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문화
“지도자 희생 강요하는 스포츠 강국은 환상”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한국은 금메달 13개, 은메달 10개, 동메달 8개로 종합순위 7위에 올랐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 가운데 마지막 7(세계 7강)이 달성된 것”이라고 찬사를 보냈을 정도다.
그러나 “한국은 머지않아 세계 2류나 3류 스포츠 국가로 전락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가 있다. 경상북도 영천교육청의 이원영(54) 장학사다. 그가 한국 스포츠의 몰락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엘리트 스포츠의 근간인 학원 스포츠 지도자들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현실”에 근거한다. 이 장학사는 레슬링 국가대표(1978~1980년)을 거쳐 문경서중, 경북체고 교사를 거친 학원 스포츠 전문가다.
이 장학사는 “처우 뿐만이 아니다. 전문 역량을 가진 코치들이 학원 스포츠 행정에서 소외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현재 학교 엘리트체육 지도자는 임용고시로 채용된 체육 교사와 경기인 출신 코치로 이원화돼 있다. 미국의 경우 교사는 평균 이하 운동 능력을 가진 학생들, 코치는 평균 이상 체육 영재들을 맡은 식으로 역할 분담이 이뤄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체육 교사와 코치는 수직적인 관계다. 일부 코치들은 ‘일용잡부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다’며 현실에 대해 분개한다.
이 장학사는 "계약직에 승진도 없는 전문 코치들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겠나”라며 “선수나 학부모도 힘든 운동을 기피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관심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엘리트 지도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며 선수 육성까지 도맡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9월 25일 민주당 강성종 의원이 대한체육회와 공동으로 개최한 ‘학교운동경기부 지도자의 처우개선 및 지위향상 방안’ 공청회에서 학교 운동부 코치의 46.8%가 월 급여 101만~150만 원을 받는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또 전체의 97%가 1년 단위 고용 계약을 하는 비정규직으로 밝혀졌다. 엘리트 체육 진흥 투자에서 경기 지도자 부문이 시설, 스포츠과학, 선수 육성에 이어 네 번째로 중요하다(1998년 서울대 박사논문·김두현)고 하는 연구 결과가 있지만 현실은 아주 다르다.
엘리트 체육 지도자들의 위상 저하는 일반 학생들의 권익 침해로까지 이어진다. A 학교 운동부가 1년에 4개 대회에 출전할 경우 담당 체육 교사는 최소 20일의 수업 결손이 생긴다. 가뜩이나 입시에 내몰린 일반 학생들이 그만큼 체육 수업 기회를 박탈당한다.
한국 엘리트 스포츠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크게 발전했다. 1971년 서울에 이어 각 지자체마다 체육고교가 설립됐고, 1976년 한국체육대학이 문을 열었다. 주요 국제대회 입상자들에 대한 연금 및 병역혜택도 이때부터 시작됐다.
그러나 1990년대 군사정권이 물러난 뒤 엘리트 체육은 민간 주도형으로 변했고, 김대중 정부 이후 스포츠 행정은 생활체육을 중심에 두기 시작했다. 수업권 박탈, 인격 침해 등 엘리트 스포츠의 어두운 측면들도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장학사는 “생활 체육이 발전하면 엘리트 스포츠도 따라 발전할 것이라는 생각은 환상”이라고 반론을 편다. 그는 “나 또한 엘리트 스포츠 교육의 폐해를 직접 겪어 본 사람이다. 그렇더라도 생활 체육과 엘리트 스포츠는 분야가 다르다”며 “정부는 2006년부터 스포츠클럽 활성화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있지만 어떤 부모가 수능 점수에 반영되지 않는 클럽 활동을 권하겠나”라고 반문했다.
이 장학사 주도로 설립된 한국엘리트스포츠지도자연합회는 지난 19일 대전 대덕대에서 회의를 열고 국민체육진흥법 개정 등을 통해 지도자 지위 향상에 나서기로 했다.
최민규 기자 [didofido@joongang.co.kr]