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강영우 백악관 차관보 “이명박-부시 만남 취소된 것 아니다”
2001년 한국인 최초로 미국 내 장애인 복지 정책을 관장하는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 차관보에 임명돼 화제를 모았던 강영우(63)씨.
그는 왜 이명박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와 부시 미국 대통령 간 회담을 적극 추진했을까? 그가 밝힌 회담 추진 진짜 이유와 배경이다.
■이명박·부시 면담은 뉴욕 교민과 박대원씨가 요청했다.
그는 먼저 "두 사람 간 면담이 확정되기도 전 이 사실을 한국 언론에 먼저 알린 나에게 무산의 1차적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언론에 회담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정부가 미국 정부에 항의한 것도 무산된 이유 중 하나였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정부의 누가 어떤 경로를 통해 항의했는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이것이 가장 큰 이유"라고 강조했다.
그는 "내가 먼저 두 사람의 대화를 주선한 것이 아니다. 지난 8월 이 후보를 지지하는 뉴욕 교민들의 요청에 의해서였다"라고 밝혔다. 이 요청을 처음 받았을 때 "단호히 거절했다"라고 덧붙였다. 교민들에게 "난 할 수 없다. 그것은 공식 외교 라인이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민들의 전화는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 한밤중에도 계속됐다. 그는 교민들의 끈질긴 전화에 화가 나 "이명박 후보가 나를 안다. 명함을 두 번이나 드렸다. 이 후보가 필요하면 직접 연락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달 28일 박대원 전 서울시 국제관계 자문대사(그는 박대원 대사로 호칭했다)가 워싱턴으로 전화, "부탁하기보다 교민들이 전화하라고 하니까 일단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전화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런 박 전 대사에게도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의 만남이 공식 라인으로는 안된다"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사도 "안다"라고 답했다.
그는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국내 라인을 통해 될 수 있는 길은 있다"라고 여운을 남겼다. 박 전 대사는 "그럼 그렇게 추진해 줄 수 있느냐"라고 요구했고, 그는 "장담은 못하지만 노력은 하겠다. 이 후보의 이력서를 보내 달라"라고 말했다.
그는 "이왕 도와주는 거 확실하게 도와주고 싶었다"라고 당시를 돌이켰다. 그래서 "미국으로 오면 부시뿐만 아니라 더빈 민주당 원내 부대표를 만나라"고 조언했다.
더빈은 그의 형이 둘씩이나 한국전쟁에 참전했고, '미주 한인의 날'을 제정해 매주 1월 13일 기념 행사를 갖기도 하는 등 한국과 인연이 있었다. 더욱이 강 차관보의 둘째 아들인 강진명(32)씨가 민주당 의회 부대표실의 최고 책임자이기 때문에 쉽게 성사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는 이어 "공화당에서는 원내 대표를 만나라. 하원은 잘 모르지만 상원은 누구를 만난다고 해도 시간만 맞으면 내가 만나게 해 주겠다"라고 덧붙였다.
■이명박 후보의 작은 배려가 면담 추진 진짜 이유
그와 이 후보는 1998년 소망교회에서 처음 만났지만 그땐 인사만 나누었다. 두 번째 만남은 2001년 여의도에서 열렸던 한 기독교 모임에서였다. 그때 그는 한국과 미국의 대학 소임 차이에 대해 강의했다.
그가 이 후보와의 인연을 특별하게 생각한 것은 세 번째 만남이었던 2006년 5월 5일이었다. 어린이날을 맞아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이 후보가 시청 앞 광장에서 연설 중이었다. 숙소가 시청 근처였던 그는 청계천을 둘러보고 오는 길에 이 후보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는 자신을 안내했던 교수에게 "내가 이명박 시장을 아는데 목소리가 들리니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라고 말했다.
자신을 기억 못할까 봐 "안녕하십니까? 강영우 박사입니다"라고 밝힌 그를 이 후보는 정확히 기억했다. 두 번째 만남 당시 자신이 했던 강연 내용까지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 후보가 나를 기억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강연 내용까지 기억하고 있으니 매료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이 후보는 그에게 무조건 함께 점심하자고 강권했다. 2시간 동안 이어진 식사에서 이 후보는 그가 시각 장애인이라 식사를 잘할 수 없으리라 생각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이것도 드리고 저것도 드려라"라고 부탁했다. 나중에는 "제주도산 귤"이라며 귤을 그의 입에 직접 넣어 주기까지 했다.
그 같은 배려를 한국 지도자급한테서 처음 경험한 그는 감동했다. 그는 "한국의 지도자들은 대부분 비서를 통해 혹은 자신의 아내를 통해 식사하도록 도와준다. 이 후보는 달랐다"라고 말했다. "그 조그만 배려가 이 후보에 대한 좋은 인상으로 남았고, 그 배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장애인들에게 많은 배려를 해 줄 것 같았다. 이 후보와 부시 대통령이 장애 외교를 통해 한·미 우호를 다질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 대화를 적극 추진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나 혼자 대화를 추진했던 게 아니다. 부시 대통령 아버지인 부시 전 대통령, 손버그 전 법무 장관 등도 거들었다. 이들은 지금도 나와 함께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에 먼저 알린 나의 실수, 한국 정부의 항의, 백악관 공식 라인을 거치지 않았던 점 등이 겹쳐 회담이 무산됐지만 시기가 문제지 이 후보와 부시는 만날 수 있다"라고 단언했다. 그는 이에 대해 "실무자들이 2~3단계 검토를 마치고 '이 만남은 하면 좋겠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래서 대통령이 일정이 되면 일정을 잡으라고 했다. 대통령의 승인은 없어진 게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즉 "두 사람의 만남은 취소된 것이 아니고 '홀드'된 상태"라고 덧붙였다.
정병철 기자 [jbc@joongang.co.kr ]
이예진 기자 [hapfun25@jesnews.co.kr]
사진=이호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