 편. 하지만 썩어도 준치다. 임금님께 진상되던 이천 쌀의 타이틀 답게, 급이 낮다해도 품질은 보장된다.
더욱이 요즘 내오는 햅쌀밥 맛은 품종에 크게 좌우되지 않는다고 한다. 9000원으로 따끈따끈한 밥에 20여 가지 반찬이 올려진 풍성한 상을 받을 수 있으니 '최고보다 한 단계 낮은' 쌀도 그리 문제되지 않는다. 기본 상차림은 대동소이하다. 찌개·생선구이·게장·나물·제육볶음·쌈 등 비슷한 구성이지만 손맛에 따라 음식점마다 맛의 편차가 생긴다. 마진이 적어 음식 리필을 꺼리니 '눈치껏' 과한 요구는 자제하자.
'송월 한정식'은 작지만 도란도란 먹을 수 있는 아담하고 인정 넘치는 식당이다. 반면 주방은 넓다. 홀과 맞먹는 크기로 음식에 들이는 공을 짐작할 수 있다. 내오는 찬은 26가지. 여느 이천 쌀밥집보다 2~5가지가 많은 셈이다.
"입맛에 맞는 음식 먹으라고 내주는 거지." 인심 후한 주인장의 한 마디가 더 푸지다. 벽에는 한라장사·천하장사 등 씨름선수들이 다녀간 흔적이 남아있다. 먹는 양으로 최고랄 수 있는 그네들의 위를 만족시키는 곳이니 주인장의 '덤'인심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쌀은 남정리에서 가져온다. 1인 9000원.
'청풍명월'은 농협에서 내놓은 이천쌀 브랜드 '임금님표 이천쌀'로 밥을 짓는다. 지역민에게서 구매하는 쌀보다 가격대가 더 비싸 1인당 1만원을 받는다. 하지만 시에서 검증한 쌀을 사용하는 만큼 믿음이 간다. 음식은 코스 형식으로 내온다.
주문을 하면 오징어초무침·구절판·가오리찜 등 7가지 전채 음식을 내온다. 다른 집에 비해 정성이 들어간 단품 요리들이다.밥이 되길 기다리는 15분은 오히려 본 식사보다 즐거운 하이라이트 타임이다.
주인장의 깐깐하고 깔끔한 성격이 주방에서 식탁까지 스며있는 '옛날 쌀밥집'. 내부에 들어서면 유명인의 사인이 벽을 따라 병풍처럼 둘러쳐있다. 코스타리카 대통령에서 이어령·최불암 등 각계 각층의 인사가 들렀던 곳이다.
음식도 정갈하다. 찬은 김치류가 맛깔나다. 간장으로 양념한 고추버섯 볶음은 소고기 장조림 같은 식감에 은은한 버섯향이 어우러져 이채롭다. 갈치 정식은 저렴한 만큼 냉동갈치를 쓰지만 짭짤하면서도 입맛을 당기는 푹 익은 무와 두툼한 갈치 살이 혀에 살살 감긴다. 밥은 최상 품질은 아니지만 이천 호법 농협의 쌀을 사용한다. 갈치 정식 1만5000원.
'가마솥이천쌀밥집'의 마스코트는 바로 가마솥이다. 이 일대 음식점들이 뚝배기 밥을 내주는데 반해 뚝배기만한 미니 쇠솥에 밥을 지어온다.
종종 마당의 대형 무쇠 가마솥에서 메주를 쑤거나 우거지를 삶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밥에 철분 성분을 더하는데다 밥맛이 더 좋다고 믿는 음식조리에 자부심 강한 여사장의 아이디어다. 음식은 깔끔한 편이다. 특히 된장찌개는 다른 곳과 달리 상에서 끓여 먹는 수고를 더한다.
두부와 나물 조금, 들어간 재료는 별 거 없지만 맛은 구수한 진국이다. 멸치와 무를 우린 육수에 직접 만든 장을 넣는 것이 맛의 비결. 1년된 묵은 지에 멸치를 넣어 볶은 김치볶음도 소박한 고향의 맛을 담아낸다. 밥은 이천 대포리 목아면 쌀로 짓는다. 1인 9000원.
이천= 글·사진 백혜선 기자 [s100@joongang.co.kr] (송월한정식 031-632-7033│청풍명월 031-637-1616│가마솥이천쌀밥집 031-633-8818│옛날쌀밥집 031-633-3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