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피플] 우주인 탄생 숨은 공로자 정태익 전 주러대사
“이소연씨가 무사히 돌아오길 바라며, 그의 성공이 한국 과학 발전의 계기가 되기를 기원한다.”
정태익(65) 전 주러 대사의 바람은 그 누구보다도 진심어리다. 한국 최초 우주인이 탄생하기까지 묵묵히 일해 온 숨은 일꾼이기 때문이다. 2002년 2월부터 2004년 12월까지 한·러 외교관계의 디딤돌 역할을 해온 정 전 대사가 없었다면 한국 첫 우주인의 탄생은 더 기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
■‘우주 영웅’이 필요한 시기
정 전 대사는 모스크바 부임 직후 열악한 경제사정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정부가 얼마나 우주과학 분야에 열정을 갖고 있는지를 보고 깜짝 놀랐다. 러시아는 이미 1960년대에 ‘과학도시’를 만드는 등 과학자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최초 유인 우주선 스푸트니크호도 그렇게 탄생해 전세계를 놀라게 했다.
정 전 대사는 우주 항공 분야에서 뒤떨어진 우리 과학계에 자극을 주고 일반인들의 과학에 대한 관심을 끌 만한 일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방편의 하나로 ‘우주 영웅’ 즉 한국 최초 우주인을 만들어 보자고 생각했다. 당시 한국에는 이공계 기피 현상으로 과학계 전반에 위기가 찾아온 상황이었다.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는 정 전 대사는 연합뉴스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우주 영웅을 만들려면 러시아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연방 우주청 등 러시아 정부 관계자를 접촉하기 시작했다. 우주인 배출 사업을 포함한 러시아와 우주 협력 사업 가능성을 타진한 것이다.
그는 “처음에는 러시아 측이 달가워 하지 않았다. 자국의 우수한 항공우주기술이 유출될 것을 두려워 하는 눈치도 보였다”고 회고했다. 결국 러시아 당국은 그의 설득에 고개를 끄덕였다. 정 전 대사는 “소련 붕괴 이후 러시아 우주 산업은 극심한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던 터라 결국 오케이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런 한편으로 한국 정부에는 러시아와의 우주 협력의 시급함을 역설했고, 과학기술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던 한국 정부도 이때부터 우주인 사업에 적극 뛰어들었다.
■우리 손으로 발사체를 쏘자
러시아와의 우주협력 사업이 물흐르듯 쉽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개인이 돈을 주고 우주 관광을 하는 상황에서 그것도 이미 34개국이 우주를 다녀간 마당에 우주인 배출 사업이 의미가 있겠느냐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이공계 위기 타계와 과학 대중화를 위해서는 돌파구가 필요했다.
드디어 2003년 5월 한·러 양국은 우주기술협정을 맺기로 합의했다. 한국이 추진한 최초의 양자 간 우주기술협정이었다. 그리고 2004년 9월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스크바 방문 당시 우주기술협정을 체결, 러시아의 앞선 우주기술을 도입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
정 전 대사는 “우주 산업은 안보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고 다른 산업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면서 “앞으로도 러시아와 우주과학 협력 교류는 지속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중국은 자체 우주 발사체로 우주인을 보내고 있다. 후진국도 관심을 보이고 있는, 성공 가능성이 큰 사업인 만큼 한국도 우주 산업에 더 적극적인 투자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 전 대사는 “물론 저도 우주인 사업에 밀알이 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힘을 실어주었던 분들, 그리고 그 이후 우주인을 성공적으로 우주로 갈 수 있도록 애쓰신 분들의 공이 나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우리 손으로 발사체를 쏟아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정 전 대사는 이명박 대통령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 자문위원을 지냈고 현재 유라시아 포럼 대표 및 한·러 친선협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방현 기자[ataraxia@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