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새해가 밝았다. 1월 1일, 새로운 희망과 행복이라는 역을 향해 시동을 거는 날이다. 그 첫차에는 꿈이 가득할 것이다. 새해 첫 새벽을 열며 여명 사이로 달려나갈 첫차를 떠올리며 2008년의 첫 열차를 찾아 나섰다.
운행 시간표에 나와 있는 KTX의 공식적인 새해 첫차는 1일 오전 5시 20분 용산을 떠나 목포로 향하는 열차다. 서울역에서는 5시 25분 부산행 KTX가 첫 기적을 울린다. 그러나 ‘진짜 첫차’는 따로 있다. 철로 안전 점검을 위해 새벽 5시에 서울역을 출발해 대전으로 향하는 KTX다.
이 열차에는 승객이 타지 않는다. 비록 텅빈 객실이지만 한해의 꿈을 가득 싣고 달리는 첫차를 운행하는 일도 남다른 기분을 느끼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2008년 첫 점검열차를 맡은 고재원 KTX 기장(43)을 만났다.
■2008년 안전운행의 초석을 다지며
“새해 첫날 첫 기적을 울리는 열차에 몸을 싣게 돼 영광입니다.”
고 기장은 2003년 KTX를 시운전할 때부터 열차를 운행해온 개통 멤버이다. 2004년 4월 정식 개통할 때부터 지금까지 점검열차는 10회 정도 참여했다. 점검열차를 담당하는 기장은 따로 있는 것은 아니고, 순환하면서 운행을 한다.
그 중 이번처럼 새해 첫날 점검열차를 맡은 것은 처음이다. 새해 첫날 점검열차는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단 4번의 기회만이 있었을 뿐이다. KTX 기장 300명 중에 선택된 것이니 행운이라면 행운일 수도 있다.
점검열차는 하루 전 운행이 끝나고 나서 다음 날 새로 운행을 시작할 때까지 미리 선로를 달리면서 KTX가 정상속도로 운행이 가능한지를 살핀다.
“규정속도보다 조금 느린 시속 170㎞로 운행합니다. 시설물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허용 속도가 시속 170㎞이기 때문이죠.” 점검열차는 대부분 무정차로 운행하지만 간혹 관제실에서 점검상황이 있을 때는 정차를 하기도 한다. “이번 점검열차 운행은 색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제 안전의 시작이 2008년 KTX 안전운행의 초석이 될 수 있으니까요.”
■세계로 뻗어나가는 꿈을 꾸다
고 기장은 110만㎞를 무사고로 운행한 베테랑이다. 부기관사부터 시작해 기장까지 23년 동안 경미한 사고 한 번 없었다. 다만 생리적인 현상 때문에 곤란한 일을 당한 경험이 한 번 있었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가던 중 탈이 난 것이다. 기관실에서 혼자 근무하다 보니 소변이 급할 때는 페트병을 이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속이 너무 안좋아 참을 수 없는 경우엔 낭패가 아닐 수 없다. 할 수 없이 대전역에서 비상대기하고 있던 기장과 교체해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고 기장은 1일 점검열차를 운행하고 나서는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대전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통근 KTX에 몸을 싣는다. 새해 첫해가 떠오르는 시간이 7시 30분 무렵이니 서울에 도착하면서 일출을 볼 수 있다. “몇 해 전 일반 열차를 운행하면서 새해 첫해가 떠오르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6㎡도 안되는 기관실의 작은 공간에서 첫해를 바라보는 것은 너무 멋있고 색다른 경험이죠.” 고 기장은 그 첫해를 바라보며 한가지 소망이 있다고 한다. “한국형 고속열차가 내년에 터키 고속열차 구매사업 입찰에 참여하고 브라질 고속철도 건설사업에 주력 차종으로 제안될 예정이라고 하더군요. 그럼 고속열차 운용자도 필요할 텐데 저도 꼭 참여하고 싶습니다.”
2003년만 해도 운행자와 관리자가 달라 협조 관계가 잘 이루어지지 않은 탓에 광명에 있던 차량기지 담을 넘어 들어가 KTX를 시운전하던 기억이 있었는데, 이젠 세계로 수출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에서 유럽까지 선로가 연결되는 날, 한번 신나게 달려보고 싶다”는 고 기장의 소원처럼 올 한해 우리 경제도 세계로 힘차게 달려나가길 기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