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정치 드라마를 표방하는 KBS 1TV '대왕세종'(극본 윤선주, 연출 김성근)에 공무원 출신 3인방이 출연중이라 눈길을 끈다.
전 문화관광부 장관 김명곤, 전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 최주봉, YS 시절 청와대 경호원 출신인 정의갑이 그들이다. 한 드라마에서 권력의 중심부까지 갔던 사람이 셋이나 모인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19일 KBS 수원 드라마 세트장에서 이들 3인방을 만났다. 흥미로운 건 세 명의 배역이 2대1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장관을 그만두고 안방 극장에 컴백한 김명곤은 조선에 대항하는 고려 잔존 비밀결사단체의 수장 옥환 역을 맡았다.
청와대 경호원 출신의 정의갑은 옥환을 그림자처럼 따르는 호위무사 무비 역이다. 반면 최주봉은 조선의 세자 양녕대군을 지지하는 공신 김안로로 나온다. 혁명과 권력 수성의 엇갈린 운명이다.
최주봉은 2005년부터 이듬해까지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으로 일했다. 이 자리는 서울시장이 임명하는 공무원이다. 30년 동안 연기자 생활만 하던 그는 조직의 리더로서 철저히 변신하며 정치를 배웠다.
그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반드시 있다. 그들마저 나를 따라오게 하는 게 정치다. 서울시 뮤지컬단 단장 시절 네 명의 배우를 내 손으로 내보냈다. 다른 길을 가야 더 잘 할 사람들이었다. 조직의 수장으로서 끝까지 설득했다"고 말했다.
자기 의견에 소신을 굽히지 않는 김안로 역의 최주봉은 "이 드라마를 하면서 조선시대의 정치 조직이 허술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파이가 많아서 한마디 하면 금방 정보가 새어나간다. 지금이나 그때나 헐뜯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웃음) 세종 때는 새로운 정치를 펼치는 과정이었다. 우리 시대도 황희 정승 같은 지혜로운 사람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의갑은 '무인시대', '연개소문', '별순검'부터 '대왕세종'에 이르기까지 줄곧 장군과 호위무사 역을 소화했다. 1992년 12월 청와대 경호실 소속 부대로 배치돼 2년 동안 경호원으로 군복무를 했다. 그 인연으로 배우가 아닌 경호원으로 길을 바꿀 뻔했다.
KBS 슈퍼 탤런트 출신인 그는 "당시 사격과 경호술이 뛰어나 상을 많이 받았다. 한번은 경호대장이 '말뚝 박는 게 어떠냐'고 묻길래 '대장님, 저는 영화배우 할 겁니다'라고 거절했다. 청와대 생활하면서 상관의 명령이라면 죽을 수도 있다는 자세로 살았다. 그게 내가 아는 정치"라고 웃음지었다.
하지만 청와대 경호실 출신이란 꼬리표가 늘 반갑지만은 않다. "예전처럼 멜로 연기도 하고 싶다. 경호원 출신이란 이력 때문에 호위무사 역만 들어온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고위 공무원 출신인 김명곤은 "정권 교체기라 민감한 상황"이라며 말을 아꼈다. 공직 생활을 통해 정치를 체득한 이들의 노하우가 '대왕세종'에서 빛을 발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