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최경환과 빈볼시비로 촉발된 SK 윤길현의 욕설파문은 KIA 팬의 집단행동으로 일파만파 확대된 뒤 SK 구단의 공식사과로 일단락됐다. 카메라 앞에 고개를 숙인 노(老) 감독의 모습에서 들끓었던 네티즌도 숙연해진 모습이다.
김성근 SK 감독은 제자의 인성 교육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에서 19일 잠실 두산전에서 하루 지휘봉을 놓았다. 당초 이번 주말 3연전까지 4경기 내내 쉬면서 자성의 시간을 갖기로 했으나 삼성과 주말 3연전이 홈 경기라 홈 팬들에 대한 예의에서 벗어난다고 판단, 하루로 대신했다.
이와 관련 SK 구단 관계자는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은 격"이라며 사태 초기 대응이 미숙했다는 점을 인정했다.
문제의 핵심은 승부욕과 그라운드에서의 예의(매너), 어찌보면 상충되는 두 가지 명제의 경계선을 어디까지 보느냐에 있다. 더욱 확대한다면 두 명제의 충돌은 야구라는 미국의 스포츠가 한국에 도입되면서 태생적으로 잉태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빈볼시비 과정에서 11년 선배에 대한 윤길현의 행동은 한국적 시각에서는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미국적 시각에서는 "그라운드에서 흔히 발생할 수 있는 일"쯤으로 치부된다. 2004년 투수 페드로 마르티네스(당시 보스턴)는 72살의 돈 짐머 코치(당시 양키스)를 밀쳐 그라운드로 내동댕이치기도 했다.
사과문 서두에 "선수단 교육을 잘 시키지 못한 내 책임"이라고 밝혔지만 "그라운드에서 발생한 일은 그라운드에서 끝내면 된다고 생각했고, 과거에도 그래 왔기 때문에 이번 사태를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김성근 감독의 견해는 미국적 시각에 근접해 있다. 사건의 당사자인 KIA 이종범과 최경환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SK 주장 김원형과 윤길현으로부터 사과를 받아 들였다. 선수협회 차원에서 예절 및 인성교육을 실시하겠다"고 사태가 확대되지 않기를 바라는 것도 미국적 시각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결정일 것이다.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라운드에서는 욕설을 내뱉으면 안되면 되는 것일까. 다분히 미국적인 스포츠에 한국의 문화적 요소를 가미된 그 경계선은 사건 종결된 지금도 모호할 뿐이다. 차후 같은 일이 발생했을 때 매너와 비매너의 판단은 누가 내려주는 것일까.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인터넷 시대에 팬들이 가진 힘이다. 당사자끼리의 사과를 주고 받았음에도 KIA 팬들은 SK 구단 차원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그리고 그들의 요구에 따라 공식 사과를 받아냈다.
이 과정에서 윤길현은 '그라운드의 패륜아로 낙인 찍혔다. 온라인과 휴대폰 문자 메시지 등으로 KIA 팬들의 집중적인 포화를 맞은 윤길현은 현재 대인기피증과 울렁증이 생겼다고 한다. 그가 다시 마운드에 올라 예전처럼 공을 뿌릴지 의심된다. 순간의 실수로 위기에 처한 그의 야구인생은 누가 보듬어 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