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엄마가 뭐든 다 해줄께” 장성한 자녀 인생에 참견 ‘헬리콥터 맘’
▲사례 1= 명문 사립 A대학교의 인문대 교수인 이모 교수는 지난 연말 기말교사가 끝난 뒤 교수실에서 40대 후반의 어머니와 그 손에 이끌려와 울상을 짓고 있는 제자의 기습 방문을 겪고 땀을 뻘뻘 흘렸다. 그 어머니는 "우리 아들에게 왜 이리 학점을 짜게 줬느냐. 근거가 뭐냐"며 항의에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사례 2= 지난 해 사법연수원생들과 사법부 고위 관계자들이 상견례를 하는 자리. 초청받은 모 교수는 화장실에 갔다가 어느 한 켠에서 흘러 나오는 전화 통화 내용을 듣고 실소를 금치 못했다. 아마도 성적이 상위권에 드는 것으로 추정되는 이 연수원생은 "엄마, 저기 높은 분이 나 어떤 분야에 관심 있는지 묻는데…. 나 어디 가야돼?"라며 묻고 있었다.
요즘 어머니는 유치원생 때부터 자녀의 '학습 매니저' 노릇을 한다. 그 때부터 영어·수학·논술 등 학습 프로그램을 짜는 것을 시작으로 중·고교 때는 특정 과목을 잘하는 학원은 어디이고, 우리 아이와 맞는 학원은 어디인지 다양한 정보를 수집해 선정한다. 외국어고나 과학고, 민사고 등 이른바 특목고에 자녀를 보내려는 부모들의 교육열과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입시 제도가 각 대학마다 달라 고3 선생님마저 잘 모르는 현실에서 어머니들은 자기 자녀가 받은 성적과 적성에 맞는 학교나 학과를 선정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요즘 대학생 자녀들은 10여년간 공들인 자신들의 '작품'에 다름 아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학습 매니저가 된 어머니들이 대학교에 들어간 장성한 아들의 일거수 일투족까지 참견하는 이른바 '헬리콥터 맘'들이 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새학기 취업정보실에 걸려오는 전화다. 전화를 걸어오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학생이 아닌 어머니들이다.
요즘은 대부분의 학교가 학부제를 시행하고 있어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학과를 선택하게 되는데, 학부모들이 해당 학과의 취업률과 진로 등을 꼼꼼히 물어 자녀의 학과를 선택하는 것이다. 학과를 선택하는 학과 설명회 참석 인원의 절반 이상이 자녀 손을 잡고 온 어머니들이다. 대입 원서 접수 창구에서 눈치 작전을 벌이던 엄마들이 이젠 대학 캠퍼스 안까지 진출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엄마’가 나서서 수강신청을 돕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아이가 수강신청을 못해 그러는데 담당 교수님 연락처를 알려달라." "어떤 과목을 들어야 아이가 나중에 취업할 때 도움이 되나?" 심지어는 커리큘럼 전체를 부모가 다 짜주는 경우까지 있다.
어릴 때부터 모든 것을 부모가 달 알아서 해주다 보니 자신이 주도해 하는 일에는 낯설고 겁부터 먼저 나는 탓이다. "아이들이 친구와 싸우고 들어왔는데 학생 지도를 어떻게 하길래 그런 것이냐"며 항의하는 일도 있다.
이런 추세에 맞춰 대부분의 대학들은 '엄마 마케팅'에 열심이다. 학생만 부르던 오리엔테이션에 학부모를 초대하는 것이 대세이다. 일부에서는 '학부모 대학'까지 개설하고 있다. 학생 어머니에게 학교의 교육 목표와 커리큘럼, 비전 등에 대해 상세히 설명하는 자리다. 일례로 올해 초 열린 사립 명문 B대학교의 학부모 간담회에는 신입생(1800여명) 3분의 2에 달하는 1200여명의 학부모가 참가했다. 서울대도 올해 개교 이래 처음으로 본부 차원에서 학부모 행사까지 열었다.
이런 자리는 부모들에게 학교의 교육 방침을 설명하는 의미도 있지만 ‘엄마’들의 입소문이 학교 선택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존적인 대학생의 양산은 자녀수가 줄고 부모들이 고학력인 사례가 늘면서 자녀 교육에 필요 이상으로 많은 관심을 두기 때문이다. 연세대 소아정신과 신의진 교수는 "요즘에는 부모들이 모든 것을 대신해주며 아이들이 정신적으로 성장하지 못하게 한다. 의존적인 아이를 즐기는 경우까지 있다"고 진단했다.
사립 C대학교의 한 교수는 "자기 혼자서는 아무것도 못하는 대학생들이 늘고 있다. 학습 능력도 전반적으로 점점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 교재의 일정 부분을 요약해오라는 기초적인 것도 못하는 학생들이 많다. 주입식 교육에만 익숙해진 탓이다. 부모들의 과도한 간섭과 관심은 결국 독립적인 사회생활 능력을 떨어뜨릴 뿐"이라고 개탄했다.
[용어설명] '헬리콥터 맘'은
착륙 전의 헬리콥터가 뿜어내는 바람이 거세듯 거센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자녀 주위에서 맴도는 어머니를 빗대는 용어.
박수성 기자 [mercury@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