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간판 연극 ‘보이첵’이 다음 달 4일~10일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된다. 소극장 공연서 마니아층을 형성하며 관객과 평자로부터 높게 평가받았던 이 작품이 대극장 무대에서 공연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열한 개 의자와 열한 명 배우로 지난해 에딘버러 프린지에 이어 올 초에는 영국 런던 마임페스티벌에 초청돼 극찬받은 보이첵의 색다른 무대 언어에 귀를 기울여 보자.
■이 작품을 놓치는 것은 미친 짓이다
지난해 영국 에딘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한 보이첵은 작품 선정에 까다롭기로 유명한 오로라노바극장에 아시아권 작품으로는 최초로 입성했다. 그것만 해도 놀라운데 오전 10시 30분이라는 사각 시간대 공연에도 불구하고 연일 매진 사례를 기록했다. 현지 언론들은 별 5개의 평점을 주며 “이 작품을 놓치는 것은 정말 미친 짓”이라고 극찬했다.
2000여 참가 팀 중 객석 점유율 1위를 차지하며 헤럴드엔젤어워즈와 베스트피지컬씨어터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고, 영국 BBC 방송이 선정하는 2007 에딘버러 톱10에 뽑히기도 했다. 당시까지 해외에서 인정받은 점프·난타 등이 한국적 색체가 진한 공연물인데 반해 보이첵은 세계인의 보편적 정서에 호소하는 컨템퍼러리 연극이라 그 의의가 더 깊다 하겠다.
올 초에는 2008 런던 국제마임페스티벌에 초청받았다.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히로아키우메다와 보이첵뿐이다. 런던 템스 강변 750석 규모의 극장인 퀸엘리자베스홀에서 지난달 24일~26일 3회 공연을 가져 3일 연속 객석 점유율 80%를 기록했다.
■요절한 극작가의 백조의 노래
24세로 요절한 독일 극작가 게오르그 뷔히너(1813~1837)가 죽음을 앞두고 집필한 미완성 희곡 보이첵은 1821년 한 이발사가 애인을 칼로 찔러 죽인 뒤 라이프치히 장터에서 공개 처형된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졌다. 부조리에 짓밟힌 소시민의 비극을 다룬 이 희곡은 연극·무용·오페라 등 여러 장르로 변주돼 왔다.
가난한 육군 소총수 보이첵은 철저히 소외된 인간이다. 군대에서 상급자의 눈치를 보며 개처럼 살아간다. 상사의 기분에 의해 보이첵의 하루는 천국도 되고 지옥도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사악한 의사에게서 임상 실험을 당한다. 명령에 따라 매일 완두콩만 먹고 소변의 양과 감정 상태를 검사받는다. 인간이 아니라 사육당하는 동물과 같은 존재로 취급받는다.
그에게 유일한 삶의 보람은 사랑하는 여인 마리다. 그러나 그 여인조차도 돈 때문에 장교에게 농락당한다. 절망한 보이첵은 마리를 죽이고 목숨을 끊는다. 비인간적 사회 환경에 의해 속절없이 파멸당하는 무력한 인간의 모습을 보인 작품이다. 초연 때부터 계속 출연하며 에딘버러에서 호평받았던 배우 권재원이 보이첵 역을 맡는다.
■열한 개 의자로 표현하는 몸짓 언어
사다리움직임연구소의 보이첵은 기존 연극의 고정화한 틀을 깨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받아 왔다. 보이첵이 정신착란에 빠져 파멸하는 과정을 배우들의 움직임과 나무 의자만으로 표현한다.
보이첵에 사용되는 열한 개의 의자들은 연기자의 신체와 같은 도구로 무대 위에서 생명체처럼 살아 숨쉬며 극적 상태를 더욱 극대화시킨다.
배우들은 의자와 합체가 되어 보이첵을 억압하기도 하고, 의자와 불완전체가 되어 보이첵이나 마리의 심리 상태를 표현하기도 한다. 텅 빈 무대에서 의자들은 마치 변형하는 퍼즐처럼 움직인다. 나무 의자와 신체 언어에 의하여 무거운 주제를 표현하는 일련의 과정이 흥미롭고 경탄스럽다.
우리에게 익숙한 방식이 아닌 낯설고 새로운 방식으로 표출하는 보이첵의 색다른 무대 언어는 관객의 상상력을 자극시키고 지적 만족감을 부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